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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2화 (82/132)

< 입성 >

칼은 뒤바뀐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움직여봤다.

무척이나 이질적인 감각.

육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바뀌었으니, 이질감이 없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

사실 칼로서는 처음이 아닌 두 번째 겪는 일이라 아주 낯설지도 않았다.

처음 이 게임에 빙의했을 때도 완전히 새로운 몸에 한동안 적응해야 했었으니까.

아무튼 새로운 몸에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 싶었다.

내부의 마력은 계속해서 조금씩 소모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폴리모프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되는 모양이었다.

'별 문제는 없겠군.'

하지만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빠르니 변신 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듯 싶었다.

상태 체크를 모두 마친 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쥬레인과 세피엘, 두 사람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넋을 놓은 표정이었다.

"...공께서는."

세피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쥬레인이 겨우 입을 열고서 더듬더듬 물었다.

"공께서는... 혹시 드래곤이신 겁니까?"

너무나 진지한 목소리였기에 칼은 순간 웃음이 터뜨릴 뻔했다.

드래곤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세간을 나다니며 유희를 즐긴다는 건 실제인지도 모르는 전설 속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긴 했다.

칼이 방금 보인 건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범주의 능력이었으니까.

현 시대의 마법 중에 이렇게 외모를 완전히 뒤바꾸는 마법은 모든 학파의 비전들을 다 뒤져도 없을 것이었다.

"난 인간입니다."

그렇게 말을 해도 두 사람은 여전히 의심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떻게 오해하든 알 바는 아니었기에 칼도 더 이상 말하진 않았다.

"아무튼 이러면 별 문제는 없지 않겠습니까?"

"예, 예... 들킬 일만 없다면야..."

"들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르하겔의 왕성에 대마법사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월등히 격이 높은 대상이 아니면 폴리모프를 인지할 수 없다고 했으니, 들킬 일은 없을 것이었다.

"우선 치료나 마저 합시다."

칼은 다시 치유 마법을 펼쳐 두 사람을 치료했다.

이윽고 큰 부담 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부상이 치유되었다.

"한데 이것들은 살려두는 편이 더 나았지 않습니까?"

칼이 주변의 시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쥬레인의 말에 전부 죽이긴 했다만, 제압만 하고 목숨을 붙여놨으면 쓸모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예를 들면 왕성으로 데려가 자백을 이끌어내 이번 암습의 흉수인 왕자나 왕녀를 곤란하게 한다든가 말이다.

"아주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해봤자 저에게만 역풍이 몰아칠 겁니다. 그게 지금 제 처지입니다."

아무런 힘도 세력도 없는 허울뿐인 왕자.

쥬레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4왕자가 보낸 암살자들일 겁니다.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어릴 때부터 유독 저를 미워했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음지 길드에 이곳저곳 연결 고리를 두고 있는 듯하던데... 이 자들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다른 쪽에서 암살자를 보냈다면 훨씬 더 위협적이었을 겁니다."

훨씬 더 위협적이라.

칼은 고개를 돌렸다.

암습과 동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다가, 칼에게 들켜 죽음을 맞이한 세 괴한이 있는 쪽이었다.

세 괴한의 수준은 쥬레인을 직접 공격하던 괴한들보다 훨씬 높기는 했다. 칼에게야 다 거기서 거기긴 했지만.

'저쪽의 세명은 4왕자가 아닌 다른 형제들 쪽에서 보냈다는 건가?'

저쪽도 똑같이 4왕자가 보낸 거면 굳이 떨어져서 몰래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었지 않은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칼은 그만 관심을 껐다.

"그런데 현재 왕위 싸움이 2, 3왕자와 1왕녀의 삼파전이라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4왕자나 다른 왕녀는?"

"4왕자는 능력이 부족해 처음부터 3왕자를 지지하고 나섰었고, 2왕녀는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나이입니다."

한마디로 4왕자는 3왕자의 라인이고, 2왕녀는 너무 어려서 다툼에 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쥬레인과 세피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다시 이동해야겠습니다."

암습 때문에 초입부터 멈춰졌지만 아직 정상부까지는 먼 길이 남았다.

정상 봉우리에 올라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수호기사에게 검을 받는 것. 왕가 의식의 중간 과정.

