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화 (1/175)

1화

“이거 뭐라고 해야 할지……. 여기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전이가 많이 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췌장암 말기입니다, 회장님.”

“…….”

나에게 침울한 표정으로 췌장암 말기라는 말을 전하는 주치의.

분명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별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무덤덤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죽음이 목전에 왔다고 슬퍼하기에는 삶에 대한 의욕이 있어야 하건만, 나에게는 그런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야 편히 쉴 수 있는 건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른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올라 원하지 않은 경영에 참여해서, 뜻이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인생. 오히려 췌장암이라는 마침표가 내 인생의 끝을 맺어 줘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든다.

만약 췌장암이 아니었다면 남은 인생도 평생 원치 않은 경영에 모든 걸 바치면서 살아가야 되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50살이란 이른 나이에 그룹이란 속박에서 나를 풀어 줬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비록 곧 있으면 생이 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이라도 편히 쉴 수 있을 테니.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나를 바라보는 주치의에게 질문했다.

“가능성은……?”

“죄송합니다, 회장님. 너무 늦게 발견돼서……. 만약 회장님이 생명을 이어 갈 의지가 강하시다면, 수술을 도전해 볼 만은 하지만…….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겁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아쉽지만, 길어 봐야 5개월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주치의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 수술해서 극히 미비한 가능성에 몸을 맡길 것이냐, 아니면 5개월이라는 시간이라도 살아 보겠냐 이 말을 전하고 싶나 보다.

분명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왜 이리도 덤덤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 한평생을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에, 생에 별 미련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 보셔도 됩니다.”

“예, 그럼……. 힘드시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나에게 축객령을 들은 주치의가 나가면서 긍정적인 생각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을 전해 온다.

주치의가 걱정하는 것만큼 지금 내 기분은 별로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다는 감정마저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5개월이라도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현 그룹의 공격을 막아 냈다는 건가?’

만약 마지막에 대현 그룹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다면, 남은 5개월마저 그룹의 일을 하며 생을 마감해야 될 뻔했다.

어떻게 보면 불행한 인생을 위한 보답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기업 순위 두 번째라는 평가를 받는 대현 그룹.

성장하는 우리 그룹을 잡아먹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해 왔다.

그런 공격을 막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밤낮없이 매 끼니를 거르고 뛰어다녀, 겨우 공격을 막을 수 있었고.

‘아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췌장암이 걸린 것일지도 모르겠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련의 행동 때문에 췌장암이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평상시였다면 췌장암이 말기까지 악화되지도 않았을 거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으며,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을 테고.

하지만 요 근래 3년. 대현 그룹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밤낮 할 거 없이, 회사에 남아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망가지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남은 5개월이라도 내 인생을 살아 보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야 느끼는 거지만, 내가 원하는 인생을 한번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동성 그룹의 회장이 되고 나서, 대현 그룹의 공격을 막아 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인생에 단 한 순간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다행인 것 같다. 아무런 흥미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내 인생에 마지막이나마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 볼 수 있게 기회를 받은 것만 같아서.

내일부터라도 내 인생을 찾아보고 싶다.

물론 늦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찾아보고 싶다. 나도 내 인생을.

* * *

쏴아아―

‘많이 야위었군…….’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며 거울을 보는 나.

췌장암 말기라는 소리를 듣고 내 얼굴을 보니 문득 많이 야위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몰골을 이제야 알아챌 정도로 정신없는 인생을 살았다니…….

어쩌면 몸이 망가지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걸 내 뜻대로 행동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재벌가인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아 회사 생활을 시작한 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그룹에 도움이 되는 결혼을 할 때도. 그 모든 행동들이 나를 위한 게 아닌, 회사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게 새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진짜 행복했었는데…….’

남을 위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했던 스무 살 중반 때가 생각났다.

군인 시절. 우연히 후임이 보던 소설을 한 번 읽어 봤었다. 그때부터 판타지 소설은 나에게 한 줄기의 빛이 돼 줬다.

집안에서는 공부하라는 압박감, 커서는 회사를 운영해야 된다는 압박감.

그런 숨 막히는 일상에서 자유로운 주인공의 일생이 펼쳐지는 판타지 소설은 나에게 숨통을 틔게 해 줬다.

‘그때가 처음이었지…….’

그런 주인공이 너무나 좋아서일까?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몰래 소설을 쓰기 시작했었다.

내가 꿈꿔 왔던 자유로운 상황에 놓인 주인공. 그리고 노력을 통해 강해지는 주인공.

그때 처음으로 인생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몰래몰래 글을 쓰고, 100화 가까이 원고를 모았을 무렵. 한 가지 호기심이 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과연 사람들은 내 글을 어떻게 볼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인공에게 공감해 주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문득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웹 소설 시장이 활발하던 때라 100화 정도의 원고라면, 충분히 출판사와 연락을 해서 런칭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게 독이 된 건가……?’

웹 소설 런칭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렇게 알아낸 정보로 아무 생각도 없이 출판사를 찾아가, 100화가량의 원고를 직원들에게 보여 줬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출판사 직원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얼마나 황당하게 생각했을까? 이런 시대에 원고를 가지고 직접 출판사까지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을 이용하다가는 집안에서 알아차릴 확률이 높지 않았던가. 그렇게 무작정 찾아가 몰래몰래 연락을 이어 가다, 결국 런칭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지…….’

