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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6화 (76/132)

< 6서클 (7) >

헬 파이어, 어스퀘이크, 토네이도.

널리 알려진 흔하고 유명한 6서클의 마법들이었다.

아니, 흔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긴 했다. 애초에 6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 자체가 극소수에 불과하니.

"......"

칼은 여섯 고리의 서클의 마력을 천천히 느껴보았다.

깊고, 방대하다.

4서클에서 5서클로 각성했을 때도 격 자체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었지만... 이번 건 말로 뭐라 설명하기조차 힘들었다.

한순간이지만 마력과 완전히 동화된 감각마저 들었을 정도니까.

'이렇게나 아득한 격차였었나?'

비로소 6서클에 오르고 나니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5서클과 6서클.

그 사이의 벽이 상상 이상으로 높고 거대했다는 걸.

단순히 마력량으로만 따져도 그랬다.

4서클이 적당히 큰 웅덩이였고, 5서클이 못 정도의 크기였다면, 6서클에 오른 지금은 광활한 호수였다.

또한 캐스팅과 제어 등의 나머지 능력들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상승했다.

[서클의 상승에 따라 아르자크류 서클링의 효과가 진화합니다.]

<아르자크류 서클링>

전체 마력 35% 증가.

전격계 마법에 대한 파괴력 100% 증가.

전격계 마법에 대한 마력 소모 30% 감소.

서클의 단계가 상승할수록 효과가 상승하거나 진화합니다.(현재 6서클)

이어진 메시지.

칼은 잠시 눈을 깜박거리다가 아,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것도 서클이 오를수록 진화한다고 했었지.'

현재 익히고 있는 아르자크류 서클링의 효과 역시 상승했다.

전체 마력이 10%, 전격계 마법의 파괴력이 25% 추가 상승했고, 전격계 마법에 대한 마력 소모 감소라는 새로운 효과가 추가되었다.

칼은 입꼬리를 올리며 눈앞에 있는 두 군장 거미를 바라봤다.

기세 좋게 접근해온 놈들은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레 먹잇감의 기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침 적당한 상대들도 있고."

어디 한번 시험해볼까.

칼은 손을 뻗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헬 파이어】

화륵!!

이내 허공에 피어난 검붉은 화염.

보통의 화염 마법과는 다른 불길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칼은 그것을 왼쪽의 군장 거미에게 날려보냈다.

거대한 칠흑이 군장 거미의 몸체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키야아악!!

놈이 고통에 찬 괴성을 내뱉으며 땅바닥에 그대로 뒤집어졌다.

벼락을 맞고도 어느 정도까진 멀쩡했던 외피가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그때 오른쪽의 군장 거미가 앞다리를 휘둘러 공격해왔다.

칼은 여유롭게 위쪽으로 날아올라 회피했다.

치이익!!

곧장 독액이 날아들었으나 칼의 실드를 뚫을 수는 없었다.

칼은 허공에 몸을 띄우고 서서 두 군장 거미를 내려다봤다.

묘한 기분이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막막한 상대로 느껴졌던 놈들이, 이제는 외형 그대로 그저 벌레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얼마든지 손쉽게 밟아죽일 수 있는.

"그만 끝내자."

좀 더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지만 중앙섬이 마음에 걸렸다.

케인벨라가 죽었으니 거미들이 흩어지기야 했겠지만, 만약 이미 방어선이 뚫린 상태라면 답도 없을 테니까.

【라이트닝 웨이브】

빠지지지직!!

가공할 전격이 공동 전체를 뒤덮었다.

이미 헬 파이어에 다 죽어가고 있던 왼쪽의 군장 거미는 그대로 즉사했으나, 오른쪽은 죽지 않고 버텼다.

"음?"

놈의 몸체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칼은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네 능력도 혈갑이었냐?"

혈갑.

일단 한 번 펼치면 효과가 다할 때까지는 사기적인 방어를 자랑하는 능력.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다.

칼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꽈릉!!

다시 한 번 전격이 내리쳤다.

군장 거미의 혈갑에 눈에 띄게 선명한 균열이 생겨났다. 충격의 여파만으로 공동의 벽면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6서클의 경지.

아르자크류 서클링의 35% 마력 증가.

그리고 100% 전격 파괴력 증가 옵션.

이전에 벼락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했던 혈갑이라지만 이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막 6서클에 오른 칼이지만, 전격 마법의 위력만큼은 수준을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세 번도 못 버티겠군."

