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3화 (103/132)

< 건국조의 검 (8) >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척.

허공을 비행하며 도주하는 저격수를 뒤쫓던 칼은 이내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성위급은 아니고 그 바로 밑이군.'

한데도 이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아까와 같은 공격을 날렸단 말인가?

확실히 저격 기술 하나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무인의 오러 심공도 마법사의 서클링처럼 그 종류가 다양하다.

흔한 존재는 아니지만,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투창사야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네임드 NPC 격으로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쐐애액!

도망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다시 한 번 창이 날아들었다.

중심이라도 흐트러뜨려 보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공격.

그러나 그조차도 통할 일은 없었다.

창은 가볍게 실드에 막혔고, 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계속해서 놈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 두 번째 창이 날아들었다.

굳이 회피할 것도 없이 실드를 계속 유지한 칼은 미간을 좁혔다.

방금 전의 것과는 다르게 창에서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퍼엉!!

부딪힌 창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실드를 연속 강타했다.

칼은 잠시 공중에서 멈춰섰다.

지상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비행을 할 때는 매직 부스터와 포스, 더해 가속까지 기본적으로 세 가지 마법을 유지하는 상태다.

아무리 칼이라도 지금과 같은 공격이 날아들면 아예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다. 마력을 제어하고 몸의 중심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돈지랄도 아니고, 이런 마도구를...'

그러고 보니 아까 간부들과의 전투 중에 날렸던 창도 보통의 창은 아니었었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란헬에는 돈이 썩어나나?

물론 대륙 최악의 테러 단체이니만큼 자금이야 어마무시하겠지만, 이런 식의 일회성 마도구는 웬만한 규모의 마법 학파에서도 잘 제작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위력을 보니 적어도 상급에 속하는 마석을 사용한 것 같은데.

잠깐 주춤한 사이 놈은 또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저격뿐만 아니라 기동성 면에서도 제법 수준이 높은지 운신의 속도가 상당하긴 했다.

칼은 혀를 차며 재차 비행을 이어갔다.

마도구가 의외이긴 했지만 어차피 별 문제는 없었다. 아무리 많아봐야 몇 개 더 있는 것이 고작일 테니까.

슈와아악...!!

다음으로 날아든 창은 칼을 노리지 않고 더 높은 하늘 위로 쏘아졌다.

그리고 곧 수십 갈래로 갈라지더니 마력을 싣고 폭우처럼 쏟아져내렸다.

'별 마도구가 다 있군.'

분할된 만큼 폭발창보다는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나 거슬림은 더했다.

창들이 낙하하며 실드에 내리치는 와중 정면에서 가공할 속도로 다른 창이 날아들었다.

가속에 관통 마법이 더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까의 전투에서 날렸던 그 창이었다.

콰아앙!!

물론 그렇다고 해도 칼의 실드를 뚫어낼 수는 없었다.

아까야 게록의 공격에 실드가 약화된 상태에서 곧장 공격이 날아들었기에 박살났던 것뿐이니까.

애초에 저격수와 칼 사이에는 근본적인 격의 차이가 존재했다.

원체 멀리 떨어진 거리였기에 지금도 간신히 잡히지 않고 도주를 이어가고는 있었지만, 달밤의 추격도 이제 곧 끝이었다.

마도구를 사용하든 뭔 짓을 하든, 저격수가 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마도구조차도 전부 떨어진 듯 싶었다.

더 이상 날아들지 않는 창에 둘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잡았다.'

여전히 먼 거리이긴 했으나 충분한 피격 범위 내였다.

칼은 곧장 마법을 펼쳤다. 시퍼런 전격이 저격수를 뒤쫓으며 맹렬히 몰아쳤다.

놈은 간신히 방향을 비틀어 목숨을 부지했으나 이어진 마법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콰드득!!

지면에서 융기하는 가시에 다리와 팔을 꿰뚫려 꼼짝없이 속박된 저격수.

칼은 서서히 속도를 낮추어 놈의 앞에 내려섰다.

[Lv.58]

[아란헬의 최정예 전투원]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낯짝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확인할 생각도 없긴 했지만.

다만, 복면 틈 사이로 드러난 두 눈만이 독기를 가득 담은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참 멀리까지도 도망 왔네."

칼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놈의 눈빛이 한층 더 표독스럽게 변하더니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뿌드득, 가시에 꿰뚫린 팔과 다리조차 힘으로 뜯어버리고 죽일 기세로 돌진해왔다.

물론 만전의 상태로도 어림도 없을 기습이 팔과 다리가 한 짝씩 뜯긴 채로 통할 리가 없었다.

