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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6화 (3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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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탐사 (2)

여관으로 돌아가니 홀 구석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파키온과 에릴이었다.

"칼! 어딜 갔다 온 거야?"

파키온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바로 어제 처음 만났는데 누가 보면 십년지기 친구 사이라고 오해할 정도.

이리 와서 앉으라는 듯한 손짓에 칼은 그들의 앞에 앉았다.

아직 식사도 안 했고, 어차피 할 말이 있었으니 잘 됐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아침부터? 부지런한 성격인가 보네. 이 바보랑은 다르게."

에릴이 파키온을 흘기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제 술을 꽤 많이 마셨으니 아침에 못 일어나서 낑낑대기라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잠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칼은 타이밍을 잡고 본론을 꺼냈다.

"이제 곧 유적으로 원정을 나가신다고 그랬죠?"

"응? 아, 그랬었지."

파키온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긍정했다.

옆의 에릴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더 자세히 말해주고는 싶은데 아쉽네. 시작하기도 전에 괜히 떠들고 다녔다가 트러블이 생길 수 있어서 말이야."

"그거 아쉽네요. 저도 던전이나 유적 같은 것에는 상당히 관심이 많아서요. 그래서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칼이 별 거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번 원정에 저도 참여할 수는 없겠습니까?"

"......??"

뜬금없는 말에 두 사람이 각각 스푼과 포크를 멈추고 칼을 쳐다봤다.

자신들이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어리둥절한 얼굴.

"방금 뭐라고?"

칼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저도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좀 껴주실 수 없을까요?"

"어...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칼이 고개를 끄덕이자, 파키온이 곤란한 표정으로 웃었다.

"좀 너무 뜬금없는데. 갑자기 그렇게 껴달라고 말을 해도, 음..."

"안 돼."

단호한 대답이 에릴 쪽에서 들려왔다.

그녀가 칼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야, 우리 어제 생판 처음 만난 사이야."

"그렇죠."

"그걸 알면서 갑자기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 신뢰도 없고, 그렇다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대체 너의 뭘 보고 원정에 껴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한 반응이었다.

던전이나 유적 탐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보물을 찾는 것.

그렇기에 아무리 신뢰가 깊은 동료 사이라도 언제든 서로 등에 칼을 꽂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거듭 신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제 고작 하루 만나서 밥이나 몇 끼 같이 먹은 놈팽이를 원정에 낀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왜 그런 짓을 할까.

그나마 면면에서 쌍욕을 먹지 않은 건 파키온과 에릴의 성격이 좋은 편이기 때문이리라.

"너 원정을 무슨 관광 같은 걸로 착각하고 있냐? 유적이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 몰라? 멋모르고 들어갔다간 입구부터 함정 밟고 화살비에 고슴도치 되서 죽는다고."

"......"

"너 혼자만 위험한 거면 또 몰라. 니가 그렇게 헛짓거리하면 다른 사람들까지 다같이 피해를 본다는 게 문제지. 짐덩이만 될 게 뻔한 걸 우리가 왜 데려가야 되는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구구절절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이었기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설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마법사라는 점을 밝혀서 설득할 생각은 아니었다.

어스문이라는 최상급 학파의 마법사들이 원정을 주도하는데, 이들에게 마법사라는 인력이 굳이 더 필요할 리가 없었다.

물론 본 실력을 드러내면 고작 그런 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고위마법사라는 엄청난 전력이 원정을 돕겠다는데, 이미 마법사가 넘쳐난다고 한들 거부할 곳이 있겠나.

단지 그렇게 하면 정체와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어스문 때문에 알티우스 소속이라는 것도 밝힐 수 없는 마당이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마법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순간 유적 구경 좀 하자고 왜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짓을 하고 있나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왕 얘기를 꺼냈으니 끝까지나 해보기로 했다.

이래도 안 되면 그냥 포기하지, 뭐.

"절 원정에 데려가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에릴이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어느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는 건데?"

"이제서야 밝히는데, 사실은 저도 모험가입니다."

그 말에 파키온과 에릴의 얼굴에 떠오른 황당함이 두 배가 됐다.

"갑자기?"

