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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4화 (114/132)

< 입학 (1) >

칼날 산맥, 천검성.

"저, 소성주님."

천검성의 상급 무인 레딘은 연무장 한가운데 미동도 않고 서있는 여인을 조심스레 불렀다.

여인의 이름은 아키온 핵서.

천검성의 하나뿐인 후계자이자, 검술에 불세출의 재능을 지닌 천고의 기재였다.

"어떻게 됐어?"

그녀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고 물었다.

레딘이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리다가 대답했다.

"알티우스 학파에 없는 모양입니다."

"뭐? 그게 뭔 소리야?"

"아스티온 지부에서는 본원에서 온 학파원들이라 잘 모르겠다 하더군요. 그래서 본원까지 직접 찾아가니 원로 한 분을 만나뵐 수 있었는데, 그분이 말씀하시길 애초에 학파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서 마찬가지로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아예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거잖아?"

"예,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키온이 기가 막히다는 눈빛을 지었다.

알티우스 지부에 이어 본원까지, 기껏 본성을 벗어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레딘으로선 섭섭한 반응이었으나, 그걸 겉으로 티 낼 수는 없었다.

실망이 번지며 점점 시무룩하게 가라앉는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레딘 또한 당시의 대련을 직접 관전했었기에 알고 있었다. 그녀의 생에 첫 패배를.

압도적인 격 차이로 또래의 알티우스 마법사에게 당했던 완벽한 패배를 말이다.

'이름이 아마 칼이라고 했던가...'

한 번 얼핏 흘려들었을 뿐이지만, 무려 소성주에게 패배를 안겨준 인물의 이름이니 잊을 수가 없었다. 간결하기도 했고.

어쨌든 그날 이후 아키온의 일상은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식사를 제외하고 그녀는 하루 일과를 오로지 수련에만 집중하며 보냈다. 과거의 나태하기 그지없던 모습은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괴물처럼 성장 중이시지.'

근 일 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그녀가 보여준 성장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어마무시한 재능을 이제야 전력을 다해 개화시키고 있는 셈이었으니.

이대로면 십 년 안에는 성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성주께서 직접 언급했다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아키온의 이러한 노력들은 모두 칼을 위한 것이었다. 패배의 설욕을 갚기 위해서.

그런데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다니 그녀로서는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 심정을 짐작했기에 레딘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광산으로 접점도 있고, 혹시나 그가 본원으로 돌아온다면 연락을 전해달라고 부탁드리긴 했습니다."

"그래봤자 언제가 될지 모르는 거잖아."

"...기운 내십시오. 이 광활한 대륙에 그 마법사만큼 뛰어난 기재가 설마 또 없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레딘도 그런 괴물이 또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실망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키온에게 레딘이 이어 말했다.

"알티우스뿐 아니라 3대 학파에 속하는 다른 두 학파도 있습니다. 또 다른 5대 무파들도 있지 않습니까."

"......"

"그, 그리고 제국의 아카데미도 있습니다. 혹시 루블리온 아카데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알티우스도 대단하지만, 거긴 대륙의 온갖 인재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알티우스 본원으로 향하며 제국의 황도를 거쳤던 것이 생각나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다.

"...아카데미?"

그런데 의외로 그녀의 관심이 이끌린 듯 보였다.

아키온이 의문 섞인 눈빛으로 레딘을 보며 물었다.

"그건 또 뭔데?"

바깥세상의 지식에 밝지 않은 아키온은 아카데미의 존재 또한 몰랐다.

"그러니까, 소성주님과 비슷한 나이의 인재들이 모여서 서로 교류도 하며 다양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인데..."

일단 그녀가 관심을 가지자 레딘은 신나서 설명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후회하게 되었다.

비록 나태함은 사라졌으나, 제멋대로에 변덕 심한 성격은 여전한 소성주에게 루블리온의 존재를 언급하고 설명해준 것을.

* * *

루블리온.

몬 대륙을 포함하여 대륙의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또한 그만큼 많은 거인들을 배출해낸,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실상부 전 대륙 최대이자 최고의 아카데미.

시초는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 아세라 제국의 5대 황제인 '반헤일 스타니아'가 황위에 앉아있던 시기였다.

