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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9화 (2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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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너무 강함 (7)

장난 같은 대답에 갈리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 이건 또 뭔 상황이래?"

에페는 그저 흥미롭다는 듯 다가오는 칼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사람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고위기사의 경지인 둘은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성년이나 된 것 같은 저 젊은 애송이가, 결코 자신들의 아래가 아니라는 걸.

"...이게 진짜 뭔 상황이래? 갈리온 경, 지금 내가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게 맞습니까?"

갈리온은 대답 없이 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정체와 목적을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선 칼은 잠시 고민했다.

'고위기사급 둘, 나머지는 피라미들.'

열 명도 넘는 머릿수였지만 신경 써야 할 건 둘 말고는 없었다.

충분히 할 만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하나 문제가 있다면, 현재 칼의 목적이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벌써 잡혀가지고 귀찮게 됐네.'

루디와 그 호위기사.

칼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속으로 혀를 찼다.

저 둘은 구하려는 티를 냈다간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또 저렇게 가까이 붙어있으니 당장 마법을 난사할 수도 없다.

전투에 성가신 페널티가 하나 붙은 셈.

그렇기에 일단은 그 페널티부터 없애고자 했다.

마침 위치상으로도 완벽했다.

루디와 호위기사가 가운데에 있고, 그 주위를 추적자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마법의 범위를 조정하기 한결 수월했다.

【체인 라이트닝】

빠지지직!!

추적자들을 둥글게 감싸고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전기 줄기.

갈리온은 차마 피하라고 외칠 틈도 없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에페 역시도.

자리에 있던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즉사했다. 경이로울 정도의 마법 제어 능력에, 중앙에 있던 루디와 호위기사만 멀쩡할 뿐이었다.

터터텅!

동시에 에페에게서 날아드는 몇 개의 송곳.

칼은 실드를 둘러 막고서 곧바로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매직 부스터】

슈와악!

등 뒤로 발생한 추진력이 칼의 몸을 전방으로 대포알처럼 날려보냈다.

동시에 몸 앞쪽으론 포스를 두르고 브레이크를 밟듯 몸을 멈춰세웠다.

흡사 묘기에 가까운 처음 시도해보는 마법 연계.

투욱.

다행히도 칼은 꼴사납게 구르거나 충동하는 일 없이, 무사히 루디와 헤이든의 앞에 멈춰섰다.

양옆으로 갈라져 퍼졌던 갈리온과 에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칼의 앞에 주저앉아있던 두 사람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와씨, 이게 진짜 됐네."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칼은 두 사람을 보호하듯 앞을 막아섰고, 그제야 의도를 눈치챈 갈리온이 표정을 구겼다.

"바울 쪽의 마법사였나?"

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닌데."

"웃기는군. 그게 아니라면 그들을 보호할 이유가..."

칼은 무시하고서 품에서 보석을 꺼내들었다.

그걸 본 갈리온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에페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잠깐, 네가 그걸 어떻게...?"

칼은 전혀 기사처럼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정체를 알았다는 듯 짧게 탄성을 뱉었다.

"아, 그랬지 참. 본부 놈들은 여기에 있다고 했었지. 그럼 네가 몬툴의 수장인가?"

"......!!"

"케리 시에 있는 지부들은 내가 전부 없앴다. 늦었지만 대장으로서 죽은 부하들 명복이나 빌어주지 그래."

칼은 히죽 웃으며 멍하니 있는 루디에게 보석을 건냈다.

"저것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얼른 들고 튀어요."

그녀가 얼떨떨한 얼굴로 헤이든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칼은 간결히 답했다.

"알티우스 학파의 칼."

그리고 곧장 덧붙여 말했다.

"혹시나 돕겠다고 하진 마요. 여기 있어봐야 방해만 되니까. 지금 바로 도망치는 게 도와주는 거..."

터터텅!!

칼은 실드를 둘러 날아든 송곳들을 막아냈다.

현실에 빌런들에겐 대사를 칠 때 기다려주는 도리 따윈 없었다.

"빨리 가요!"

루디와 헤이든이 허겁지겁 말에 올랐다.

"어딜!"

