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6화 (16/175)

16화

* * *

언제나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박제환.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데 집중한 지 벌써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문득 지나온 시간을 확인하니 신비한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8개월이란 시간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데,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아니,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걸 넘어서 8개월 동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나 스스로는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돼서 여행했기에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슬슬 마무리 지어야겠어.’

글을 쓰는 중간에 새로운 작품에 대한 욕구가 생겨서일까?

500화 정도로 생각했던, 지금 원고의 결말을 400화까지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사실 500화나 400화나 정해진 결말은 같은 만큼,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큰 차이가 없을 거다.

단지, 좀 더 주인공에 일상을 같이 즐기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

어떻게 보면, 그 일상조차 지겹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만큼, 400화가 적당한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무리는 사건에 휘말리던 주인공이 전 차원에 평화를 가져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걸로 마무리한다.’

애초에 주인공의 최종 목표는 일상을 즐기는 게 목적이었다.

뜻하지 않게 여러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런 일상이 무너졌지만, 마지막은 목적을 이루게 만들어 줘야겠다.

사람들에게 여운이 남는 결말을 선물해야겠다.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보여 줄 수 있는데, 괜히 독자들의 예상을 엎겠다고 세계에 파멸을 불러오는 건 독자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뻔한 결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때로는 뻔한 게 가장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남들이 뻔하게 생각하는 일상을 보내지 못하다가, 병을 얻어 목숨을 잃었지 않았는가.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말해 주고 싶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의미 있는 하루인지.

‘여기까지가 400화로 완결 지으면 되겠네.’

지금까지 써 놓은 게 320화.

남은 80화 동안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주인공이 일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한 번의 큰 사건을 해결하고 일상을 회복시키는 스토리를 말이다.

‘누구지……?’

방금 막 짜 놓은 플롯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려고 하는 데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군가 확인했더니, 출판사의 팀장님이다.

지금은 따로 연락할 게 없을 텐데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건 걸까?

혹시,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량에 차기작을 이야기하려고 전화를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 작가님, 저 이철민 팀장입니다.

“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아, 일이 생겨서 전화를 드린 건 아니고 작가님 메일 좀 확인해 주셨으면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내 메일로 무언가를 보냈나 보다.

최근에 메일을 확인 안 한 지 꽤 됐는데, 그 사이에 메일을 보내고, 연락이 없기에 확인차 전화했나 보다.

무슨 메일을 보낸 걸까?

너무나도 밝은 팀장님 목소리에 궁금증이 들었다.

“혹시 무슨 메일인지 미리 들을 수 있을까요?”

- 물론이죠, 작가님. 저희가 진행하기로 한 웹툰화 시안이 나와서 확인차 보내 드렸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시면 이대로 진행하려고 하거든요.

“그때 말했던 웹툰화인가 보군요. 바로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럼 답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

이전에 얘기를 나눴던 웹툰화의 시안이 나왔나 보다.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작화가는 내 글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내가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던 장면을 작화가가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이 내 글을 보고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지.

오래전부터 궁금해했던 사안이지 않은가. 과연 내 글을 읽은 독자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번 시안이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제발 절반만이라도 그림으로 옮겨 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표현했나 기대감을 가진 나는 곧바로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메일로 보내진 파일 안에 시안이라는 문서가 보였다.

기대감이 더욱더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그림으로 표현한 나의 작품. 어떻게 표현했을까?

“미쳤군…….”

시안을 확인한 나는 한 가지 의심이 든다.

시안을 만든 사람들. 혹시나 내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닐까?

어떻게 내가 생각했던 장면들을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내가 글로써 잘 표현한 걸까, 아니면 작화가들이 잘 표현한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이거 대박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단언컨대 전생에 제일 유명한 그 웹툰보다 퀄리티가 앞서고 있다.

1년 뒤에 출시하는 소설을 원작으로 3년 뒤에 웹툰화가 진행되는 소설.

나중에는 300억이란 매출을 올리는 작품.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는 그 작품과 비교했을 때, 훨씬 퀄리티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표현하다니…….’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과연 이 장면을 사람들이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었다.

만약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라면 한 장면 한 장면에 엄청난 압도감과 방대한 스케일을 느끼는 장면이 많았을 거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시안이 말해 준다.

