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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3화 (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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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길드 (2)

"......"

정적이 이어졌다.

여인의 목에 검날을 겨눈 중년, 칼의 뒤에 서있던 두 전투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었다.

지부장인 그녀가 인질로 잡혀버렸으니 뭘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에.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외부인인 칼만 동요 없이 상황을 훑어볼 뿐이었다.

'...내분이라도 일어난 건가?'

칼은 중년을 바라봤다.

그는 다른 정보원들과 달리 가면을 착용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그렇게 미동도 없이 검을 겨누고 서있었다.

[Lv.35]

[헤르란도의 부지부장]

그의 인물 정보를 확인하자 나타난 타이틀은 부지부장.

역시 보이는 대로 내분이 맞는 듯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꼬이네.'

칼은 이 난데없는 상황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이들의 인력이 필요한 처지인 그로서는 지금 상황이 짜증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굶주린 배를 이끌고 식당을 찾아가서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강도가 주인장 머리에 대고 총을 겨누고 있는 격.

"톰크 아저씨... 아저씨가 왜?"

정적을 깨고 여인이 입을 열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충격과 불신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중년이 배신할 거라고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중년, 톰크는 그녀가 처음 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나 곁에서 가르침과 조언을 아껴주지 않았던 조력자였고.

또 본부에서부터 이곳 지부로 발령되어 내려올 때, 아직 부족한 그녀를 돕기 위해 함께 내려왔던 부친의 오랜 수하였다.

그의 배신은 부하 하나가 죽고, 목에 검날이 겨누어지고 있는 지금도 도저히 인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쿵, 쿵, 쿵...

그때 통로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또 걸어들어왔다.

대머리의 거한이었다.

손에는 도끼가 들려있었는데, 방금 막 사람 몇 명을 토막내기라도 한 듯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게 여기 하나냐?"

거한이 휘파람을 불며 방 안을 둘러봤다.

어느새 방 밖에서부터 은은히 흘러들어오는 비릿한 혈향, 그리고 인기척들.

여인은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톰크나 길드원 몇몇의 배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블러드 스컬?"

그녀는 직감적으로 거한의 정체를 눈치챘다.

거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너가 미리 말했냐?"

톰크가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우리 쪽 정보원들을 모두 죽였지 않습니까. 보고를 올릴 때 당신네들 이름을 넣었으니까요."

"뭐? 미쳤냐? 일 틀어졌으면 어쩌려고 그딴 짓을 하고 있어?"

"일이 틀어지지 말라고 그런 겁니다. 그래야 경계 매뉴얼대로 바깥의 정보원들을 모두 귀환시킬 수 있으니까."

"아아, 그렇군. 한 번에 몰이해서 처리하려고 그랬다는 거지? 이거 내가 오해했구만. 미쳤냐고 한 건 취소."

거한이 히죽 웃으며 중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여인은 그제야 흘러가는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부지부장 톰크가 길드를 배신했다.

그것도 블러드 스컬과 손을 잡고서.

"...말도 안 돼."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제가 뭔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거죠? 그렇죠? 아저씨가 배신 같은 걸 할 리가..."

"지부장님. 아니, 스칼렛."

중년이 말을 끊고서 말했다.

"내가 늘 말했을 텐데. 머리와 심장을 모두 차갑게 하고 상황을 보라고. 언제나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을 따라야 한다고."

"......"

"부지부장 톰크가 헤르란도를 배신하고 블러드 스컬에 붙었다. 부정할 것 없이 이게 진실이다. 내가 배신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믿기지 않는가 보군."

그에 잠시 말이 없던 여인, 스칼렛이 한층 차가워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대체 왜? 당신이 길드를 배신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그 누구보다 길드에 헌신해왔던 당신이?"

"이유? 이유라..."

톰크가 잠시 침음을 흘리다가 물었다.

