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 *
카페에 도착한 JW 출판사 이철민 팀장.
‘이 사림이 작가님이라고……?’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을 쓰신 작가님을 처음 만난 지금. 계속해서 머릿속이 어지럽혀지기 시작한다.
분명 글을 읽었을 때, 최소 40대 이상일 거라고 자신했는데 실제로 만나 본 작가님은 누가 봐도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이때까지 내가 추측했던 범위에서 약간의 오차는 있을지언정, 이 정도의 오차는 처음이라 그런지 당황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진짜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작품을 집필하신 작가님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마저 들기 시작한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작가님 나이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스물다섯 살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젊으시네요. 제가 글을 읽고 생각했던 작가님의 이미지는 적어도 40대 후반이라고 느꼈거든요…….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작품을 쓰시다니…….”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왜 이렇게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분명 눈앞의 남성은 20대 중반으로 보이고, 직접 자기 입으로 스물다섯 살이라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왜 이리도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
스물다섯 살이면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김 대리보다 훨씬 적은 나이이다.
심지어 웬만한 신입보다 적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어째서 사장님을 만났을 때처럼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나이를 듣고, 그런 글을 썼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니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작가님이 맞다.’
분명 내 앞에 있는 남성이 작가님이 맞을 거다.
지금 대화하며 느끼고 있는 분위기.
글을 읽을 때 똑같이 느끼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쉽게 생각하고 계약을 진행하면 안 될 것 같다.
자신 있게 계약 조건을 가져왔지만,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좋은 대화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작가님과 꼭 함께하고 싶거든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마음이 맞는다고 해도 각자가 원하는 게 맞물려야 일을 진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계약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오늘 계약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 나이 때의 작가님은 작품에 대해 칭찬을 하면, 계약에 대한 우선권을 쉽게 양보받을 수 있는데, 앞에 있는 작가님은 다르게 느껴진다.
자신의 작품과 지금의 계약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느껴진달까?
이때까지 해 왔던 대로 계약을 진행하면, 곤란할 것 같다고 느낀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제환.
‘영악한 타입은 아니군.’
5분 정도 대화를 나눠 본 결과.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대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밀고 당기기가 없이 올인하는 스타일.
사업을 했다면, 성공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좋게 느껴진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 계약 조건부터 들어 보도록 하죠. 작품 얘기는 그 후에 하더라도 늦지 않으니까요.”
“그럼 계약 조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는 작가님이 신인이냐 기성이냐 따지지 않고, 업계 최고 수준의 계약 조건들을 가져왔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계약금을 말씀드리면 3천만 원으로 책정했고, 선인세는 최대 3억, 권당 보장 인세는 50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수익 분배 비율은 8대 2로 생각하고 있고요.”
얘기를 들어 보니, 확실히 신인이 받기 어려울 정도의 계약 조건인 건 맞다.
계약금 3천만 원. 이 돈은 작품을 계약하기만 하면 내가 받는 돈이다.
한마디로 계약이 진행될 시 공짜로 들어오는 돈이란 얘기다.
그리고 선인세 3억. 이 돈은 무이자 대출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작품의 수익이 3억이 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3억이 넘는다면 결국 갚아 내야 할 돈이니.
비율과 권당 보장 인세, 앞에 있는 남성이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정도로 좋은 조건인 건 확실했다.
‘아쉬운데?’
분명 알고 있는데, 아쉽게 느껴진다.
계약 금액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계약 조건.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변경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작가님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조건에서만큼은 어떤 출판사보다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제일 잘나가는 작가님보다 더한 조건을 책정했거든요.”
“출판사에서 많은 위험 부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저희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안이라면……. 혹시 마음에 드시지 않는 조건이라도 있을까요?”
자신감을 가지고 제안했던 내용에,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까?
앞에 있는 남성이 당황함과 동시에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아마 당황스러운 마음이 클 것 같다.
분명 승낙의 대답만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계약 조건에 불만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서 말하는 거니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게 노력해 보겠습니다. 편하게 말해 주세요.”
“저는 계약금과 보장 인세 부분을 뺀 뒤 선인세를 올리고 조건부 계약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
계약금을 없애고 선인세와 조건부 계약을 수정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니, 남성이 다시 한번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인세를 포기하고 계약금을 올렸으면 올렸지, 계약금을 포기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
아니, 내가 아니면 제안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는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미래 지식. 지금 나에게는 계약금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돈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 받는 돈이 나중에 열 배를 넘어서 돌아오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조건부 계약이라면…….”
“만약 제 소설의 매출이 20억을 넘을 시 수익 배분 비율을 9대1로 변경하고 싶군요.”
