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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3화 (43/132)

< 유적 탐사 (9) >

빠지지직!!

몰아치는 전격 마법이 실드를 가볍게 부숴버리고, 안에 있던 토바즈마저 지져버렸다.

"크아아아악...!!"

고통에 찬 괴성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놈.

칼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봤다.

주변에 있던 원정대들 역시 넋을 놓고, 입만 쩍 벌린 채 상황을 지켜봤다.

"주, 죽은 건가...?"

고위마법사를 일격에?

비록 배신했지만 어스문의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도 토바즈가 이쪽이 떼로 덤벼들어도 감당하기 벅찬 강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원정대에 또 다른 고위마법사나 고위기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는 무려 5서클이니까.

그런데 그런 상대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젊은 모험가가... 아니, 이제 모험가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고작 스물 언저리나 되어 보이는 젊은 마법사가, 그런 토바즈를 일격에 끝장내버린 것이다. 한눈에 봐도 어마무시한 괴물 역시 손쉽게 죽여버렸고 말이다.

원정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정체부터 시작해서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은 것 투성이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눈치가 보였으니까.

"너, 너 대체 어떻게...?"

칼의 바로 옆쪽에 있던 에릴만 겨우 더듬거리며 물을 뿐이었다.

칼은 태연하게 되물었다.

"뭐가요?"

"뭐긴... 방금 마법을..."

"전 제가 마법사가 아니라고 한 적 없는데요."

"......"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할 말이 많으면서도 동시에 없어진 에릴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런 엄청난 힘을 지금까지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왔으면, 말을 하든 안 하든 그게 숨긴 거나 다름없지 뭐란 말인가?

칼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 끝난 거 아닙니다. 저거 아직 안 죽었어요."

"......?"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쓰러진 토바즈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전격의 여파로 스파크가 튀어오르는 몸. 미동도 없는 모습.

그러나 칼은 놈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았다.

적당히 힘 조절을 하기도 했으나, 애초에 전격에 제대로 타격을 받았으면 비명도 못 지르고 바로 즉사해버렸을 것이다.

감지 마법을 통해 살펴도 놈의 생명 반응은 아직 끊기지 않고 멀쩡했다.

"크으윽..."

예상대로 토바즈가 곧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놈의 전신을 시커먼 기운이 갑옷의 형태로 뒤덮고 있었다.

칼은 그것이 마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놈이 소속된 흑마법 학파와 관련하여 힘의 원천을 추측했다.

'악마에게 받은 힘이겠군. 대충 재생하고 방어 능력 정도인가?'

헬자르 학파는 악마에게 힘을 빌리거나 사역하는 마법이 주를 이루는 흑마법 학파다.

흑마법사의 경지가 높으면 악마에게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종처럼 부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닐 경우 그 반대로 관계가 역전되어 악마에게 힘을 받고 상전처럼 모시게 되기도 한다.

토바즈, 놈의 경우는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딱 봐도 후자 쪽이었다.

"넌...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냐?"

상태가 도로 안정된 듯한 토바즈가 숨을 몰아쉬며 칼을 노려봤다.

그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여러모로 몹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칼은 어깨를 으쓱였다.

"감전됐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해? 나야 계속 원정대에 껴있었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냐니."

"같잖은 말장난을... 뭐, 됐다. 어차피 신경 쓸 이유도 없으니."

토바즈의 몸을 둘러싼 흑색 갑주가 더욱 짙게 뭉쳐졌다.

"제법 실력이 있는 모양이다만, 여기서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하는 것엔 변함이 없다.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해서 상대해줄 테니 어디 마음껏 발악해보거라!"

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죽이려고 했다면 방금 쓰러져 있을 때 진작 마무리를 지었을 것이다.

그래도 캐내야 할 건 있어서 기껏 목숨을 붙여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우습기 그지없었다.

"전격 마법 한 번 맞고 사경 헤매다 돌아온 놈이 할 말인가, 그게?"

"흥!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

"그 검은 갑주, 악마한테 받은 힘을 아주 맹신하고 있는 모양인데 말이야."

"......!!"

토바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설마 악마의 존재에 대해 칼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나도 지금부터는 전력이니까,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보자고."

칼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전방으로 어지럽게 떠오르는 마법진들.

화아아악!

화염, 얼음, 전격, 온갖 종류의 원소 마법들이 말 그대로 해일처럼 몰아쳤다.

