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티우스의 소집 (2) >
자유도시 아스티온.
"후우..."
여정으로 쌓인 피로에 한숨을 푹 내쉬며, 칼은 말에서 내려섰다.
뮬턴에서부터 북서쪽으로 먼 길을 달려 마침내 도착한 도시.
이곳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더 이동하면 나오는 게 최종 목적지인 칼날 산맥이었다.
성문을 통과한 칼은 말을 몰고 여관부터 찾았다.
방을 잡고 식사를 한 뒤, 다시 거리로 나가서 행인들을 붙잡고 물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한 마장간이 있습니까?"
귀찮다는 듯 무시하고 지나가는 몇몇을 거쳐, 한 사내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저쪽 골목을 통과해서 나가면 마법 상점들이 쫙 널려있소. 길목 마지막에 있는 휴스먼 마장간을 찾아가보시오."
칼은 발걸음을 옮겨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내의 말대로 골목을 나서자 거리를 가득 채우고 널려있는 상점들이 보였다.
'오, 여기는 제법...?'
보통 사기인 게 대부분인 마법 노점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몰랐는데 이 자유도시는 마법 상계 쪽이 제법 발달했던 모양이다.
여기선 드디어 제대로 된 마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장.
마법사들을 거쳐 정제된 마석을, 마도구로 제작하기 위해 형태를 잡는 일을 하는 장인들.
대장장이와 비슷하지만 그들이 주로 다루는 재료가 마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보통의 광물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현재 칼이 마장간을 찾아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란헬의 노인과 전투 때 가까이서 허용한 일격 때문인지, 반쯤 박살난 실드 마도구를 수리하기 위함이었다.
케라믹에는 마장간이 없었기에 이동하며 천천히 고쳐야겠다 싶었는데, 중간에 들린 도시들에서도 죄다 수리할 만한 곳이 없어서 여태껏 못 고쳤다.
이윽고 도착한 마장간.
위쪽의 간판에 '휴스먼 마장간'이라고 쓰여있는 것이 보였다.
쓸데없는 미사여구가 없었기에 오히려 더 신뢰가 갔다.
"계십니까?"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후끈한 열기가 확 퍼져나왔다.
백발이 희끗희끗한 중년이 의자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쪽을 곁눈질한 중년이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칼은 멀뚱히 서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투욱.
곧 살펴보던 물건을 책상에 내려놓은 중년이 칼을 빤히 바라봤다.
용건이 뭐냐는 눈빛.
칼은 인벤토리에 넣어뒀던 은색 팔찌를 그에게 건내주었다.
"마도구를 수리하러 왔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중년이 금이 간 팔찌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상등품의 마석을 썼군. 이런 귀한 걸 이렇게 막 다루고 다니는가?"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칼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중년의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싶었다.
칼이 마장에 대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법사도 아닌 이가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 마석의 품질을 파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고 있었다.
잠시 팔찌를 더 만지작거리던 중년이 칼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수리는 힘들 것 같군."
"예? 왜..."
"금이 간 것만 매워서 될 게 아니야. 안쪽의 술식 코드까지 상한 것 같은데, 내가 마학자는 아니라서 그것까진 못 고치네."
중년이 조금 미안한 얼굴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한번 알티우스 지부로 찾아가보는 게 어떻겠나? 자네가 어느 학파의 마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대 관계만 아니면야 웬만해선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적당한 대가는 지불해야겠지만."
"...네?"
칼은 눈을 깜빡이다가, 곧 중년의 말을 이해하고 물었다.
"이 도시에 알티우스의 지부가 있습니까?"
중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몰랐는가?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든 보이는 게 마탑일 텐데."
"아..."
"여기 마장간을 포함해서 근처의 마법 상점들도 다 거기서 물자를 공급받고 있는 거네."
그게 알티우스 지부였구나.
이제서야 깨달은 칼이었다.
그냥 마법 학파의 건물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는데, 설마 알티우스였을 줄이야.
