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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2화 (102/132)

< 건국조의 검 (7) >

회피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거리.

순식간에 전신을 덮쳐오는 압도적인 에너지에 헤릴드와 게록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방어뿐이었다. 물론 그것조차도 차악에 가까웠지만.

퍼어어엉!!

공성용 대 마력탄이라도 맞은 듯, 가공할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튕겨나갔다.

칼은 곧장 몸의 중심을 바로잡으며 마법을 거두었다.

'마력 소모가 엄청나군.'

이전에 시험해본 적이 있으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아주 잠깐만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전 시간에 비해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소모되었다.

다크 아머, 모든 피해를 완벽히 막아내고 반사하는 절대 방어의 비전 마법.

그 경이로운 효과만큼 마력적인 부분에서의 리스크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투를 마저 마무리 지을 만큼의 마력은 충분히 남아있었다.

허공에 선혈을 흩뿌리며 날아가는 헤릴드와 게록을 향해 칼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또다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빛살처럼 날아드는 한 자루의 창.

쩌엉!!

맥없이 칼의 실드에 막혀 산산조각 분쇄되었다.

방금 전에는 전투에 신경이 팔려 눈치채지 못했을 뿐, 저격수의 존재를 완전히 인지한 지금이야 통하지 않는 공격이었다.

'넌 바로 다음이니 기다리고 있어라.'

번쩍!!

백색의 광선이 헤릴드와 게록을 향해 각각 뻗어나갔다.

속절없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게록은 간신히 몸을 비틀어 전격을 피했다. 헤릴드 또한 안개를 압축하여 방어막을 펼쳤다.

그러나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방어나 회피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허공에서 중심을 잃은 두 사람의 몸이 각각 지면과 무너진 건물 더미에 처박혔다.

"커흑...!!"

반쯤 시커멓게 탄 몸으로 피를 토해낸 헤릴드가 필사적으로 안개를 제어했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곧장 반격하지 못한다면 이어지는 연격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길쭉한 형태로 압축된 안개가 몇 갈래로 갈라지더니 칼을 향해 채찍처럼 휘며 몰아쳤다.

터터텅!!

실드에 모조리 막히고 부서지며 흩어지는 안개 채찍.

칼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고 공세를 펼쳤다.

둘 모두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상태다. 이렇게 완벽하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파이어 혼】

콰아아앙!!!

헤릴드가 깔려있던 건물 더미에 드릴 형태의 거대한 불덩이가 운석처럼 낙하했다.

전투를 지속하며 눈치챈 사실인데 놈의 안개는 다른 속성들보다도 불꽃에 더 약했다.

일단 주변을 뒤덮은 안개부터 완전히 제거한 뒤에 결정타를 날릴 생각이었다.

쐐애액!!

물론 그것을 게록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게록이 있는 쪽에서 오러가 씌인 단검들이 마구잡이로 빗발쳤다. 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무리해서 펼친, 그저 발악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다른 한쪽이 당하면 나머지 한쪽도 순식간에 당할 거라는 걸 두 사람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미 몸 안의 오러가 역류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릴드와 게록은 사력을 다해 양측에서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전부 부질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승부는 반사된 충격에 두 사람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때부터 이미 결정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끝내 화염은 안개를 모조리 불태워버렸고, 헤릴드는 모든 방어 수단을 잃고서 칼의 마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게록 또한 오러가 역류하며 이미 한계나 마찬가지였다.

칼은 전투를 마무리 지을 마지막 마법을 캐스팅했다.

【콜링 썬더】

꽈릉!!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두 줄기의 벽력.

밤의 어둠이 걷히며 일대가 한순간 대낮처럼 환하게 변했다.

굳이 결과를 확인할 것도 없이, 칼은 이것으로 끝났음을 확신했다.

슈우우...

흙먼지와 안개가 걷히며 완전히 폐허가 된 궁전의 풍경이 드러났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는 땅이 붉게 녹아내린 채 깊은 구덩이가 패여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보이는, 형체조차 남지 않은 시커먼 잿덩이.

잿덩이의 정체는 바로 헤릴드였다.

안개로도 끝내 마지막 일격은 막아내지 못하고 즉사해버린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성위급 초인이라 한들 6서클의 마법사가 펼치는, 그것도 아르자크류 서클링의 효과로 위력이 배로 증폭된 전격 마법을 정상도 아닌 상태로 막아낼 수는 없었으니까.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레벨업 알림.

저번에 스테믹 군도에서 학살했던 거미 군단의 경험치까지 합쳐진 것일 터였다.

메시지를 확인한 칼은 다른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노인네는...'

게록 쪽에서는 아직 생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헤릴드와 달리 벼락을 맞고서도 끝내 살아남은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했다.

"끄으윽..."

벼락이 꽂힌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

그곳에 게록이 무릎을 꿇고서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공격을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한쪽 팔이 빈 채였다. 잘린 절단면은 타들어가 피조차 흘러나오고 있지 않았다.

후웅.

칼은 몸을 날려 게록의 앞에 내려섰다.

고개를 떨구고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던 게록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생기 흐릿한 공허한 눈이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쿨럭!"

힘겹게 칼을 올려다보던 게록이 다시 한 웅큼 피를 토해냈다.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쩌다 이런 파국을 맞이하게 된 건지.

