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 *
다음 날.
약속 시간이 다 돼 감을 느낀 나는 옷을 챙겨 입고는 저번에 만났던 카페로 향했다.
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는 궁금증 때문에 오늘이 너무나도 기다려졌었다.
물론 전화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정보였지만, 직접 만나서 듣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궁금증을 즐겼다.
사업을 하면서 생긴 습관인 것 같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날 당황시킬까?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의문들을 즐기며, 그나마 괴롭던 회사 생활에 자그마한 원동력을 부여했던 것 같다.
‘오늘은 미리 와 있군.’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카페에 도착했는데, 저번과 다르게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 팀장님이 보인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에서는 아쉬운 사람이 더욱 노력하는 게 맞지 않는가.
“이거 제가 좀 늦은 것 같네요. 빨리 나온다고 나왔는데.”
“아닙니다, 작가님.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확실히 저번보다 비즈니스에 대한 예의가 는 것 같다.
일단 내가 온 시간에 맞춰서 미리 시켜 놓은 음료.
내가 저번에 먹던 음료를 기억하고 시킨 게 틀림없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와 있단 걸 증명하는 흔적들.
분명 2층에서 내가 오기만을 바라보다가 나를 발견하고 음료를 시켰을 거다.
나에게 부담이 가는 게 싫어서 방금 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일 테고.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에 만나고 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영업 기술이 는 것 같아서.
내가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편집자뿐만 아니라 출판사를 운영해도 잘해 낼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일단 지켜보자.’
아직까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게 우연일 수도 있거니와 아직은 글을 쓰는 시간을 즐기고 싶지 않은가.
벌써부터 비즈니스에 대해 생각하면 글 쓰는 기간이 줄어들 거라고 확신한 나는 머릿속에 맴도는 사업 생각을 떨쳐 냈다.
“일단 작가님 너무나 축하드립니다. 지금 작가님 작품이 각 플랫폼 최상위 순위에 위치돼 있습니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수익의 여섯 배가 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이네요. 독자님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그 부분은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님 작품은 그 누가 읽더라도 재미를 느낄 요소가 너무 많거든요. 엄청난 힘을 가진 주인공과 그걸 몰라보고 착각하는 주변 인물들, 조금씩 드러내는 힘들. 모든 게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이지 않습니까.”
“칭찬 감사드립니다.”
내 작품을 칭찬하는 이 사람.
보면 볼수록 팀장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리숙한 영업력에 편집자로서만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렸는데,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저번에 나를 만나고, 나에 대한 평가를 고쳐서일까?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긴장을 하는 게 느껴진다.
다행인 건 긴장이 나쁜 쪽이 아닌, 신중을 기하는 듯한 긴장이라 팀장님에 대한 호감이 올라간 것 같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미 충분히 서로의 안부를 물었거니와 더 이상의 이야기는 시간만 잡아먹을 뿐이니.
우리 두 사람 다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기에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가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 입장에서는 팀장님이 아쉬운 입장이기에 본론으로 가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거다.
내가 먼저 말해 줘야 편하게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느낀 나는 팀장님께 본론으로 넘어가자는 말을 건넸다.
“팀장님도 회사에 돌아가서 업무 보셔야 되는데 제가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었군요. 혹시 어떤 일로 오늘 만나자고 한 건지 들을 수 있을까요?”
“크흠……. 입장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에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을 웹툰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요.”
“제 소설을 원작으로 웹툰화를 하자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웹툰화라…….
솔직히 흥미가 끌린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리며 글로 풀었던 소설을 다시 그림으로 표현한다니.
더군다나 이미 썼던 글을 웹툰으로 바꾸는 만큼, 나에게는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어떻게 상상하고 읽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과연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을까?
웹툰화를 진행하면, 그런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 팀장님이 제안해 주신 웹툰화에 흥미가 동하긴 했다.
그렇다고 곧바로 승낙의 표시를 보내는 건 비즈니스적으로 봤을 때 빵점이나 다름없다.
내 입장에서는 웹툰화를 진행하는 걸 굳이 JW 출판사와 함께할 메리트가 적지 않은가.
그런 선택지를 제외하고 JW 출판사와 작업해야 할 이유를 들어 봐야 될 것 같다.
만약 만족스러운 조건을 제안하지 못한다면, 아쉽지만 이 부분에서는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약서상에서 2차 저작권의 의사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이미 계약을 진행할 때 확인 했던 부분이디.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이 작품이 웹툰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미리 계약할 때 확인했던 항목이기에 조금 강하게 나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제안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혹시 조건을 먼저 들어 봐도 될까요?”
곧바로 승낙의 말이 들려오지 않아서일까?
조건을 들어 보자는 나의 말에 팀장님이 침을 삼키며 긴장한 게 느껴진다.