허울만 알티우스 소속이지, 사실상 외인이나 마찬가지인 칼은 자기 학파의 지부가 어느 도시들에 위치해있는지도 몰랐다.
"내부 술식을 고치고 다시 찾아오면 외부는 내가 수리해주지."
중년에게 인사를 한 뒤 칼은 마장간을 나왔다.
'그래도 정식 학파원인데, 설마 도움을 못 받지는 않겠지?'
저멀리 높이 솟아있는 마탑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지부는 중앙의 마탑을 중심으로 귀족가의 저택처럼 넓게 담벽이 쌓여있었다.
입구에는 양옆으로 경비들이 지키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신분증 보여주고 들어가면 되나?'
잠시 멈칫한 칼은, 마침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다른 마법사를 발견했다.
로브를 입은 청발의 젊은 여인이었다.
연구에 사용할 재료인지 무언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서 걸어들어가는 모습.
칼은 잘 됐다 싶어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잠깐만."
"......?"
"여기 지부 소속의 학파원이시죠?"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그녀가 조금 경계 어린 표정으로 칼을 훑어봤다.
지부 안에서는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종종 학파원들에게 뇌물을 먹여 안으로 몰래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있다 들었는데, 순간 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곧 칼이 꺼내든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제가 본원 소속의 학파원인데, 이쪽 지부에 좀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안내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티우스의 신분증.
그것도 견습 학파원이 아닌 정식 학파원의 신분증이었다.
더군다나 구석에 그려진 황금색 문양은 원로원의 증표가 아닌가.
일반적인 승급 시험이 아니라, 무려 원로원에서 직접 임명한 정식 학파원이라는 뜻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깜짝 놀란 그녀가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난데없는 호칭에 칼도 놀랐다.
'...선배? 갑자기?'
지부가 달라도 서로 선후배라고 부르고 그러나?
학파에서 활동을 해본 적 없는 칼이었기에 그런 부분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아무튼 안내를 좀..."
"네네! 물론 해드려야죠! 선배님께선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힘차게 대답하고 먼저 나아간 그녀가 끼긱 걸음을 멈췄다.
"어, 저기... 그런데 어디로 안내를 해드려야 하죠?"
"......"
칼은 피식 웃으며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여인의 이름은 라일.
이곳 아시티온 지부의 1급 견습 학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밖에도 이것저것 뭔가 열심히 설명했는데, 학파 내 직책 시스템을 모르는 칼로서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적당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나저나 견습 학파원인데 서클이 상당히 높은걸.'
그녀의 경지는 3서클이었다.
칼이 기억하기로 알티우스 정식 학파원의 최소 서클 조건도 3서클이었다.
나이가 젊은 걸로 보아, 아직 견습 학파원인 건 연차가 쌓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마도구 술식 코드를 고쳐야 한다고 하셨죠? 그럼 마학관으로 안내해드리면 되겠네요."
칼은 그녀가 들고 있는 짐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좀 들어드릴까요?"
"예?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너무 격렬히 거절해서 더 묻기도 뭐 했다.
"...급한 것도 아니니 볼일 있는 곳부터 먼저 들리셔도 됩니다."
"아, 그래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꽤 무거운 짐이었는지 라일이 반색하며 걸음을 돌렸다.
중앙 탑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며, 그녀가 칼에게 말했다.
"그런데 본원에서는 인원이 거의 다 도착한 줄 알았는데, 따로 오신 걸 보니 중간에 일이 있으셨나 봐요."
"......?"
뜬금없는 말에 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에 라일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번에 천검성으로 이동할 인원으로 오신 게 아니었나요?"
"......?!"
천검성?
전혀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이름에 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본원에서 왔다면서 그걸 왜 모르지?
라일은 칼에게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칼날 산맥에서 발견한 마석 광산.
그와 관련하여 천검성 측에서 제안한 친선 대련.
그리고 이제 천검성으로 떠나기 위해 이곳 아스티온 지부에 모인 본원의 마법사들.
