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2화 (2/175)

2화

행복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했던 거였나?

진작 이 행복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선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대략적인 플롯을 짜고, 글을 쓰고 있는 나.

점점 죽어 가는 나이지만, 너무나 행복하다는 모순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 인생을 쓰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

내가 과거에 택했던 아쉬웠던 선택들을 다시금 돌아가, 다른 방향으로 선택했을 때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처음 선택은 그날일 거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할아버지에 집을 나가라는 말을 들었던 날.

소설의 시작을 그때로 잡았다.

‘내가 글을 쓰는 걸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가지고 있던 걸 모두 포기하더라도 글을 썼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었을지… 거기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추후에는 글을 쓰면서,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내용.

그다음에는 대현 그룹의 공격을 막을 뿐만 아니라, 반격하는 내용까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재벌 설정과 작가라는 직업을 합친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아쉬움을 느낀 부분을 집필해서인지, 소설을 쓰면서 나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벌써 120화이군…….’

하루하루 글을 쓰며 원고를 쌓아 가다 보니, 3개월이 지난 지금. 나에게 120화라는 원고가 쌓였다.

‘그때의 행복했던 시절을 다시 느끼고 싶다.’

120화라는 원고가 쌓이니, 다시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과연 내가 쓴 글들을 사람들이 아직까지 좋아할까?

솔직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소설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썼었지 않은가.

그에 반해 지금 쓴 글은 단순히 내 과거를 주인공에게 투영해, 아쉬웠던 부분들을 바꿔 나가는 일종의 자기만족에 가까운 글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전화할 곳이 비서실장님밖에 생각나지 않는군…….’

다시금 내 글을 런칭하고 싶다는 생각에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사람이 비서실장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내 사적인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서실장님밖에 없다는 말.

글을 쓰면서 행복했던 감정이 다시금 쓸쓸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내 선택에 따른 결과다.

결혼도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가족에게 부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죽을 때가 되니 모든 게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후회만 해 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한 나는 개인적인 부탁을 건네기 위해 비서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흠……. 비서실장님, 사적인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회장님.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업이 순항하면서 바빠졌다고 들었는데, 바쁜 시기에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서실장님밖에 없습니다…….”

- 그런 말씀 마십쇼. 제가 이렇게 사업을 이끌 수 있는 것도 회장님 주변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회장님이 남겨 주신 이 회사 덕분에 아니겠습니까.

“그럼 염치 불고하고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가 소설을 하나 썼습니다. 이걸 종이책이 아닌 웹 소설 플랫폼에 런칭하고 싶은데, 최대한 이른 시일로 런칭 날짜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다 늙어서 한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웹 소설 런칭하는 걸 도와주라고 부탁을 한다니.

그럼에도 부탁을 하는 도중에 왜 이렇게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다.

- 회장님이 늘 핸드폰으로 보시던 소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언제 맨날 봤다고 그럽니까……. 그냥 시간 날 때 잠시 봤던 거지……. 어쨌든 그게 맞습니다.”

-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런칭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별것도 아닌 것 같고, 귀찮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회장님이 남은 시간 동안 좋아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합니다. 그럼 일정이 잡히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콜록콜록―

비서실장님과의 전화가 끊어지자, 그동안 참았던 기침이 나온다.

그와 함께 입 밖으로 나오는 혈토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건강했던 시절보다 왜 더 행복한 감정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원하는 일을 한 게 처음이라 그런 것 같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응어리를 글을 통해 풀어낼 수 있기에.

* * *

다음 날.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집필을 이어 가고 있는데 비서실장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부탁했던 내용이 벌써 결과가 나왔나 보다.

이제는 타자를 치기도 힘든 몸이지만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일정이 나온 겁니까?”

- 연락을 기다리셨나 보군요. 마지막이나마 회장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일주일 뒤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제가 보내 드린 메일로 원고를 보내 주시면, 일주일 안에 오탈자만 고치고 런칭 시작하기로 얘기된 상태입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비서실장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행복한 감정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겁니다.”

- 저 역시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인생을 살아 볼 수 없었겠죠. 마지막으로 도움을 드린 것 같아 기쁩니다.

일주일 뒤에 런칭 일자가 잡혔다고 전하는 비서실장님.

다행이다. 일주일 뒤라면, 그때까지는 몸이 버틸 수 있을 것 같기에.

최근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나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고 한다.

다행히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바쁜 사람 붙들고 너무 오래 통화했군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 죄송합니다, 일이 있는 바람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비서실장님이 바쁜 건 잘 알고 있으니,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조만간 또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또 한 번 찾아온다는 비서실장님.

이렇게 보니, 그동안 후회되는 선택만 한 건 아닌가 보다.