당시 제국은 이미 주변국들의 충성을 모조리 받아내며 룬 대륙의 패자로서의 지위를 견고히 굳힌 지 오래였고, 그에 나라 전체가 타성에 물들어 나태한 기류에 지배당한 채였다. 귀족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파티와 연회를 벌였으며, 스타니아 황가의 황족들 역시 다

를 건 없었다.

그에 제국의 미래와 안녕에 큰 염려를 느낀 스타니아 5세는 대규모 개혁을 실시했는데, 그 계획 중에 포함된 것이 바로 국가의 뛰어난 인재들이 지닌 바 자질을 더욱 우수히 다듬고 빛낼 수 있도록 하자는 교육 기관의 설립이었다.

당대에 여러 스승들이, 그러니까 현 시대에 부르는 명칭으로는 '교수'들이 모여 불특정 다수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국가 기관의 설립은 혁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법이든 검술이든 자그마한 배움이 현재보다도 훨씬 귀한

시대였었으니까.

때문에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스타니아 5세는 끝내 국가의 낡은 관습들을 모조리 뜯어고치고 개혁에 대성공했다. 그중에 가장 큰 성과는 말할 것도 없이 루블리온 아카데미의 설립이었다.

처음에 반대를 부르짖으며 반대했던 수많은 귀족들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카데미 교육 시스템의 뛰어난 효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여러 점진적인 변혁들을 계속해서 거치며 루블리온은 제국의 거대한 중심축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루블리온을 본보기 삼아 아카데미 혹은 그와 비슷한 교육 기관을 설립한 국가들은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루블리온은 그것들과 격을 달리하는 최고의 아카데미였다.

아득한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제국이 대륙의 패자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에는 루블리온 아카데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은 지루한 눈빛으로 테이블 반대편의 사내를 바라봤다.

루블리온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한 건 맞지만 너무 쓸데없는 정보들만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황립 루블리온 아카데미의 기본적인 설립 배경입니다. 더 심층적인 정보를 드리자면..."

"아뇨, 이쯤이면 됐습니다."

더 얘기가 이어지기 전에 칼은 서류 더미들을 정리하는 사내의 말을 끊었다.

"혹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루블리온의 숨겨진 역사 같은 건 없습니까?"

예를 들면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숨겨진 역사라..."

칼의 말에 눈매를 좁힌 채 다시금 서류를 뒤적거린 사내가 몇 가지 정보를 더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칼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저멀리 보이는 루블리온 아카데미로 시선을 옮겼다.

'...답이 없네, 진짜.'

이곳은 황도 포바스에 위치한 정보 길드 헤르란도의 지부. 그리고 눈앞의 사내는 지부장이었다.

제국의 황도에 도착한 지도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현재 칼은 이전에 스칼렛에게서 전해들었던 정보를 기억해 헤르란도의 지부를 방문한 상태였다. 길드의 귀빈임을 증명하는 증명패도 받아두었던 게 있었기에 충돌의 문제는 없었다.

헤르란도를 찾은 이유는 당장 보이는 바와 같았다.

뭐라도 루블리온 아카데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

마지막 차원의 조각에 단서는 이전의 조각들과 같이 친절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조각들도 전혀 친절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번 건 특히 더 불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아세라 제국 - 황립 루블리온 아카데미]

단서랍시고 시스템이 던져준 메시지 한 줄.

이걸로 대체 뭘 어쩌라는 걸까?

하다못해 루블리온 아카데미 어딘가에 차원의 조각이 숨겨져있다고 확실하게 말이라도 해주었다면.

그러면 온갖 욕은 치밀겠지만, 아카데미 전체를 뒤져서라도 어떻게든 조각을 찾아낼 시도를 진작에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어먹을 시스템 놈은 아무것도 확정을 지어주지 않았다.

차원의 조각이 아카데미 내부에 있다는 건지, 아카데미와 관련된 어떤 인물이 가지고 있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일단 루블리온에서부터 시작해 연계된 또 다른 단서를 찾아내라는 건지, 아무것도.

"그런 것도 없습니까? 근래 루블리온 아카데미와 관련해서 발생한 일이라거나."

"음, 특별히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만..."

