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 *
‘준비는 끝났군.’
곧 있으면, 할아버지가 통보한 일주일이 다 돼 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에 썼던 글이 대박이 나면서 용돈 수준의 돈이 들어왔었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위약금으로 더한 돈을 뱉어 내야 했을 돈이지만, 그 부분은 할아버지가 감당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얻은 돈이 2억.
비록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은 아니지만, 집에서 독립해야만 하는 나에게 약간의 힘이 돼 주었다.
“형,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게 어때?”
“이미 늦었어 인마. 형은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 독립하는 거지만, 너는 야망이 있는 아이잖아. 열심히 해 봐. 혹시 모르지. 네가 회장 자리에 앉을 줄 누가 알겠어.”
“그렇기엔 친척들이 다들 잘나가니까…….”
“미리 겁먹지 말고. 형이 나중에 도와줄게.”
분명 내 동생이라면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다.
당장 전생만 하더라도, 나의 뒤를 가장 잘 받쳐 주던 게 내 동생이 아니던가.
그래서 마지막에는 회장 자리를 양보한 거고.
이번 생에는 글을 쓰면서, 동생을 회장 자리에 앉게 도와줄 생각이었기에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전했다.
“참 나……. 당장 형 나가면 나보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줄 건데. 내가 시간 지나면 할아버지 몰래 용돈 모아서 좀 줄 테니까, 좀만 참고 있어.”
“됐다. 부모님이나 잘 달래 드려라. 괜찮은 척하지만 분명 속이 많이 상하셨을 거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냐. 나였으면 글은 몰래 취미로 쓰겠다.”
“회사 일 시작하면 그게 될 것 같냐. 필연적으로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 취미는 사라지게 돼 있다.”
전생에도 그랬다.
내 성격이 그런지는 몰라도 한 번 맡은 일은 무조건 끝장을 봐야 됐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 들어가고 20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내 삶을 희생하면서 회사에 모든 걸 바쳤다.
다시 돌아온 과거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분명 미래의 지식들을 이용하다 보면, 글을 쓰더라도 충분히 집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성공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트에 정리도 해 놓은 상태고.
“형, 그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 수 있겠어? 그거 십몇 평 한다며…….”
“어쩔 수 없지. 그렇게라도 안 하면 글을 못 쓰니까.”
“참……. 난 이해를 못 하겠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 봐. 형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래야지. 이제 이 집도 내일 나갈 생각 하니까, 좀 아쉽네.”
이 집을 떠나 오피스텔로 향하려니까 조금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전에는 무언가 필요하면, 누군가가 해 주던 상황과 다르게 다 내가 해결해야 되지 않던가.
이번 집을 구하고 독립을 준비하며 혼자서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은 느끼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로 방 구하기도 힘들었지.’
우여곡절 끝에 방을 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게 부족하다.
당장 구한 오피스텔에도 가져갈 짐이 하나도 없지 않던가.
그저 옷만 몇 개 가져가면 끝이다.
이것마저도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부탁하지 않았으면, 택시를 타고 내가 일일이 옮겼어야 될 뻔했다.
“뭐, 오늘 이후로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너무 그렇게 보지 마라. 형이 금방 찾아올게.”
“아쉬워서 그러지. 이대로만 시간이 흘러도 차기 회장 자리는 형 자리였는데, 갑자기 그룹을 나간다고 하니까.”
“됐다. 그렇게 아쉬워하면, 한도 끝도 없어. 모든 게 아쉬운 상황뿐인데 어떻게 독립을 할 수 있겠냐. 형 내일 나가려면 빨리 일어나야 되니까, 자야겠다.”
“잘 자, 형. 내가 나중에 할아버지 설득할 테니까, 힘들면 꼭 말해.”
피곤하다는 말에 위로의 말을 전하고 나가는 동생.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실제로 잘 해내고 있는 동생이고.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다.’
분명 동생이 잘 해내고 있지만, 혼자 남아 그룹 내에서 친척들의 견제를 받아 내기 힘들 거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성공을 해서, 동생을 지원 사격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회사에 들어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4년.
그 안에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거라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 *
다음 날.
“제환아, 만약 힘든 일이 있다면 버티지 말고 돌아와라. 분명 아버지도 용서해 주실 거다.”
“아버지, 믿어 주세요. 열심히 해 볼게요. 아버지 눈에 많이 부족한 아들이겠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래, 아들. 아빠는 믿어 보도록 하마. 가족이 아니면, 누가 믿겠니.”
“그럼, 저 가 볼게요. 어머니한테는 말씀 잘 부탁드립니다.”
오피스텔에 짐을 다 내려 주고 인사를 건네는 아버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아들 한 번만 믿어 달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어머니는 이번 일로 나에게 받은 상처가 큰지 집에서 간단한 인사만 하시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어떻게 보면 행동으로 말씀하시는 거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 달라고.
‘약해지지 말자.’
이미 마음을 다잡은 만큼, 약해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고작 이 정도로 나약해지기에는 전생에 겪었던 치열한 삶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분명 이번 생에는 글을 쓰면서도 더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글을 쓰면서도 가족들과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으며, 그 후에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게.
내가 만들어 나갈 거다.
