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 *
‘터졌다.’
지금 인터넷의 메인 포털을 살펴보니, 터졌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3일. 뉴스에서는 한 가지 주제를 계속해서 다루고 있었다.
재벌 3세의 마약 파티.
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주제란 말인가.
그 덕분일까? 3일 동안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최고 단계까지 올라갔었다.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보통 재벌 3세의 마약 파티가 걸리면, 각 그룹에서 나와 언론을 통제하고 돈으로 기자들의 입을 막았으니.
이 사실이 대중들에게까지 퍼진 지금이 이례적인 경우다.
‘사이비 아저씨가 돈독이 올랐군.’
지금 뉴스는 대기업들에게 보내는 경고나 다름없다.
나에게 돈을 바치지 않으면, 재벌이고 뭐고 봐주는 거 없이 사건을 크게 만들겠다고.
그래서일까? 정부가 뒤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지, 대중들의 분노가 평소보다 더욱더 거세게 느껴졌다.
그런 분노가 3일 동안 지속된 오늘.
한 가지 소식으로 인해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중들의 분노가 한 번 더 터지고 말았다.
대현 그룹 3세인 정민우가 마약 파티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단에서 빠졌다는 소식.
‘차라리 정민우 입장에서는 여러 명 중의 한 명이 나았을 텐데.’
지금은 단독 기사라 그런지, 정민우에게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 기사에 이름이 실린 게 나을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동안 정민우가 많은 악행을 저질러서일까?
기사 하나하나에 정민우의 악행이 적히면서, 더욱더 대현 그룹을 향한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불길이 대현 그룹 전체로 퍼져, 불매 운동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상태.
지이잉―
민우에 대한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을 확인하니, 승호.
승호 또한 기사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나 보다.
“웬일로 전화했냐.”
- 너 기사 봤냐?
“안 그래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 너 아니지?
역시 승호는 기사를 보자마자 내가 일을 벌인 게 아닌가 의심하고 바로 전화를 건 모양이다.
이전에야 승호에게만큼은 진실을 말해 줘도 상관이 없겠지만, 지금은 조금의 행동도 조심해야 될 때다.
일말의 가능성조차 남기고 싶지 않은 나는 승호의 질문에 부정의 답변을 건넸다.
“무슨 소리냐. 나 글 쓰고 있는 거 알잖아. 예전도 아니고, 경영에서 제외된 지금, 내가 저런 일 벌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잖냐.”
- 근데 왜 이렇게 나는 네가 일을 벌인 것 같다고 생각되냐? 너무 공교롭지 않냐? 한 달 전에 너랑 민우가 다툼이 있었고, 일주일 전에 술 마시면서 말했던 바빠질 거라는 말. 너무나 공교롭잖아.
“그러게. 충분히 네가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하네.”
일주일 전 술을 마실 때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내가 아니냐는 승호.
그때를 생각하니, 조금 더 이성적이지 못한 내가 아쉽게 느껴졌다.
그때는 지금보다 민우에 대한 분노가 컸었기에 제대로 숨기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술김에 말한 것도 있었고.
그렇다고 해도 끝까지 숨겼어야 됐다.
일말의 증거라도 남기다간 지금 상황에선 위험했으니.
- 뭐, 네가 아니라면 아니겠지. 혹시나 네가 벌인 일이었다면 조언해 주려고 했다. 꼬리 절대 남기지 말라고. 지금 시기에 꼬리 밟히면 엄청 위험한 상황이니까.
눈치챘나 보다.
내가 계획했던 일이라는 걸.
단지, 내가 숨기기에 깊게 파고들지 않을 뿐.
아마 걱정되는 마음이 큰가 보다.
혹여나 내가 증거라도 남겼을까 봐.
그 증거로 꼬리를 잡혀 내가 손해를 입을까 봐.
‘한 달 전부터 준비했던 거다.’
하지만 자신할 수 있다.
절대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까지 닿지 않을 거라고.
한 달 전부터 흥신소와 노숙자를 이용해 핸드폰을 개통하고, 중간 다리에서 흔적을 지우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덕분에 한 달간 글을 한 줄도 못 썼을 정도다.
많은 투자를 한 만큼, 그들이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나까지 의심할 만한 증거를 남겨 두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 대현 그룹은 시선을 다른 데 돌리지 못할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다.
당장 내려가는 주가를 회복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텐데, 언제 있을지도 모를 배후를 찾는다 말인가.
“고맙다. 만약 내가 했으면, 증거 하나도 안 남겼을 거란 거 알고 있잖아. 나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니다.”
- 다행이네…….
이해했나 보다.
아니, 내가 시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승호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지 않은 내가 간접적으로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일이라고.
그리고 걱정한 승호에게 안심을 시키는 말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고.
분명 승호가 말한 다행이라는 대답. 내 말을 알아먹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대현 그룹에서 네가 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평상시에 조심해라.
“그래야지, 걱정해 줘서 고맙다.”
- 그래, 그럼 믿고 있을게. 끊을 테니까 글이나 집중해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너도 신혼 생활이나 잘 보내라.”
뚝―
전화를 끊고 나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대현 그룹이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시기가 잘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부에서는 대기업에게 회초리를 들고 있는 상황.
때마침 일어나는 재벌 3세들의 마약 파티.
미래를 통해 날짜를 알고 있는 나.
이 모든 조건이 합쳐져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결과물인 것 같았다.
‘재밌네…….’