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지막 전격을 날렸다.

쩌엉!!

혈갑이 산산히 박살남과 동시에 군장 거미의 몸체가 잿덩이로 화했다. 놈은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고 즉사했다.

칼은 허공에서 유유히 내려섰다.

그만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쪽으로 접근해오는 어마무시한 기척이 감지 마법에 걸렸다.

"...뭐야?"

굴 밖으로 나가자 펼쳐진 광경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멀리서부터 몰려오고 있는 검은 파도.

아까 전에 중앙섬으로 몰려가던 케인벨라의 군집이었다. 크고 작은 수많은 거미들과, 사이에 중간중간 섞여있는 군장 거미들도 보였다.

놈들이 갑자기 왜 여기로 방향을 틀어 몰려오는 건가 의문이 떠올랐다. 짐작되는 게 하나 있기는 했다.

'여왕이 아까 군장들을 부르면서 군집도 함께 부른 건가?'

하긴, 놈도 다급했을 테니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군집 전체를 싸그리 불러들였겠지.

가까이 있던 군장 둘이 먼저 도착하고, 중앙섬 인근에 있던 저놈들은 이제야 도달한 걸 테고.

케인벨라가 죽었으니 정신 연결은 풀렸겠지만 이미 이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으니 도중에 멈추지 않았던 것일 터였다.

놈들은 이성 없이 그저 본능과, 여왕의 명령으로만 행동하던 벌레니까. 여왕이 죽은 지금은 자신들이 왜 여기까지 몰려온 건지 이유도 모를 터.

그러니 굳이 상대할 것 없이 피하면 시간이 지나 알아서 흩어지겠지만...

[돌발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돌발 퀘스트: 대청소>

여왕을 잃은 거미들은 더 이상 거대한 군집을 지어 뭉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미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후에 또다시 거대한 위험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군집의 거미들을 몰살하여 11구역의 생태를 되돌리고, 위험을 뿌리까지 제거하십시오.

퀘스트 완료 보상: 500000SP

머릿속에 떠오른 메시지에 칼은 입꼬리를 올렸다.

몰려오는 거미 대군단을 내려다보며 거대한 서클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퀘스트와 마음이 맞은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 * *

중앙섬으로 연결된 다리 부근.

"막아라! 한 놈도 넘어오게 둬선 안 된다!"

좀 전까지의 대치는 깨지고, 3분대의 대원들은 쏟아지는 폭우 사이에서 처절하게 분투하고 있었다.

다리는 끊어졌지만 그렇다고 거미들이 넘어올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거미들이 나서서 중앙섬의 절벽면을 향해 거미줄을 쏴대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가 워낙 떨어졌기에 대부분이 닿지 못하고 떨어졌으나, 일부는 도달해서 끝내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연결된 거미줄을 타고 거미들이 한둘씩 기어오기 시작했다.

거미줄이야 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넘어오려 시도하는 놈들이 워낙에 많았기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것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더군다나 3분대는 이미 앞선 전투들로 지친 상태,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다.

보고를 받은 울데미르 백작이 기사와 마법사들을 직접 이끌고 도착한 건 그때였다.

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피어올랐다.

"백작님!"

"상황은 전부 전해들었네. 정말 수고가 많았어."

말에서 내린 그가 레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주변에 명령했다.

"3분대를 지원하여 넘어오는 거미들을 막아라!"

순식간에 불어난 전력.

끈질기게 거미줄을 쏘아대며 중앙섬으로 넘어오려던 거미들이 우수수 바닷물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사들의 검과 마법사들의 마법이 몰아치며 섬으로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렇게 상황은 잠시 순조롭게 흘려가려는 듯 보였다.

"저, 저기...!!"

누군가 돌연 기겁하며 섬 반대편을 가리켰다.

거미 군집의 후방에서부터 서서히 거대한 거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군장 거미.

3분대를 완전히 전멸시킬 뻔했던 괴물.

레일도 놈의 등장을 확인하고서 다급히 소리쳤다.

"저 거대한 거미를 집중적으로 견제해야 됩니다! 놈의 도약력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몸을 한 차례 웅크린 놈이 포물선을 그리며 섬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착지 지점에 있던 이들이 그대로 깔려 즉사했다.

울데미르가 데리고 온 고위기사와 마법사들이 다급히 군장 거미를 공격했으나, 타격은 아예 없었다.

