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31화 (131/132)

< 마지막 차원의 조각 >

정체.

로메인 페이지가 물어온 것은 정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질문이었다.

만약 발치에 개미 떼가 기어가고 있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사람의 손만큼이나 크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지금 상황이 로메인 페이지에겐 그것과 비슷할 것이었다. 우연히 찾아온 루블리온 아카데미, 채 성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들 중에 6서클의 성위마법사가 섞여있다. 그의 입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칼은 침을 꿀꺽 삼키며 로메인 페이지를 바라봤다. 과연 가공할 존재감이었다. 강당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다. 이렇게 정면에서 개인과 개인으로 대치하고 있으니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려내렸다.

'마력이 아냐, 단순히 존재감만으로 이런...'

칼은 근본적인 격의 차이를 느꼈다.

4서클과 5서클, 그리고 5서클과 6서클, 그 정도 수준에서의 격차가 아니었다.

눈앞의 노인은 진정으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괴물이었다. 7서클의 경지가 이토록 아득한 것이었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직 성년도 지나지 않은 나이로 보이는데... 믿기지가 않는군. 그 나이에 벌써 여섯 개의 고리를 이룩하다니."

"......"

"대체 자네의 정체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첩자일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자네 같은 불세출의 천재를 어느 멍청한 집단이 고작 첩자 따위로 활용하겠나. 불세출이란 말로도 부족하겠군. 대륙의 역사에 너만 한 천재가 또 있지는 않았겠지."

이미 로메인 페이지는 칼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했다.

그 수많은 인파가 섞인 강당에서도, 그 먼 거리에서 눈치를 챘으니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 이제 그만 정체를 알려다오.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지, 네게 해악을 끼칠 생각이 없다."

칼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알티우스 학파의 칼이라고 합니다."

"오? 알티우스 학파? 허허! 그놈들이 결국엔 이만한 괴물을 배출해냈나? 우리 학파가 아니라 아쉽게 됐군그래."

그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로메인 페이지는 제국의 수호자였지만 동시에 칸데이엄 학파의 수장이기도 했다. 제국은 알티우스 학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로메인 페이지가 제국의 수호자로 있는 건 그와 황실 사이의 개인적인 은원 때문이라고 세간에는 알려졌다.

"그래서, 누구의 제자냐? 헤라 그놈의 제자인 게냐?"

헤라 룬슬렛. 그가 말하는 인물은 알티우스 학파의 수장이었다. 칼은 고개를 저었다.

"원로님들 중에 한 분의 제자로 있습니다."

"그렇군. 흠..."

짧은 대화가 끊기고 로메인이 다시 칼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야, 혹시 나한테 마법 좀 배워볼 생각 없느냐?"

누가 들었다면 경악하다 못해 귀를 의심할 말이었다.

대마법사가, 제국의 수호자이자 칸데이엄 학파의 수장인 로메인 페이지가 누군가에게 마법을 전수한다고? 그것도 자신의 학파가 아닌 알티우스 학파에 소속된 마법사에게?

그것은 그만큼이나 로메인 페이지가 칼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 성년 나이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6서클의 경지를 이룩했다. 지금까지의 대륙의 마법사에서도 이런 천재는 없었을 것이었다. 아무리 대마법사

라고 한들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대마법사에게 직접 마법을 배울 기회.

그것은 감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어마무시한 기회였으나, 칼은 생각할 것도 없이 즉각 거절했다. 당연히 거절해야만 했다.

'내가 미쳤다고 당신한테 마법을 배우겠나?'

칼은 시스템의 힘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근에 새로운 보상을 발견하며 이론에도 점점 실력을 쌓고는 있으나, 그것도 아직 3서클 수준에 불과하다. 로메인에게 마법을 배우기라도 했다간 밑천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드러날 터였다.

그 단호한 거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로메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끙, 날 스승으로 모시라는 게 아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마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건데, 그래도 싫느냐?"

싫다. 정말로 싫다.

"정말 감사한 말씀이지만 죄송합니다."

칼은 다시 한 번 확실히 거절했다. 그제야 로메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돌아섰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그나저나 참 여러모로 재밌는 녀석이구나. 나 정도 되는 경지면 굳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보이는 게 있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칼이 의문 섞인 눈빛을 짓든 말든 로메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의 본질 같은 거라든가. 한데 네놈의 본질은 참으로 묘하구나. 이 세계에 섞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란 말이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흐음..."