토바즈도 기겁하며 마법을 캐스팅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캐스팅 속도도, 마법의 순수한 파괴력도, 그리고 무엇보다 상식을 초월하는 연계 속도가.

토바즈는 그 무엇에서도 칼의 언저리는 커녕 발끝조차 미치지 못했다.

아무리 같은 5서클이고 고위마법사라도 격의 차이는 너무나 명확했다.

허공에서 충돌한 두 마력이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칼의 마법에 초라하게 찢기고 흩어져서 소멸되는 토바즈의 마법들.

콰과과과광!!

치명적인 살상 마법들이 그의 전신을 강타한다.

마법의 여파에 사방으로 아찔한 충격이 울리며 공동 전체가 진동했다.

칼의 뒤쪽에 서있던 원정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의 위력에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흐아아아악!"

그때부터 토바즈는 차마 반격도 하지 못하고 타들어가는 격통에 비명만 내질렀다.

전신을 방어하고 있는 악마의 갑주에도 금세 한계가 찾아왔다.

쩌엉!!

마지막 전격 마법이 끝내 갑주를 산산히 부숴버리고.

칼은 너덜너덜해진 토바즈의 육신을 포스로 바로 앞까지 당겨왔다.

사지에 얼음 송곳들을 꽂아버린 뒤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놈이 간헐적으로 몸만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끄, 끄어어..."

칼은 그런 토바즈의 가슴팍을 짓밟고서 꾹 눌렀다.

"전력을 다한다더니 별로 달라진 게 없잖아. 그깟 갑주 하나로 뭘 어쩌겠다는 건지."

"큭, 커헉!"

"원정대를 유적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뭐냐? 악마한테 제물로 바치려고? 네 목적이 뭔지 제대로 말해봐. 잘만 대답하면 살려줄 수도 있어."

피를 울컥울컥 뱉어내던 토바즈가, 칼의 물음에 돌연 실성한 듯 웃었다.

"흐, 흐흐! 무슨 같잖은 거짓말을... 악마의 존재에 대해선 어떻게 알아챈 거냐?"

"질문은 내가 했다. 대답은 네가 해야지."

"...쿨럭! 그래, 맞다. 내게 힘을 빌려준 악마에게 네놈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었지... 이래서야 꼴이 우습게 됐다만."

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게 제일 궁금한 건데 말이다. 제물로 바친다면서 시련이니 뭐니, 악신의 권역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대체 뭐냐?"

"여기가 악신의 권역인 건 대체 또 어떻게 알았...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쿨럭, 쿨럭!"

토바즈의 눈에서 점점 생기가 사라졌다.

그러나 입가에는 끝가지 기분 나쁜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내게 힘을 빌려준, 이곳 유적에 존재하는 악마는... 번뇌의 악신 갈리오스의 가호를 받고 있는 악마지. 네놈들이 시련을 거치며 겪는 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이 모두 악마의 힘으로 치환된다는 거다. 큭큭! 뭐, 그런데 한 명도 죽지 않고 손쉽게 모든 시련을 통과해버린 건 완전히 예상 밖

이긴 했지만..."

아, 그런 거였군.

그제야 칼은 돌아가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번뇌의 악신의 가호를 받는 악마는, 그 힘을 번뇌를 통해 얻어낼 수 있다.

놈이 말한 제물은 단순히 육신을 뜻하는 게 아니라 시련의 과정을 의미했던 것이다.

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쉬워서 어쩌냐? 네 말마따나 별 수고도 없이 시련을 통과해버렸으니 악마 놈에게 힘이 거의 전해지지도 않았겠군. 무슨 봉인 같은 거라도 풀 생각이었나 본데, 어림도 없..."

"...뭐? 봉인?"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이 된 토바즈가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푸흐흐! 푸흐하하핫!"

"......"

"이제 보니 아주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었군. 봉인? 설마 이곳의 악마가 봉인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왜 이런 짓을 벌인 건데?"

"그야 단순히 악마의 힘을 회복시키려는 차원에서였지, 큭큭... 그래서 애초에 너희들이 시련을 모두 통과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던 거다."

토바즈의 숨이 끊기기 직전으로 미약해졌다.

"네놈도 곧 길동무가 될 테니 아주 원통한 죽음만은 아니겠구나. 시간이 지나면... 이제 곧 악마가..."

투욱.

떨구어지는 고개.

