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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8화 (118/132)

< 입학 (5) >

헤슬리오는 마법부의 마류분석과에 소속된 정교수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그러니 만큼, 그녀는 동일한 경지의 다른 마법사들보다도 마력의 흐름을 마법의 발현 과정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에 있어 훨씬 뛰어났다.

'저건...'

그렇기에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방금 칼이 보여준 간단한 행위에 얼마나 대단한 운용력이 숨겨져 있는지를.

'단순히 마법을 번갈아 펼친 게 아니야. 이미 체외로 방출한 마력만으로 마법을 반복 전개했다.'

체내의 흐름을 벗어나 외부로 방출된 마력은 대기 중에 흩어지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마법사가 마법을 펼친다는 건 단순한 하나의 과정이 아니다.

제어를 벗어나려는 마력을 흩어지지 않게 계속해서 응집한 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술식을 전개하며 마법을 완성해야 하는 이중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방금 칼이 보여준 기예는 고위마법사인 헤슬리오에게 있어서도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이미 몸 밖으로 방출한 마력을 저만큼이나 길게 유지한 채 서로 다른 두 마법을 반복해서 펼친 것이니까.

그것도 마력체를 서로 멀찍이 떨어뜨리지 않고 손바닥 위에서. 저런 식이면 마법의 분리가 힘들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비록 그것이 화염과 빙결, 간단한 원소 마법들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2서클... 인가?'

헤슬리오는 감각을 끌어올리고 칼의 경지를 가늠해봤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마력량을 보니 대략 2서클. 이곳에 있는 지원자들의 평균이다.

하지만 저 운용력은 결코 2서클의 수준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간혹 있었으니까. 특정 분야가 이룬 경지를 한참 벗어날 만큼 유독 특출난, 천재라 불리우는 족속들이.

그리고 이곳 루블리온은 그런 천재들이 꽤나 많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그래도 저만한 자질은 상당히 비범하군.'

마력의 흐름을 분석하는 것이 연구 분야인 헤슬리오에게 있어, 마력 운용이 뛰어난 인재는 언제나 기분을 들뜨게 했다.

헤슬리오는 만족스레 웃으며 조교수에게 말을 전했다.

점수는 현재까지 최고점을 획득한 뮬레트의 영애와 동일한 점수였다.

단순히 운용적인 부분에서만 따지면 그녀가 선보인 속성 변화보다도 뛰어나다.

줄리엔은 그저 가문 비전을 사용했을 뿐이고, 칼은 스스로의 경지를 초월한 운용력을 선보인 것이었으니까.

"......"

칼은 슬쩍 헤슬리오를 돌아봤다.

그녀가 감각을 펼쳐 이쪽의 경지를 가늠했다는 건 당연히 눈치챘다. 마력을 은닉했으니 대충 2서클 정도로 짐작했겠지만.

칼이 스스로 감춘 이상 고위마법사에 불과한 그녀의 수준으로 칼의 본 경지를 꿰뚫어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충 이 정도면 됐겠지.

칼은 헤슬리오를 향해 목례를 건네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비웃음이 담긴 주변의 시선들. 레븐이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칼, 너 대체 뭘 한 거냐? 갑자기 시험 치르기 귀찮아지기라도 했어?"

레븐 역시 다른 지원자들처럼 칼의 마법 시연을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방금 그거, 방출해둔 마력으로만 마법을 번갈아 펼친 게 맞지?"

칼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묻는 청년. 어스문 원로의 제자라는 카인이었다.

그가 먼저 접근해온 것이 의외였는지 레븐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뭐... 글쎄다."

칼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솔직히 감독관과 조교수 말고는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의 천재성을 과소평가했던 모양이었다. 애초에 좀 가까운 위치에서 시연을 지켜보기도 했지만.

"너 대단하구나! 솔직히 방금 건 나도 쉽게는 못할 것 같은데. 아, 그보다 나는 카인이라고 해. 어스문 학파 소속이야."

"칼이다."

칼은 손을 내밀어 카인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왠지 귀찮게 굴 것 같아서 솔직히 썩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카인이 다시 물었다.

"학파는 어디 소속인지 물어도 될까?"

"들어봤자 모를 곳이야."

"그럼 마법은 어떻게 익히기 시작했어? 마력 운용 능력은 타고난 거야? 아니면 따로 익힌 운용법이 있다거나?"

어떻게 보면 마법사에게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들을 카인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물어왔다.

그러나 별다른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칼은 대충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좀 순진한 놈인가?

한편 반대쪽에선 또 다른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무시할 생각이었으나 신경이 쓰인 칼은 결국 고개를 돌렸다.

뮬레트 가의 영애 줄레인 뮬레트, 그녀가 좀 전부터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천천히,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마치 자신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듯.

칼도 헛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두 명의 지원자도 마법 시연을 마치고, 시험은 종료.

"자, 그럼... 이것으로 2차 시험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3차 시험에 행운을 빕니다."

조교수가 점수를 기록한 종이들을 툭툭 정리하며 말했다.

지원자들은 안내에 따라 마지막 3차 시험을 치르기 위한 장소로 이동했다.

* * *

3차 시험장도 2차 시험과 비슷하게 넓은 공터였다.

마찬가지로 감독관과 조교수 한 명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감독관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몸은 거구에, 굴곡이 옷 밖으로 선명히 드러날 정도의 근육질이고, 눈빛은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워 노쇠한 느낌 따윈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야? 마법부 시험 감독관 맞나?"

