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 *
‘역시 글을 쓰는 게 가장 행복하군.’
선인세로 들어온 20억을 마저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글을 쓰고 있는 나.
20억으로 더 큰 돈을 벌게 된다는 기대감보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게 더욱 행복하게 느껴졌다.
남들을 글을 쓰면서 다음 스토리를 짜는 게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내가 특이한 건지는 몰라도 그 말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렇게 행복한 작업이 어떻게 해야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단 말인가.
‘200화까지는 파워 인플레이션을 조정 좀 해야겠어.’
130화까지 진행된 지금.
이제는 200화까지 상세 플롯을 짜기 위해 글을 쓰는 걸 잠시 멈추고는 스토리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130화까지는 지구 사람들이 주인공의 힘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기대기 시작한 시점까지 진행됐다.
지금까지는 이것만 하더라도 흥미를 유발할 만한 스토리라인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게 가져가야 된다.
‘너무나 평온한 일상에 긴장감을 심어 준다.’
주인공으로 인해 평화가 이어지는 지구에 긴장감을 심어 줘서 주인공의 역할을 더욱더 크게 부각시켜야겠다.
그렇게 필요한 스토리의 파워 인플레이션을 조정.
평화로운 지구에 이변을 넣으면 될 것 같다.
‘상위 차원이라는 설정을 넣는다.’
상위 차원이라는 설정.
두 가지 효과를 가져갈 수 있는 설정이다.
자신들의 차원보다 낮은 지구 차원을 무시하는 이계인들.
그런 시선 속에 불합리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구인들.
여기서는 독자들에게 답답함과 함께 주인공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 준다.
그리고는 주인공 또한 하위 차원이라고 생각해 무시하는 상위 차원의 사람들.
무시하던 주인공의 힘을 보고 경악하는 사람들.
여기서는 독자들에게 시원한 맛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플롯은 여기까지 설정하면 되겠어.’
글을 진행하다가 도중에 스토리가 어떻게 틀어질지 모르는 만큼 200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플롯 짜는 걸 마무리한 나는 다시금 스토리에 맞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즐겁다…….’
이 순간이 가장 즐겁다.
스토리라인을 짜고,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머릿속에 그림을 글로 표현하는 이 과정.
마치 내가 주인공이 돼서 여행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느낌을 독자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행복감. 나 혼자만 느끼기에는 아까운 감정이다.
지이잉―
‘누구지?’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른 채 집중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군가 하는 마음에 번호를 확인하니, 동생에게 걸려 온 전화.
동생이 무슨 일로 전화한 건지 궁금증이 든 나는 곧바로 글을 쓰는 걸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정환이냐?”
- 형, 나야.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했냐? 낮에는 바빠서 전화도 안 하던 얘가.”
- 내일모레 승호 형 결혼식 있잖아. 형 또 글 쓰느라 까먹고 있었지?
동생의 말을 듣고, 날짜를 확인해 보니 동생 말대로 승호 결혼식이 내일모레까지 다가와 있다.
평소라면, 까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을 텐데, 최근에 독점이 풀리는 것과 웹툰화가 겹치면서 정신이 없었나 보다.
승호 결혼식을 까먹고 있었다니.
“고맙다, 하마터면 당일까지 모르고 있을 뻔했네.”
- 그럴 것 같더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승호 형 결혼식은 가야지.
“그러게……. 안 그래도 저번에 승호랑 밥 먹을 때, 나 집 나간 거 알고 걱정해 줬는데 미안하네.”
- 그럼 결혼식 날에 형 데리러 갈 테니까 같이 들어가자. 형 차도 없잖아.
“고맙다. 그때 보자.”
동생과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승호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승호는 전생 마지막까지 관계를 유지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결혼식을 까먹을 정도로 소홀한 관계가 아니란 말이다.
안 그래도 집을 나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연락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승호가 불만을 느끼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전생에 대현 그룹의 공격을 받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줬던 승호인 만큼, 이번 생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다가올 승호의 결혼식을 기다렸다.
* * *
승호 결혼식 당일.
정신없이 글을 쓰며,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승호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전생에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겨운 바람에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즐겁기에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형, 글 쓰고 있는 건 잘 돼 가고 있어?”
“잘 돼 가고 있는 편이지. 그래도 업계에서는 제일 잘나가고 있으니까. 그걸 제외하고도 글을 쓸 때 제일 행복하기도 하고.”
“진짜 의외긴 하네. 형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는데. 그래도 아쉽지 않아? 할아버지가 형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제외시켰던데…….”
“형은 그룹 경영하는 거 욕심 없다. 그냥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기대했던 거에 보답을 못 한 것 같아서 좀 죄송할 뿐이지.”
할아버지도 마음에 상심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
늘 엄격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친척들과는 다르게 나에게는 한없이 기대 어린 시선만 보내 주셨던 분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 내가 군대를 전역하고,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에 갑자기 글을 쓴다고 하니, 할아버지도 얼마나 상심이 크셨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전생과 같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을 보완하고자 전생에 썼던 소설에도 글을 쓰며, 그룹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택들을 적었지 않았는가.
충분히 선택들에만 신중을 기한다면, 글을 쓰면서 그룹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할아버지에게 애정이 없었다면, 그룹에 도울 생각도 안 하고 글에만 집중했겠지.’
어떻게 보면, 내가 글을 쓰고 그 외의 부분을 챙기려고 하는 것도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할아버지의 오랜 염원인 국내 재계 순위 5위 안으로 올리는 것.
