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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9화 (109/132)

< 결착 (5) >

일격.

단 일격에 결계는 산산히 부서지고 악마는 소멸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히 끝나버린 전투에 모두가 멍하니 칼을 바라봤다.

'...붉은 벼락이라니.'

살라딘은 전율했다.

궁정 마법사장의 직위를 맡고 있는, 마법적 지식은 누구보다 깊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살라딘조차 그런 마법은 들어본 적조차 없었기에.

창공에서 지상까지 이어졌던 거대한 마력의 유동.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응축된 재앙적인 마력.

모두가 집중 공세를 퍼부어도 조금의 타격조차 입히지 못했던 괴물이 단번에 소멸해버렸다.

'대체 어느 쪽이 괴물이었던 건지...'

이미 칼이 성위급에 다다른 마법사라는 거야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새삼 괴물 보듯 바라보는 살라딘이었다.

칼의 존재조차 몰랐던 다른 이들은 훨씬 더 거대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특히 2왕자 파벌의 인물들이.

그들로서는 목숨줄이나 다름없던 존재가 허망하게 죽어버린 셈이었다.

2왕자의 최고 전력이 사라졌으니 반역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

특히 2왕자 카몬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완전히 넋을 잃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라쟈엘라가 소멸한 자리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칼도 머릿속의 알림을 흘리며 깊게 패인 구덩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부에 느껴지는 공허함. 잠깐의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력은 순식간에 반절 아래로 소모된 상태였다.

다크 아머에 더해서, 전력으로 펼친 콜링 썬더에 마력 소모를 3배로 증폭시키는 오버로드까지 더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 오버로드는 기대 이상의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꽤 운이 좋기는 했어.'

만약 라쟈엘라가 이전에 유적에서 만났던 놈처럼 방어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악마였다면.

혹은 회피 능력이나 기동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종류의 악마였다면.

그렇다면 오버로드 마법으로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거나, 아예 공격 자체를 적중시키지 못했을 것이었다. 보편적인 경우에 레벨의 차이는 절대적이니까.

다행히 놈이 기억 속에 정보가 존재하는 악마였고, 그렇기에 환혹 능력은 다크 아머로 곧장 차단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무사히 전력을 이끌어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완벽히 적중시켰다.

상황과 상성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을 확률이 높은 싸움이었다.

칼은 고개를 돌려 데반과 세인피어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저쪽의 전투도 슬슬 끝날 모양이었다.

"...커헉!"

데반의 검격에 가슴팍을 베인 세인피어 공작이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있었다.

같은 성위급의 무인이지만 데반이 세인피어 쪽보다 레벨이 높다.

라쟈엘라의 결계가 사라지며 그가 전력을 되찾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대, 대체 무슨... 내가 어째서...?"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보는 세인피어 공작의 눈엔 극심한 혼란과 당혹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애초에 전투를 더 이어가기도 힘든 상태였던 것이다.

칼은 그 반응으로 짐작했다.

'라쟈엘라에게 환혹된 상태였던 건가?'

아무리 세인피어 공작이 성위급의 무인이라도 라쟈엘라 또한 60레벨대 중반에, 완전의 본신의 힘을 회복한다면 후반에 이르는 상급 악마다.

장기간에 걸쳐 그녀의 능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정신력이 흐트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임에서도 놈과 관련된 스토리 파트에서 환혹 능력에 당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나왔었으니까.

이제야 숨겨져 있던 내막들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2왕자 카몬이 감추고 있던 건 악마였으며, 세인피어 공작이 그를 도왔던 이유는 악마의 능력에 홀려서였던 것이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순순히 제압당하는 세인피어의 모습을 보며,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데반에게 귀띔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상황은 종결되었다.

데반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진심 어린 감사의 경외의 눈빛으로 고개를 꾸벅인 뒤, 주변에 소리쳤다.

"저 반역도들을 제압하라!"

결계가 부서지고 들어온 수호기사들이 데반의 명령에 따라 2왕자와 그의 파벌의 귀족들을 둘러쌌다.