"반대로 내가 궁금하군. 대체 왜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

"길드에 충성을 바치고 많은 걸 희생했다. 그렇게 반평생을 헌신해왔는데, 아직까지 올라온 자리라고는 여기다. 애송이 뒤치닥거리나 하며 이런 지부에서 부지부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톰크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결국엔 이쪽 일도 다 그런 거지. 배경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가 없어. 네 아비에게 나는 그저 말 잘 듣는 도구에 불과했을 뿐이다."

"......"

"위에서는 신뢰를 받고, 아래서는 존경을 받는 착실한 대원 역할도 이제 질렸다. 그래서 배신했다. 마침 고민이 깊을 때 저쪽에서 먼저 내게 접촉해오더군.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그녀가 톰크를 노려보며 물었다.

"도시 안에 있는 위장 대원들은 전부 다 죽였나?"

"물론."

"...지금 이곳 지부에 있는 이들도?"

"아, 여기 있는 놈들은 아직 안 죽였어."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거한이 끼어들어서 말했다.

"보아하니 네가 지부장인 모양인데, 이 배신자 놈한테 듣기로 그렇게 길드원들을 아낀다지? 그래서 유용하게 쓰려고."

후욱!

거한의 몸이 돌연 흐려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칼의 뒤에 서있던 전투원들의 목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덩치와 전혀 맞지 않는 가공할 속도였다.

콰앙!

전투원들은 차마 반격도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거한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그들의 머리를 꾹 눌렀다. 고통 섞인 비명이 새어나왔다.

그가 스칼렛을 바라봤다.

"네가 알고 있지? 더클, 그 돈 많은 돼지 놈이 조사하라고 시켰잖아. 그 정보를 어디에 따로 기록해놨을 리도 없고, 네년 머릿속에는 아주 잘 들어있겠지?"

"......"

"그러니까 얼른 불어. 네 수하들이 하나하나 사지가 비틀리고, 내장이 뽑히면서 뒈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이것들뿐만이 아니야. 지금 바깥에 제압당한 놈들도 네 눈앞에서 전부 그렇게 죽일 거다."

그 말에 스칼렛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 아주 끔찍하고 잔인하게.

원초적인 협박이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큰 효과가 있었다.

"...말한다고 해도 어차피 전부 죽일 테지. 그런데 네 말에 따라야 할 이유가 있나?"

"그거야 네 선택이고. 아, 그리고 너가 본부의 간부들 중 한 놈의 혈육이라고 했던가?"

톰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거한이 히죽 웃었다.

"잘 됐네.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테니 이년만 살려서 데려가면 되겠어."

스칼렛은 절망을 느꼈다.

상황에 아무런 돌파구가 없었다.

자신까지 꼼짝 못하는 마당에, 바깥의 길드원들도 모두 제압당했다. 블러드 스컬의 일원인 저 거한은 대체 어느 정도의 직급인지 말도 안 되게 강했다.

정보를 말하든 말하지 않든, 결국엔 모두가 죽게 되리라. 헤르란도의 오르만티스 지부는 전멸이었다.

"말 안 할 건가? 서로 어렵게 돌아가지 말자고. 나도 이놈들 하나하나 고문하면서 죽이기 귀찮아. 할 일 빨리 끝내고 술이나 빨러 가고 싶은데."

"......"

"아, 혹시나 너만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네가 유리한 상황이라고 착각하진 마라. 우리는 그냥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뿐이니까. 너도 알잖아? 시간을 들이면 못 알아낼 것도 없다는 거. 네가 여기서 입 다물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큭큭."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거한이 속한 조직은 전 대륙적인 범죄 조직, 블러드 스컬.

그들이 충분한 시간과 인력만 들인다면 알아내지 못할 것도 없는 정보였다. 그녀는 단지 조사 과정에서 아주 우연히 얻었을 뿐인 정보다.

꾸우욱.

거한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두 사람의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불안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스칼렛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던 그때였다.

"거래를 합시다."

상황과 맞지 않게 무덤덤한 음성에 시선이 몰렸다.

목소리를 낸 사람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잠시 잊고 있던 자였다.

