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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2화 (72/132)

< 6서클 (3) >

칼에게 간략한 설명을 들은 울데미르는 곧장 3분대의 나머지 인원을 해당 장소로 파견했다.

칼의 표정이 워낙에 심각했기에 바로 대처에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칼과 헨리 역시 그 사이에 껴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젠장, 하여튼 왜 가는 곳마다 일이...'

칼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몰며 상념에 잠겼다.

붉은 고치.

그 말을 들었던 순간 칼의 머릿속에 떠오른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전사 직업을 플레이할 때 메인 스토리 진행에 있어 가장 까다로웠던 적들 중 하나, 최상급의 마수.

거미 여왕 케인벨라.

설마 이 군도에 놈이 숨어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자체로도 말도 안 되게 강하지만, 놈이 더욱이 끔찍한 존재인 이유는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군집을 이루기 때문이다.

붉은 고치 역시 놈이 탄생시킬 수 있는 최악의 개체 중 하나였다.

여왕의 선택을 받은 거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치 속에서 생장과 진화를 거듭하며, 끝내 군집의 정예병으로 거듭난다.

고치가 붉게 변했다는 건 이미 진화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걸 건드렸다간 안쪽에 있는 괴물을 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아까 오면서 스치듯 봤던 전력으로는 상대하기에 턱도 없을 것이었다. 전원 몰살이라는 미래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간만에 오싹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칼이 위험을 감수하고 파견대에 껴서 해당 장소로 함께 이동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치에서 태어나는 개체가 과연 어떤 놈인지를.

'군장급 개체가 태어나면 답도 없다.'

무척이나 거대한 고치라고 했으니 일단 적어도 상위 수준의 개체인 건 거의 확정이다.

그중에서도 급이 떨어지는 놈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단 50레벨대에 속하기만 하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고치에서 60레벨이 넘는, 군집의 최상위 개체인 군장급 거미가 탄생하기라도 한다면...

"...멀리서 소리가 들립니다!"

가장 선두에 서서 길을 안내하던 대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말대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땅을 울리는 굉음,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소름 끼치는 괴성과, 그 속에 섞인 사람들의 비명.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자 서서히 전경이 드러났다.

이미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거미의 모습에, 누군가 헛숨을 들이켰다.

"저게 무슨...!!"

레일의 분대와 죄수들은 거미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칼의 눈에 날뛰는 거미 괴수의 정보가 비쳤다.

[Lv.60]

[케인벨라 군집의 군장]

"......"

군장급 거미.

설마 싶었던 가정이 현실이 됐다.

레벨을 확인한 순간 판단은 순식간에 끝났다.

'저건 못 상대해.'

50레벨대가 아닌 60레벨.

레벨의 앞자리 수가 다른 건, 뒷자리 수가 몇 차이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격차다.

저 괴물을 쓰러뜨리는 건 지금의 역량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들 전속력으로 달려라! 서둘러 가서 지원한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대원들은 말을 몰고 거미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죽어가는 동료들을 눈앞에 두고 물러서진 않겠지.

이들은 모두 레일의 밑에 있는 3분대의 대원들이니까.

그렇기에 칼은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그들을 막지 못했다.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으음..."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칼과 헨리뿐이었다.

옆에서 침음을 흘리고 있던 헨리가 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멀리 보이는 거미 괴수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기에.

"......"

칼의 깊은 고뇌에 빠졌다.

마음이 저울처럼 양쪽으로 기울며 요동쳤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저들을 도우려고 해봤자 저 무지막지한 괴물에게 희생당만 사람이 몇몇 더 늘어날 뿐이다.

지금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곧장 중앙섬으로 돌아가서 이어지는 다리를 끊어놓는 것뿐이었다.

"하, 씨발."

히히힝!

그러나 칼은 끝내 말머리를 돌리지 못했다.

입술을 짓씹으며 군장 거미가 날뛰는 곳을 향해 달렸다.

차라리 여기까지 안 왔다면 모를까, 바로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많은 이들을 외면하긴 힘든 일이었다.

때마침 흐린 날씨였다.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에, 칼은 로브의 모자를 올려쓰며 속으로 가늠해보았다.

'그게 통할까?'

4서클의 비전 마법인 콜링 썬더.

하지만 위력은 5서클의 최상급 살상 마법과도 견줄 만하다.

레이 버스터와 더불어 칼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마법이었다.

더군다나 아르자크류 고대 서클링의 효과로 전격 마법에 붙는 75%의 추가 데미지.

그것까지 합쳐지면 조금은 부족할지 몰라도 잠시나마 6서클급의 화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지만.