런칭을 하고 나서 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

그야말로 폭발적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내고,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2억이라는 수익을 올릴 정도로 내 작품은 엄청난 반응을 끌어모았다.

이런 폭발적인 반응이 나에게 독이 됐을까?

더욱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에 집에서까지 글을 쓰다, 결국 가족들에게 걸려 버리고 말았다.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 그럴 거면 집을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지.’

어쩌다 보니, 그 얘기가 할아버지의 귀까지 들어가게 됐고, 그다음 날 나는 할아버지의 집에 밤늦게 불려 갔다.

나한테 한없이 인자한 모습을 보여 주시던 할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며, 글을 쓸 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전했다.

그때의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지금 내가 쫓겨난다면, 내가 누리던 모든 게 없어질 것 같아서.

할아버지의 집 나가라는 소리 하나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게 모두 사라질 것 같아서.

그때부터는 얼마 동안 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고.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도전이라도 해 볼걸.’

결국 이런 상황이 돼 버리니 그때의 선택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끝까지 도전해 보는 게 어땠을까?

모든 걸 잃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도전해 보는 게 더 나았지 않았을까?

괜히 모든 선택들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아니, 이 부분은 늘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웹 소설을 읽을 때, 그때마다 도전하지 못한 내 과거에 늘 후회하고 살아왔다.

‘췌장암 말기라 더 그런지 모르겠네.’

그런 후회들이 췌장암 말기라는 소식에 모두 합쳐져서 나를 괴롭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단 회사부터 정리하자.’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5개월.

아무리 후회로 가득한 인생이라 해도, 마지막은 매듭을 짓고 떠나야 된다.

지금까지 키워 온 회사.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걸린 일이 아닌가.

회사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변호사들과 비서실장님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회장님, 주식 양도까지 마무리됐습니다.”

“고맙습니다. 끝까지 제 옆에 남아 있어 줘서.”

“아닙니다, 회장님. 만약 회장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 역시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까지, 옆에서 나를 도와주던 비서실장님.

고마운 마음이 너무나 크다. 만약 비서실장님이 아니었다면, 이번에 우리 그룹을 공격해 온 대현 그룹에게 당했을지도 모를 만큼, 큰 도움을 받았었다.

“아무래도 제 동생이 회장 자리에 오르는 만큼 비서실장님의 자리도 애매해질 겁니다.”

“괜찮습니다, 회장님. 저 역시 회사에서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이제는 저 또한 지쳤기도 하고, 회장님도 안 계시는데 저만 회사에 남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잘 생각했습니다.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비서실장님을 위해 작은 회사 하나 준비해 놨으니까 그쪽으로 출근하시면 될 겁니다. 그 회사를 키울지, 아니면 사장 자리에 앉아 월급을 받으며 생활할지는 비서실장님이 결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회장님…….”

이때까지 나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비서실장님.

내 동생이 회장 자리에 오른 이상, 이 비서의 자리는 그룹 내에 없다고 봐야 된다.

그래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준비해 둔 회사를 동생에게 말해 놔서 계열사 분리를 시켜 놓은 상태다.

만약 회사 생활에 지친 비서실장님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남은 인생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비서실장님이 욕심이 있다면, 회사가 성장할지 무너질지는 그의 몫이겠지.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일해 준 비서실장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인제 그만 나가 보셔도 됩니다. 저도 남은 시간이라도 하고 싶은 걸 즐기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혹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미국에 유명한 전문의가…….”

“비서실장님, 저는 지쳤습니다. 설령 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이지 이제는 쉬고 싶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본 회장님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고, 희생적인 인생을 사셨습니다. 비록 이른 나이에 너무 큰 책임을 지시느라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힘드셨을 수 있겠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회장님이 동성 그룹을 이 자리까지 올려놨다는 걸.”

“고맙습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남은 5개월이라도 저를 위한 삶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늦었지만, 한번 느껴 보고 싶군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으로 삶을 살아갔는지.”

“항상 주변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언제든 제가 필요하시면 무람없이 불러 주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를 배려해서일까? 비서실장님이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발걸음을 옮겨 문을 닫고 나갔다.

‘남은 시간이 5개월이라고 했나?’

비서실장님 말대로 이때까지 내 인생은 누구보다 치열했고, 누구보다 회사에 희생하며 산 삶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삶이 다했음을 알게 되었어도 무덤덤한지 모르겠다.

남은 5개월. 그 기간 동안만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글을 쓰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행복해하던 때.

‘늦었는지도 모르지…….’

늦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늦은 게 확실하다.

그래도 남은 5개월이나마 가장 행복해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의 시절을 상기해 낸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를 펼쳐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남은 5개월 동안 쓰고 싶은 소설.

어떻게 보면, 웹 소설을 빙자한 회고록일지 모르겠다.

‘과거에 아쉬웠던 선택들을 소설로 적어 보자.’

살아가면서 느꼈던 아쉬움들.

그 모든 걸 챙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소설의 플롯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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