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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재벌-12화 (12/175)

12화

정환이와 같이 승호를 축하해 주기 위해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보인다.

하나같이 신문에서 한 번쯤은 봤을 정도로 정·재계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승호 역시 재벌가인 만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승호 형 보러 같이 갈래, 아니면 혼자 다녀올래?”

“나만 조용히 갔다 올게. 너는 나중에 따로 보든가 해라.”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정환이가 나를 배려해 주려고 혼자 갔다 오라고 하는 것 같다.

분명 승호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 그 주변에 있는 애들이 나를 비웃는 모습으로 볼 게 뻔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정환이는 나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해서 물어봤던 거고.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고, 많은 걸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환이가 그 모습을 볼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한 나는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

형으로서 동생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

‘오늘 결혼하는 사람이 정치인의 딸이라고 했나?’

승호에게 향하는 도중에 주변에 정치인이 많은 것 같아서 의아한 마음을 가졌었는데, 생각해 보니 승호의 결혼 상대가 정치인의 딸이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승호 아내 되는 사람 아버지가 여당이 아닌, 야당이라는 거다.

내년에 탄핵 가결안이 나오면서, 여당이 많은 피해를 입지 않는가.

그냥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가장 친한 친구인 승호에게도 영향이 미치는 만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있네…….’

한참을 승호가 어디 있나 찾고 있는데, 하객들을 맞이하는 승호를 발견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직접 가서 인사해야 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나를 발견한 승호가 하객 맞이를 가족에게 맡기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와줘서 고맙다 제환아. 오기 불편했을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결혼식인데 안 올 리가 없잖냐. 만약 초대 안 했으면 내가 섭섭할 뻔했다.”

“사실 너한테 청첩장 보내면서 고민했었거든. 솔직히 지금 너 상황이 이런 곳에 오기 불편할 게 뻔하니까.”

“괜찮다, 나는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네 결혼식은 무조건 와야지.”

솔직히 다른 사람이었다면 청첩장을 보냈다고 해도 무시했을 확률이 높다.

내가 이런 곳에 올 상황도 아니거니와 상대방도 예의상 보냈을 게 뻔하니.

하지만 승호는 다르단 걸 잘 알고 있다. 예의상 보낸 게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고 보낸 걸 잘 알고 있고.

“어쨌든 결혼 축하한다. 나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 이야기를 못 할 것 같다.”

“…고맙다. 다음에 둘이서 술 한 잔이나 하자.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

“그럼 나는 가 봐야겠다.”

“그래.”

내가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게 느껴졌을까?

승호가 주위를 한 번 돌아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승호도 확인했나 보다. 주변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승호 결혼식이다 보니, 유독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많았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나에 대한 상황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저런 시선을 보내는 거일 테고.

‘기억해 둬야지.’

지금 와서 느끼는 거지만, 내 그릇이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닌가 보다.

그릇이 넓은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을 그냥 넘어가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우월감을 느끼며 비웃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저 얼굴들을 기억해 두고 나중에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겠다고 다짐했다.

* * *

“다녀왔어? 승호 형이랑은 이야기 잘했고?”

“그냥 결혼 축하한다고 말하고 왔어.”

승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동생이 있던 자리로 돌아오니, 나를 발견한 동생이 반기기 시작했다.

아마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었나 보다.

도중에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컸을 테고.

다행히도 직접적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기에 별일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실제로 별일이 없었기도 했었고.

“승호 형이 뭐라고 했어?”

“그냥 다음에 둘이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더라.”

“참, 승호 형은 사람이 됐다니까. 다른 사람들은 경영에서 형이 빠진다니까 다들 비웃기 바쁜데, 여전히 전과같이 친하게 지내고.”

“그렇게 말이다. 이게 승호가 이상한 건지, 다른 사람이 이상한 건지 헷갈리기까지 하네.”

“일반인들한테는 모르겠지만, 재벌가에서는 승호 형이 특이한 거지. 다들 배경을 많이 보니까.”

정환이 말대로 승호가 특이한 게 맞았다.

재벌가에서 경영권이 없다는 말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니.

특권 의식을 갖고 있는 그들로서는 이제 나도 그들과 다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전생에서도 승호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었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

변함없이 나를 대하는 승호에게 더욱더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슬슬 결혼식도 끝나 가네. 어떻게 형 사진까지 찍고 갈 거야, 아니면 바로 갈 거야?”

“뭔 사진이냐. 괜히 분위기만 흐려진다. 그냥 가자.”

“그럼 나 친구들한테 인사만 좀 하고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다녀와라.”

정환이 또한 나와 같이 나갈 생각인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온다는 말을 건넸다.

정환이가 돌아오기까지 10분 정도는 걸릴 거라고 생각한 나는 화장실 좀 들러야겠다고 생각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화장실로 향하는 도중.

