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 *
작품을 완결지은 다음 날.
출판사에 마지막 원고를 보냈다.
이제는 진짜 보내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과거로 돌아와 처음 애정을 붙이고, 내 마음을 투영해 판타지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을.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니 어제와 같이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제는 일도 해야지.’
이런 감정들을 계속해서 즐기기 위해선 일도 어느 정도 병행해야 했다.
마침 시기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있을 엄청난 기회.
슬슬 준비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말에는 기존의 투자자들에게 지옥을 선사할 사건이 두 가지나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탄핵과 동시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
방금 말한 두 가지.
일반적인 사람이 상상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물이 나왔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인해 기존의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건은 내게 엄청난 기회가 돼 줄 것이다.
남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
그런 미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나.
두 가지가 합쳐지는 순간, 남들이 겪어 보지 못한 수익률을 자랑할 수 있을 테니.
‘이게 끝이 아니지.’
그로 인해 발생할 이득이 단순히 수익률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두 가지 사건을 예측했다는 선견지명.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률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기삿거리다.
이 결과물들을 언론에 뿌려서 국민들이 알게 되는 순간, 발생한 수익률은 곧 내가 만든 투자 회사에 영향력으로 바뀔 거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능력 있는 펀드 매니저가 필요했다.
‘능력 있는 펀드 매니저를 나는 알고 있고.’
전생에 한국의 워렌버핏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펀드 매니저.
감각적인 투자로 남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익률을 자랑하는 남자.
이 남자의 한마디로 회사 가치가 바뀌게 되는 그런 펀드 매니저.
이런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 지금부터 내가 접촉해 볼 사람이다.
물론 미래 정보를 내가 알고 있기에 다른 펀드 매니저들을 이용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전생과 같은 삶의 반복.
그런 삶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나는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펀드 매니저를 만나고 싶었다.
이번에 만나 볼 펀드 매니저.
그 투자자가 이 역할을 해 줄 거다.
거대한 정보 하나만 남겨 주면, 자신 스스로 큰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그런 사람.
전생에서 충분히 검증된 사람인만큼, 내 제안을 받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박제환.
다행인 것 같다.
전생 마지막에 글을 쓰면서 그 사람의 정보를 찾아봤던 게.
그렇지 않았다면, 흥신소를 이용해서 한참은 돌아가야 됐을 거다.
다행히도 정보를 알아봤던 나는 이 시기에 굳이 그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
지금 그는 유튜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영상으로 남기면서, 자신에게 투자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그 영상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가 군대에서 진행했던 모의 투자같이 실질적인 결과와 동시에 말이다.
‘그게 독이 됐지.’
아마 그게 독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결과가 없이 미래를 예측한 영상만 있었다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갔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모의 투자로 인한 결과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현실적이지 않아서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남성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016년 말쯤이었다.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던 사기꾼 투자자 이희준.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노에 찬 국민들이 이희준과 유사한 방향을 걷고 있는 남성을 찾아갔다.
그렇게 찾아 나선 남성에게 당신도 사기꾼이 아니냐는 댓글들을 달기 시작했고, 결국 남성은 해명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선 해명이 여러 방면으로 매체를 타면서 남성은 한순간에 이희준을 대신한 슈퍼스타로 올라갔다.
그 후에도 여러 매스컴을 이용해서 투자 자금을 늘리던 이희준과 다르게 독자적인 노선을 탔고, 결국 조 단위의 금액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렇기에 더욱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들고 찾아가 제발 맡아 달라고 애원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관심을 받지 못할 때다.’
그런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가 지금 시기에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할 때다.
그나마 있는 관심마저도 사기꾼이라는 댓글이 전부.
지금 힘든 생활고를 겪고 있을 그에게 투자를 하겠다는 의사를 담아 메일을 보내면 충분히 성공적인 계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채워 줄 수 있을 거다.
나는 투자자에게 필요한 초기 자본을.
그는 나에게 자신의 능력을.
그에게 연락하기로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유튜브에 들어가 남성을 찾을 수 있었고, 메일을 통해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될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연락을 보내기를.
만약 일주일이란 시간을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직접 찾아가 봐야 될 것 같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를 가진 남자이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그에게 답장이 오기를 바라면서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 * *
조용한 한식당에 앉아 있는 박제환.
“들도록 해요.”
“아따, 이거 초장부터 이렇게 얻어먹어도 될런지 모르겄네……. 일단 감사히 먹겄소.”