"겉으로 보기엔 그냥 무인인데?"

위압감이 한가득 느껴지는 강렬한 외모에 지원자들 사이에도 자그마한 소란이 일었다.

감독관이 피식 웃더니 박수를 한 번 쳤다.

쩌어엉!!

공기를 찢는 듯한 폭발음.

마력으로 음파를 강화시킨 것이었다. 얼마나 강한지 한순간 공터가 흔들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에 지원자들 사이에 소란이 순식간에 멎고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마지막 3차 시험의 감독관을 맡은 바크롱이라고 한다."

이전 시험들과 다를 것 없이, 바크롱 역시 시간 낭비는 하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시험의 내용을 설명했다.

"3차 시험의 내용은 대인마법전이다. 두 사람씩 나와서 서로 전력을 다해 싸워라. 이상이다."

그 말에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전투 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싸우라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옆에서 찝찝한 얼굴로 서있던 조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3차 시험의 내용은 대인마법전입니다. 평가 기준은 전투에서의 종합적인 마법 활용성이며, 단순히 승패의 여부보다도 대련의 과정을 중점에 두고 점수가 평가될 예정이니 이 점에 유의하길 바랍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 조교수가 넓은 원이 그려진 공터의 중앙을 가리켰다.

"대련의 진행 방식은 간단합니다. 대인마법전이니 만큼 지원자 두 사람씩 원 안으로 들어가 대련을 행하면 됩니다."

"......"

"그리고, 방금 감독관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마법의 사용에 제한은 없습니다."

그에 지원자들 사이에 다시금 소란이 일었다.

마법 사용에 제한이 없으면 그건 목숨이 걸린 실전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보통은 조건을 두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고작 입학 시험에서 제한 없는 대인마법전라니?

조교수가 안심하라는 듯 말을 이었다.

"대련은 각자 실드 마도구를 착용한 채로 안전하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한 대련이 과열될 시에는 감독관님께서 즉시 나서셔 조치를 취할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3서클의 마법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중상품의 마도구라고 한다.

"그리고 마법 사용에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명백한 악의가 느껴지는 살상 마법이나 조롱성 공격 등은 평가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니 주의하십시오."

이어진 세부 설명들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대련의 제한 시간은 10분. 승리 조건은 상대방의 실드를 먼저 타격하는 것.

그리고 제한 시간 내에 승패가 가려지지 않을 시 대련은 그냥 무승부로 끝난다.

또 대련 상대를 정하는 방식은, 먼저 공터의 중앙으로 나선 자가 상대를 지목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결과보다도 대련의 과정에 더 중점을 두고 평가할 예정이니 그 점에 유의하라고 다시 한 번 조교수가 말했다.

"그럼, 서로 예와 최선을 다해 대련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설명을 마친 조교수가 물러섰다. 3차 시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지원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곧바로 나서는 이는 없었다.

"쯧쯧, 이런 패기 없는 놈들을 봤나."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감독관 바크롱이 혀를 찼다.

조교수도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영감님이 연세에 안 맞게 너무 패기가 넘치시는 겁니다.'

조교수 케드는 처음부터 이번 3차 시험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실드 마도구도 있고 바크롱이 직접 지켜보고 있다지만, 실전이나 다를 바 없는 대인마법전.

입학 시험의 내용으로는 썩 적합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루블리온에 입학하고 나면 실전 수업이야 질리도록 하게 되겠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지원자들은 나이도 그렇고, 아직 여러 면에서 경험이 부족한 새싹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먼저 나선 이가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이점을 분명히 설명했음에도 아직까지 아무도 안 나선 모습만 봐도 그러했다.

'하여튼 성격 참 고약하시다니까.'

바크롱은 본래 제국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던 베테랑 전투마법사였다.

하지만 부상의 후유증으로 은퇴한 뒤에 그 실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루블리온의 정교수로 취임한 케이스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교수들에 비해 더욱 자유분방한 편이었고.

본래라면 포스 마법만을 사용하는 포스전으로 진행되었을 3차 시험의 내용을 변경 요청한 것도 그였다.

애초에 아카데미 내에서 바크롱의 입김은 꽤나 센 편에 속하기도 했고, 시험의 정확성이나 효율성 면에서 여러 의견들을 강력 주장하는 등 결국 바꾸는 데엔 성공했지만, 케드만은 그게 전부 핑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야 본심을 직접 들었으니까.

[포스전은 개뿔.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싸워서 볼 맛이나 나겠냐?]

이 전투광 노인네는 그저 즐겁게 싸움 구경을 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서 부상으로 은퇴까지 해놓고 아직도 혈기가 이리 넘치니.

케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로 지원자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지원자들 사이에 누군가 나서서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호오."

바크롱도 흥미롭다는 눈길로 가장 먼저 나선 지원자의 모습을 바라봤다.

줄리엔 뮬레트.

주변의 시선을 일제히 받으며 그녀가 공터의 중앙에 섰다.

레븐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뮬레트의 영애가 제일 먼저 나서네? 그보다 어스문 말고 저 사람을 상대할 지원자가 또 있나?"

지금 이곳에 있는 지원자들 중에 3서클의 경지에 다다른 이는 그녀와 어스문의 카인 말고는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당연히 그녀가 카인을 대련 상대로 지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4번 지원자, 앞서 설명했듯이 원하는 상대를 직접 지목할 수 있습니다."

케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뻗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칼이 서있었다.

< 입학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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