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5화 (65/132)

< 선박의 죄수들 (2) >

꽤나 길게 이어지는 죄수들의 행렬.

그들은 기사들의 삼엄한 경계 아래 선박 안쪽으로 줄줄이 내려갔다. 선박 내부 감옥으로 이송되는 것이었다.

"아직 더 남았네."

대충 끝난 줄 알았더니 아직 태울 죄수들이 남은 모양이었다.

'한 척에 너무 많이 태우는 게 아닌가?'

살짝 걱정이 들 정도였지만 칼은 뭐라 더 말하진 않았다.

이쪽은 얹혀타는 행객일 뿐이고, 헨리는 지금껏 수많은 죄수들을 운송해온 베테랑일 터였다.

역류독까지 사용해서 완벽히 방비가 되었다는데 계속해서 이것저것 묻는 것도 실례였다.

"단장님."

그때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

어딘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녹발의 여기사였다.

"무역선 쪽의 기관실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수리하려면 출발이 조금 지체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우선 죄수들 이송부터 마치고 바로 가보도록 하지."

"그리고 추가로 운송할 죄수들이..."

이어진 그녀의 보고에 헨리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잠시 침음을 흘리던 그가 칼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온 김에 이 친구 좀 숙소로 안내해주는 걸 부탁하지. 3층에 있는 넓은 방으로 하나 내어주도록."

"알겠습니다."

"칼, 자네도 이만 내려가서 지낼 숙소부터 둘러보게. 이쪽은 단원인 메이린이네. 기사단 내에서 행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지. 긴 항해가 될 테니, 궁금하거나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녀에게 말하면 되네."

헨리는 그렇게 말하고 어디론가 바쁘게 떠나갔다.

"따라오십시오."

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메이린의 뒤를 따랐다.

선박 내부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 숙소들이 위치한 층으로 이동했다.

내어받은 건 복도 구석에 위치한 상당히 넓은 방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선박 내부에 있는 방치고 넓다는 뜻이었다. 딱 생활하기에 불편함만 없을 정도.

가구는 방 한편에 놓인 침대와 그 반대편에 놓인 책상이 전부였고, 창밖으로는 바로 바다가 보였다.

"식사는 위층에 있는 식당으로 시간을 맞춰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세면은..."

메이린은 칼이 뭘 묻기도 전에 필요한 설명들을 전부 깔끔히 마쳤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서 일 보셔도 됩니다."

"......"

잠시 칼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방 밖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다 다시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

"이 선박이 스테믹 군도로 향하는 죄수 운송선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동안 기사들과 괜한 마찰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죄수들을 구경하게 해달라는 등의 곤란한 요구도 자제해주십시오."

어딘가 묘하게 날이 선 말투였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죄수가 아니며, 이 운송선이 지금부터 나아갈 곳은 육지와 떨어진 망망대해입니다. 누군가의 섣부른 행동 하나가 선박에 큰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항상 상기하시길. 그럼."

말을 마친 그녀가 재차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멀뚱히 앉아있던 칼은 작게 혀를 차고는 침대에 몸을 뉘였다.

"완전히 애새끼 취급 당했네, 이거."

그렇게 여겨지는 게 무리는 아니긴 했다.

그녀도 헨리에게 이쪽의 신분은 미리 전해들은 모양이니까.

알티우스의 원로의 제자.

르믹을 생각하면 알 수 있듯, 보통 그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젊은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오만하기 그지없다.

편견 아닌 편견이지만, 마법사의 기본적인 특성 자체가 그러한데 거기에 젊은 혈기까지 더해지니 오죽할까.

애송이 놈이 자기가 어떤 배에 올라탄 건지도 제대로 자각 못하고, 괜히 기사들이나 선원들과 시비가 붙어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진 않을까 불안한 것이리라.

"굳이 말 안 해도 없는 사람처럼 최대한 얌전히 지낼 거라고..."

태워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미쳤다고 행패를 부리겠나?

그렇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기를 꽤 한참.

이윽고 선박에 진동이 일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배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항해의 시작이었다.

* * *

나쁘지 않은 잠자리, 나쁘지 않은 식사, 나쁘지 않은 경치.

딱히 뱃멀미 같은 건 없는 칼이었기에 배 위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따분함은 종종 헨리나 다른 선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들에게 빌려받은 서적들을 읽으며 적당히 때울 수 있었다.