사람들이 느꼈을 거라고.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기에는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해 낸 압도감을.

어쩌면 그림이기에 더 정확하게 표현된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고칠 게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다.

더 손대면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너무나 완벽했다.

지금은 고칠 사항보다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내 글을 완벽하게 웹툰으로 표현해 줘서.

내 작품이 더욱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줘서.

시간이 지나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덜 표현되기라도 할까 봐 곧바로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떠한 충격을 줬는지.

웹툰화를 성공적으로 런칭할 수 있게 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메일을 보낸 나는, 곧바로 팀장님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내 말을 들은 팀장님 역시, 역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너무나 즐겁기만 했다.

‘다음 작은 영상화를 해 보고 싶다.’

이번 작품이 웹툰화로 표현된 걸 보니, 한 가지 욕심이 생긴다.

다음 작은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그림만으로도 이렇게 황홀한 감정이 드는데, 영상으로 내 작품을 본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상상만 하는데도 너무나 짜릿한 감정이 든다.

나같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마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갈증이 느껴진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중독성이 느껴진다.

오늘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훼손하고 싶지 않기에, 모든 활동을 멈추고 아까 확인했던, 시안을 계속해서 살펴보며 시간을 보냈다.

* * *

곧 있으면 벌써 한 해가 마무리된다.

즉, 내가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돼 간다는 얘기다.

‘끝났네…….’

2015년이란 한 해가 끝나감과 동시에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도 방금 화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뭔가 시원섭섭한 감정이 든다.

1년을 함께한 주인공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함에 섭섭한 감정이.

이제 한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에 시원함이.

지금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비록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을 소설로서는 마무리됐지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까지는 내 작품이 살아 숨을 쉰다고 생각한다.

1월 달로 내정된 웹툰화.

더불어 아직 풀리기까지 많이 남은 회차들.

이것들을 생각하면, 내 작품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게 틀림없다.

‘이런 여운은 뜻깊군…….’

회사를 운영하면서 췌장암에 걸려, 동생에게 주식을 양도했을 때?

아니면, 대현 그룹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 냈을 때?

그때도 아니라면, 그룹이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들었을 때?

모든 순간이 지금만큼 여운이 남았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아무래도 두 번째 작까지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

이대로라면, 첫 작의 여운이 두 번째 작에도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나 스스로도 주인공과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작품을 마무리하는 지금. 뭔가 자식과 작별 인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모든 작가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할까?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낼 수 있다니.

‘나도 더 멋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겠어.’

이번 작품만 하더라도, 마무리한 지금까지 여운이 남을 정도로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다음 작품도 지금과 같이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작은 내가 주변에서 겪은 재벌들을 풀어서 웹 소설 형식으로 쓰는 만큼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도 그랬지만, 다음 작품은 새로운 마음으로 집필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두 달 정도는 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마냥 쉴 생각만은 없다.

어쨌든 글을 쓰고, 주변을 챙기기 위해선 그 외의 것들도 중요하니.

‘두 달간 그 사람들을 만난다.’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생각했던 사람들.

아니 어쩌면 전생 마지막 순간에 내 작품에 살아 숨 쉬었던 그 두 사람.

지금 남은 두 달간 접촉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일은 사업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여유를 가지고, 내년 중순에 접촉했다가 거절의 답변을 듣는다면, 그것만큼 낭패가 없을 거다.

거절당하더라도, 대안을 세울 만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남은 두 달 안에 만나서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발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

물론 그 두 명이 거절한다고 해도 대체자는 얼마든지 있다.

미래 지식을 알고 있는 내가 있으니, 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충분한 궤도에 올릴 자신도 가지고 있었고.

하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내가 그들에게 투자해야 될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차라리 금액이 늘었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시간을 더욱 외적인 곳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게 이번 생의 근본이라고 생각했기에 최대한 일이 잘 풀리길 기도하기 시작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박제환.’

아니, 잘 해내야만 했다.

지금부터는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도 관련이 있으니.

할아버지의 평생소원인 재계 순위 한 자릿수. 그리고 할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나를 잘 찾아오지 못하는 가족들. 그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발판이, 다가오는 두 달 안에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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