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서양의 속담 중에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다.
승호와 술자리를 가지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어째서 이 말이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받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됐다.
‘똑같이 흘러가는군.’
3일 전, 전생과 똑같은 시기에 마약 파티가 일어났다.
내가 과거에 돌아오고 나서 한 행동 때문에 나비효과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직까지 큰 역사를 바꿀 정도로 영향을 끼치진 않았나 보다.
인터넷에 들어가자 메인 포털에서 대서특필 돼 있는 재벌 3세들의 마약 파티라는 기사.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그냥 넘어갈 만한 기사였지만, 지금만큼은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기사였다.
과연 내용도 그대로일까 하는 마음에 곧바로 기사를 클릭해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만약 전생처럼 그대로 흘러갔다면, 재계 순위가 낮은 재벌 3세들의 이름들만 적혀 있을 것이고, 대현 그룹의 정민우 이름은 빠져 있을 게 틀림없었다.
‘역시나…….’
역시나 확인해 보니 정민우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대현 그룹이 이번 대통령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사람에게 많은 뇌물을 챙겨 줬기에 가능한 일일 거다.
그 사람 입장에서도 여러 그룹에게 자잘한 돈을 받기보다는 거대한 그룹인 대현 그룹 하나에 큰돈을 받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려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제물로 바쳤을 테고.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전생처럼 그들이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한 것처럼 편하게 일이 흘러가게 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미 이번에 일을 예상하면서 많은 준비를 해 놓은 상태이다.
하나의 변수라도 생기지 않도록, 여러 방면에서 거미줄을 쳐 놓은 상태.
아무리 대현 그룹의 사람이고, 현 정부의 비호를 받는 대현 그룹이라 해도 이번에는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거다.
‘내 손에 있는 사진이 그 증거지.’
이 사진을 나만 갖고 있는 건 아닐 거다.
대기업의 횡포에 반감을 갖고 있는 기자.
일주일 전 그에게도 정보를 흘렸었다.
4일 뒤에 재벌 3세들의 마약 파티가 있을 거라고.
그곳에 대현 그룹 3세인 정민우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는 뒤에 내용을 추가했다. 곧바로 기사를 작성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라고.
‘분명 더 크게 터뜨릴 수 있으니까.’
지금도 기사의 댓글을 확인하면, 마약 파티를 하는 재벌 3세들에게 대중들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고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니, 그 돈으로 그룹의 사람이 마약 파티를 한다는 댓글들이 많았다.
더해서 이번에 정권이 본보기로 삼은 것 같다.
만약 자신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대기업들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기사들 하나하나가 은연중에 대기업들의 횡포를 하나씩 추가하고 있었다.
‘만약 기자가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이번에 추가로 몰래 개통한 핸드폰을 이용해, 각 흥신소에 의뢰를 넣은 상태다.
그날 마약 파티가 이뤄지는 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몇몇 흥신소는 일이 위험하단 걸 깨닫고, 의뢰를 거부한 곳도 많았지만, 돈을 거부하기 힘든 몇몇은 나에게 사진을 보내 놓은 상태다.
한마디로 기자가 내 말을 믿지 못해, 사진을 안 찍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에게는 정민우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좀 더 기다렸다가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덮친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덜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3일 뒤.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그때 지금 사진을 기자와 연락해서 올리면 될 것 같다.
그 기자에게도 나쁜 상황만은 아닐 거다.
지금도 대기업들과 척을 진 언론사이기 때문에 큰 타격도 없을 거고, 이번에 단독으로 기사를 쓴다면 대중들에게 찬사를 받을 거다.
대기업 횡포에 맞서는 언론사라고.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리냐 민우야…….’
이번 결혼식에서 겪은 일만 아니었다면, 1년 동안은 가만히 글만 쓸 생각이었다.
실제로 글만 쓰고 있었고.
4년 뒤부터 대현 그룹을 괴롭혀 줄 계획이었는데, 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려서 그 시기를 앞당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건드린 이상 그냥 봐줄 생각이 없다.