“그 부분은 조건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선인세 부분은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인세는 계약금과 다르게 작품 수익을 미리 당겨 받는 개념인데…….”
“알고 있습니다. 출판사 쪽에서도 이 방법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저희도 그 방법이 더 좋은 방향인 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계약금과 보장 인세를 없애고 선인세를 5억까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출 또한 20억을 넘길 시 곧바로 수익 배분 비율을 수정하기로 하고요. 저희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 조건입니다.”
“음…….”
내 입에서 곧바로 승낙의 말이 나오지 않아서일까?
앞의 또다시 팀장님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업을 하면서 생긴 오랜 버릇.
아무리 마음에 드는 계약이라도 조금은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선인세가 5억이란 것을 듣고 생각을 이어 가는데 괜찮은 조건이라고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또 한 번 양보를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조건.
더 이상 흠잡을 게 없다고 느낀 나는 내 앞에 있는 남성과 같이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건을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계약서는 언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미리 가져온 계약서가 있긴 한데, 방금 조건이 달라져서……. 선인세 부분하고 계약금만 수정하면 되는데, 지금 가져온 계약서라도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지금 계약서에서 방금 말한 부분만 조정이 되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팀장님이 지금 가져온 계약서와 달라지는 부분이 방금 말한 것밖에 없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길게 끌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이 자리에서 독소 조항이 없는지만 판단하고 결정하면 될 것 같다.
결정을 내린 나는 팀장님에게 계약 내용이 적힌 문서들을 받아 들고,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했다.
‘독소 조항은 없군.’
출판사에서 신경을 써 줘서일까?
독소 조항이 없는 것은 물론, 모든 조항이 추후에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었다.
이 출판사와는 믿고 일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의에는 선의로, 악의에는 악으로 대체하는 게 내 삶의 모토 아니었나.
출판사에 큰 선의를 보인 만큼, 나 역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팀장님과 계약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적힌 계약서대로라면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군요, 이대로 계약하기로 하죠.”
“감사합니다, 작가님!! 최선을 다해서 작품이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하는 대로 일을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플랫폼으로 이전시키실 생각인가요?”
“처음부터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하셨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현재 연재하시는 곳에서 유료화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돼서 글을 내리신다면,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거든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써 놓은 원고는 보내 주시는 메일로 보내 드리도록 하죠.”
“원고가 오면 곧바로 오탈자 검수해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이라면, 제 의견을 첨부해 드리는 게 맞겠지만, 작가님에게는 그게 독이 될 것 같습니다.”
계약하기로 결정지은 우리는 그 뒤로 내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방향성, 일의 진행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정한 게 25화가 사이트에 올라가는 날을 기점으로 유료화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당분간은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겠네.’
이번에 받기로 한 선인세 5억.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신인에게 제안하기 힘들 정도의 조건.
출판사도 매출만을 바라보고 내민 조건이 아닐 거다.
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둘 시 매출을 제외하고도 오르는 회사 가치.
이 모든 걸 판단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 확률이 높다.
‘내년까지는 5억을 묵혀 둔다.’
지금 받은 5억. 비트코인 당장 넣기만 하더라도 내년 중순에는 다섯 배의 수익을 얻게 된다.
때문에 전생 마지막에 썼던 소설에도 주인공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도록 설정했었다.
아니, 그때 소설에 설정했던 돈보다 더한 금액이니 수익은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수익보단 글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지.’
처음 1년은 글 쓰는 데만 집중하고 싶었기에 결정한 선택이다.
만약 더한 수익을 원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돈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을 못 하게 환경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전생이랑 다를 바가 없다.’
돈을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든다면, 전생과 다를 바가 없는 인생이지 않은가.
기적적으로 다시 한번 얻은 인생.
돈보다는 내가 만들어 낸 세상, 내가 창조해 낸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다음에 정식 계약서가 준비되면 그때 다시 만나도록 하죠.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저도 오늘 만남 즐겁게 생각합니다. 참……. 제가 더 어른인데도 작가님만 보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지는군요. 오늘 많은 걸 느끼고 갑니다.”
“좋은 자리라고 생각해 주셔서 고맙군요.”
서로 인사를 나눈 우리는 다음 만남도 있기에,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이제는 진짜로 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오늘 얻어 낸 5억. 전생 마지막에 글에 작성했던 돈보다는 큰 금액이니 일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년 중순까지는 이렇게 지내면 될 것 같다.
지금 쓰는 작품을 마무리하고, 씨앗 뿌리기를 시작하는 시점.
그때가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 일이 재밌게 흘러갈 것 같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