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25화 (125/132)

< 마법 이론 (2) >

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수업 때부터 이쪽을 향한 눈빛이 찜찜하다고 느끼긴 했었다.

"긴 이야기는 아니니 잠깐이면 된답니다. 당장 불편하다면 나중에 다시 시간을 내서..."

"아닙니다. 지금 듣겠습니다."

앞으로의 원만한 아카데미 생활을 위해서라면 그녀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기는 했다.

가람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럼... 칼 학생, 방금의 수업은 어땠죠?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나요?"

칼은 대답하지 않고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보통 교수가 수업이 끝난 뒤 따로 학생을 붙잡아서 하기엔 시덥잖기 그지없는 질문.

이미 면담 때 이쪽이 이론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걸 못 박아버렸던 그녀다. 본론만 꺼내면 서로 편할 터였다.

그런 칼의 기색을 느꼈는지 가람 교수는 싱긋 웃었다.

"알겠어요.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건 관두도록 하죠."

"......"

"칼 학생, 수업에 앞서 설명했듯이 이 아카데미에는 동아리라는 시스템이 있어요. 흥미와 적성이 맞는 학생들끼리 모여 학술적인 성취를 갈고닦을 수 있죠. 그리고 그 중에는 내가 직접 주관하고 있는 동아리도 하나 있답니다."

"...어째 그 동아리가 마법 이론 탐구 동아리라거나, 그런 이름일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칼은 왜인지 가람 교수가 꺼낼 이야기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이쪽에 가진 관심이 우려와는 다르게 호감에 가깝다는 건 어렴풋이 알았다.

그리고 튀어나온 동아리 이야기. 여기서 그녀가 이쪽에 제안할 건 하나밖에 없었다.

"눈치가 빠르네요. 정확히는 '술식 전개의 응용과 탐구'라는 명칭이죠."

"제가 그 동아리에 가입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가람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째서?"

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명백히 자신에게 마법 이론에 대해 가르쳐주기를 원하는 듯 보였으니까.

대체 왜 이론의 기초 중의 기초도 모르는 머저리를 가르치고 싶어한다는 말인가? 보통은 자질을 의심해야 정상 아닌가?

이어진 그녀의 대답은 더욱 알아듣기 힘든 것이었다.

"뛰어난 학생이 재능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뛰어난 학생? 제가 말입니까?"

"그래요. 술식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었죠? 그냥 되는 거라고."

그거야 별달리 할 말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한 대답이었는데.

물론 그것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긴 했다. 시스템의 능력은 칼이 스스로 노력해서 쌓은 성취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칼 학생은 술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도 마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대단한 재능입니다."

"......"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재능에만 기댄 채 나아가다간 결국 벽에 부딪히게 될 거예요.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자질이 충만한 학생이 좌절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나는 교수로서 방관할 수 없어요. 그래서 칼 학생에게 이론을 가르치려는 겁니다."

그제야 칼은 깨달았다.

이 가람이라는 교수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루블리온에 입학하기 전 본래 소속했던 학파에서는 어떤 식으로 마법을 탐구해왔죠? 주변 인물들은 칼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나요?"

"......"

"역시 그렇군요. 마법 학파라고는 해도 제대로 된 가르침은 커녕 제자들을 무관심으로 내쳐두는 곳이 대부분이니까. 분명 그런 곳에서 지금까지 거의 홀로 마법을 독학해왔을 거예요. 내용 정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마법서를 읽고, 다른 학파원들의 마법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면서. 제 말이 맞나요?"

거기까지 말한 가온은 순간 아차 싶었다.

서류를 살펴봤을 때 칼이 소속되어 있던 학파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널리고 널린 하류 학파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칼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아직 그녀는 몰랐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선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학파를 방금의 말로 모욕한 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칼은 침묵할 뿐이었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으니까. 또 그녀의 오해를 바로잡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런 미적지근한 반응에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건 아니라고 짐작한 그녀는 작게 안도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해요. 아직 아무것도 늦지 않았어요. 지금부터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토대를 쌓아올리면 되는 겁니다. 단지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아니, 말뿐이 아니라 칼 학생을 전적으로 돕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아니, 저기..."

"칼 학생의 경지가 현재 2서클이죠? 장담하건데, 내 지도에만 착실히 따른다면 적어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3서클을 넘어서 4서클의 벽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가람 교수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동아리에 가입하도록 하세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오직 나만이 칼 학생이 품고 있는 재능을 이해하고, 또 만개시킬 수 있으니까."

칼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황담함과 어이없음을 느끼며.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이 교수는.'

재능? 벽? 만개?

칼의 마법은 그저 시스템이라는 미지의 힘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당연히 칼이 품고 있는 본연의 마법적 재능 따위와는 조금의 관계도 없었다.

뭘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하는데 퍼뜩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그런데 나쁠 건 없지 않나?'

혹시 모를 퀘스트 발생을 기대하려면 계속해서 아카데미에 무사히 남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방금 전 수업을 들으며 뼈저리게 깨달은 부분은, 지금의 백지 상태로는 한 학년조차도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이론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친절히 가르쳐주겠다는 사람이 떡하니 나타났다. 심지어 교수다.