"......"
설명을 모두 들은 칼은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겼다.
'...뭐지, 이 미친 우연은?'
마침 자신 역시 천검성주를 어떻게든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이번 알티우스의 대열에 껴서 천검성으로 이동하면 훨씬 일이 쉬워질 터였다.
칼은 속으로 환희를 터뜨렸다.
일단 마도구부터 고치고 본원 측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래서 이제 곧 본원의 원로님 한 분도 도착하실 거라 하더라구요. 지금 지부가 완전히 난리가 났..."
말을 잇던 라일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복도 반대편에서 마법사 몇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무표정한 얼굴의 청년이 라일을 힐끗 바라봤다.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
청년의 시선이 칼에게로 옮겨졌다.
칼도 뭘 보냐는 듯 마주 바라봤다.
"쯧."
돌연 혀를 차더니 성큼성큼 두 사람을 지나치는 청년.
"이것들 상태가 왜 이래? 인사도 똑바로 안 하고."
뒤따르던 두 사내가 사납게 칼을 노려보며 마찬가지로 지나쳤다.
'뭐야? 저것들은.'
칼은 인상을 찌푸렸다.
라일도 멀어져가는 그들을 은근히 째려보며 말했다.
"본원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방금 앞에 섰던 사람이 그 유명한 전투부장 그람벨 님의 제자라는데, 어째 성격이 영... 아!"
조용히 중얼거리던 그녀가 아차 싶어 칼을 바라봤다.
방금 한 말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서로 모르는 사이인가? 하긴, 본원은 여기 지부보다야 훨씬 넓을 테니...'
대충 알아서 납득하던 라일의 눈빛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저,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라일이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후다닥 그들이 들어간 곳으로 향했다.
"...뭐야?"
홀로 남겨진 칼은 멀뚱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 * *
"전부 다 나가라. 걸리적거리니까."
청년, 르믹의 말에 연마실에 있던 학파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벌써 며칠 째 반복되는 일이었다.
시시각각 멋대로 연마장에 들어닥치는 저놈 때문에 마법 훈련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결국 누군가 불만을 내뱉었다.
"아무리 당신이 높으신 분의 제자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여긴 지부원들에게 주어진 공간입니다. 개인 연마실도 있는데 이곳에 와서 자꾸 행패를 부리시는 이유가 뭡니까?"
피식 웃은 르믹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뻗어나간 포스가 그의 몸을 낚아채 눈앞까지 끌어왔다.
"......!!"
"그야 내가 여기가 더 마음에 드니까. 너희처럼 열등한 것들 때문에 내 수련이 조금이라도 방해받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온몸을 포스로 묶인 지부원은 공중에 떠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연마장 안에 있던 다른 지부원들이 질린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촤악!
그때 누군가 쏘아낸 포스가 르믹의 포스를 끊어버렸다.
구속에서 풀린 지부원이 바닥에 떨어지며 자유를 되찾았다.
"이건 도가 좀 지나치십니다, 선배님."
르믹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연마장 안으로 뒤따라온 라일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학파원들 간에 공격성 마법을, 그것도 학파 내에서 사용하는 건 엄밀한 금칙입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십니까."
"뭐? 이게 감히...!!"
그 말에 르믹의 뒤쪽에 서있던 청년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르믹이 갑자기 피식 웃더니 그들을 말리듯 손을 들었다.
"뒷감당이라, 너야말로 나한테 그따위 망언을 내뱉어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전 학파 내의 규율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걸 어긴 건 선배님이시고요. 그리고."
라일이 숨을 푹 내쉬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께서 아무리 대단한 분이라 하셔도 저희 지부원들을 무시하실 자격은 없습니다. 비록 선배님만큼 뛰어난 자질을 지니진 못했어도, 모두가 진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걸 격려해주시지는 못할망정 깔아뭉개고 이렇게 방해하시다니요."