그것이 쥬레인이 이곳 용각산맥까지 온 이유였다.

괴한들의 시체을 처리하고, 세이온의 시체는 정성스레 묻어준 뒤.

다시 정상을 향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 * *

산맥의 등로는 오를수록 점점 험악해졌다.

칼이 마법으로 날아서 가게 해주겠다고 해도 쥬레인은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오르는 것을 고집했다.

그렇게 몇 번의 밤낮이 더 바뀌고 난 후에야 마침내 도달한 정상.

"저기 보이는군요."

칼의 말대로 서서히 멀리서부터 한 인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거대한 바위 앞에 석상처럼 굳은 듯 서있는 기사.

왕실의 호위기사였다.

쥬레인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발을 내딛어 기사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기사의 표정이 선명히 보였다.

그는 어딘가 묘한 눈빛으로 쥬레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외, 놀라움, 그리고 자그마한 연민.

이내 말없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고는 하늘을 향해 곧게 세워든다.

쥬리엘 역시 별다른 말없이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칼과 세피엘은 조금 떨어진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기사가 어떤 구절을 읊으며 의식을 진행하는 듯 싶었다. 어딘가 엄숙히 느껴지는 광경.

이윽고 짧은 의식이 끝난 뒤, 기사가 검을 내리고 쥬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르릉.

기사에게 검을 건네받은 쥬레인은 미리 준비해온 검집에 검을 갈무리했다.

간결한 묵례를 한 뒤 망설임 없이 돌아서려는데, 기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차라리 몸을 숨기십시오, 왕자 전하."

쥬레인이 멈칫했다.

"왕성으로 돌아가 의식을 끝마쳐봐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돌아가지 마십시오. 국경을 넘어가 죽은 듯 어디에라도 몸을 숨기십시오."

다시 고개를 돌려 기사를 바라봤다.

무덤덤한 눈빛 속에 일련의 감정들이 엿보였다. 그는 진심으로 쥬레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쥬레인도 입을 열었다.

"주제 넘는 말입니다, 체폰 경."

"......"

"후에 제 앞길을 막지나 마십시오. 경이 부왕께 진정으로 충성을 바쳤었다면 말입니다."

"...결코 이기지 못할 싸움입니다. 끝내는 비참하게 죽고 말 거란 말입니다."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기사를 보며, 쥬레인은 힐끔 옆쪽으로 곁눈질을 했다.

세이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칼의 모습이 보였다.

쥬레인은 몸을 돌리며 들릴듯 말듯 작게 중얼거렸다.

"이젠 아주 무모한 싸움인 것도 아닙니다."

암습을 당해 죽을 뻔도 했던 여정.

하지만 위기는 역으로 기회가 되어 천군만마를 얻었다.

검을 가지고 돌아오는 쥬레인을 바라보며 칼이 물었다.

"다 끝나신 겁니까?"

"...그래."

혹여나 앞으로 실수할 일 없도록 쥬레인은 신경 써서 칼에게 하대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칼은 5왕자의 측근인 세이온으로서 활동을 해야 하니까.

이제 왕도로 돌아가 의식을 완전히 끝맺을 시간이었다.

* * *

마르하겔의 왕도.

평소 휑하게 비어있던 왕도의 대광장이 어째서인지 거대한 인파로 요동치고 있었다.

오늘이 그만큼이나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5왕자의 성년일이자, 그가 용각산맥에서의 의식을 마치고 왕도로 돌아오는 날.

왕국의 가장 큰 축제날임과 동시에 고귀한 분들의 면면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수많은 왕국민들이 이렇게나 대광장에 모인 이유였다.

왕자와 왕녀들.

그들은 수많은 병사 기사들의 삼엄한 호위 아래, 광장 중앙의 높은 단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멀지 않은 주변으로는 왕가의 가신들과 백작급 이상의 고위귀족들의 모습 또한 보였다.

그야말로 왕국의 모든 지배층들이 한 자리에 모인 듯한 장엄한 풍경이었다.

4왕자, 테인스 마르하겔이 득실득실 몰린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다.