후욱!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칼은 말에서 뛰어내렸다.

매직 부스터와 사용해 나아겨 앞서가던 대원들을 제쳤다. 대원들이 고개를 들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칼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식간에 지척까지 접근한 칼은 거리를 두고 바닥에 내려섰다.

놈은 이쪽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아직까진 죄수들과 레일의 분대원들에게만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위협이 될 것도 없다는 거겠지. 다른 인간들이 더 몰려오든 말든.'

그렇기에 놈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칼은 지체할 것 없이 마법을 캐스팅했다. 서클의 마력이 폭발할 듯 격동했다.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

이전에 키메라를 상대했을 때와는 다르다.

레벨이 훨씬 오른 지금은 마법의 캐스팅 속도도, 위력도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쿠르릉...

하늘에 낀 먹구름에 전기가 번쩍이며 불안한 굉음을 울린다.

레일이 거미의 다리에 맞고 바닥에 튕겨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놈이 다 잡은 먹잇감을 골리듯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느려졌다.

바로 지금.

꽈릉!!

눈부신 섬광이 일대를 뒤덮었다.

대기를 찢고 내리꽂힌 거대한 전격이 거미 군장을 정확히 강타한다. 주변의 땅이 터져나가며 사방에 돌 파편들이 비산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벼락을 맞은 놈은 서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핏빛을 뿜어내던 갑각이 새카맣게 그을렸다.

"......"

레일도, 분대원들도, 죄수들도, 뒤늦게 달려오던 기사들도.

모두가 하던 행동들을 멈춘 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방금까지의 처절한 전투가 거짓말이었을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거미 군장은 죽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

마찬가지로 침묵한 채 놈을 노려보던 칼은 짧은 탄식을 터뜨렸다.

놈의 다리가 다시금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황급히 물러섰다.

역시 일격에 끝날 리가 없나?

그래도 꽤 타격을 받긴 했는지 비틀거리는 모습.

칼은 다시금 마법을 펼쳤다.

공격을 마치자마자 쉬지 않고 바로 연달아 캐스팅해두었던 상태였다.

재차 하늘에서 천둥음이 울리며 두 번째 벼락이 떨어졌다.

꽈릉!!

이번에도 제대로 적중했지만, 칼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거미 군장의 몸체에 검붉은 막이 둘러싸여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씨발... 혈갑이라고?"

하필이면 저 능력이었나?

마수들은 각각이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거미 여왕 군집의 모든 거미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군장급의 개체는 여왕에게 직접 힘을 물려받아 각각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혈갑이었다.

인게임에서 물리와 마법 방어력을 3배 가까이 뻥튀기시켰던 정신 나간 방어 능력.

두 번째 벼락은 혈갑은 두른 놈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입은 타격도 얼추 회복했는지, 새카맣게 탔던 놈의 몸체에도 다시금 핏빛이 돌기 시작했다.

치이잇!

고개를 돌려 칼을 노려본 놈이 다리를 잔뜩 웅크렸다.

그것이 도약 준비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챈 칼은 황급히 매직 부스터를 사용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앙!!

덩치와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속도.

방금까지 서있던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뭉개졌다.

'미친...'

간발의 차로 피한 칼은 질린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다. 어느새 놈이 이쪽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기에.

곧 새하얀 무언가가 물대포처럼 뿜어져나왔다. 거미줄이었다.

칼은 실드를 둘러서 막았지만, 그대로 달라붙은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고 실드를 잡아당겼다.

화르륵!!

재빨리 화염 마법을 캐스팅해서 거미줄을 모조리 태워버리자, 어느새 거미 군장이 다시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도약 준비였다.

'이런...'

아차 싶은 찰나, 어디선가 날아든 검이 놈의 머리를 타격했다.

카앙!!

조금의 타격조차 주지 못하고 튕겨나갔지만, 관심은 돌렸다.

검을 던진 헨리가 칼에게 소리쳤다.

"마력을 회복하고 있게! 그동안 우리가 놈을 붙들고 있겠네!"

그리곤 기사들과 앞장서서 거미 군장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잠깐 행동을 멈췄던 레일의 분대원들도 다시 합세했다.

물론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전세는 더 나빠졌다.

타격을 완전히 회복한 거미 군장은 이제 더욱 견고한 갑주까지 두른 상태였으니까.

"하..."

칼은 반쯤 체념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콜링 썬더까지 통하지 않는 마당에 더 이상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은 없었다. 놈을 막을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게임에서도 혈갑을 두른 군장 거미를 상대한 방법은 놈의 능력이 다할 때까지 컨트롤로 버티고 버티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거나 잡아먹혔다. 이대로면 전멸은 순식간이었다.