전생에서는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즐겁다는 감정을 못 느꼈었다.
결국에는 과정에 지나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
여유가 생겨서 그런진 몰라도 너무나 즐겁게 느껴졌다.
비록 이번 일로 민우는 집행 유예로 풀려 나가겠지만, 경영권에서 유의미한 피해를 준 것 같아 보람을 느낀 나는 관심을 끄기로 했다.
당분간은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쪽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없을 거다.
‘이제는 글에 집중하자.’
한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해서일까?
곧바로 글에 집중하지 못함이 느껴졌다.
이런 감정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나는 오늘 하루는 글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때까지 썼던 내용을 훑어보면서, 다시금 글에 집중하려고 마음먹은 나.
분명, 이미 썼던 글이고, 여러 번 봤던 글인데도 왜 이렇게 행복한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역시 그 어떤 일보다 글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게 제일 즐겁다고 생각하며, 예전에 썼던 글을 한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JW 출판사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철민 팀장.
‘슬슬 완성될 때가 된 것 같은데.’
오늘도 언제 나와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글을 확인하고 있는데, 문득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조만간 웹툰 시안이 나온다고 한 것 같은데,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지금쯤이라면, 소식이 들려왔어야 정상이다.
그렇게 보고받았고. 그런데 오지 않는 소식에 궁금증이 든 나는 김 대리에게 소식이 없냐는 질문을 던졌다.
“김 대리. 혹시 웹툰 시안에 대한 소식 없어?”
“아,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받고 팀장님한테 보내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드디어 다 준비됐나 보다.
작가님 작품의 웹툰화.
나에게 보내려고 준비 중이라는 김 대리의 말을 들으니,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 느낌은 작가님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기대감 이상인 것 같다.
과연 작화가들은 작가님의 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내가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들을 반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면, 웹툰계에서도 우리 출판사가 앞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대리는 어떻게 봤어? 미리 확인했을 거 아니야.”
“노코멘트입니다, 팀장님. 직접 확인하십쇼.”
“참, 나. 그럼 빨리 보내기나 해.”
“넵! 바로 보내겠습니다.”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나 보다.
만약 김 대리가 시안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저런 장난도 치지 못했을 거다.
분명 자신이 판단이 내리기에 괜찮다고 생각해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장난친 거일 테고.
어쩌면 내가 그러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기대하고 있던 웹툰화가 아닌가.
제발……. 내가 생각했던 거의 절반……. 아니 그거의 반의반이라도 그림으로 표현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기다리고 있자, 보냈다는 김 대리의 말이 들려왔다.
곧바로 메일을 확인하니, 한 파일이 보인다.
웹툰 시안이라는 파일.
두근거리는 감정이 도저히 가라앉질 않는다.
과연 어떤 결과물로 나를 즐겁게 해 줄까? 더 이상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나는 곧바로 파일을 열고는 시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파일을 열고 시안을 확인하는 나.
도저히 지금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황홀감? 아니면, 감탄? 대박? 어떤 단어로 지금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경악스러운 감정밖에 느껴지질 않는다.
웹툰으로 옮겨진 작가님 작품.
내가 생각했던 장면들이 그대로 그림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장담한다. 이 정도면 무조건 웹툰 업계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어때요, 팀장님. 대박이죠. 와……. 저도 진짜 처음에 확인하고 우리 출판사가 이 갈았다고 느꼈다니까요? 어째서 팀장님이, 작가님 작품 보고 대박이라고 한 건지 이번에 깨달았잖아요.”
“…….”
“팀장님, 이 정도면 웹툰도 성공할 수 있겠죠?”
내 반응을 확인하는 듯, 성공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해 오는 김 대리.
이건 고민할 여지도 없다.
지금 당장 말해 줄 수 있다.
“성공이 아니라, 대박이다. 김 대리…….”
“와…….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대박이긴 한가 보네요.”
“장담한다. 우리 출판사 이번 작품으로 업계 1위 노려볼 만하다.”
“역시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네요. 저도 시안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다니까요? 무슨 웹툰으로 영화를 만든 건지.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어째서 김 대리가 저렇게 감탄하는지 공감이 간다.
시안을 본 나 역시 황홀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는가.
출판 업계에 일하면서, 이 정도 감정을 느낀 적이 있던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두 개가 존재한단 말인가.
이런 작품은 하나만 세상에 나타나도, 엄청난 돌풍을 일으킬 게 틀림없다.
“작가님한테 전화를 드려야겠네요.”
“야, 하지 마. 내가 할 거야. 우리 작가님이랑은 내가 이야기한다.”
“…….”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이런 소식은 작가님에게 내가 제일 먼저 전해 주고 싶다.
시안을 확인해 보라고.
엄청난 대박이 아니냐고.
분명 작가님도 내 감정에 공감해 주실 수 있을 거다.
작가님 또한 자신의 작품에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벌써부터 작가님에게 시안을 보여 줄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설레어 온다.
‘이 정도면, 그 깐깐한 작가님도 놀라워하시겠지?’
매번 만날 때마다 깐깐하게 느껴진 작가님이라도 이번에는 반박할 수 없을 거다.
우리 출판사가 일을 냈다고.
작가님 작품의 웹툰화가 대박이 났다고.
이전까지는 출판사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고. 이 시안을 봐 보라고.
작가님과 통화할 생각에 설레는 감정이 든 나는 곧바로 메일을 이용해, 작가님께 시안을 보냈다.
분명 확인하시고 전화해 주실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