그렇게 토바즈는 죽었다.

칼은 발을 치우고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곧 악마가 뭐?'

그 말의 의미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저편에 있던 거대한 석문이 멋대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싹한 기운. 안쪽에서 드러나는 거대한 형상.

쿠웅... 쿵...

칼도, 원정대들도 모두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흐릿했던 형상이 점점 선명해지더니, 곧 문 밖으로 빠져나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족히 10미터는 넘을 법한 인간형의 육중한 몸체.

검은색 피부에 근육질의 전신이었고,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뾰족 솟아나있었다.

놈은 칼이 아는 종류의 악마는 아니었다.

웬만한 네임드가 아니고서야 배경 설정으로나 등장한 잡몹들까지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물론 그 잡몹도 지금 수준에서는 무척이나 위험했지만.

이곳은 시련을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빠져나가는 탈출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호랑이 아가리였을 뿐이지.

[Lv.59]

[중급 악마, 번뇌의 종자]

정보를 확인한 칼이 작게 침음을 흘렸다.

'59레벨...'

50레벨대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적이라는 뜻이다.

그건 단순히 몇 레벨 차이로 설명되는 격차가 아니었다.

52레벨의 케르스를 53레벨의 칼이 일격에 죽였듯이, 높은 레벨일수록 단 몇 레벨로도 상당한 격의 차이가 발생한다.

칼이 보통의 5서클보다 훨씬 강하긴 하지만 59레벨이라는 수치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아주 많이.

악마가 내뿜는 소름 끼치는 기운에 원정대가 모두 선 채로 굳었다.

방금 전에 죽은 마수, 케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흉흉함이었다.

그나마 칼만이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놈을 응시했다.

- 역겨운 인간 놈들이 여기까지는 어떻게 들어온 거냐?

공동 전체에 울리는 기분 나쁜 저음.

악마가 핏빛 눈동자를 번뜩리며 사위를 훑었다.

그러다가 이내 죽은 토바즈를 발견했다.

- 뭐야, 저놈은 왜 또 저기 뒈져있는 거지? 힘을 회복시켜 주겠다더니... 하여튼 말만 번지르르한 버러지 놈. 고작 이딴 벌레들한테 죽은 건가.

칼과 원정대를 훑어보는 악마의 눈에 살의가 피어올랐다.

아직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다.

칼은 놈을 처리해야 비로소 퀘스트가 완료될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퀘스트와 별개로 이 자리에서 살아나가려면 아무래도 놈을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선빵필승.'

【레이 버스터】

번쩍!!

거대한 백색 광선이 악마의 머리를 정확히 격중했다.

당연히 이걸로 쓰러뜨릴 수는 없다.

그래도 상당한 피해는 주고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칼은 생각했다. 그러나...

스으으!

다시 드러난 악마의 얼굴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어느새 악마의 전신을 감싼 검은 기운이 공격을 완벽히 차단한 것이다.

방금 전 토바즈가 사용했던 그 능력.

능력의 본 주인이 되는 악마의 갑주는 토바즈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력하고 견고했다.

"허..."

칼은 잠깐 질려서 주춤했다.

악마가 코웃음을 치며 그런 칼을 내려다봤다.

- 벌레 같은 인간 놈이 감히. 성물의 신성력도 아니고, 그따위 미천한 힘으로 내 갑주에 흠집이나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

그 말에 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잠깐 잊었다.

악마들의 성물의 힘에 약하고, 이쪽에도 그런 성물이 하나 있다는 걸.

"성물?"

- 그래, 성물. 내 암흑 갑주를 뚫을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성물의 신성력뿐이다.

"아... 그러냐? 그럼 성검으로도 충분할까?"

- 충분하다마다! 성검의 힘이라면 아주 종잇장마냥 쫙쫙 찢어갈기는 것도 가능하겠지, 흐흐! 하지만 네놈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 응?

돌연 허공에서 나타나 칼의 손에 쥐어진 황금빛 검을, 악마가 두 눈을 깜박이며 바라봤다.

검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기운에 악마는 영문 모를 오싹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잠깐만, 설마?

- 인간... 그게 뭐냐?

방금까지의 오만함과 당당함은 없고 악마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칼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목 따버릴 성검."

화아악!

곧장 성검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칼의 등 뒤로 눈부신 광휘의 고리가 나타났다.

< 유적 탐사 (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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