'외부에서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고 내부에 타격을 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부러 놈에게 잡아먹힌 다음에 놈의 뱃속에서 마법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

바로 그때였다.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스친 건.

처음 얻은 건 3서클로 각성했을 때였으나, 이제는 아예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마법.

별 실용성도 없으면서 마력은 더럽게 많이 들고, 무엇보다 너무 거북했기에 처음 습득했을 때 실험 삼아 사용해봤던 것 빼고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마법.

칼의 시선이 날카롭게 사람들 사이를 훑었다.

정확히는 기사들 사이에 껴서 우왕좌왕거리고 있는 죄수들을.

[Lv.51]

[불법 노예상, 루게시움의 죄수]

바이던은 속으로 연신 욕을 뇌까리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씨발, 씨발.'

아무리 봐도 저 거미는 쓰러뜨릴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대로면 전부 다 죽을 게 뻔했다.

기사들을 두고 도망가면 뒷감당이 안 되기에 적당히 싸우는 척은 했으나, 더 이상 그딴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뭘 하고 있는 거냐!"

근처에 있던 기사가 바이던을 향해 윽박질렀다.

"눈치만 보고 있지 말고 가까이 붙어서 시선을 끌어라! 우리가 죽으면 어차피 너희들도 전부 죽...!!"

촤악!

기사의 목이 순식간에 허공을 날았다.

바이던이 검을 거두며 속 시원하다는 듯 히죽 웃었다.

"개새끼가, 자꾸 짖어대고 지랄이야."

주변에 있던 죄수와 기사들이 그것을 보고 눈을 부릅 떴다.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짓을...!!"

기사가 품에서 역류독 격발제를 꺼내들기 전에 바이던은 재빨리 몸을 틀었다.

홀로 생존하여 루게시움으로 돌아가면 어떤 끔찍한 처분을 받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으나, 당장 이 자리에서 뒈지는 것보단 나았다.

'이대로 다리까지 도망을...'

푸욱!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기습적으로 날아든 무언가가 다리를 꿰뚫었다.

휘청거리며 기울어지는 몸.

"...어?"

고개를 드니 이번엔 웬 얼음창이 날아들고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꿰뚫린 바이던은 그대로 즉사했다.

후욱!

포스로 바이던의 시체를 끌어온 칼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마력 포션을 꺼내들고 마셨다.

<데드 블러스트 - 3서클, 비전>

시체의 잔여 생명력을 격발시켜 폭발을 일으킵니다.

대상의 레벨과 비례하여 소모되는 마력과 마법의 위력이 증폭합니다.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대상일수록, 또 시체의 상태가 온전할수록 위력이 증폭합니다.

폭발은 마법을 사용한 뒤 10초 뒤에 발생합니다.

데드 블러스트.

인챈트형 마법의 일종으로, 시체를 폭발시키는 마법.

바이던의 시체에 마법을 사용하자 마력이 콜링 썬더를 사용했을 때만큼이나 쭉 빠져나갔다.

"아무리 죄수라도 이런 짓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보다 가능하긴 할까?

이제 다른 방법이 없으니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칼은 찜찜한 표정으로 군장 거미를 바라봤다.

빠지지직!!

전격을 놈에게 날리자 놈의 시선이 이쪽으로 끌렸다.

칼은 잘 보라는 듯 바이던의 시체를 공중에 띄웠다가, 놈의 아가리를 향해서 날렸다.

덥썩!

놈이 날아든 바이던을 물어들더니, 그대로 으적으적 씹어 통째로 꿀걱 삼켜버렸다.

칼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방금 막 죽인 51레벨의 시체.

아무리 놈이 사기적인 방어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뱃속까지는 보호하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마법을 건 대상의 레벨에 따라 위력이 증폭하는 마법이니, 그 파괴력은...

쿠우우웅!!

내부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

꽉 억눌린 굉음과 함께 돌연 놈의 몸체가 거세게 들썩거렸다.

끼에에에엑!!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바닥에 뒤집어진 놈이 다리를 허공에 휘저었다.

폭발의 여파로 찢어진 아가리에선 체액과 내장 같은 것들이 끝없이 콸콸콸 흘러나왔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끼르륵...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치던 놈이 서서히 힘이 빠지는 듯 싶더니, 이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칼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되네."

멍청하게 주는 대로 받아처먹으니 그 꼴이 나지.

아무튼 겨우 쓰러뜨렸다.

칼은 이번에야말로 놈이 죽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속으로 잠시 짧은 감사를 전했다.

온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한 이름 모를 대머리 죄수를 향하여.

< 6서클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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