정곡을 찔린 칼은 조금 흠칫했다.

"뭐, 아무튼 나중에 또 보자꾸나. 조만간 알티우스 본원으로 찾아가봐야겠군."

이것으로 할 말은 끝이라는 듯 로메인이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칼과 로메인이 동시에 눈을 크게 뜨고서 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블리온 중앙 광장 위쪽의 허공. 그곳에 한 사람이 떠있었다.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는 모양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순간 로메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흑탑주가 어째서 이곳에...?!"

그 중얼거림에 칼도 경악했다.

갑자기 저편에서 불길하기 그지없는 마력이 흘러나오길래 뭔가 했는데, 흑탑주라고?

상황이 갑자기 뭐가 뭔지 모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동시에 흑탑주뿐 아니라, 루블리온 곳곳에서 하나둘씩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들이 감지되었다. 더해서 루블리온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고오오오.

흑탑주를 중심으로 서서히 불길한 마력의 커지고 있었다. 곧 흑탑주의 주변을 둘러싼 채 생성된 반투명한 검은색 구체가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결계형 마법인가? 로메인이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어떤 미친 놈들이 루블리온을 습격한 것 같구나. 그것도 흑탑주까지 끌어들여서."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것 말고는 지금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칼도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다른 학생들을 지켜라!"

로메인은 그 말만 남기고서는 곧장 공중에 떠올라 흑탑주를 향해 가공할 속도로 날아들었다.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도 곧장 공중에 떠올라 이동했다. 흑탑주 외에 다른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 * *

무너진 건물 잔해. 무사히 입학식을 마치고 본관으로 돌아가던 학생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을 맞이했다.

"다, 다들 도망쳐! 이쪽으로!"

조교수 한 명이 나서서 학생들을 이끌고 통솔하기 위해 애썼다. 갑작스러운 습격. 해일처럼 몰아친 검은 마력에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고 한 번에 수십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경험해본 적 없는 상황에 모두가 패닉에 빠져 허둥대고 있었다.

"흩어지지 말고 이쪽으로 모이라니... 컥!"

"히, 히익!"

어디선가 날아든 마력 창이 학생들을 통솔하려던 조교수의 목을 꿰뚫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더욱 패닉에 물들었다.

"이쪽은 고맙게도 알아서 모여줬나? 처리하기 쉽겠군."

사방에 깔린 건물 잔해. 그 사이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괴한이 이쪽을 향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전투를 준비했으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의 엘리트들이라고 해봐야 결국은 학생. 이런 식의 참혹한 실전은 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겁 먹은 아기새처럼 옹기종기 모여 떨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로브의 사내가 씩 웃었다.

"자, 떨고만 있지 말고 덤벼봐라. 마법을 전개하란 말이다. 제국의 황도를 침입한 역적 아닌가? 미래에 제국을 이끌어갈 인재들로서 맞서 싸워야지!"

하지만 그 도발에도 마법을 펼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조교수조차 순식간에 당했다. 학생들 역시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로브의 사내가 격이 다른 마법사라는 것을.

떨고 있던 학생들 중 하나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는 거냐! 곧 다른 교수님들이...!!"

"아, 교수님들? 그분들은 바빠서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텐데? 참담하게도 학생들의 시체만 마주하게 되겠군. 큭큭."

퍼엉!

동시에 사내의 손에서 뻗어나간 마력 창이 소리친 학생의 몸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머리를 붙잡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내는 그 반응을 즐기듯 광소를 지으며 또 다시 마력 창을 생성했다.

"아, 재미없네. 뭐, 루블리온이라고 해봤자 결국은 애새끼들이지. 나도 교수들이나 상대하러 갈 걸 그랬어."

펑! 퍼엉!

연달아 날아든 마력 창이 하나씩 학생들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그중엔 실드를 펼치는 학생도 있었지만, 사내의 창엔 유리처럼 가볍게 박살났다. 반대로 학생들이 필사적으로 날린 반격 마법은 사내의 실드에 막혀 맥없이 소멸해버릴 뿐이었다. 틈을 노려 도망치려던

학생들도 모조리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몸이 터져나갔다.