놈이 귀찮다는 듯 휘두르는 다리에 주변에 있던 기사 몇 명만 짓눌려 고깃덩이가 될 뿐이었다.

콰아앙!!

이어서 한 마리가 더 섬으로 건너와 착지했다.

대원들의 표정에 절망이 스쳤다. 앞선 경험이 있기에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두 군장 거미가 날뛰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을 거라는 걸.

바로 그때였다.

"......?"

먹잇감을 고르듯 사람들을 살피던 군장 거미들이, 돌연 고개를 틀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더니 재차 다리를 웅크려 도약했다.

쿠웅!

11구역 섬으로 되돌아간 놈들은 바쁘게 어딘가로 떠나갔다.

군장 거미들뿐만이 아니었다.

끈질기게 중앙섬으로 넘어오려던 거미들도 일제히 몸을 돌렸다. 몰려든 군집 전체가 섬 안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작스레 침공해온 거미 대군단은 그렇게 갑작스레 물러갔다.

모두가 얼떨떨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돌연 레일이 헛숨을 터뜨리며 헨리에게 소리쳤다.

"여왕! 여왕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모든 거미들은 여왕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으니, 만약 여왕이 위기에 처했다면 군집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아마 칼이 여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헨리도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는 울데미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어서 놈들을 뒤따라가야 합니다."

여왕에 대한 것과, 칼이 놈을 처리하기 위해 11구역 섬에 남은 것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미 거미들이 몰려간 마당에 딱히 뭘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야만 했다.

울데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몇 명만 추려서 섬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그렇게 헨리와 레일, 그리고 울데미르가 데려온 두 고위기사와 고위마법사 하나가 거미들을 뒤따르기로 했다.

울데미르 본인도 직접 나섰다.

고위기사까지는 아니었지만 울데미르 역시 제법 실력이 뛰어난 검사였다.

왕국에서도 명망 높은 기사명가 출신인 그는 부하들을 앞세워 희생시키고 뒤에서 명령만 내리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모두 제게로 모이십시오."

고위마법사 켄젤이 포스를 둘러 사람들을 띄우고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11구역의 섬으로 넘어간 그들은 멀어지는 거미 군단의 뒤를 쫓았다.

한참을 그렇게 쫓자니, 이윽고 거미 군단 너머의 전방에 무언가가 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안력을 집중하여 점의 정체를 가장 먼저 확인한 레일과 헨리가 눈을 부릅 떴다.

"...칼!"

바로 칼이었다.

그는 넓고 완만한 바위 언덕의 중앙에 서있었는데, 가만히 서서 몰려오는 거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서 안 피하고...!!"

그 태평한 모습에 레일이 소리쳤다.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차오르려던 때였다.

쿠웅...

일대에 진동이 한 차례 울렸다.

모두가 이동을 멈추고 정지했다. 그리고 발밑을 바라봤다.

"...방금 그건?"

땅이 흔들렸다.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건가?

그리고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들자 펼쳐진 광경에,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쿠구구구...!!

무너지는 지반, 격변하는 대지.

지면 전체가 통째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멀리 앞쪽에서 이동하던 거미들은 모조리 그 지진에 휩쓸렸다.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일어난 재해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르릉...

하늘에 굉음이 울리더니, 돌연 지상으로 한 줄기 전격이 내리꽂혔다.

번쩍!

한 번뿐이 아니었다.

꽈릉! 쾅! 꽈과광!!

세 번,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이내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벼락들이 지상으로 떨어지며 거미 군단을 휩쓸었다.

벽력음이 대기를 찢고, 푸른 섬광이 쉴 새 없이 번쩍인다.

그 거대한 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거미들은 끔찍한 대학살을 맞이해야만 했다. 한 번의 벼락에 적어도 수십 마리씩 재가 되어 타죽었다. 그토록 무시무시했던 군장 거미조차 맥없이 전신이 터져나갔다.

천벌.

넋을 놓고 지켜보는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늘의 심판이라고.

슈우우...

이윽고 벼락 폭풍이 멈추었다.

남은 건 거미의 형체도 남지 않은 잿덩이들과, 용암으로 녹아 붉게 들끓고 있는 대지뿐이었다.

"...6서클."

고위마법사 켄젤이 완전히 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6서클, 성위마법사.

국소적인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홀로 능히 군단조차 상대할 수 있다는 지고한 경지.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쪽으로 모였다.

저멀리 보이는 칼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서 몰살당한 거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쩐지 오만하게 보이는 그 모습이, 그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 6서클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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