멀쩡한 꼴은 아니었으나 살라딘과 궁정 마법사들 또한 수호기사들을 도왔다.

어차피 그들에게 살아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고, 완전히 항전 의사를 잃은 채였기에 더 이상의 전투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부 끝났군요."

뒤쪽에 선 쥬레인의 말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도착했는지 세피엘도 함께였다.

한쪽에 꼴사납게 주저앉아 수호기사들에게 제압을 당하고 있는 카몬의 모습이 보였다.

칼은 말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쥬레인과 세피엘이 그런 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카몬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수호기사들이 카몬을 이송하려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세웠다.

"형님... 아니, 카몬."

쥬레인의 말에 정신이 나간 듯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카몬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도 그는 지금 반쯤 정상이 아닌 채였다.

그토록 믿었던 악마는 고작 마법 하나에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고, 반역은 허망히 실패해버렸으니까.

멍하니 쥬레인을 바라보던 그가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결국 네가 이겼구나."

"......"

"이제야 전부 알 것 같군. 그간 저 괴물이 곁에서 너를 지키고 서있었던 거였어. 완벽하게 모두를 기만했구나, 쥬레인."

쥬레인도 말없이 그런 카몬을 바라봤다.

묻고 싶은 건 많았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들, 당신 또한 왕가의 일원인데 어찌 이런 미친 짓을 벌일 수 있는 거냐고.

오늘 죄없이 죽어나간 많은 이들에 대한 죄책감은 없느냐고.

하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고,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만 하는 물음은 따로 있었다.

"카이루스 형님은 당신이 죽였나?"

그 진실 하나만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고 생각보다도 훨씬 담담하게 나왔다.

쥬레인을 빤히 바라보던 카몬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래."

촤앙!

세피엘이 검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검날이 반쯤 뽑혀나왔다.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어느새 붉게 충혈된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듯했다.

1왕자 카이루스는 쥬레인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었다.

마지막에 다다라서 끝내 대답을 듣자 그간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검을 끝까지 뽑아 카몬의 목을 베지 못한 건, 쥬레인이 팔을 내밀어 저지했기 때문이었다.

쥬레인이 차갑게 카몬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하나씩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아직 놈에게선 자백을 받아내야 할 것들이 더 있었다.

그 과정에서 좀 더 고통에 몸부림치게 둘 것이다. 처단은 끝에 가서 행해도 늦지 않았다.

"......"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것으로 전부 끝이었다.

슬슬 마르하겔 왕성을 떠날 때가 왔다.

* * *

2왕자의 반역.

그 충격적이고도 참담한 사건이 있은 후로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왕성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2왕자 카몬을 포함하여 현장에 있었던 그 파벌의 인물들은 중죄인으로서 모조리 구속되었고, 현장에 없었더라도 2왕자의 파벌에 속했던 이들 역시 피가 말리는 조사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마르하겔의 긴 역사에도 없었던, 왕가의 요인들과 백작급 이상의 가수들이 수십 가까이 죽은 대참사였으니까.

주도자인 2왕자, 이제는 폐왕자가 된 카몬은 특히 삼엄한 경계 속에 조사관과 수호기사들에게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았다.

1왕자 카이루스 암살과 세인피어 공작에 대한 것,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내막들에 대해선 전부 자백을 뱉어낸 그였으나, 반역의 현장에서 소환했던 정체 모를 괴물에 대해서는 온갖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조차 내뱉지 않았다.

데반도 칼에게 들은 것이 있기에 괴물의 정체가 악마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몬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니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또 어떻게 악마와 관계를 맺고 그 힘을 빌릴 수 있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렇게 반역과 관련된 죄인들을 처리하는 한편, 왕성 내에서 점점 불거지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왕위의 계승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 왕위는 5왕자 쥬레인이 계승하게 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큰 경쟁자였던 2왕자 카몬은 반역을 일으키며 스스로 자폭했고, 카몬처럼 폐위되진 않았으나 3왕자 카이번 역시 왕성 테러 건과 관련하여 구속된 채 조사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1왕녀인 클로아는 이미 경쟁을 포기하고 쥬레인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4왕자나 2왕녀 쪽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2왕자를 직접 제압한 정체 모를 마법사가 5왕자의 세력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논란은 완전한 종점을 찍었다.

