18화
* * *
제환을 바라보는 김재성.
앞에 있는 남성을 보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자신과 나이 차이가 한 살밖에 나지 않는 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더군다나 앞에 대화를 나눌 때와 다르게, 계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뭔가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런 분위기를 배운다고 가능한 영역인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는 조건은 연봉 2억에 계약금 1억입니다. 기타 외 상여금이나 성과금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챙겨 드릴 생각입니다.”
“…….”
“혹시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절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못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봉 2억.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능력이라면, 어쩌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돈이다.
계약금 1억.
이것 또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능력에는 못 미치는 돈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남자.
내 능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기껏해야 유튜브에 올린 영상만을 봤을 거다.
물론 그걸 보고 이런 조건을 내건 거부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고.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내민 저 조건들.
분명 과한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부담스럽냐?
그것도 아닌 게, 나는 내 능력을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런 계약금과 연봉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성공할 자신도 있었고.
뭔가 딱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방금 말한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는 그 아래가 맞겠지만, 내 능력을 생각하면 저 조건이 적절한 것 같다.
뭐라 반박할 것도 없이 너무나 만족스러운 조건이기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 계약이란 건 밀고 당기고 해야 하는 건디…….’
분명 그렇게 알고 있고, 그게 맞는 건데 한마디 말도 뱉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하다는 말을 전하면, 줄어들 금액에 아쉬움이 느껴질 테고.
적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상한 남성이 계약을 없던 걸로 돌릴까 봐 그것 또한 두려웠다.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결론이 내려진다.
이것보다 더한 조건은 힘들다.
무조건 받아야 되는 계약 조건이라고.
시간을 더 끌었다가 혹여나 앞에 있는 남성이 생각이라도 바꿀까 봐 급하게 말을 건넸다.
“저는 괜찮은 것 같네요, 형님. 그럼 형님한테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겁니까?”
“아니요. 사장 자리는 제가 앉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재성 씨가 사장 자리에 앉아서 회사를 이끌어 줬으면 합니다.”
“……!!”
나 보고 사장 자리에 앉으라는 형님.
이게 무슨 말인가…….
계약 조건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쩐지 높은 연봉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일반 사원에게 2억이라는 연봉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높은 금액엔 이유가 있는 건데, 그저 내 능력을 생각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니.
조금은 반성을 해야 될 것 같다.
“혹시 부담스럽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형님!! 저 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담스럽긴 했다.
이때까지 투자만 할 줄 알았지, 경영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투자하면서 매번 다짐했었다.
성공하면 회사를 차리겠다고.
물론 내가 회사를 차린 건 아니지만, 사장이라는 자리도 한 단체를 이끄는 자리.
꼭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그런 꿈같은 자리에 나를 믿고, 한번 해 보라고 먼저 말을 해 주시는 데 부담스럽다고 거절하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물론 처음에는 힘드실 수 있습니다. 경험도 없을 거고요. 하지만 천천히 하나씩 알아 가시다 보면 그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최선을 다하겠다는 재성 씨를 바라보는 박제환.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계약을 하기까지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만약 재성 씨가 회사를 운영하는 걸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지금 하는 것들은 주가 아닌 부가 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쓸 시간조차 없이 회사 일에 집중해야 됐으니까.
그런 만큼 회사에 쓸 시간이 부족했기에, 재성 씨가 사장 자리에 앉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었다.
전생에서도 재성 씨가 투자 회사를 잘 운영했던 걸 알고 있기에, 더욱 맡기고 싶었고.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사장 자리가 부담스럽냐고 물었는데,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전해 온다.
지금같이 좋은 상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일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죠. 재성 씨의 영상을 살펴보면서 느꼈던 건데, 아직 자신만의 투자 기준이 부족하게 느껴지더군요.”
“…….”
“아마 투자를 진행하는 데 있어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이 있는 것 같네요. 분명히 저 종목이 끌리긴 하는디 막상 말하라고 하면 생각이 잘 안 나거든요. 형님 보는 눈이 기가 막히네요…….”
“내년 5월까지 그 감각이 어디서 기인 된 건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공부하도록 하세요. 자신만의 기준을 정립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내년 5월이요? 그럼 그때까지 일은 안 하고 공부만 하면 되는 겁니까?”
다가오는 2016년의 5월.
그때까지 재성 씨의 투자 방식을 제대로 정립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그때 이후로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만큼, 더 이상의 여유를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부만 시키는 게 아니다.
내 돈으로 월급을 주면서, 공부를 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빙자한 미래 준비.
지금 내가 말하는 건 공부라는 핑계로 미래를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공부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도록 하세요. 만약을 가정하도록 하죠. 만약 이번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배출됐을 때, 이 정보들을 이용한 투자를 포트폴리오로 작성하도록 하세요.”
“허…….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용해서 극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방식이네요…….”
“무조건적으로 이 상황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를 가정한 투자 방법입니다. 제가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낀다면 성과금을 드리도록 하죠.”
“……!!”
