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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8화 (68/132)

< 선박의 죄수들 (5) >

그것은 처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죄수들이 칼을 바라봤다. 대부분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전부 죽이겠다고? 저 미친놈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기사들은 전부 제압당했고, 반대로 죄수들 측은 여전히 수십의 전력이 남아있었다. 고작 한 명이 뒤집을 수 있는 전황이 아니었다.

손짓 한 번에 죄수가 터져나간 방금의 광경은 충격적이었지만, 칼의 발언은 그 이상으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

심각함을 인지한 건 아구프와 바혼이 유일했다.

특히 바혼은 무표정한 얼굴 속에 경악한 눈빛으로 칼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 헛소리를 씨부렁거리는 거야?"

또 하나의 죄수가 나서서 인상을 구긴 채 말했다.

다른 죄수들도 동조하듯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칼을 노려봤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적어도 하나의 지역 일대에서 널리 악명을 날렸던 범죄자들이었다.

웬 새파랗게 어린놈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자신들을 개무시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앞서 터져나간 죄수처럼 칼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이는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거나 아구프가 있는 쪽을 힐끔힐끔 바라볼 뿐.

"헨리 경, 괜찮겠습니까?"

다시금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헨리는 가슴팍에 치솟는 고통도 잊고 멍하니 칼을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른 죄수들은 그렇다 쳐도 아구프, 특히나 바혼은 격이 다른 강자였다. 한데 그들까지 홀로 상대하겠다니.

그러나 칼의 눈빛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방금 내뱉은 말이 그저 당연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죄수들을 전부 죽여도 괜찮겠냐고?

많은 단원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나머지도 이대로면 죄수들에게 농락이나 당하다 죽을 운명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바닥에 머리라도 처박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헨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칼의 입매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죄수들 중 몇몇이 불길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빠지지직!!

번쩍이는 푸른 섬광.

맹렬한 전격이 대기를 울리며 갑판의 좌편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열도 넘는 죄수가 저항조차 못하고 즉사했다.

간신히 타격 범위 바깥에 있던 죄수들이 기겁하며 넓게 퍼졌다.

화아악!

동시에 잿빛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주변을 뒤덮어왔다.

칼은 아구프를 힐끗 바라보며 실드를 둘렀다.

잿빛의 기운은 실드에 막혔으나 사라지지 않고 들러붙어 시야를 가렸다. 같잖은 재주였다.

화르륵!!

실드를 타고 둥글에 휘몰아친 화염이 아구프의 주력을 순식간에 소멸시켰다.

틈을 노리고 은근슬쩍 접근하던 죄수들이 휩쓸려 타죽은 건 덤이었다.

아구프가 그 광경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믿기지 않지만, 저 새파랗게 젊은 마법사의 마력은 자신의 주력을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이 병신 새끼들아, 마법사 상대하는 법도 몰라?! 마법 사이에 텀을 노려! 쉴 틈을 주지 말고 공격해!"

누군가의 외침에 주춤했던 죄수들이 다시금 칼을 공격했다.

무인들은 사방에 뿔뿔이 흩어져 공격할 틈을 노렸고, 마법사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일제히 살상 마법을 퍼부었다.

전부 의미 없는 저항에 불과하다는 걸 모두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꽈릉!!

갑판 위가 한순간 낮처럼 환해졌다.

대기를 찢으며 거미줄처럼 퍼져나간 거대한 전격이, 몰아치는 마법들을 모조리 소멸시키고 일대를 뒤덮는다.

가까이 붙어있던 죄수들은 물론이고 멀리 거리를 두고 떨어진 죄수들까지 전부 시커먼 잿덩이로 화했다.

"......"

압도적인 힘의 차이.

살아남은 몇몇 죄수들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표정으로 칼을 바라봤다.

미처 가시지 않은 스파크가 갑판 곳곳에서 파직거리며 튀긴다.

그 한가운데 홀로 오만히 서있는 칼의 모습은 흡사 전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애초에 예정된 결과였다.

죄수들의 레벨은 기껏해야 30레벨에서 40레벨대, 아구프와 바혼을 제외하고 50레벨을 넘는 이는 없다.

머릿수가 아무리 많다 한들, 고위마법사 중에서도 최상격에 속하는 칼을 감당하기엔 한없이 부족한 전력이었다.

사방이 뻥 뚫린 갑판, 지형지물은 고사하고 도망갈 곳은 밤의 어둠 속에 출렁이는 바다뿐이다.

폭력과 살육을 통해 이뤄낸 탈출의 헛된 희망은 또 다른 거대한 폭력 아래 초라하게 짓밟혔다.

이제 죄수들에게 남은 종착지는 죽음밖에 없었다.

평생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주며 살아왔던 그들의 눈에 한 줄기 공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흐, 흐아악!"

차라리 바다에 뛰어드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누군가 괴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단 몇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등 뒤로 몰아친 전격에 그대로 생을 마감했지만.

"씨이발...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라고!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이놈을...!!"

발밑에 쓰러진 기사를 붙잡고 인질로 잡으려 했던 죄수는 머리가 터져나가며 영원한 침묵을 맞이했다.

살아남은 죄수들에게 하나씩 죽음이 내려졌다.

차라리 좀 전의 거대한 전격에 휩쓸려 즉사했다면 그나마 편하게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격도, 도망도,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죄수들은 공포에 떨며 그렇게 모두 죽었다.

"......"

이내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피칠갑이 된 갑판 위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바닷물로 뚝뚝 떨어졌다.

쓰러진 기사들과 메이린, 그리고 헨리는 완전히 압도되어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서..."

칼이 아구프와 바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죄수들도 다 죽었는데, 대체 언제쯤 나설 생각인지?"