이제 살아남은 학생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사내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어 남은 학생들을 한 번에 처리하려던 순간이었다.

...쩌엉!

틈을 노리고 어디선가 날카로운 칼바람이 날아들었다. 순간 로브의 사내도 흠칫 놀라며 실드를 펼쳤다. 상당한 위력의 마력이 실드를 타고 울렸다.

"호오..."

사내가 재미있다는 듯 어느새 반대편에 나타난 여학생을 바라봤다. 그녀는 바로 엘론이었다. 앞서 어디선가 전투를 치루고 온 것인지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뭐야, 죄다 글러먹은 쓰레기들만 있는 건 아니었군?"

"...도망쳐!!"

엘론은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완전히 절망에 빠진 채 있던 학생들에게 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학생들이 몸을 돌려 사내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마법을 펼치려 했으나, 다시금 엘론에게서 날아든 마법에 다급히 실드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의 칼바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거대한 마력이었다.

"이게 무슨...?!"

콰아앙!!

반쯤 파괴된 실드. 미처 다 막아내지 못한 충격에 뒤쪽으로 날아간 사내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곧장 날아드는 연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으나,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저건."

엘론은 방금 한 번의 공격이 최후의 일격이었다는 듯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입으로 피를 꿀럭꿀럭 토해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는 그런 엘론을 빤히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마력을 폭주시키기라도 한 거냐? 한 번이라도 마법을 펼친 게 장하군."

어쩐지 학생 수준치고는 터무니없는 위력의 마법이다 싶었다.

사내는 흥미가 가셨다는 듯 엘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선 그녀부터 죽이고 도망간 학생들을 마저 쫓아 죽일 생각이었다.

"야."

그때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흠칫 놀란 사내는 다급히 시선을 위로 들어올리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시야가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사내는 한 박자 늦게 자신의 몸통이 관통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마지막으로 시야에 들어온 건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의 모습이었다.

저놈이 날 죽인 건가? 대체 어떻게? 그것이 사내의 생에 마지막 생각이었다.

"...아수라장이군."

칼은 쓰러진 사내를 지나쳐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진 건물 잔해, 피웅덩이, 싸늘한 주검이 된 학생들.

이곳이 정말 제국의 중심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풍경이었다. 칼은 굳은 얼굴로 엘론을 향해 다가갔다.

"어이, 정신 차려."

엘론은 저편에서 심장을 부여잡은 채 쓰러져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호흡이 느껴졌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전혀 맞지 않았다. 칼은 그녀를 일으켜세운 뒤 우선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죽을 게 뻔했다.

우우웅.

녹빛의 치유 기운이 엘론의 몸을 타고 흘러들어간다. 조금이나마 그녀의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치유 마법은 신성력과 다르게 일정치를 넘으면 반동이 있었다. 칼은 적당한 시점에서 치유를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어쩌지, 이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었다. 안전한 장소로 옮긴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나?

빠지지직!

순간 옆쪽에서 날아드는 전격에 칼은 실드를 펼쳤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도 웬 화염이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왔다.

콰아앙!!

두 거대한 마력이 동시에 칼의 실드를 강타했다. 하지만 칼의 실드는 멀쩡했다. 칼은 사방을 접근해오는 기척들을 모두 확인했다. 총 열넷. 그리고 그중에 성위급은 둘.

"허, 저 새끼 뭐야? 교복 입고 있는데 학생이 아닌가?"

곧 칼을 둘러싸고 일련의 검은 로브 무리가 나타났다. 칼은 한숨을 내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쩐지 흑탑주 쪽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이 더욱 세를 불리고 있었다. 한가롭게 시간을 끌 여유도 없을 듯했다.

빠지지직!!

칼을 중심으로 푸른 전격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검은 로브들 중 가까이 있던 몇몇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소멸했다. 견제해야 할 건 성위급의 6서클 마법사 둘. 나머지는 귀찮은 벌레들이었다.

콰과곽!!

동시에 반격이 날아들었다. 대지에서 거대한 가시가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칼을 노리고 날아들며 분열했다.