“제 기준을 넘을 시 1억. 그게 아닌, 아쉽다는 생각이 느껴진다면 다시 조사해 와야 될 겁니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이 작성해 온 포트폴리오가 나에게 만족을 줄 시 1억의 성과금을 준다는 말을 전하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재성 씨.
내가 만족한다면, 1억이란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거다.
내가 최소로 잡은 수익률은 5,000%.
그 수익률을 생각하면 1억이란 돈은 수수료조차 안 되는 돈이다.
자신이 나에게 만족스러운 수익률을 위해서 조사를 하다 보면, 그 과정이 몸으로 기억될 거다.
그러다가 진짜로 저 사건들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실수를 줄이면서 큰 수익률을 올릴 수 있게 될 게 틀림없다.
‘발생한 자금으로 계속 투자를 진행하면서 영향력을 올린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2017년은 만족스러운 한 해가 될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는 인정받고, 정환이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전생에 적었던 소설의 진정한 스토리가 시작되는 시기.
빨리 그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앞에 있는 재성 씨에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풀어 주기 시작했다.
* * *
형님과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는 김재성.
오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남자.
이제는 마음속으로나마 형님으로 부르기로 다짐한 사람.
너무 만족스러운 만남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직감이 강하게 왔다.’
형님이 말한 대로 내가 투자 종목을 정할 때는 감각적인 부분이 컸었다.
군대에서도 투자 종목을 살피다 보면, 한 번씩 느낌이 왔었다.
이 종목은 오를 것 같다고.
느낌이 온 종목이 오를 만한 이유를 찾아보고, 확신을 가지면 그 종목은 대부분이 상한가를 쳤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유를 찾고 종목을 분석하는 방식과는 말도 안 되는 효율을 자랑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종목을 기준으로 이유를 찾았으니.
‘형님한테 노다지 냄새가 찐하게 났단 말이제.’
형님을 처음 본 그 순간.
그 어떤 종목을 발견할 때보다 찐한 향기가 느껴졌다.
마치 산속에서 오래 묵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가 나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솔직한 마음으로는 조건을 듣기 전부터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같이 일하고 싶은 그 상황에서 형님은 한 번 더 내 마음을 빼앗아 갔다.
형님이 내건 조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 않은가.
나를 좋게 봐줬다는 걸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오늘 계약이 성공적으로 마쳐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더욱이 계약금으로 받기로 한 1억.
이 돈이면 충분히 아빠의 병실을 1인실로 바꿔 줄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전화해 봐야겄네…….’
늘 마음에 걸렸었다.
주변에 민감한 아빠가 6인실에서 허리를 치료하는 게.
심지어 그런 6인실도 아빠는 돈이 아깝다며, 퇴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전했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었다.
그런 아빠를 말릴 수가 없어서.
돈이 없어, 아빠에게 편히 쉬라는 말을 건넬 수가 없어서.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라고.
아들이 열심히 벌어서 아빠랑 엄마 편히 쉬게 해 주겠다고.
이전과 달리 자신감이 생긴 나는 곧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라면 이 전화 한 통도 걸기 힘들었는데, 상황이 달라지니 아빠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 여보쇼. 웬일로 재성이 네가 전화를 다 건다냐.
“아따, 그게 뭔 소리여……. 아빠 생각나서 전화혀 봤어.”
- 아빠는 괜찮응께 공부에 집중혀. 아빠가 허리 다 나으면 바로 일해서 지원해 줄 텡께. 아빠 아직 안 늙었어.
“됐어, 나 이번에 취업했응께 걱정 말어. 아빠도 푹 쉬셔. 이때까지 고생했응께 남은 인생은 좀 즐기면서 살아야제. 언제까지 힘든 몸 이끌고 공사장 갈 꺼여.”
- 뭐?! 우리 재성이 취업했다는 겨? 자세히 좀 말혀 봐. 어디 취업한 거여!!
“이번에 금융 쪽에 취업했어. 연봉 2억 받기로 했응 께 인자 아빠 건강 검진 한 번 받고, 편히 치료 받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응게. 안 그래도 회사에서 가족 병원비는 지원해 준다고 했응께.”
이번 만남에서 제일 감동받은 부분이다.
안 그래도 병원비로 걱정이 많았었다.
계약금 1억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병원비를 제외하고서도 이곳저곳에 들어갈 돈이 많지 않았던가.
그런 나의 맘을 눈치라도 챈 걸까?
형님이 가족 병원비나 다른 부분들은 회사에서 지원해 줄 테니, 일에 집중하라는 말을 전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게 아닌 만큼, 이런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그 자리에 있던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에게는 보답하자고.
나를 믿고, 투자하신 형님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자고.
5월에 보여 주기로 한 포트폴리오.
절대 형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조사하기 어려운 게 있다면, 계약금으로 받은 돈을 이용해서라도 각종 전문가들을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내려가서 바로 병원으로 향할 텡게 거기서 이야기하드라고.”
- 아이고, 그려 그려. 급하게 오지 말고, 조심히 내려와!!
계속해서 아빠와 전화를 이어 가던 나.
오늘은 이 기쁨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병원을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