발악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형편없는 공격.

퍼엉!

충격파에 맞고 날아간 놈의 몸이 바닥에 튕기며 나뒹굴었다.

도로 포스로 끌어오려던 칼은 인상을 찌푸렸다.

죽을 정도로 타격하진 않았는데, 놈의 생명 반응이 갑작스레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뭐야, 저건."

손을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끊어진 목숨.

칼은 황당한 얼굴로 난데없이 죽어버린 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복면을 벗기고 상태를 살폈다.

안면에서 풍기는 독한 악취에 포스로 입을 벌리고 안쪽을 살피니, 혀가 보랏빛으로 창백하게 물들어있었다.

'...독인가?'

아무래도 입 안쪽에 독단 같은 걸 숨기고 있다가 깨물어 삼킨 모양이었다.

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입에 숨겨둔 독단이라니, 지구에서 읽었던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게 아닌가?

지금껏 음지의 쓰레기들이야 제법 많이 상대해왔지만,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자결을 대비해둔 놈을 마주한 건 실제로는 처음이었다. 대륙 최악의 범죄 조직이라는 악명에 어울리는 짓거리이긴 했다.

'뭐,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지만...'

한 번에 놈을 죽이지 않았던 건 생포해야 할까 어쩔까 잠깐 고민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캐낼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캐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놈의 태도를 보니 어차피 뭘 알아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왕성으로 끌고 가서 왕실에 넘기기에는 이쪽의 입장이 곤란해질 뿐이고.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당에야 딱히 아쉬울 건 없었다.

무엇보다 칼이 현재 궁금한 건 하나뿐이었다.

아란헬이 마르하겔의 왕위 전쟁에 간섭한 목적에도 별 관심은 없었다.

왕성을 뒤집어버리거나, 아니면 수면 아래에서 서서히 지배하려고 했거나, 기껏해야 그따위 것들이겠지.

단지, 이들의 배후에 누가 있냐는 것.

어떤 미친놈이 이 테러리스트 놈들을 왕성으로 끌어들였냐는 것.

그건 이들에게서 자백을 받아내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었다.

흑마법을 활용해도 되고, 리딩 어스 메모리를 활용해도 된다.

물론 굳이 불안전한 흑마법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기에 후자의 방법을 통해 배후를 캐낼 생각이었다.

'알아보는 건 나중에 하고.'

칼은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꽤 한참 동안 이어진 추격이었기에 왕성은 저멀리 떨어져서 점처럼 보였다.

감지 마법을 펼쳐도 특별히 이곳을 향해 접근해오는 기척은 없었다.

데반이 혹시나 이쪽을 뒤쫓아올까 염려했었는데, 다행히도 쥬레인의 신변과 수호기사들의 구출을 우선시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일이 정리된 후에 데반 역시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당장은 마주해봐야 서로만 곤란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서긴 했는데, 이제 앞으로가 문제였다.

1왕녀 측과 수호기사단의 부단장 카블라드에게 정체를 드러냈으니까.

"......"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큰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부단장이야 쥬레인의 편이니 그렇다 치고 1왕녀도 아마 얌전히 입을 다물 테니 말이다.

그녀가 오늘 은밀히 궁전에 방문해온 것도 전부 쥬레인과 원만한 관계를 다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5왕자 쪽에 데반을 포함한 수호기사들뿐 아니라 어마무시한 전력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으니, 오히려 더욱 저자세로 나올 확률이 컸다.

설마 이 비밀을 무기 삼아 이득을 취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리 멍청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으니.

애초에 모두에게 진실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칼이 거리낄 건 없었다.

어차피 벌일 만큼 크게 벌인 판.

일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행보 또한 그에 맞추면 그만이었으니까.

화르륵!

생각을 정리한 칼은 저격수의 시체를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그리고 재차 하늘 높이 날아올라 왕성이 있는 쪽을 내려다봤다.

한밤중에 갖가지 불빛들로 밝아진 왕성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봐도 한눈에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런 대전투를 벌였으니 지금도 실시간으로 한창 소란과 혼란이 번지고 있을 터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칼은 생각했다.

광명전도 완전히 폐허가 다 됐는데 앞으로는 어디서 생활을 해야 하나, 하고.

* * *

혼란이 있고 며칠이 흘렀다.

5왕자와 1왕녀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암습을 당한 것도 모자라, 수호기사들조차 중상을 입고 일부는 사망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왕성의 모두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왕실 측에서는 사건의 내막을 밝히고, 혹시 남아있을 지도 모르는 잔당들을 척살하기 위해 비상령을 선포했다.