항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에 식인어 떼나 폭풍우를 만나 제동이 걸릴 때도 있었지만, 별 문제 없이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렇게 출발한 지 한 달 가까이가 흘렀다.

"하하, 그래서..."

이제 운송선은 사흘 내로 목적지인 스테믹 군도에 도착한다.

막 출발했을 때에 비하면 선박의 분위기는 꽤 풀어진 상태였다.

헨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칼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에게 물었다.

"한데 헨리 경."

"음?"

"실례가 되는 물음인진 모르겠지만, 항해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실례가 없다기보다 뜬금없는 물음이었기에 헨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칼은 말을 덧붙였다.

"종종 표정이 어두워 보이실 때가 있어서 말입니다. 제가 잘못 본 거라면 실례했습니다."

그 말에 헨리는 흠칫한 표정이었다.

잠시 말없이 턱수염을 쓰다듬던 그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니 걱정 말게.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지."

"......?"

"자네에게 말했었던가? 내 출신이 귀족 가문이 아니라 한 작은 무파라고."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가루크'라는 왕국 변경의 산맥에 위치한 무파 출신이라고 했었던가.

무파 소속의 무인이 세상으로 나와 기사가 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무파를 떠나기 전, 둘도 없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벗이 하나 있었다네.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훌륭한 사내였지."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싶었지만 칼은 일단 경청했다.

"그런데 기사 서임을 받고 나서 십여 년 만에 다시 무파를 찾아갔을 때 그 친구 역시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없었네. 듣기로는 산맥 밖을 잠시 나갔다가 한 여인을 만나서 첫눈에 반했다고 하더군. 무파를 나와서 그녀와 함께하기로 한 거지."

"......"

"그 뒤로의 행방은 알 수가 없어서 찾아가지 못했지만, 나는 멀리서나마 친구의 축복을 빌어주었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오래토록 행복하게 살기를 말이야. 한데... 운명이 참 얄궂더군."

헨리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홀데인 백작가의 가주와, 그 자제들 전원 살해. 총 한 명의 고위기사와 열일곱 명의 기사, 그리고 병사 마흔세 명 살해. 이후 추적을 위해 파견된 왕국군의 고위기사 셋을 추가로 살해."

"......"

"그 친구가 저지른 죄목이네. 그리고 긴 추적 끝에 완전히 지친 녀석을 붙잡은 게 바로 나와 내 단원들이었지."

칼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복수."

헨리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 가문의 망나니 차남 놈이 여인을 납치해 몹쓸 짓을 저지르고 살해했거든. 함께 있던 어린 아들도 그녀를 납치할 때 죽였지."

"......"

"지금 이 운송선 지하에 죄수로 갇혀있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그 친구라네. 루게시움에 수감되는 것만큼은 연줄이라도 동원해서 어떻게든 막고 싶었지만... 죄질이 너무 커서 역시 어렵더군. 출발 당일에 뒤늦게 추가된 죄수 후열에 그가 껴있었어."

헨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 빌어먹을 망나니 놈 하나 때문에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그렇게 망가졌으니..."

그 말대로 안타까운 사연이었기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며.

'고위기사를 넷이나 살해했다고? 레벨이 몇이길래...'

그때 봤던 주술사 죄수가 제일 위협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 껴있었던 모양이다.

묘한 거슬림.

새삼 바로 발밑에 그런 살인귀들이 한가득 모여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괜한 찝찝함을 느끼며 칼은 식사를 마무리했다.

선박의 밤이 서서히 깊어갔다.

* * *

식사를 마친 뒤, 집무실로 돌아온 헨리는 의자에 앉았다.

"......"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몸을 일으킨다.

탁자 한편에 놓여있던 술병을 챙기고서 도로 집무실을 나섰다.

그대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죄수들이 갇혀있는 선박의 감옥.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헨리는 어둠을 뚫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마지막 칸의 독방에 미동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죄수들과 달리 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지 않았다.

헨리는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바혼."

사내, 바혼의 고개가 서서히 들렸다.

생기 없는 공허한 눈빛이 헨리가 들고 있던 발광 마도구에 반사되어 형형히 비쳐졌다.

"술... 가져온 거냐?"

입에서 흘러나오는 잔뜩 쉰 목소리.