[Lv.50]

[블러드 스컬의 행동대장]

칼은 거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스칼렛에게로 시선을 옮겨서 다시 한 번 말했다.

"거래를 합시다. 그럼 지금 상황은 내가 바로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치기라도 한 걸까?

모두가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다. 물론 칼은 지극히 정상인 상태였다.

현재 칼은 차라리 상황이 이렇게 되서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움의 대가로 헤르란도의 힘을 최대한 빌려달라고 하면 되겠군. 게다가 저 여자가 본부 쪽 간부의 혈육이라니, 어쩌면 본부의 인력까지도 동원할 수 있겠어.'

그때 거한이 입을 열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 새끼는 뭐냐? 길드원이야?"

톰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길드에 의뢰를 맡기려고 온 외부인입니다."

"아하, 고객이란 말이지. 그런데 어디가 좀 모자란 놈인가?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 같은데?"

두 전투원에게서 손을 떼고 일어난 거한이 저벅저벅 칼의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

"내가 지금 당장 네 머리통을 깨부술 건데, 살고 싶으면 그것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 한번 해봐."

후욱!!

공기 찢는 소리를 내며 거한의 주먹이 칼을 향해 내리쳐졌다.

그러나 예고한 대로 머리를 깨부수는 대신, 그의 주먹은 어느새 나타난 반투명한 푸른빛의 막에 막혀버렸다.

거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칼은 거한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스칼렛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해주면 당신은 내 부탁 하나를 최선을 다해 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까 사람 찾아달라고 했던 그거 말입니다."

"......"

"어때요. 거래, 하겠습니까?"

멍하니 있던 스칼렛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 사람의 정체조차 모르고 있었다.

몇 년 전에 폐쇄한 암어를 찾아들고 뜬금없이 지부에 찾아온 남자.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 또 정말 해결해줄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하, 할게요."

그녀의 신속한 대답에 칼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캐스팅한 마법을,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던 톰크에게 쐈다.

"...끄억!"

돌연 어깨 부근이 통째로 터져나가며 바닥에 쓰러지는 톰크.

"이 새끼가! 무시하지 마라!"

콰아앙!!

어느새 허리춤에서 다시 도끼를 뽑아든 거한이 실드를 재차 내리쳤다.

그러나 선명한 오러가 맺힌 도끼날로도 실드에는 금조차 내지 못했다.

50레벨.

이제 막 고위기사 경지에 오른 정도로는 칼을 상대하기에 한참 역부족이었다.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내 머리통을 깨겠어. 한 천 번은 휘둘러야 될 것 같은데."

빠지직!!

간신히 전격을 회피한 거한이 측면에서 다시금 파고들었다.

그는 몸집과 맞지 않게 의외로 민첩함이 주력인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칼의 마법보다 빠를 수는 없었지만.

촤악!

피분수가 튀어오르며 도끼를 든 거한의 팔이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놀랍게도 거한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돌진해왔다.

그러나 곧장 이어진 칼바람 마법에 발목까지 잘려나가며 결국 바닥을 뒹굴었다.

"크아아...!!"

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한의 앞으로 다가갔다.

거한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죽일 듯 칼을 노려봤다.

"죽인다! 죽일 거야! 이 개새끼...!!"

칼은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그래도 가는 길이 아주 추하진 않구나. 다른 놈 같았으면 조직 이름부터 들먹였을 텐데."

빠지지직!!

푸른 섬광과 함께 시커멓게 타서 즉사해버린 거한.

칼은 시선을 옮겼다.

바닥에 쓰러진 톰크의 목에 어느새 검을 겨누고 있는 스칼렛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죽어버린 거한과 칼을 번갈아보며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칼은 감지 마법을 활성화했다.

지부 안에 여럿 느껴지는 인기척.

거한의 부하, 블러드 스컬의 조직원들이다.

이쪽이 상황을 정리해주기로 했으니 끝까지 깔끔히 처리해주는 게 도리였다.

"약속 꼭 지켜요."

그녀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칼은 그녀를 지나쳐 통로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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