"형편없는 동생 놈이 받기엔 참으로 과분한 환영인사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테인스가 옆쪽에 앉은 녹발의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3왕자, 카이번 마르하겔은 힐끗 테인스를 바라보기만 하고 말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무시나 마찬가지인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테인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 열띤 소란들이 곧 허무함과 실망으로 뒤바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쥬레인, 그 녀석이 왕도로 돌아올 일은 오늘이고 내일이고 영영 없을 테니."

그 말에 한 자리 너머에 앉아있던 청발의 여인이 테인스를 돌아봤다.

1왕녀인 클로아 마르하겔이었다.

관심이 좀 쏠리자 테인스가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궁금하십니까, 누님? 왜 녀석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지?"

"......"

"형님 누님들은 모두 내게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들 손을 더럽힐 일 없이, 내가 먼저 나서서 눈에 거슬리는 벌레를 잡아줬으니 말입니다."

3왕자 카이번이 신나게 떠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작게 혀를 찼다.

'한심한 놈.'

테인스가 5왕자 쥬레인을 죽이기 위해 음지의 사냥개들을 뒤따라 보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딱히 신경 쓸 바는 아니었지만 테인스는 언행을 좀 더 조심해서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쯤 산맥 어딘가에서 시체로 뒹굴고 있을 겁니다. 아니, 짐승들에게 뜯어먹혀 뼈밖에 남지 않았겠..."

그때였다.

"그 벌레, 제대로 잡은 게 맞나?"

가장 중앙의 좌석에 앉아있던 흑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2왕자, 카몬 마르하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주변에서 모두 흠칫 놀라며 돌아봤다.

2왕자인 카몬은 필요한 때가 아니고서야 입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4왕자 테인스는 긴장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카몬이 말없이 앞쪽으로 턱을 까닥였다. 소란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

모두가, 특히 테인스가 완전히 경악한 채 두 눈을 부릅 떴다.

"뭐! 무슨...?!"

성문에서부터 대광장으로 이어진 대로.

저 멀리서 한 청년이 두 사람을 대동한 채 광장의 중앙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5왕자 쥬레인 마르하겔.

그가 무사히 의식을 마치고 왕도로 돌아왔다.

* * *

와아아아아...!!

광장 전체를 뒤덮은 막대한 인파.

고막이 찢어져라 울리는 환호성.

칼은 쥬레인의 뒤를 따라걸으며 단상 위에 있는 인물들을 훑어봤다.

세 명의 왕자와 두 명의 왕녀.

이쪽을 내려다보는 표정들을 제각각이었다.

그중에 적의를 뿜어내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정보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저 멍청하게 생긴 놈이 4왕자겠군.'

칼은 시선을 돌려 다른 왕자와 왕녀들을 바라봤다.

2왕자는 무심히, 3왕자는 흥미롭다는 듯, 1왕녀는 무척이나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석에 앉은 2왕녀는 지금 이 상황에 전부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이번엔 귀족들이 모인 곳을 바라봤다.

귀족들 역시 다양한 표정으로 쥬레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자가 두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Lv.62]

[마르하겔의 수호기사장]

[Lv.60]

[세인피어의 가주]

마르하겔 왕국의 두 성위기사.

수호기사장인 데반과, 1왕자를 배신했다는 세인피어 공작이었다.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 그 속에 섞인 음험한 적의들.

사방이 적, 적, 적. 오로지 적.

이 많은 이들 중에 5왕자 쥬레인의 편에 선 이는 누구도 없다.

쥬레인이 잠시 걸음을 멈춰섰다.

칼은 물끄러미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문득 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안락한 현대 문명 속에 살다가 가족과 친구를 전부 잃고 하루아침에 야생의 땅에 떨어졌던, 주변에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이 하나 없이 살아남기 위해 구르고 또 굴렀던 한 불쌍한 지구인과.

"반 년."

칼이 작게 입을 열었다.

쥬레인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저들 중 누구도 전하의 신변을 위협할 수 없을 겁니다."

"......"

"그러니 쫄지 말고 계속 걷기나 하십시오. 사람들 환호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쥬레인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고개를 돌려 단상 위의 왕자와 왕녀들, 그리고 귀족들을 바라봤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걸음을 한 발자국씩 떼고서, 대광장의 중앙을 향해 나아가며.

< 입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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