고개를 끄덕인 헨리가 품에서 술병을 꺼내들었다.

결박된 사지로 힘겹게 철창 가까이 다가온 바혼이 술을 꿀꺽꿀꺽 받아먹었다.

"크으."

순식간에 한 병을 싹 비우고는 입맛을 다시며 독방의 벽에 걸터앉는다.

헨리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제 사흘 뒤면 섬에 도착한다네."

그 말에 바혼이 헨리를 힐끔 바라봤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러 온 건가?"

"......"

"스테믹 군도라고 했었지. 한 번 갇히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죄수들의 섬."

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곳에 수감되는 게 아니었다면 필시 사형을 면치 못했을 테니."

"...대신 이제부터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이어나가게 되겠지."

루게시움.

그곳에 수감된 죄수들이 받는 처분은 둘 중 하나다.

마법사들에게 고문과 다름없는 온갖 끔찍한 생체 실험을 당하거나, 아니면 미지의 위험들이 득실거리는 섬의 미개척 지역들을 개간하는 데에 앞장서거나.

바혼이 물끄러미 헨리를 바라봤다.

마치 심연처럼 어두운 눈빛에 헨리는 순간 움찔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선하군."

"......"

"열심히 돈을 모으고 모아 마침내 그럴듯한 잡화점을 하나 장만했었지. 반평생을 산속에 처박혀 검만 휘두르던 촌놈이 어엿하게 도시에 자리 잡은 날이었어."

"...바혼."

"아내는 신나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장터로 나갔고... 나는 뿌듯하게 가게를 청소하며 그녀가 돌아와서 만들어줄 요리를 기대하고 있었지.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이어나갈 삶이 얼마나 행복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해가 다 저물도록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찾으러 나간 내가 골목 어귀에서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야."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이어지는 말.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끅끅 웃으며 말했다.

"내가 느낀 절망을 자네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다."

"...루게시움은 한 번 갇히면 죽기 직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네."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오겠지."

"자네는 이미 복수를 마쳤어. 그 망나니 놈은 물론이고, 무고한 이들까지 모조리 죽여가며 놈의 가문도 멸절시키지 않았나."

"한데 내 마음은 아직도 복수심으로 들끓는군. 놈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자들 역시 모조리 죽이다 보면 이 갈증이 해소되겠지."

"대체 언제까지 헛된 망념에 사로잡혀 있을 생각인가!"

거센 일갈에 바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건 나도 알 수 없네."

입가에 걸린 소름 끼치는 미소.

광기마저 넘실거리는 그 웃음에, 헨리는 오싹함을 느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마지막 날에 다시 한 번 찾아오지."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죄수실을 빠져나왔다.

지하의 어둠 속에 바혼의 모습이 다시금 서서히 묻혔다.

* * *

감옥의 경비를 서는 두 기사.

"며칠 뒤면 드디어 도착이군."

동료가 들뜬 기색으로 하는 말에 데인은 작게 혀를 찼다.

"어차피 쉬지도 못하고 다시 배에 올라야 할 텐데, 뭐가 그리 신났어?"

"돌아올 때는 그래도 술을 마실 수 있잖냐."

"단장님 성격 알면서 술은 무슨... 마셔도 어차피 몰래 한 잔씩밖에 못 마실 것 알면서."

"크크,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그렇게 잠시 잡담을 떨던 중, 데인이 은근슬쩍 동료에게 말했다.

"그런데 좀 출출하지 않나? 식당에 가서 간식거리라도 가져와봐."

"뭐? 에이씨... 알겠다."

그에 동료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저번에는 데인이 했었기 때문이다.

본래 경비를 서는 중 자리를 비우는 건 상상도 못할 일었이지만, 한 명만 잠깐 벗어나는 거고, 곧 있으면 섬에 도착하기에 모두의 정신이 조금씩 해이해진 상태였다.

애초에 꼼짝없이 묶여 철창에 갇힌 죄수들이 어떻게 탈옥을 시도하겠는가. 경비라고는 하지만 사실 별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

그렇게 점점 멀어진 동료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 걸 확인한 데인은, 서둘러 죄수실로 들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가장 안쪽에 있던 독방 중 하나였다.

"이봐! 어서 일어나라."

치렁치렁한 머리칼의 괴인.

철창 반대편에 갇혀있던 주술사 죄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 선박의 죄수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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