앞으로 내가 하는 선택들을 조금은 수정할 생각이다.
이전에는 목적 없이 우리 그룹을 돕기 위해 하는 선택들이었다면, 지금은 대현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하나둘씩 천천히 뺏어 먹는 그런 선택을 할 생각이다.
‘그럼 시작을 알리는 선물을 잘 받길 바라마, 정민우.’
3일 뒤에 있을 선물이 민우에게 잘 도착하길 바라며, 기사를 닫고는 기자에게 새로 개통한 핸드폰으로 연락을 보냈다.
3일 뒤, 기사를 올리지 않으면 내가 따로 사진을 올리겠다고.
이번에 일이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줄지 아는 기자라면, 내 말을 무시 못 할 거다.
하루빨리 민우에게 선물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글이 아니고서도 오랜만에 재밌는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할 때는 한 가지 목적에만 집중하느라 이런 상황을 못 즐겼던 것 같은데, 과거에 돌아오니 이런 상황도 재밌게 느껴졌다.
“고생 좀 해라.”
당분간은 고생할 민우에게 들리지 않을 격려의 말을 보내며, 다시금 집중하기로 한 글에 시선을 옮겼다.
* * *
재벌 3세의 마약 파티라는 기사를 확인하는 정민우.
“후……. 어떻게 흘러가고 있어.”
“다행히 이야기가 잘 돼서, 저희 그룹은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허수아비니까, 이딴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거야. 이런 개 버러지 같은 놈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된다니…….”
“…….”
예전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들이 기사화되지도 않았을 거다.
이게 다 대통령 뒤에 있는 사이비 여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얼마나 돈독이 올랐던지, 그렇게 대기업들이 돈을 갖다 바쳐도 끊임없이 요구해 온다.
지금의 기사도 그 요구 중 하나이다.
원래라면 각 그룹에서 이번 사건이 기사화되기 전에 언론을 입막음했을 거다.
하지만 돈독이 오른 년이 어떻게든 더 벌어 보려고, 기사화를 그대로 진행시킨 게 틀림없었다.
‘돈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지금 기사에 적힌 이름에 내가 추가됐다면, 엄청난 손해를 입었을 거다.
지금 그년에게 가져다준 돈보다 훨씬 큰 피해를 말이다.
어떻게 보면 돈이라도 먹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작 몇십 억대의 돈으로 경쟁에서 도태될 뻔한 걸 막은 거면 싸게 먹힌 거라고 생각해야겠다.
이번 기사에 내 이름이 실렸다면,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야 되는 걸 넘어서 할아버지에게 엄청난 질책을 받았어야 되지 않는가.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계속해서 기사 확인해. 내 이름이나 우리 그룹 이름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바로바로 조치할 수 있게 확인하라고!”
“죄송합니다. 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후……. 아니다. 너 일로 와 봐.”
“…….”
내 쪽으로 다가오라고 손짓하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비서.
도저히 지금 끓어오르는 분노를 혼자서는 식힐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분노를 밖으로 표출해야 된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똑같이 할 생각이다.
“너, 가족이 있다고 했나? 이번에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렇습니다.”
“그럼 돈이 많이 필요하겠네. 예쁜 아내랑 곧 있으면 생길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야지.”
내 앞에 있는 비서의 인적 사항을 알고 있는 건, 이놈을 배려해서가 아니다.
방금 말한 정보. 언제든지 이놈의 약점을 잡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가.
이놈이 배신을 하든, 입을 잘못 벌리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기에 미리 알아낸 상태다.
지금과 같은 상황도 마찬가지다.
없는 놈에게는 지금과 같은 정보를 읊으면서, 한 번 자극해 주면 두려움과 책임감을 심어 줄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정보는 누구에게나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뭘 멀뚱히 서 있어? 빨리 가서 벽 잡아. 한 대에 백만 원으로 하자. 결혼하려면 돈 많이 필요하잖아.”
“상무님…….”
“아씨……. 시간 끌지 마. 너 돈 필요하잖아. 몇 번만 참으면 너 한 달 동안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 한 번에 들어오라는 거니까? 아니면……. 그냥 그만둘래?”