핏빛처럼 붉은 낙뢰.

당시의 광경은 직접 지켜봤던 이들의 머릿속에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각인되었고, 왕성의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마법을 보여준 칼을 '혈뢰의 마법사'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렇게 다음 왕위는 5왕자 쥬레인이 계승하는 것으로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왕가의 원로들을 포함하여 평소 쥬레인과 척을 졌던 세력들은 얌전히 쭈그러져서 눈치를 보기만 바빴다.

건국조의 심공을 이은 최초의 왕족, 그리고 그 곁에 있는 당대 마르하겔 최초의 성위마법사까지.

비록 왕성 테러에 연달아 일어난 반역으로 입은 피해는 막심했지만, 사람들은 쥬레인이 왕좌에 앉게 되는 날 마르하겔이 역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똑똑.

"5왕자 전하, 카블라드입니다."

몇 번을 노크해도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부단장 카블라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 안의 기척을 살펴도 느껴지는 기척이 없었다.

철컥.

그에 카블라드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그리고 곧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나서신 건가 주변의 하인들에게 물어도 쥬레인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당연히 왕성은 뒤집어졌고, 수호기사단을 포함한 왕실 소속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모조리 나서 왕성 전체와, 성벽 바깥 일대를 모조리 뒤졌다. 그럼에도 쥬레인의 행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대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그날, 5왕자 쥬레인은 느닷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의 곁에 머물던 혈뢰의 마법사와 호위기사 한 명도 함께.

* * *

"이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자유도시 램바텔의 입로.

칼은 말에 오른 채 쥬레인과 세피엘,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후회는 없습니까?"

왕성에 남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방법은 있었을 것이었다.

어차피 경쟁자가 전부 사라진 마당에 왕위를 이을 사람은 쥬레인뿐이었고, 왕좌에 앉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칼도 곁을 지키고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

국왕이 되어 완전히 권력을 잡은 뒤라면, 본판의 창염환이나 이쪽의 존재도 어쩌다가 잃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비록 주변의 실망이 어마무시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쥬레인은 결국 왕성을 빠져나오는 것을 택했다.

배다른 형제들을 제외하면 이제 남은 혈육도 없고, 친척들이라고는 권력에 빠진 얼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 모두가 카이루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자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만을 바랐으니, 마르하겔 왕가에 남아있는 정이나 책임감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쥬레인은 그만 해방을 원했다.

욕망에 찌든 견제와 암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다음 왕위는 아마 1왕녀가 잇게 되겠죠. 그저 누님이 왕국을 잘 다스리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칼은 빤히 쥬레인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2왕자... 아니, 카몬은 결국 죽이지 않고 끝낼 생각입니까?"

카몬은 현재 왕궁의 지하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였다.

반역에 대한 죗값으로 사지의 힘줄이 잘리고 단전의 심공이 폐해진 채로.

그것만으로 이미 복구 불가능한 폐인의 꼴이긴 했지만, 쥬레인이 죽이고자 했다면 그대로 처형시킬 수도 있었다.

쥬레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좀 더 그가 고통받길 원하니까요."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쥬레인의 선택이고, 그에 대해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저도 이만 떠나겠습니다."

칼은 망설임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쥬레인과 세피엘, 두 사람의 남은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공!"

그러다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감사와 아쉬움, 두 사람이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께서 베푸신 은혜는 평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

"그러니 이름을... 부디 마지막으로 진짜 이름을 알려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칼은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칼."

그리고 재차 말머리를 돌렸다.

다시 먼 여정을 떠날 시간이었다.

아세라 제국으로.

그 중심에 위치한 황도 포바스, 루블리온 아카데미로.

< 결착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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