만약 내 친척들에게 토사구팽당하던 비서실장님을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선택 하나만큼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저 글을 써야겠군.’

지금까지 쓴 원고가 150화.

최대한 200화까지는 쓰고, 눈을 감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글을 쓰기 위해 몸을 옮겼다.

마음속으로 정해 둔 200화.

거기까지가 대현 그룹에 역공을 시작하는 회차가 아닌가.

현실에서는 그저 막기만 급급했던 거와 다르게 소설 속에서나마 역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나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집필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 * *

내 작품이 런칭이 된 지 한 달이 더 지났다.

‘다 썼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떨리는 손으로 다 쓴 원고를 플랫폼으로 보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끝까지 버텨 준 나의 몸에게.

‘이렇게 1부는 끝낸 건가…….’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쉬운 감정이 든다.

집필을 계속 이어 가고 싶지만, 도저히 몸이 버텨 주질 않는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런칭 후 플랫폼에 달리던 댓글들 덕에 초인적인 힘으로 버텼던 것 같다.

‘나만 즐겁게 쓴 게 아니었어.’

플랫폼에 올라가 있는 내 작품에 달린 댓글들.

하나같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소설 속에 들어간 것 같다는 댓글들.

이런 반응같이 글 쓰는 사람에게 행복한 댓글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이제 정말 몸이 한계라는 거다.

이미 주치의에게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상태다.

‘마지막으로 부리는 욕심이군.’

원래라면 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나마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가기 위해선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 남아 있는 건 마지막 욕심이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다행히 마지막까지 버텨 준 몸에게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진짜 마지막인가 보다.

‘그런데도 이렇게 행복한 이유가 뭘까…….’

분명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과거에 모든 걸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집을 나오는 건데.

나 역시 이번에 집필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글을 쓰고, 집안에서도 인정받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기 힘든 것 같다.

천천히 내려앉는 눈꺼풀 사이에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가 보인다.

‘이 반지가 진짜 소설처럼 소원을 들어준다면…….’

인도에 사업차 방문했을 때 구매했던 반지.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이라기에 구매한 반지다.

그때 당시에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읽어서인지 이상하게 마음이 가 그때부터 손에서 빼 본 적이 없던 반지다.

죽을 때가 되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반지가 소설처럼 소원을 들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죽을 때가 되니 별생각이 다 드는군…….’

이런 행복을 이제야 느낄 수 있음에 아쉬움과 죽기 전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로 인해 흐려진 시야. 과연 눈물로 시야가 흐려진 걸까, 아니면 죽을 때가 됐기에 시야가 사라지는 걸까.

“회장!$#[email protected]$”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와 동시에 몸에 힘이 빠지며 정신을 잃었다.

* * *

“제환아! 지금까지 자고 있으면 어떡해!! 이따가 회장님께 가려면, 지금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안 그래도 너 소설 쓴다고 화가 나 계시는데, 늦잠까지 자면 어쩌자는 거니!”

“…….”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나는 죽은 걸로 알고 있다.

아니, 그 순간은 죽은 게 틀림없다.

분명 나 스스로가 생명이 다함을 느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눈이 떠지는 거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분명 죽은 게 확실한데 어째서 눈이 떠지냐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몸에 손을 대고 있다.

분명 이것만으로 몸이 부서질 듯 아파야 하는 데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머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눈을 뜨고, 누가 내 몸을 만지는 건지 확인하는데 젊은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은 이렇게 젊지 않았다.

이 모습은 마치 그날을 연상시키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분명 죽기 전에 나는 본가가 아닌, 나의 집에서 쓰러진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본가에서 눈을 떴단 말인가.

‘설마 그 반지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진짜였나……?’

너무나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 반지가 기억이 난다.

마지막에 내 눈에 비쳤던 소원을 들어준다는 반지.

분명 죽기 전에 소원을 빌었긴 했다. 내가 쓴 소설처럼 그때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것 또한 말이 되지 않지만, 지금 상황을 봤을 땐 그나마 소원이 이뤄진 거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면, 꿈을 꾼 건가……?’

혹시 내가 겪었던 것들이 꿈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모든 게 현실이라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지 않은가.

“제환아! 빨리 챙기라니까! 너 회장님한테 가서도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거야?! 그러게, 누가 몰래 소설을 쓰래!! 취미로 끝냈어야지, 왜 출판사까지 찾아간 거야!”

“어머니…….”

“어머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제환아.”

아무래도 반지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이 진실이었나 보다.

지금 이 상황. 분명 내가 소설로 옮길 때 생각했던 가장 첫 번째 선택이 아닌가.

바로 할아버지에게 불려가 소설을 쓸 거면 나가라는 말을 들었던 그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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