칼은 서클을 단전의 창염환으로 전환했다. 주홍색의 찬란한 불꽃이 분열하는 가시들을 순식간에 모조리 불태우고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까지 노리고 뻗어나갔다. 가공할 열기에 기겁한 마법사가 재빨리 매직 부스터를 사용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실드로 막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번쩍!!

다른 쪽의 마법사에게는 거대한 백색의 광선이 쏘아졌다. 마법사는 피하지 않고 실드를 펼쳤다. 보통의 실드가 아닌 비전 마법의 종류인지 핏빛으로 붉은 실드는 놀랍게도 레이 버스터를 막아냈다. 칼은 조금 놀랐다. 이걸 정면으로 막긴 쉽지 않을 텐데.

"...한 번에 마법을 퍼부어!!"

한순간 전투가 소강된 틈을 노리고 나머지 피라미들이 칼을 향해 일제히 마법을 날렸다. 칼은 실드를 펼친 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마법들은 모조리 실드에 막혀 소멸되거나 적중되지 않았다. 서클을 창염환에서 심장의 아르자크류로 변환했다.

번쩍!!

동시에 칼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거대한 전격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번엔 아까 처음의 것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인벤토리의 포션도 있고 마력을 아낄 생각도 없었다. 결국 4, 5서클의 피라미 마법사들은 미처 전격을 회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모

조리 소멸해버렸다.

그 틈을 노리고 다른 두 성위마법사가 공격을 날려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대지를 뚫고 분열하며 찔러오는 가시들. 칼은 참 징그러운 마법이라 생각하며 서클을 창염환으로 다시 변환했다. 가시가 모조리 불타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연격을 날리려던 성위마법사를 바라봤다. 녀석은 이전의 그 붉은 실드를 유지한 채 무언가 큰 마법을 펼치려는 듯 싶었다. 대놓고 저런다는 건 그만큼 실드의 방어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칼은 피식 웃으며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쪽이 방어력에 자신이 있다면, 이쪽은 파괴력 하나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꽈릉!!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한 줄기의 붉은 벼락.

벽력이 가시고 난 자리에 큰 구덩이가 패여있었다. 그리고 실드를 펼친 채 무언가를 준비하던 마법사는 흔적도 없이 소멸해 찾아볼 수 없었다. 칼은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한 명의 성위마법사가 완전히 경악한 얼굴로 서있었다.

"그만 끝내자."

칼은 녀석도 마저 처리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놈 역시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는지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리는 모양새였다. 칼의 화염과 마법사의 빙벽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콰아앙!!

우세한 쪽은 당연히 칼의 마법이었다. 칼의 보통의 마법사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마법사라는 걸 모르는 이상, 애초부터 로브의 괴한들에게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놈은 밀리는 마력을 밀어내려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칼은 마저 마력을 밀어붙여 놈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려 했다. 그 순간 느껴지는 오싹한 감각.

칼은 본능적으로 방어 마법을 펼쳤다. 실드가 아닌 다크 아머로. 동시에 실선만큼 가는 굵기로 쏘아져온 빛줄기가 전신을 두른 어둠 갑옷을 강타했다. 마치 레이 버스터의 위력이 압축되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위력이었다.

터엉!!

칼은 흡수한 마력을 그대로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되돌렸다. 충격파가 퍼지며 대지가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졌다. 그리고 숨어있다가 필사의 기습을 날린 마법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의 감지 마법에도 걸리지 않은 걸 보니 은신에 특화된 마법도 펼치고 있

었던 듯했다.

번쩍!

공중에 떠오르는 놈을 향해 칼은 그대로 레이 버스터를 쏘아냈다. 재주는 그게 전부였다는 듯 놈은 그대로 소멸했다.

"크어어억...!!"

앞선 마력의 충돌로 바닥을 기고 있는 놈도 마저 화염으로 불태워버렸다. 그렇게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칼은 발치에 널부러져 있던 엘론의 몸을 다시 띄어올렸다.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그와 동시에 엘론의 심장에 푸른빛이 깜박였다.

[마지막 차원의 조각은 엘론 페이지의 심장에 박혀있습니다.]

[마지막 차원의 조각을 모으면 지구로 귀환이 가능합니다.]

"......"

메시지를 바라보는 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 마지막 차원의 조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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