"제국에서 주로 활동했었습니다. 당연히 던전이나 유적 탐사도 많이 해봤고요. 이래도 도움이 안 될까요?"

에릴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흘렸다.

칼의 말은 누가 들어도 방금 막 지어낸 거짓말이었으니까.

나이도 어려 보이는 놈이 유적 탐사를 많이 해보긴 개뿔.

"아, 그래? 그럼 유적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말해..."

"지반 체크, 통풍 체크, 입구 주변에 감금형 트랩이 있는지 체크, 발자국이나 배변 등의 몬스터 흔적 체크, 내부 마력 체크는 마법사들이 해주겠고, 일단 이 정도만 해도 대충 유적이 어떤 유형인지는 알 수 있죠."

"......"

거침없는 대답에 에릴의 입이 잠시 다물어졌다.

"어, 어떻게 기본은 알고 있네. 그럼 그 유형에 뭐가 있는지 말..."

"입구에 감금형 트랩이 있으면 안쪽도 트랩이 주를 이루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그 부분을 조심해야 하고, 몬스터 흔적이 나오면 방 하나에 몰려있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 통로 간 관문을 열 때와 주의하고, 천장을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부 마력 수치가 높으면 마법 결계가 있다는 뜻이니 마법사들이 활약을 잘 해줘야겠죠."

"......"

"이런 것들이야 기본 중의 기본이고, 더 어려운 질문도 상관없습니다."

파키온이 입을 쩍 벌렸다.

에릴도 내색은 안 했지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후에도 몇 가지 더 어려운 질문이 날아들었지만 칼은 전부 완벽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모르고 있던 정보까지 말해서 역으로 파키온과 에릴이 놀랄 정도였다.

"어째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이 정도 지식을..."

"제가 좀 동안입니다. 실제 나이는 훨씬 많아요."

캐릭터 껍데기가 아니라 실제 정신 연령은 서른에 가까우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침음을 흘리던 파키온이 에릴을 쳐다보며 소곤거렸다.

"진짜 제대로 된 모험가가 맞나 본데, 데려가도 되지 않을까? 무력이야 그렇다 쳐도, 유적에 대해 저렇게 잘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원정대 쪽에는 뭐라고 말하게?"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이지. 한 명 더 낀다고 신경이나 쓰겠어? 애초에 우리 쪽 구성에는 간섭 안 하기로 했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바로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인데."

"야, 우리도 처음 모험단 꾸렸을 때는 서로 용병 의뢰나 몇 번 같이 한 사이였잖아.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이참에 똑똑한 새 동료도 들이면 좋은 거고. 그리고 후작가 기사들하고 어스문의 마법사들도 있는데 별 일이 있겠어."

칼은 둘의 귓속말을 엿들으며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동료는 무슨. 그냥 유적 구경 좀 한 번 해보고 싶을 뿐인데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

둘은 잠시 의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칼에게 말했다.

"좋아, 칼. 함께 원정에 가자고. 그런데 남은 문제가 하나 있는데..."

"대금 문제인가요?"

어스문의 부탁을 받고 길잡이로 나섰다 했으니 그만큼의 값을 지불받았을 터였다.

칼은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저는 돈 같은 거 안 받아도 됩니다. 원정대에 억지로 껴주시는 건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시원한 대답에 파키온이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건 우리가 좀 미안한데... 좋아, 이 문제는 나중에 원정이 끝나고 한 번 더 이야기하자고."

"그나저나 두 분 말고 다른 동료들도 있던 것 같은데, 그분들한테는 의견을 안 물어도 됩니까?"

"아, 걔들은 괜찮아. 어차피 이런 일에는 관심도 없는 놈들이니까. 자기들 받는 돈 쪼개지는 거 아니면 신경도 안 쓸 거야. 지금은 자고 있으니까 이따가 깨면 인사나 한 번 하라고."

아무튼 그렇게 칼은 무사히 유적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 * *

며칠 뒤 원정 당일.

칼은 슬롯 모험단과 함께 집결 장소인 남쪽 성문으로 이동했다.

파키온, 에릴, 그리고 뒤늦게 인사를 나눴던 크록과 아리스.