떨어진 왕가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이 뭐라도 해야 했던 것이다.

수호기사들의 죽음과 5왕자가 당한 습격에 격노한 데반 또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완전히 전면에 나섰다.

1왕녀의 세력인 궁정 마법사들 또한 분노하며 습격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왕실의 조사관들에게 적극 협력하고 나섰다.

조금이라도 일에 연관되었다 추측되는 자가 있으면 직위가 어떻게 되든 곧바로 조사관들에게 끌러가 심문을 당했다.

그렇게 왕성 전체의 분위기가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한편이었다.

"3왕자가 배후입니다."

칼의 말에 쥬레인과 세피엘이 눈을 크게 떴다.

어차피 이번 일의 배후는 2왕자와 3왕자, 둘 중 하나라는 건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놀라운 부분은 고작 며칠 만에 칼이 배후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것이었다.

사실 칼에게는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대 마법, 리딩 어스 메모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자취까지도 완벽하게 읽어낸다.

며칠간 왕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란헬의 두 간부의 자취를 밝히는 건 조금 번거롭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취가 가장 최근에는 3왕자가 머무는 금천전과 모조리 이어져있었다는 것까지도.

"데반 경에게 사실을 밝히실 생각입니까?"

배후의 정체를 밝힐 거라면 그건 왕실이 아니라, 아군에 서있는 데반에게 밝혀야 할 것이었다.

"그건 전하께서 정하십시오. 제가 개인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으니."

칼의 말에 쥬레인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각오가 선 듯한 표정이었다.

"그보다도 1왕녀 쪽에선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군요."

"누님도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할 테니 말입니다."

왕성 내에서 암습을 당한 것도 모자라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을 목격했으니 말이다.

칼의 존재에 대해서는 습격을 당했던 당일에 쥬레인이 1왕녀에게 침묵할 것을 경고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괴한들을 제압한 건 마법사장 살라딘과 수호기사단의 부단장 카블라드의 활약으로 포장되었다.

애초에 당시의 왕성은 혼돈 그 자체였고, 칼과 간부들의 전투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도 없었다.

진실을 아는 1왕녀가 입을 다문 이상에야 전투의 칼의 정체가 밝혀질 일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1왕녀와도 나중에 다시 한 번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긴 해야겠으나, 당장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당장은 3왕자에 대한 처리가 최우선 문제였다.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더 나눈 뒤, 칼은 건물 밖으로 나섰다.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황량한 광명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현재 쥬레인을 비롯한 이들은 간신히 멀쩡한 외곽의 건물들에서 적당히 머물고 있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생활을 해야 할 것이었다.

쥬레인의 인근을 호위하던 수호기사들 또한 아무도 없었다.

중상을 입은 이들은 회복 중이고, 아닌 이들은 습격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바빴기 때문이다.

데반과 카블라드도 이제 칼의 존재를 알았기에 쥬레인의 신변 보호에 자신들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제대로 된 이야기는 후에 그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나누면 될 터였다.

"진짜 개판이네."

쩍쩍 갈라진 지면 위를 걸으며 칼은 광명전 내부를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상념이 떠오르던 중 문득 아란헬의 노인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걸 안 물어봤었네.'

경매장에서 빼앗았던 검.

지금은 인벤토리에서 썩고 있는 정체를 모르는 검.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차피 물어봤어도 순순히 대답해줄 리는 없었지만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가 죽은 이상에야 이제 검의 정체를 알아낼 방법은 없었으니까.

"......"

칼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어떤 연결고리도 없지만 순간 굉장히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엔, 지금껏 시스템에게 묘하게 유도당한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것 역시도 빌어먹을 시스템 놈이 경매장 때부터 의도하여 퍼즐처럼 맞춰지게 짠 흐름이라면?

"......"

칼은 주변에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무너진 건물 잔해 뒤로 걸음을 옮겼다.

인벤토리에서 녹슨 검을 꺼내들고 미간을 좁힌 채 노려봤다.

- 창염환으로 겉면을 불태우면, 검의 본신이 드러날 거다.

정체 모를 지구인의 편지에 써있던 내용.

화르륵!

잠시 망설이던 칼은 이내 창염환을 일으켰다.

주홍의 불꽃이 검신을 뒤덮으며 넘실거렸다.

"......!!"

그리고 곧 이어진 비상식적인 광경에 칼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불꽃이 검날의 녹을 순식간에 불태우더니 눈부신 은색의 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건국조의 검 (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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