맞은편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결코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나는 최대한 다른 쪽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상대방이 나를 발견한 건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인다.

제발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발견한 게 아닌 우연의 일치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바람일 뿐이었을까? 정확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 정도 거리면 바보라도 알 것이다.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거라고.

“여~ 오랜만이다?”

“…….”

“아니 반갑게 인사를 하는 데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냐? 아니면……. 인사를 받을 자격조차 없는 걸 알고 있는 건가?”

“정민우…….”

나에게 비아냥거리면서 인사하는 남자 정민우.

대현 그룹의 사람이자, 나와 동갑이며 악연으로 둘러싸인 사람이다.

우리 둘의 악연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됐다.

나랑 같은 나이인 정민우는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늘 나와 비교가 됐었다.

나는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고, 정민우는 늘 근소한 차이로 2등을 해 왔었다.

‘그게 문제였나?’

그게 문제가 됐는지 정민우는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재계 순위가 한참 낮은 내가 자신에게 비굴하게 굴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때부터 우리의 악연은 시작됐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나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 왔고, 나는 무시로 일관.

아무리 대현 그룹의 사람이라고 해도,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는 나에게 무작정 시비 걸기는 정민우에게도 무리가 있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애매하게 시비를 걸어 오는 선에서 그쳤었는데, 이번에 경영권에서 제외된 게 문제였을까? 이제는 대놓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비를 걸어 오기 시작한다.

‘그나마 정환이가 친구를 만나러 가서 다행이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순간에 정환이가 친구를 만나러 가 옆에 없다는 거다.

만약 옆에 정환이가 있었다면, 무시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박았을 텐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들이박기에는 나도 준비가 부족한 상태다.

“얌마, 내가 네 친구냐? 누가 함부로 이름을 부르래.”

“…….”

“이야……. 눈빛 봐라. 그래도 우리 제환이 많이 죽었네? 예전이었으면 그대로 들이박았을 텐데. 하기야 이제는 집안에서도 버려진 자식인데 뭐 어쩌겠냐. 예전부터 똑똑해서 그런지 사리 분별 하나는 잘하네.”

“…….”

참아야 된다.

어차피 지금 모욕은 나중에 그대로 갚아 줄 수 있다.

대현 그룹. 나중에 밟고 가야 할 그룹이 아닌가.

다행인 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승호나 정환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 된다.

더 이상 말을 섞었다간 나도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 것 같다고 느낀 나는 최대한 무시하며, 다른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아나, 이런 씨……. 너 나 무시하냐? 너 따위가? 야……. 너 재벌가 아니야, 인마. 누가 너를 지켜 줄 것 같냐?”

“그만해라…….”

“그만하라고? 이 자식 웃기네? 기어 봐. 그럼 그만해 줄게.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법은 너의 편이 아니란 걸. 내가 여기서 너에게 폭력을 쓰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너네 그룹의 후계자도 아닌데, 우리 그룹을 척 지면서까지 감싸 주려고 할까?”

“…….”

그만해가 아니라 미안해가 나와야 됐을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전보다 강도 높은 말로 나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소란스러워지면 승호에게도 피해가 가고, 정환이에게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것만 같아 상황을 마무리 지을 방법을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하는 수밖에 없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해야 되다니.

새삼스레 재벌가와 일반인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앞에 저 자식 말대로, 법은 재벌가의 편이 아닌가.

이전에야 내가 후계자이기 때문에 참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

이전에야 저 형이라는 목소리가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지만, 지금에는 최악이라고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환이가 나를 보다니…….

“이야……. 동성 그룹이 총출동하셨네. 그래도 형제라는 거냐? 경영권 없는 자식도 형이라고 말해 주고.”

“그만하시죠. 우리 형이 잘못한 건 없을 텐데요?”

“얌마, 왜 그래. 언제 우리 같은 사람이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행동했었나? 너도 재벌가니까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없는 게 죄라는 걸.”

혼자였으면 미안하다고 상황을 넘겼을 것 같다.

어차피 나중에 배로 갚아 주면 될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

동생 앞에서 이렇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

언제나 동생 앞에서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

동생에게 부끄러운 형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가만히 있으면, 동생에게 부끄러운 형이 될 것 같다.

“지랄하네. 야, 개처럼 짖지 말고 꺼져라. 아무리 자격지심을 갖고 있어도 때와 장소는 가릴 줄 알아야지.”

“형!!”

“푸흡. 야 너 뭐 하냐? 꼴에 형이라고 동생 앞에서 자존심 지키겠다는 거야? 잘 생각해. 지금 하는 행동이 동생한테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

모르겠다.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이대로 넘어가면 후회할 거라는 걸.

동생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그렇다고 후회할 과거를 더 이상 만들기 싫은 나는 앞에 선 개자식에게 말했다.

“너나 후회할 짓 하지 마라, 쓰레기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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