[Lv.28]

[모험가, 용병]

[Lv.26]

[모험가, 용병]

크록은 파키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한이었고, 아리스는 그냥 평범한 2서클의 마법사였다.

아리스가 힐끗 칼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적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파키온한테 다 들었지?"

"네."

중규모 유적으로 추측.

사전 조사에 따르면 입구 부근에 별다른 특색이 없기에 유형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좋아좋아, 아무튼 잘 해보자고."

그녀는 짧은 인사말만 건내고는 먼저 총총 나아가 크록에 옆에 붙어 떠들기 시작했다.

파키온의 말대로 두 사람은 칼의 갑작스러운 참여에 딱히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아예 관심이 없었다.

칼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원정만 끝나면 바로 헤어질 예정이니 거리를 두는 게 좋았으니까.

제일 먼저 집결지에 도착한 다섯 사람은 성문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이윽고 단테 후작가의 기사들과 어스문의 마법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허, 의외인걸. 후작가 쪽에서는 귀한 분이 직접 원정에 참여하려는 모양인데?"

파키온이 후작가 쪽의 중앙에 있는 한 여인을 바라보며 탄성을 뱉었다.

칼도 궁금해서 물었다.

"누군데요? 후작 영애입니까?"

"기사들이 호위하고 선 거 보면 딱 봐도 그렇잖아. 장녀인 로자리엘 단테인 모양이야. 과연 소문대로 엄청 아름다우시... 악!"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는 파키온의 등을 에릴이 후려쳤다.

"아주 그냥 달려가서 무릎 꿇고 꽃도 바치고 하지 그러냐? 응?"

"쓰읍... 그거 나더러 죽으라는 거지? 귀족 모욕죄로 바로 잡혀들어갈 텐데."

그렇게 원정에 참여할 이들이 얼추 전부 모인 듯 보였다.

그런데...

"......??"

잠시 그들의 인물 정보를 확인하던 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원정이 시작부터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저기, 파키온 씨."

"응?"

"플루톤 가문이 어디입니까?"

칼의 뜬금없는 물음에, 파키온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대답해줬다.

"플루톤 백작가라면 이곳 인근 영지의 주인이지."

"단테 후작가와는 어떤 관계인데요?"

"어? 글쎄, 아마 원수 관계였던가? 선조 때부터 가문 대대로 악연이 깊다고 들었던 것 같아. 영지가 서로 찰싹 붙어있으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겠지.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칼은 단테 후작가의 사람들 사이에 껴있는 한 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Lv.41]

[플루톤 가문의 첩자]

"혹시 말입니다."

"응?"

"저기 보이는 후작가 기사들 중에 플루톤 백작가의 첩자가 껴있기라도 하면요. 이번 원정을 기회를 잡아 어떻게든 개판 내려고 하겠죠?"

"...뭐,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무슨 가정이 뜬금없이 그러냐?"

칼은 말없이 시선을 옮겨 기사들 근처에 있는 몇 명의 사제들을 바라봤다.

파키온도 그걸 보고선 말했다.

"후작가에서 사제들도 몇 분 모셔온 모양이군. 마법사들보단 사제들 치유가 훨씬 효과가 좋으니 잘 된 일이지."

"......"

정말 잘 된 일인가?

만약 파키온이 칼과 같은 시야를 공유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런 말은 못했을 것이었다.

사제들 가운데, 한없이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Lv.38]

[배교자, 악신 숭배자]

그리고 그와 전혀 매치되지 않는 타이틀.

칼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어스문 학파의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파키온 씨."

"어, 또 왜?"

"제일 처음 유적을 발견하고 이번 원정대를 구성한 게, 분명 어스문 쪽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Lv.50]

[헬자르 학파의 흑마법사]

근데 왜 흑마법사가 껴있는 건데, 씨발.

어스문 쪽의 선두에 서있는 중년 마법사가 가진 타이틀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원정은 왜인지 느낌이 좋아. 내가 감은 꽤 좋은 편이니까 믿어도 된다고. 하하."

"파키온 씨."

"응?"

"그 감 어디 멀리 가져다 버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칼은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씨발, 대체 뭐지 이거...?'

시스템의 개꿀잼 몰카인가?

이 원정, 뭔가 좀 많이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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