전생에도 이것 때문에 그토록 노력하지 않았던가. 할아버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형은 할아버지가 밉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경영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건 재벌가 자식으로서 권리를 못 누리는 거나 다름없잖아. 일반인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글쎄, 그런 권리가 꼭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진 않더라고. 권리에는 큰 의무가 따르잖아. 형은 그냥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참 이해를 못 하겠네.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이렇게 변했냐. 완전 애늙은이가 다 됐네.”
정환이는 이해하기 힘들 거다.
나 역시 전생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테고.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하기엔 전생에 뼈저리게 느꼈지 않았던가.
그 끝에는 허무함만이 존재한다고.
다시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기껏 돌아온 과거, 이제는 삶을 다 살고 돌아봤을 때 행복한 추억이 많이 남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만 하더라도 전생보다 행복한 추억이 더 많이 존재하지 않는가.
“형, 근데 괜찮겠어? 오늘 승호 형 결혼식에 다른 사람도 많이 올 텐데. 이전에야 형이 재벌가 자식이라고 어느 정도 인정해 줬지만, 지금 소문 퍼져서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도 많을걸?”
“그렇다고 승호 결혼식에 안 가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앤데. 그룹 경영에서 제외됐다는 소문이 퍼진 후에도 변함없이 연락한 건 승호가 유일했다.”
“참……. 있는 집 애들은 이게 무섭다니까.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배경하고 친해지려고 하니까.”
“그렇게 배우면서 자랐고, 세상이 그런데 누구 탓을 하겠냐. 그냥 승호한테 고마울 뿐인 거지.”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고 자란 게 있으니, 다들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보고 사귀는 게 아닌, 배경을 보고 사귀는 그런 삶.
자신들의 집안에서도 그런 삶을 원하고 있을 거다.
그렇게 해야 그룹 경영에 끼어들 때 하나의 무기라도 더 갖고 참전하지 않는가.
재벌가의 삶은 경영에 참여하는 순간, 전쟁터 안으로 들어선 거나 다름이 없다.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해야 할까? 잠시 방심을 하면, 그 사이에 누군가가 치고 들어가 자리를 잃는 것도 비일비재했다.
‘정환이는 내가 도와줘야지.’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경영에 참여했다면, 자연스럽게 정환이에게는 아군이 한 명 생긴 거나 다름없었을 테니.
하지만 경영권을 잃은 지금. 어떻게 보면 제일 믿음직한 아군을 잃은 게 아닌가.
그렇기에 더욱 책임감이 생기는 거다.
내가 글을 쓰면서도 정환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기도록.
“너는 걱정하지 말고 준비나 하고 있어. 너 경영에 참여할 때 되면 형이 알아서 도와줄 테니까.”
“참 나……. 형이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됐으니까 글이나 쓰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준비 단단히 해라. 경영에 참여하는 순간, 너는 전쟁터에 들어선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도 알고 있어. 형 역할까지 내가 잘 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정환이 말대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형이라서 그런지 조금의 도움이라고 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3년 뒤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준비를 해 놓을 생각이다.
당장 1년 뒤부터는 조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된다.
지금 투자해 놓은 가상 화폐에서 다섯 배의 수익을 잠시 빼놓은 다음, 씨앗 뿌리기와 함께 전설적인 투자자에게 정보를 흘려야 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이 정보를 이용한다면, 분명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번 돈으로는 2018년에 시작되는 중미 무역 전쟁의 대비를 해야 됐다.
이 정보들만 잘 이용해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테다.
그렇게 얻어 낸 수익은 나에게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돼 줄 거다.
아니, 어쩌면 그룹에 힘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한 번 겪었던 경험.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무기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전쟁터에서 남들이 화살을 쏘고 있을 때, 나 혼자 탱크를 가지고 참전한 거나 다름없다.’
탱크보다 더한 제트기를 가지고 참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연 대현 그룹은 이런 무기를 가지고 참전하는 나를 막아 낼 수 있을까?
그들이 구식 무기로 전쟁터에 참전할 때 현대 무기로 무장한 나를 막아 낼 수 있을까?
전생에 받은 공격을 대현 그룹에 되돌려 줄 생각을 하니, 차라리 미래가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는 대현 그룹의 공격에 시간이 느리게 가기만을 바랐는데, 지금은 빨리 그날이 다가와서 내 공격을 받아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 도착했다. 승호 형만 만나고 나랑 같이 있자. 괜히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무조건 시비 걸린다.”
“뭐 어떠냐. 들어오는 공격 굳이 피하고 싶지 않다. 그대로 돌려줘야지.”
“그럴 거면 글을 쓸 게 아니라 경영에 참여했어야지. 형은 잘 알고 있잖아. 재벌가와 일반인 사이에 간극이 얼마나 큰지.”
“재벌가가 별게 있냐? 돈 많으면 그게 재벌이지.”
“지금 형이 벌고 있다는 돈. 그 사람들한테는 용돈밖에 안 되는 거 알지? 제발 성질을 죽이고 오늘은 무시하자.”
정환이 말대로 지금 내가 벌고 있는 돈. 그들에게는 용돈 수준밖에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는 다르지 않은가.
지금은 용돈 수준인 그 돈이, 그들의 전부일 정도로 거대해질 테니.
‘조심해야지.’
지금 시기에는 최소한의 마찰도 위험하게 다가오는 만큼, 성질을 조금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