상황이 이러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나마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헤르란도를 찾아왔지만, 역시 건질 건 없는 듯했다.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칼의 얼굴에 진 그늘을 보고 원하는 정보를 전혀 건네주지 못했다는 건 지부장도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상황이 헤르란도의 잘못은 아니었다. 칼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더 높은 등급의 정보를 원하시면 본부와 접선을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높은 등급의 정보라.

과연 거기서는 뭐라도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애초에 지금 이렇게 정보나 찾아다니고 있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짧은 상념에 잠긴 채 다시금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지상을 술집으로 위장한 지부였기에 2층에서 바깥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었다.

여전히 거리에 넘쳐나는 행인들.

그 풍경을 바라보던 칼은 문득 이상함을 인지했다.

루블리온에 정신에 팔려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리 황도라도 거리가 너무 번잡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거리 이곳저곳에 귀족가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들도 빈번히 눈에 띄었다.

"황성에서 무슨 연회라도 있습니까? 거리가 많이 번잡한 듯 보이는데."

"......?"

그 말에 지부장이 의문 섞인 눈빛으로 칼을 바라봤다.

"아마 입학 시험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예? 입학 시험?"

"아, 모르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바로 오늘부터 시작해서 사흘 뒤까지 루블리온 아카데미의 입학 시험 기간입니다. 귀족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원자들이 모여들었으니 번잡할 수밖에요."

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룬 대륙으로 넘어와 곧바로 황도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어디서 이야기를 흘려들을 새도 없었으니까.

루블리온이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로 칭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제국이 설립한 아카데미이기 때문이 아니다.

마도구로 설비된 수많은 편의 시설들, 제국에서도 명망 높은 엘리트 교수들.

시설이나 교육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국가의 교육 기관들과는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더 존재했다. 바로 능력주의 체계다.

루블리온 아카데미는 신분이 아닌 오로지 재능과 실력만을 보고 신입생을 선발한다.

귀족의 신분이 아닌 평민이라도 얼마든지 루블리온의 입학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초창기에는 루블리온 역시 귀족과 왕족, 지배층들만을 위한 교육 기관이었으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여러 변혁을 거치며 더욱 개방적인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신분과 소속 국가에 구애받지 않고, 걸맞는 자질을 지녔다면 누구나 배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애초에 11대 황제 때부터 능력주의 사상이 국가의 근간에 깊게 뿌리박히게 된 제국에게 있어선 당연한 시스템이었다.

'입학 시험이라...'

칼은 묘한 눈빛으로 재차 거리를 내려다봤다.

머릿속에 과거의 어느 순간이 떠올랐다.

예전에 알티우스 본원을 처음 찾아갔을 때도 때마침 학파 가입 시험 기간이었었지.

"......"

그때 문득 스치는 하나의 생각.

마지막 차원의 조각은 루블리온 아카데미와 무언가 연관이 있다.

그리고 황도에 도착하니 때마침 입학 시험 기간이다.

상당히 절묘한 타이밍. 설마, 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입학하라고? 루블리온에?'

그게 정말 시스템 놈이 의도하는 바인가?

알 수 없다. 타이밍이 절묘한 거야 얼마든지 우연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경매장에서 얻었던 검이 세 번째 차원의 조각에 대한 단서로 이어진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기가 막힌 일들을 생각해보면 마냥 우연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칼은 지부장에게 물었다.

"루블리온의 신입생 선발 주기가 어떻게 됩니까?"

"학년 단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일 년입니다."

마음이 점점 한쪽으로 기울었다.

입학이 정말 정답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당장 다른 실마리는 아무것도 없고, 이번 기회를 잡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일 년 뒤에나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루블리온에 입학하는 건 아무런 리스크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때려칠 수 있을 테니까.

'아, 근데 아무리 그래도 좀...'

칼의 인상이 미약하게 구겨졌다.

몸은 파릇파릇 젊더라도, 이 세계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한다면 칼의 정신연령은 서른이 넘는다.

그리고 알기로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학생들의 나이는 성년 이하가 평균이었다.

시설만 더럽게 크고 시스템이 좀 다를 뿐이지, 지구로 따지면 고등학교나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런데 입학이라고?

당연히 칼에게 있어선 내키지도 않고 어이없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지구로 돌아가자고 참 별 짓을 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고민은 짧고 결정을 신속했다.

칼은 다시 지부장에게 물었다.

"...루블리온의 입학 방식을 좀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입학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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