“그럼 들어가세요, 아버지. 틈틈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분명 힘든 시간이 다가올 거야. 그때는 오늘의 다짐을 생각하며, 이겨 내도록 해라. 아빠는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도록 하마.”
“네, 아버지. 늦어도 5년 안에는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런 나는 가도록 하마.”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아버지는 아쉬워하는 모습으로 차에 올라타고는 본가로 향하셨다.
‘들어가자.’
나 역시 떠나가는 아버지를 바라보고는, 점차 눈에서 보이지 않자 새로운 보금자리인 오피스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비록 엄청나게 작은 방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본가보다 더 큰 집에서 살겠다고.
그 누구도 나에게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 보겠다고.
* * *
오피스텔에 들어온 나는 짐 정리를 하고는 책상에 앉았다.
그러고는 노트를 펴,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기록했었던 내용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은 필명을 다시 정하고 글을 쓰자.’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분명 이때쯤에 썼던 작품이 대박이 나긴 했다.
그래서 내 통장에 2억이라는 돈이 찍혔던 거고.
하지만 다시 이어 쓸 수가 없다.
이미 그 작품은 할아버지가 나서서 위약금을 물고 글을 다 내렸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위약금을 내면서 내 통장에 있는 돈은 건드리지 않았단 거다.
‘이어 쓰기에는 기억도 잘 안 나기도 하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 쓰고 있던 작품. 나에게는 20년을 넘는 시간이 흐른 작품이 아니던가.
줄거리만 기억날 뿐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작품을 억지로 살려 보겠다고 붙잡고 있는 게 더 힘든 게 아니겠나.
‘그렇게 해서 초기 자금을 모은다.’
지금 시기가 2015년 1월.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내가 나서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게 씨앗 뿌리기다.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최소한의 돈을 놔두고는 씨앗을 뿌린다.
이 씨앗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돈을 얻는 것과 사람을 얻는 것.
‘돈은 가상 화폐로 메꾼다.’
좀 더 과거로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지금만 하더라도 비트코인을 사 놓는다면 3년 뒤에는 100배의 수익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최소한의 돈을 남기고는 비트코인에 투자해 초기 자본을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사람.’
사람은 가치 투자를 말한 거다.
1년 뒤.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 내는 사람과 미래에 한국의 워렌 버핏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찾아가 투자를 진행할 생각이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게 1년 뒤에 10억이라는 돈을 만드는 거다.
최소한 그 두 사람에게 투자하기 위해서는 10억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는가.
이 부분을 생각하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가상 화폐에 대해 다른 코인들도 알아봤다면, 더욱더 큰 수익을 얻었을 텐데.
하지만 비트코인만 하더라도 1년 뒤에 다섯 배 정도 오르는 걸로 알고 있으니 10억이란 돈을 만들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다.
‘10억으로 고민할 일이 생기다니…….’
참……. 이제야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고작 10억이란 돈으로 더 과거로 가지 못한 거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줄이야…….
만약 10억이란 돈을 준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비록 아쉬운 소리를 해야겠지만, 친구에게 빌릴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일단 이렇게 3년을 준비한다.’
이 3년이 내가 말한 씨앗 뿌리기 작업이다.
코인으로는 기본 자금을.
나머지 돈을 이용해서 유니콘 기업을 일군 회장과 한국의 워렌 버핏이라 불리던 사람에게 투자.
이 두 가지만 잘 해내더라도, 가족들에게만큼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이걸로 부족하다.’
물론 이 두 가지로는 아직 할아버지를 만족시키기 부족하긴 했다.
분명 둘 다 성공할 걸 알고 있지만, 3년 뒤에는 그 성공이 미비하지 않은가.
그래도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아직 대현 그룹에게 공격당하기까지 15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굳이 마음을 급하게 먹어 일을 그르치면, 그게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거다.
‘그 전에 할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
그전에는 무조건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자신의 손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비록 좋아하는 일만으로 성공한 건 아니지만, 누구도 보여 주지 못한 성장을 보여 줄 수 있었다고.
‘여기까지 하자.’
이 정도면 미래에 대한 생각은 얼추 마무리된 것 같다고 느낀 나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는 생각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어떤 글을 써야 될까?’
내가 할아버지에게 처음 반기를 들고, 집을 나와 쓰는 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주제만 정하는데도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이렇게 행복한 걸 보니, 내가 선택했던 거에 대한 걱정이 다 사라진다.
아니 지금 기분으로는 솔직히 글만 써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있었군. 아직 그 주제는 인기를 끌기 전일 텐데.’
글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한 가지 주제가 떠올랐다.
나중에 가서는 몇 년 동안 비슷한 글이 쏟아지게 만드는 주제.
클리셰라고 말할 정도의 이야기 전개도 정해지는 주제.
헌터물이란 주제가 아직 유행하기 전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그래, 내가 한번 유행을 만들어 보자…….’
아직 헌터물이 유행하기 전인 지금.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버무려서 트렌드를 이끌 정도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정한 게 헌터물임과 동시에 힐링물.
전생의 내 상황을 조금 각색해서 써 볼 생각이다.
몇십 년 동안 헌터 생활로 성공한 사람이 과거로 돌아와 성장하고, 사냥하기보다는 힐링을 원하는 그런 소설을 말이다.
‘재밌겠네…….’
주제만 정했을 뿐인데, 빨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점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