“아닙니다.”
“잘 생각했어. 너 여기서 잘리면, 아무 데도 못 가는 거 알잖아. 좋게 좋게 가자. 한 열 대만 맞자고.”
처음엔 망설이던 비서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벽을 잡고는 고개를 숙인다.
이놈에게는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다.
언제부터 머슴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내가 착한 사람이다.
다른 놈들이었다면, 당근도 주지 않은 채 채찍질만 했을 텐데, 나는 최소한의 당근을 주지 않는가.
‘한 대에 백만 원이면 머슴한테는 엄청난 돈이지.’
나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돈이었지만, 내 앞에 있는 놈한테는 엄청난 돈이다.
내가 아는 친구들이었다면, 협박만 했을 거다.
해고를 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고. 그것만으로 지금 앞의 놈과 같이 벽을 잡을 사람이 넘쳐났다.
머슴들의 평생소원이 우리 같은 재벌가에서 일하는 거일 테니.
“야, 뭐 하냐? 하나가 빠졌잖아.”
“…감사히 맞겠습니다.”
“그래, 인마. 이렇게 합리적인 상황이 어디 있냐? 벽에서 손 떼는 순간 초기화되니까 꽉 잡고 있어.”
꽉 잡고 있으라는 경고의 말을 전한 나는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이 그립감, 벌써부터 이번에 기사를 막기 위해 쓴 돈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노라는 감정은 사라지고, 희열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 앞에 있는 놈도 결혼식에서 만났던 박제환 자식처럼 자신보다 머리도 좋았을 거고, 엄청난 학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나에게 처벌을 받는 입장이 되다니.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단지, 태어난 가정이 달랐을 뿐. 나는 양반의 집안에, 이놈은 머슴의 집안에.
애초에 대한민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이지 않은가.
이것 하나만으로 이 자식은 맞을 이유가 충분했다.
“자, 시작해 보자.”
시작하자는 말이 들리자 눈을 질끈 감는 비서.
이 모습이 너무나도 좋은 나는 손에 있는 골프채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쾅―
“상, 상무님!! 큰일입니다!!”
“뭐야!! 지금 제정신인 거야? 보고도 없이 누가 함부로 들어오라 했어!!”
골프채를 휘두르려는 순간,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열고는 숨을 헐떡이며 큰일이라는 말을 전한다.
만약 별일도 아닌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면 오늘 단체로 체벌 좀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감히 머슴 주제에 주인에게 함부로 말을 올리다니.
“이번에 마약 파티 있지 않습니까! 지금 상무님이 거기에 있었다는 증거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뭐, 뭐야?! 회사에서는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 그게. 아무래도 저희와 적대 관계에 있는 언론사에서 그냥 밀어붙인 걸로 보입니다. 이번에 시기가 안 좋다 보니, 그걸 이용하고 시류에 편승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젠장…….”
아무래도 큰일이 일어난 것 같다.
방금 말해 온 정보가 사실이라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번에 마약 파티에 참여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우리 그룹에까지 피해가 확산될 거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중에 최악의 상황.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내 이름이 그들 사이에 껴 있는 게 나았을 거다.
여러 명의 이름이 올라간 기사와 단독 기사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가.
“뭘 멀뚱히 서 있는 거야!! 만약 이번 일 잘못되면 나 혼자 죽을 줄 알아?! 니네 다 모가지야!! 홍보부 연락해서 빨리 기사 내리라고 하고, 전략기획실한테 빨리 조치 취하라고 해!!”
“네!!”
이번 일을 막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될 것 같다.
지금 기사를 올린 기자. 방금까지 벽을 잡고 있던 놈과 다를 바가 없을 거다.
분명 돈을 노리고 기사를 작성한 게 틀림없다.
방법이야 괘씸해 죽겠지만, 일단 사태 수습이 먼저이기에 최대한 당근으로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X발…….”
지금 상황이 개같은 상황인 걸 인지한 나는 자연스럽게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