칼에게 있어서는 가람 교수의 제안을 전혀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과연 자신이 시스템이라는 능력 없이 마법이라는 학문을 어디까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노력을 들이면 퇴학을 면할 정도의 성과는 충분히 낼 수 있지 않을까?

경지가 오르며 오성이나 통찰력 따위가 보통 사람의 수준을 넘어선 지도 이미 오래였으니 말이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칼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

"왜 하필 동아리인지 궁금해서요. 어차피 제 담당 교수이신데, 지도가 목적이라면 제가 굳이 동아리에 가입할 필요가 있나요?"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가람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주변의 시선 때문이에요."

"......?"

"칼 학생은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이니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내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는 건 좀 민망하지만, 루블리온에서 정교수라는 직함이 지니는 의미는 가볍지 않답니다. 아무리 내가 칼 학생의 담당 교수라도, 특정 학생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 둘 모두가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까요."

칼은 곧장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하기야, 루블리온의 정교수는 제국 내에서도 그 명망이 높은 엘리트들.

그런 교수가 고작 평민 신입생 한 명에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모습을 주변에 보였다간 좋을 건 하나도 없을 터였다. 다른 학생에게든, 주변 동료 교수들에게든 말이다.

"동아리가 좋은 구실이라는 거군요."

"그래요. 동아리 실에서 소속 학생을 가르치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으니까요."

가람 교수가 대답을 기다리듯 빤히 칼을 응시했다.

조금 더 생각한 시간을 달라고 대답하려던 칼은 이내 관두었다.

어떻게 따져봐도 지금 상황에 전혀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론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이 정말 조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술식의 전개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로. 그래도 괜찮으시다는 겁니까?"

싱긋 웃으며 손을 뻗어온 그녀가 칼의 어깨를 토닥였다.

"말했죠? 기초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올리면 될 뿐이라고."

"......"

"아, 대답을 당장 이 자리에서 서둘러 할 필요는 없답니다.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죠? 어서 가보도록 해요."

* * *

그렇게 가람 교수와의 대화를 마친 칼은 곧장 다음 수업으로 이동했다.

3구역 본관의 연마실에서 진행하는 마법전 수업.

장소에 도착하자 이미 다른 학생들은 넓직한 연마실 테두리에 각각 자리를 잡고서 담당 교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인마법전 수업을 맡을 담당 교수는 전투과의 교수라고 했었다.

연마실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치들 또한 이곳저곳 널려있었는데, 칼은 그것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자리를 잡고 섰다.

"환영한다, 신입생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도착했다.

날카로운 기세가 풍기는 근육질의 노인이 조교와 함께 연마실의 중앙에 서는 걸 지켜보던 칼은 곧바로 그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다름이 아니라 마지막 4차 입학 시험이었던 마법전의 감독관을 맡은 그 자였던 것이다.

입학 시험 때 그를 감독관으로 마주하지 않았던 학생들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역시 마법사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엄청난 체구였다.

히죽 웃으며 학생들을 둘러보던 바크롱이 말을 이었다.

"마법전 수업은 실전에서의 역량을 가다듬기 위한 수업이다. 자, 설명 끝."

"......?"

"나는 첫 날이라고 어영부영 말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가져와라."

바크롱이 고개를 까닥거리자 곁에 서있던 조교가 연마실의 구석에 있던 물건을 가져왔다.

언뜻 봐도 복잡하게 생긴 구체.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 마도구였다.

그것을 받아든 바크롱이 한 손으로 장난스레 위아래로 가볍게 던졌다가 받았다.

"마법전은 별다른 제약 없이 실전처럼 행하는 게 기본적으로는 최고지. 하지만 안전상의 문제도 있고, 특정 부분의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데는 이렇게 장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썩 선호하지 않지만, 이라고 작게 덧붙이는 바크롱이었다.

그의 손에서 떠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구체가 순간 허공에 멈추었다.

그리곤 푸른빛을 뿜어내며 바닥에 육면체 형태의 필드를 넓게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신비한 광경을 바라보며 학생들 몇몇이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늘 수업은 이 마도구를 이용해서 간단히 일대일 대인마법전으로 하겠다. 우선 시범 격으로 너, 이리 나와라."

지목을 당한 남학생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가, 바크롱의 사나운 눈빛에 머뭇머뭇 나섰다.

"이름이 뭐냐?"

"데, 데이빗입니다."

"그래, 데이빗. 상대를 한 명 지목해라."

"...상대 말입니까?"

"그래. 평소 마음에 안 들었던 상대로 골라도 좋고. 아, 이제 막 입학했으니 그런 녀석은 없으려나?"

남학생의 시선이 학생들을 훑었다.

그러다 곧 한 곳에서 멈추더니 적의가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저놈... 아니, 저 친구로 하겠습니다!"

지목된 학생은 다름아닌 칼이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칼은 눈을 깜박이며 남학생을 바라봤다.

왜 저렇게 적의를 품고 있나 했더니, 이론 수업 전에 시비를 걸어왔다가 망신을 당했던 그 놈이었다. 복수라도 하겠다는 건가?

"허."

어떤 형식의 마법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못 어울려줄 것도 없다.

칼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마법 이론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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