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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화 (45/132)

< 플러랜 애시드 (1) >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의외긴 하군요. 행적을 감췄다길래 어디 깊은 산속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스칼렛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의외였습니다. 막상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니 학파가 있던 자리에서 멀리 이동한 것도 아니었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어디 산속 깊은 곳에 있었으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예...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칼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빨리 목표물을 찾아낸 건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스칼렛이 그에 관해 덧붙인 사실은 영 좋지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직접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곳으로 떠날 예정이십니까?"

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직접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혹시 실례라면..."

"아, 그래주신다면야 감사하죠. 실례는 무슨. 그런데 지부장인데 바쁘신 것 아닙니까?"

"지부는 당분간 본부의 인원들이 계속 관리할 예정이라 괜찮습니다."

저번의 블러드 스컬의 습격 때문인가?

뭐가 됐든 이쪽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래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지 조금 의아함이 들었다.

묘하게 저번보다 더 공손하고 조심스러워진 듯한 그녀의 태도에 칼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뒷조사도 끝났나 보네.'

10대 정보 길드가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큰 도움을 받은 은인이라 해도 최소한의 신분 파악조차 해놓지 않을 리가 없다.

플러랜 애시드를 찾으면서 이쪽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했을 게 뻔했다.

칼이 스스로 알티우스 소속이라는 것도 밝혔었으니, 본원의 원로와 연줄이 있다는 것과, 바드 시에서 있었던 일도 진작 파악했을 터.

물론 그런 인맥적인 부분을 빼도 칼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말도 안 되게 젊은 나이에 5서클의 경지를 이룩한 불세출의 천재니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다는 소리다.

헤르란도로서는 당연히 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소한 편의를 봐주는 건 당연했다.

"당장 출발할 생각인데, 뭐 따로 챙기실 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간단한 짐과 말만 준비해오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곧장 도시를 빠져나가 말을 타고 먼 길을 출발했다.

뮬턴 왕국에 위치한 케라믹 시.

지구로 귀환의 단서를 가진 인물이 있는 곳을 향하여.

* * *

보름이 훌쩍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 케라믹에 도착했다.

"다 왔군요."

스칼렛이 저멀리 보이기 시작한 도시 성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서서히 말의 속력을 낮췄다.

성문을 통과하고 안으로 들어간 뒤 그녀가 물었다.

"지금 바로 찾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관에서 먼저 휴식을..."

"바로 찾아가죠."

야영을 하며 왔기에 피로가 쌓이긴 했지만, 지금 칼에게는 잠깐 쉴 시간도 아깝게 느껴졌다.

스칼렛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여러 종류의 행인들이 누비는 대로를 지나 조금 구석진 거리로 들어섰다.

뒤따라 걷던 칼은 그녀에게 들었던 정보를 다시 상기하며 물었다.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했었죠?"

"예. 마력 포션이 주류인 잡화점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진작 대부분이 떠나가고, 지금은 한 명만 남았는데..."

"스승의 상태가 그러니 다 떠나간 거군요."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플러랜 애시드.

반드시 만나서 차원의 조각에 관한 이야기를 캐내야 할 상대.

하지만 헤르란도가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그는 현재 정상인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미친 사람처럼 하루종일 멍하니 넋만 놓고 있다 했던가.

대체 어떤 병인지도 알 수 없고, 원인을 모르니 고칠 수도 없고, 결국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하나둘씩 전부 떠나가 현재는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어째 시작부터 쉽지가 않네.'

칼은 정신이 나갔다는 그를 찾아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일단 직접 두 눈으로 상황을 살펴보는 수밖에.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둘은 한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위에는 간결하게 '포션 및 잡화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공간에 늘어진 진열대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잡다하게 놓여있는 여러 종류의 물건과 포션들.

칼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건을 계산하는 건지 카운터에는 이미 선객들이 있었고,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한 여인도 보였다.

"아, 어서오세요."

가게 주인이 맞는지, 여인이 칼에게 인사하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칼은 스칼렛에게 속삭여 물었다.

"저 사람이 플러랜 애시드의 제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뭔가 실랑이를 하는 듯한데, 중간에 껴들 수는 없었기에 칼은 잠깐 진열대나 구경하고 있기로 했다.

걸음을 옮겨 붉은 포션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치유 포션인가?'

살짝 뚜껑을 따서 살피자 잘 정제된 은은한 마력이 느껴졌다.

고작 잡화점에서 파는 것치고는 꽤나 상등품.

물론 현재 칼의 인벤토리에 있는 포션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칼이 가지고 있는 마력 포션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포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 그건 게임 아이템이니까.

물론 대륙은 넓으니 찾아보면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었다. 정말로 있다면 아마 부르는 게 값이겠지.

잠깐 딴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정말 계속 이렇게 나올 거요?!"

카운터에서 들려오는 고함.

칼은 고개를 돌렸다.

방금의 그 선객들이 여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버럭버럭 소리치고 있는 게 보였다.

"대체 우리 학파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뭐요? 이깟 좁은 가게에서 장사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니까!"

여인의 얼굴에는 깊은 인내심이 드러나있었다.

"제가 벌써 몇 번은 확실히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가입할 생각 전혀 없다고."

"아니, 그러니까 대체 이유가...!!"

칼은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스칼렛에게 물었다.

"저 진상 놈들은 뭡니까? 이 도시 안에 마법 학파라도 있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토젬 학파라는 중규모 마법 학파의 지부가 하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곳 소속의 마법사들인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기는 합니다만..."