유튜브를 통해 메일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만나 보고 싶다는 답장을 보낸 남성.
나 역시 시간을 미루고 싶지 않았기에 메일을 보내고, 이틀이 지난 지금 조용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한식당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앞에 남성의 첫인상을 생각하니, 내가 전생에 봤던 사람과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봤을 때는 남성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생겼기에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희대의 사기꾼 이희준과 비교되면서 유튜브 악플에 시달릴 때.
그때 앞에 앉은 남성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물론 악플 때문에 돌아가신 건 아니다.
그 전에 일을 하시면서 허리를 다쳤고, 병원에 신세를 지고 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악플이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게, 분명 그날을 기점으로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쳤을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에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을 거고.
그 분노가 향한 방향이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잘 먹었습니다. 이거 첫 만남인데 너무 못 볼 꼴을 보여 준 게 아닌가 허네요. 음식이 너무 맛있다 봉께 나도 모르게 정신을 좀 잃은 것 같은디,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겄네요.”
“음식을 대접한 사람으로서 잘 드시는 걸 어떻게 안 좋게 보겠습니까. 보기 좋았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이거 경황이 없어서 정식으로 소개를 못 했네요. 스물네 살 김재성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물다섯 살 박제환이라고 해요.”
“워메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디, 왜 이렇게 어른을 보는 것 같은지 모르겄네……. 동네 형들이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전생에서 살았던 인생 때문일까?
부쩍 만나는 사람마다 애늙은이라고 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온다.
최대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몸에 밴 습관 때문에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때는 밝았었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전생에서 매체를 통해 본 그는 이 정도로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크게 정을 주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상황이 좋게 흘러간다.
전생에서 내가 봤던 그 차가운 펀드 매니저.
아직 어린 티가 나며, 사람을 쉽게 믿는 내 앞에 있는 남성.
앞에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계약의 우위를 취할 때 후자가 훨씬 도움이 됐다.
이번에 이뤄질 계약.
상황을 쉽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메일로 보낸 내용은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메일을 받자마자 생각해 봤는디, 그 투자 회사에 저를 고용하겄다 이 말 아닙니까?”
“맞습니다. 물론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주체는 재성 씨가 될 겁니다. 저는 큰 주제만을 던져 주고 그거에 맞춰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스읍……. 근디 만약에 둘이 의견이 다를 때는 어찌 돼요. 같은 상황을 보고, 암만 생각혀도 형님의 의견이 아닌 것 같으면 좀 곤란할 것 같은디…….”
“그 부분은 단순합니다. 무조건 제 말을 기준으로 잡고 행동하시면 됩니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당장 내년인 2016년에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 상황을 기준으로 잡고 투자를 진행하라 했을 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거절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만약 큰 사건이 아닌, 작은 흐름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충분히 나비 효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앞으로 투자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가 재성 씨에게 지시를 내릴 때는 큰 사건만을 다룰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내가 명령을 내린 지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 줘야만 했다.
일말의 의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단 말이다.
‘의심을 하면 행동이 소극적으로 변한다.’
수익률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의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내 말을 기준으로 잡고, 어떤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수익만을 위해 움직여야 된다.
그게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만약 형님의 말대로 일을 진행하다가 큰 손해를 입으면 어쩐다요……. 설마 그런 것도 내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겄제?”
“제가 지시를 내린 것 때문에 회사에 손해가 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단, 제가 재성 씨에게 내린 지시를 조금이라도 의심해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면, 그때는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거는 다행이네요. 제가 원하는 것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디. 그렇게 형님이 말해 주시면 마음 놓고 일을 진행할 수 있겄네요.”
“그럼 계약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아마 재성 씨도 연봉이나 그 외 성과금을 듣고 판단을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꿀꺽―
서론을 끝내고 본론으로 넘어가자는 말을 전해 들은 재성 씨.
자신도 이 시간만을 기다렸었던 걸까?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을 하고, 마른침을 삼키는 게 보인다.
‘수락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나눴던 일련의 대화들을 생각했을 때, 재성 씨는 이미 마음이 넘어왔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어떤 조건으로 재성 씨에게 마음을 살 수 있을지.
너무 과한 조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망을 일으킬 정도도 아닌 그 중간.
그 중간을 제시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거다.
잠시 머릿속으로 중간 점을 찾아 나선 나는 결론을 내리고는 재성 씨에게 조건을 전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