“일단 한 가지는 감안해 주셨으면 하는 게 웹툰화는 웹 소설과 다르게 창작하는 과정에서 꽤 큰 비용들이 소모됩니다. 그만큼 많은 비율을 작가님께 드리기 힘들다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군요.”
“감안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원작을 둔 작품을 웹툰화로 진행할 시 9.5대 0.5의 비율을 표준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웹 소설에 비해 큰 리스크를 지니고 있고요.”
이 부분은 나 또한 알고 있다.
웹 소설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가 하는 일이 유통에 치중돼 있다.
그만큼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에 대한 리스크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웹툰은 다른 걸로 알고 있다.
일단 1화를 그리는 데 드는 시간만 일주일.
퀄리티가 높아질수록 필요한 많은 인원들.
처음 런칭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5~6개월.
웹 소설에 비해 엄청난 리스크가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해도 망하면 수익도 적다.’
팀장님이 표준이라고 말하는 9.5 대 0.5 비율. 충분히 납득할 만한 내용이다.
실제로 표준적인 비율이긴 하고.
하지만 내 작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만큼, 표준 계약을 진행하기에는 아쉬운 입장이다.
어쨌거나 이름값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웹툰과 검증된 스토리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혹시 제 작품을 표준 계약으로 진행한다는 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실망스러운 감정이 들 것 같군요.”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 작가님 작품을 표준 계약으로 진행하겠습니까. 저희가 생각한 비율은 8대 2에 작가님이 선인세 비율을 올리길 원하신다면, 이전과 같이 계약금을 없애고 선인세 10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략적인 계약 조건을 들은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연 저 계약이 지금 나의 작품에 알맞은 조건일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비율은 괜찮은 것 같다.
8대 2라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많은 양보를 한 게 맞으니까.
하지만 선인세가 아쉽다.
충분히 20억으로 올릴 수 있는데, 10억을 제시한다고 하니.
출판사가 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율은 괜찮은 데 선인세가 아쉽군요. 저는 최소 20억은 돼야 흥미가 동할 것 같군요.”
“네?! 20억이요? 그 정도 금액이 나오려면 매출이 150억은 나와야 되는데……. 소설이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웹툰은 저희에게 도전입니다. 또한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150억이란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팀장님, 단순히 매출만 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
이 자리에 있는 게 내가 아닌, 글만 쓰던 작가라면 충분히 팀장님이 제시하는 조건에 만족스러운 마음을 느낄 거다.
실제로 매출을 생각하면 20억이란 선인세는 너무나 과하지 않는가.
하지만 매출을 더 해서 그 외의 것들까지 생각하면, 충분히 20억이란 선인세를 지불하고서도 출판사는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거다.
‘출판사의 무형적 가치가 올라간다.’
만약 이번 웹툰이 지금 내 소설과 같은 성적을 낼 시 JW 출판사의 위치가 지금과는 말도 안 되게 올라가지 않는가.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 작가들한테 컨택할 때, 그걸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들 또 한 번 시장을 개척할 때.
그 모든 순간에 내 작품이 이용되는 거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출판사에 엄청난 포트폴리오가 생기는 셈.
계약금도 아니고 언젠간 사라질 선인세라고 생각하면 20억이란 선인세는 과분한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 작품이 성공한다면, 출판사가 가져갈 무형적 가치. 제 생각엔 충분히 20억이란 가치보다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군다나 계약금을 받지 않고 선인세로만 계산하면 더더욱이요.”
“…….”
“팀장님의 표정을 보니,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나 보군요.”
“사실……. 생각하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팀장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세요. 제 작품이 성공한다면 해외를 개척할 때, 웹툰 시장에 자리 잡을 때, 작가님들에게 컨택할 때. 이 모든 순간에 출판사의 얼굴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계약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다 갚아 나갈 선인세입니다. 이래도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이 2차 저작권은 다른 출판사와 계약할 수밖에 없군요.”
내가 강하게 나가서인지 당황하는 팀장님.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나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부분에서 이득을 가져올 수 있겠군요. 지금 하는 계약, 제 회사 생활 중 제일 중요한 순간일 것 같네요.”
“…….”
“만약 성공하면 최고의 순간이 될 거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제 회사 생활이 끝날 정도로 최악의 순간이 되겠지요.”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제 작품에 팀장님 커리어를 다 걸어 보실 겁니까, 아니면 안전한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모든 걸 걸어 보죠. 지금, 이 순간 선택한 결과가 최고의 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아무래도 팀장님이 내 작품을 좋게 생각해 주시고 용기를 내주시나 보다.
그렇다면, 기대를 받은 만큼 보답을 하는 게 비즈니스.
나 역시 웹툰화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최고의 글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팀장님에게 손을 내밀고는 서로 악수하고는 각오를 다졌다.
이번 선택이 최고의 순간이 되기 위해 도전해 보자고.
우리 둘의 선택이 틀린 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