"억지로 자기네들 학파에 가입시키려는 것 같은데요."

"예. 플러랜 애시드의 제자인 배럿, 그녀의 포션 제작 실력은 이곳 케라믹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러니까 그녀의 실력이 탐나서 저렇게 억지로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 저게 대체 찌질하게 뭐 하는 짓이야?

잠깐 대화를 나눈 사이에 분위기는 더욱 과열되고 있었다.

여인의 단호한 거절에 마법사 중 하나가 씩씩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진열대에 있는 포션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거 계산하시오. 설마 물건까지 안 팔겠다고 뻐튕기는 건 아니겠지?"

"...1골드 5실버입니다."

와장창!

동시에 그가 포션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지듯 떨어뜨렸다.

"어이쿠, 실수로 손이 미끄러졌군. 이걸 미안해서 어째야 되나?"

"......"

여인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마법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실수라니까 뭘 그렇게 노려보시나. 사과의 의미로 값은 더 드릴 테니 표정 푸시오. 자."

후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금화 한 닢과 은화 여러 닢.

어서 주우라는 듯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기까지 한다.

"안 줍고 뭐 하시오? 어서 계산하셔야지."

그 개 같은 짓거리에 가만히 보고 있던 스칼렛도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촤악!

갑자기 두 마법사의 머리 위로 붉은색 액체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들이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어헉! 뭐, 뭐야?!"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옆에 빈 유리병을 들고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칼이었다.

설마 저놈이 지금 저걸 우리한테 뿌린 건가?

상황을 파악한 마법사들이 머리칼을 포션으로 적신 채 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이 미친! 이게 지금 뭔 짓이야!"

칼이 태연하게 빈 포션 병과 그들을 번갈아보다가 말했다.

"이거 몸에 좋은 건데, 뿌려줬으면 고마운 줄 알지 왜 화를 내시나?"

그 태도가 너무나도 뻔뻔했기에 그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 그렇지. 그래도 옷이 엉망이 됐으니까 좀 그렇긴 하겠지. 새 옷 살 돈은 따로 챙겨줘야겠네."

후두두둑.

칼은 품에서 금화 몇 닢을 꺼내든 뒤 그들의 발밑에 던져버렸다.

"얼른 안 챙기고들 뭐하시나? 인심 써서 넉넉하게 준 건데."

"......"

그제서야 자신들이 한 짓을 그대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마법사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 이 새끼가!"

그들 중 하나가 마력을 끌어올려 칼에게로 쏘아내려 했다.

카운터 너머에서 멍하니 상황을 보고 있던 여인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뻗으려던 때였다.

"위험...!!"

콰앙!

그러나 어째서인지 코피까지 내뿜으며 튕겨나간 쪽은 칼이 아니라 마법사 쪽이었다.

그 광경에 다른 동료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굳었다.

"...어, 어?"

"너도 꺼져."

콰앙!

순식간에 가게 밖으로 쫓겨난 두 마법사.

간단하게 진상들을 처리한 칼은 고개를 돌려 카운터의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가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칼은 싱긋 웃으며 말을 건냈다.

"포션 값은 따로 물어드리겠습니다. 플러랜 애시드 님의 제자 되십니까?"

"...예?"

"그분을 만나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칼은 알티우스 신분증을 꺼내서 여인에게 보여주었다.

여인, 배럿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 알티우스? 알티우스 학파에서 저희 스승님을 왜...?"

"별 건 아니고, 그분에게 마법에 관해서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배럿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는지는 둘째치고, 알티우스라는 대단한 소속의 마법사가 이미 망해버린 학파의 마법사인 자신들에게 무슨 조언을 구할 게 있다고?

"혹시 어렵겠습니까?"

칼의 정중한 물음에 배럿이 다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물론 칼은 그녀가 당황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곧 배럿이 한숨을 내쉬더니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희 스승님께서 지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셔서 그렇습니다."

"아... 혹시 어디가 편찮으신 겁니까? 그래도 어떻게 한 번 얼굴이라도 뵙고 싶습니다만."

뭐라고 더 말하려던 배럿은, 그냥 보여주는 게 설명이 빠르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칼의 태도가 여느 고위 학파의 콧대 높은 마법사들과 맞지 않게 워낙 정중했기에 거절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방금 진상들과 같은 어중간한 학파의 마법사들만 해도 어쭙잖은 자만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것이 보통의 현실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칼은 스칼렛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배럿을 따라서 가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짧게 이어진 복도 구석에 위치한 방 하나.

똑똑.

"스승님, 들어가겠습니다."

그녀가 노크를 한 뒤 방문을 열고 먼저 들어섰다.

칼도 뒤따라서 들어갔다.

약간의 텁텁한 먼지 냄새와 함께,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한 중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바로 플러랜 애시드였다.

"스승님."

배럿이 다시 한 번 플러랜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이 계속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

영혼이 빠져가가기라도 한 듯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칼을 돌아봤다.

"보시다시피 일 년 가까이 저런 상태이십니다."

"무슨 병에 걸리신 겁니까?"

"그조차도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죠. 원인이 뭔지 알면 최소한 고쳐보려 노력은 할 수 있을 텐데..."

칼은 연신 한숨을 내쉬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플러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였다.

돌연 플러랜이 고개를 돌려 칼을 바라봤다.

이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칼은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지구인?"

< 플러랜 애시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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