처음에 주술 한 번을 날렸던 것 빼고는 칼이 죄수들을 학살하는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던 둘이었다.

바혼이 어깨를 으쓱이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마치 합공 따윈 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반대로 아구프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다 됐다. 네놈은 여유를 부릴 게 아니라 바로 나를 공격했어야 됐다."

치이잉!

칼의 주위로 순식간에 잿빛의 기운이 응축되며 정육면체를 이루었다.

주술, 불괴의 주박.

아구프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차단시키는 결계형 주술이지. 네 마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 장막은 깨뜨릴 수 없다. 이제 그대로 숨이 다할 때까지 안에 갇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칼은 주변을 둘러싼 정육면체의 막을 둘러봤다.

칼 역시 이 주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

확실히 아구프가 자신할 만한 주술이기는 했다.

시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어도, 일단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주술이니까.

하지만 모든 주술에는 파해법이 존재한다.

주술이란 잘 모르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지만, 파해법만 알면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수월해지는 종류의 능력이었다.

불괴의 주박의 파해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냥 주술의 법칙조차 무시할 정도의 압도적인 힘으로 결계를 부숴버리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결계의 면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 정확히 모서리만을 가격하는 것.

챙강!!

날카로운 칼바람이 정육면체의 모서리를 가격함과 동시에 결계가 산산히 부서졌다.

"......!!"

눈을 찢어져라 크게 뜬 아구프를 향해 칼은 틈을 주지 않고 전격을 날렸다.

그 일격에 방어막은 맥없이 박살나고 안에 있던 아구프마저 시커멓게 타버렸다.

죄수들을 준동하여 전례 없이 운송선에서의 탈출을 시도했던 주술사치고는 꽤나 허무한 최후였다.

칼은 곧장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바혼이 측면에 나타나 검격을 날려오고 있었다.

콰과곽!!

마법진에서 솟아난 얼음창들이 바혼의 접근을 저지했다.

동시에 매직 부스터를 사용해서 칼은 거리를 벌렸다.

"허..."

사뿐히 갑판 한편에 착지하는 칼의 모습을 바라보며, 바혼이 탄식을 내뱉었다.

"나름 완벽한 기습이라 생각했는데."

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는 무슨 정정당당한 승부라도 보자는 듯 나오더니, 웃기지도 않는군요."

바혼 역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자네도 다 알고 있었으니 이렇게 바로 대응한 것 아닌가?"

애초부터 바혼은 이럴 생각이었다.

버러지 같은 죄수 놈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아구프는 무슨 능력을 사용하는지 잘 모르니 합공의 효율이 좋지 않았다.

설령 처음부터 나서서 싸웠더라도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이렇게 둘만 남게 될 건 정해진 수순.

차라리 칼이 그들을 상대하는 도중 틈을 내비추길 기다리며 기습을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검까지 거두며 이쪽에 큰 신경을 쓰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은 모양이군.'

통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당했다고 바혼은 생각했다.

만약 칼이 조금이라도 견제하는 기색을 내비췄으면 바혼은 진작 나섰을 것이었다. 어차피 기습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칼은 일부러 바혼을 의식하지 않는 척하며, 그가 얌전히 기습의 기회를 노리도록 역으로 유도했다. 떨거지들을 한결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전투 속의 미묘한 심리전.

저 젊은 나이에 말도 안 되는 경지에 다다른 것도 모자라서, 심계 역시 전장에서 닳도록 구른 이처럼 깊다.

바혼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가만히 칼을 응시했다.

무엇보다 계속 지켜봤지만, 칼이 펼치는 마법에는 어딘가 이질적인 구석이 있었다.

'마법 연계 사이에 텀이 전혀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대비하고 있었다고 해도, 방금의 기습이 너무나 쉽게 막힌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었다.

칼이 마법을 펼치는 속도는 경지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빨랐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바혼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혀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 강적.

결국 이렇게 둘만 남게 될 건 어차피 예상한 수순이었다.

이제는 그저 목숨을 걸고 정면에서 전력을 다해 쓰러뜨리면 될 뿐이었다.

'57레벨이라...'

한편 칼은 바혼에 대해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이쪽보다 2레벨이 높은 상대라지만, 텀이 없는 마법 연계 능력과 고대 서클링의 25% 마력 증가 옵션을 지닌 칼로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격차였다.

"정체가 뭔지 물어도 되겠나?"

바혼이 검기를 한층 더 짙게 압축시키며 물었다.

칼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알티우스 학파의 칼입니다."

"그렇군. 알티우스라... 과연 대단한 학파의 마법사였군."

잠깐 정적이 흘렀다.

바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럴 때는 자네도 내게 물어야 되는 게 아닌가? 이름이 뭔지, 또 어쩌다 이곳에 잡혀오게 된 건지?"

바혼의 표정에는 자신의 최후를 각오한 한편, 어떠한 갈망이 떠올라있었다.

칼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범죄자, 탈옥수, 그리고 이제 곧 죽을 사람. 내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

"아니면 주제에 무슨 그럴듯한 최후라도 바란 겁니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나도 사실은 불쌍한 놈이라고 싸우기 전에 감성팔이라도 하면서?"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는 헨리 경에게 미리 들은 게 있어 대충 알 것 같습니다만... 꿈 깨십시오. 당신은 그저 무고한 이들을 수도 없이 죽인 미친 살인귀에 불과할 뿐이니."

칼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걸렸다.

"그러니 같잖은 말은 집어치우고 어서 시작이나 하죠. 오늘 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선원과 기사들.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다른 죄수들은 전부 길동무로 보내줬으니, 이제 당신 하나뿐입니다."

< 선박의 죄수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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