거침없이 내뱉어지는 그녀의 말에 주변에서 듣고 있던 지부원들도, 르믹의 뒤에 서있던 청년들의 표정도 점점 창백해졌다.
그때 르믹이 돌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아, 우리 내기 하나 할까?"
"...내기라뇨? 무슨?"
르믹이 걸음을 옮겨 연마장의 중앙에 섰다.
지부원들이 후다닥 거리를 벌려 구석으로 물러났다.
"나는 포스 마법만을 사용하겠다. 너는 어떤 마법을 사용하든 좋으니, 나를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게 해봐라."
"......"
"만약 성공한다면 네 말대로 학파원에게 마법에 쓴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그리고 다시는 여기를 찾아오지도 않겠다."
그 말에 라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못하겠나? 고작 이 정도도 못하면 아무리 자질이 하찮다 한들 노력한 거라고 할 수 있겠어?"
오히려 반대였다.
르믹의 말은 터무니없었다.
아무리 그가 4서클이고 라일이 3서클이라고 해도, 고작 포스 마법만으로 상대하겠다니.
"...절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그러니까 어서 해보라는 거다. 부담 따윈 가질 필요없어.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지만, 설마 내가 다친다고 해도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까."
르믹이 입가에 비웃음을 걸고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 태도에 라일도 이를 갈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사람을 무시해도 적당히 해야지...!!"
르믹의 말대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그도 실드를 펼칠 테니 불상사가 일어날 리는 없었다.
화르륵!
르믹을 향해 쇄도하는 거대한 불덩이들.
불덩이가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도 르믹은 여유로웠다.
돌연 공중에서 우뚝 멈춰선 불덩이들이 촛불처럼 훅 꺼져버렸다.
"......!!"
그 광경에 라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법 마력을 쏟아부은 공격이 너무나 손쉽게 막혀버렸다.
빠지지직!!
곧장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사나운 기세로 뻗어나간 전격이 르믹을 뒤덮었으나, 마찬가지로 포스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
라일의 표정이 허망하게 변했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방어에 특화되지도 않은 포스 마법으로, 전격 마법조차 저리 쉽게 막아버린다고?
대체 마력 제어가 얼마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저런 비정상적인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시시하군."
화악!
섬전처럼 내뻗어진 르믹의 포스가 라일의 발목을 휘감았다.
"악...!!"
바닥에 넘어진 라일이 당황하며 르믹을 올려다봤다.
르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쪽에서 공격을 안 한다고는 한 적 없을 텐데?"
다시금 르믹의 포스가 날아들었다.
라일은 다급히 실드를 펼쳐 막으려고 했으나, 날카롭게 압축된 포스 마법에 허망히 박살나버릴 뿐이었다.
그 뒤로는 완전히 농락의 시간이었다.
바닥에 넘어뜨리거나, 몸을 묶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거나, 르믹은 라일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 광경을 보며 르믹을 따르던 청년들은 실실 웃었고, 지부원들은 참담한 표정으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으, 으윽..."
라일의 몸이 공중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르믹이 슬슬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 포기인가?"
"......"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군. 건방진 말을 지껄여서 잘못했다고 빌어봐. 그럼 내려주지."
라일은 입을 꾹 다물고 르믹을 노려볼 뿐이었다.
르믹이 혀를 찼다.
"싫으면 계속 그러고 있든가. 아니, 좀 더 험한 꼴을 보게 해줘야 되나?"
서걱!
그때 어디선가 날아든 포스가 르믹의 포스를 끊어버렸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끌어와 안전히 바닥에 안착시켰다.
"......?!"
르믹이 흠칫 고개를 돌렸다.
아까 라일이 그랬던 것과 달리, 이번 건 전혀 인지하지 못한 탓이었다.
어느새 연마실의 입구에 한 남자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뭐 이렇게 안 오나 했더니, 재밌는 짓들을 하고 있었네."
칼이 바닥에 널부러진 라일을 바라보다가, 르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랑도 한번 해보자. 그 내기라는 거."
< 알티우스의 소집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