설마 몬 대륙에서 이런 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간부 두 명이다.

대륙 제일의 악명을 자랑하는 아란헬의 최고 간부 둘이었다.

어지간한 소국조차 상대할 수가 있는 전력으로, 고작 정체도 모르는 마법사 하나에게 패배한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마법을..."

마지막의 그 마법만 아니었더라도 지금쯤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쪽은 정반대였을 터였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엇갈려버린 생사.

본래 서로 죽고 죽이는 사투가 그런 법이니 게록은 그것에 대해서 허탈함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상대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칼이 게록을 빤히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합니까? 내가 대체 누구인지?"

"......"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린 이미 앞서 두 번이나 마주쳤었는데 말입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네놈의 얼굴 따윈 전혀 기억에 없..."

"숲, 그리고 경매장."

칼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이래도 정말 기억이 안 납니까?"

순간 게록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칼이 내뱉은 말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설마, 라는 생각이 스쳤다.

"...알티우스 학파의 애송이?"

돌아오는 대답에 부정은 없었다.

"그러게 기회가 있을 때 내 숨통을 제대로 끊어놓지 그랬습니까."

게록이 넋을 잃고 칼의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히 기억과는 다른 얼굴이다.

무엇보다 일 년도 안된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5서클에 불과했던 애송이가, 대체 어떻게 성위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허... 허허...."

게록의 입에서 핏물과 함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생각을 그만뒀다. 피를 너무 흘려서 그런지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흐릿해지는 의식. 죽음이 가깝다.

생명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게록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이걸 진작 사용했었다면...'

저격수의 도움을 받아 칼의 바로 지척까지 접근하여 공격을 날렸을 때.

그때 이걸 함께 사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싶었다. 더 이상 제작하기도 힘든 귀중한 독이라 사용을 망설였던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는 늦은 일이었다.

마지막 목숨이 다하기 전, 놈이 바로 눈앞에 있는 지금이라도 사용하는 수밖에.

순간 게록이 착용하고 있던 팔찌가 터졌다.

퍼엉...!!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자욱한 녹빛의 연기.

칼은 그 연기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펼친 실드조차 연기가 닿자마자 순식간에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산마극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시지.

산마독이라면 기억에 있는 독이었다.

이전에 숲에서 게록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사용했던 독이었으니까.

다만, 지금의 것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독성이 엄청난 모양이었다. 실드가 순식간에 녹아버리다니.

'...이런 걸 숨기고 있었나?'

칼은 너무 방심했음을 깨달았다.

노인이 끼고 있던 팔찌는 마력으로 작동하는 마도구가 아니라서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다 죽어가는 상태라지만 아란헬의 간부, 위협적인 적을 두고 과하게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화르륵!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엔 그 방심의 대가가 죽음으로 이어질 일은 없었다.

독에 대한 절대적인 내성을 지니고 있는 창염환의 마력.

단전의 창염환 서클이 맹렬히 회전하며 몸 내부에 침입한 독성을 불태우고, 이어 주변의 연기까지 모조리 태워버렸다.

터엉!!

전신을 뒤덮어오는 불꽃에도 개의치 않고, 마지막 생명을 불살라 돌진해오던 게록의 검격은 순식간에 재생된 실드에 막혀버렸다.

게록의 눈에 허망과 허탈함이 스쳤다.

화아아악!!

이어 몰아친 주홍의 화염에 휩싸인 게록은 끝내 최후를 맞이했다.

불꽃이 꺼지고 사라진 자리에는 한 줌의 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후우..."

칼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들고 거의 바닥이 난 마력을 회복했다.

두 간부와의 전투는 끝났지만, 해야 될 일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넓게 감지 마법을 펼치자 광명전을 둘러싸고 사방으로 몰려든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지원을 왔으나 감히 전투에 끼어들 생각은 못하고 멀리서만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궁전 내부에는...'

이어 칼은 폐허가 된 궁전 내부를 감지 마법으로 샅샅이 훑으며 다른 사람이 있나 확인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확인이야 다 했지만 혹시나 휘말릴 사람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다른 기사나 하인들의 숙소는 쥬레인이 머무는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럴 때는 광명전에 머무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쥬레인의 인근을 직접 지키고 있던 수호기사들은 모조리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채였다.

전투 중에도 최대한 휩쓸리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광명전을 빠져나가 왕성 전체를 개판으로 만들며 싸웠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앞서 게록과 헤릴드의 습격에 죽은 이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기척들도 느껴졌다.

당장 그들을 일일이 구출하고 치료할 건 칼이 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멀리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제야 수호기사장 데반이 도착한 것이었다.

'이곳 뒷정리는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고.'

칼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한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래도 흐릿했던 존재감이 점점 멀어지며 꺼지기 직전이었다.

전투를 방해했던 아란헬의 저격수.

놈은 헤릴드가 죽었을 때 망설이는 듯 싶더니, 게록이 죽었을 때 그제서야 결국 도주를 선택했다.

어차피 감지 영역 밖으로 벗어나더라도 추척할 방도야 얼마든지 있었다.

놈을 잡아 죽이는 것으로 뒤처리는 모두 끝이었다.

후우욱!!

하늘 높이 떠오른 칼의 몸이 왕성의 바깥쪽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날아갔다.

< 건국조의 검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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