갈리온이 둘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돌진해왔지만, 경로에 솟아나는 불꽃의 벽에 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쉬익!

그 틈에 반대편에서 순식간에 접근한 에페가 칼을 노리고 송곳을 찔러왔다.

모든 마법사는 마법을 연계함에 있어 텀이 있다.

그 당연한 진리를 노린 완벽한 시간차 공격이었다. 그러나...

퍼엉!!

충격파에 맞고 튕겨나간 에페가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다가 멈췄다.

그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야, 미친. 뭐가 이리 빨라?"

칼의 마법 연계에 간극이 없다는 걸 모르는 에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히히힝!

다시 대치 상황으로 들어간 틈에 루디와 헤이든이 말을 타고 달렸다.

"공,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 테니 부디 조심...!!"

뭐라 떠드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그렇게 두 사람은 떠나갔다.

닭 쫓던 개마냥 바로 눈앞에서 목표를 놓친 갈리온과 에페는 허망한 얼굴이었다.

그들의 살벌한 시선이 칼에게로 향했다.

칼은 두 사람을 마주 보며 웃었다.

"방해꾼도 없고,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해볼까?"

웃고는 있지만 사실 칼도 꽤 긴장한 상태였다.

고위기사를 상대하는 건, 그것도 둘을 동시에 상대해보는 건 이번이 전부 최초였으니까.

5서클에 오른 뒤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야 할 전투였다.

'여러모로 내가 유리하니, 아마 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방심도 금물이었다.

고위기사는 보통의 평기사와는 차원이 아예 다르니까.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마라."

갈리온의 검에 선명한 핏빛 검기가 형성되었다.

"경, 조심하시죠. 저놈 마법 펼치는 속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에페도 송곳 대신 허리춤에 있던 숏소드를 양손에 뽑아들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케리 시의 지부를 전부 쓸었다고? 그럼 그 녀석도 죽었나?"

"누구?"

"...은발의 여자 말이다. 보석을 쫓고 있었을 텐데."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칼은 입꼬리를 올렸다.

"왜, 혹시 연인이었나? 아니면 가족?"

"......"

"아, 가족이었던 모양이군. 여동생이었나 보네. 너도 곧 따라서 보내줄 테니 너무 상심하진 마."

잠시 말이 없던 에페가, 이내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씹어뱉듯 말했다.

"너... 절대로 곱게는 안 죽인다. 내 발밑을 기면서 죽여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칼도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째 대사까지 이렇게 비슷하냐. 네 동생도 그 지랄 떨다가 뒈졌는데."

파악!

땅을 박찬 에페가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칼도 곧장 마법을 펼쳤다.

경로에 있던 지면들이 가시처럼 비죽비죽 솟아나며 에페를 노렸으나,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전부 피해낸다.

그러나 곧바로 몰아치는 전격 마법에 에페는 황급히 도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틈을 노려 측면을 파고들던 갈리온도 별다를 건 없었다.

쏟아지는 불덩이들을 연신 베어내며 전진하자니 여지없이 날아든 충격파가 몸을 강타해 튕겨냈다.

콰앙! 쿠과과광!!

고위마법사 하나와 고위기사 둘의 전력 승부.

난무하는 마법과 검기에, 일대의 나무들이 종잇장처럼 찢기고 터져나가며 숲이 점점 휑하게 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행동이 바빠지는 건 오히려 에페와 갈리온 쪽이었다.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마법에 두 사람은 접근은 커녕 피하기만 급급했다.

분명 이쪽이 두 명이고 저쪽이 한 명인데, 그게 반대로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둘이라서 공격이 나뉘어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진작에 당하고 말았으리라.

한편 칼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나 생각보다 훨씬 세네.'

5서클에 올라 전력을 다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상황만 잘 맞으면 고위기사 두 명이 아니라 세 명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에페와 갈리온은 죽을 맛이었다.

'이 씨발...'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체 어떻게 이리 빠를 수가 있지?

에페는 저 마법쟁이가 블루번 마약이라도 빤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암시장에서 극비밀리에 거래되는, 먹으면 몇 분간은 마력과 캐스팅 속도 등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상승하지만, 이내 몸이 터져 죽고 마는 금기의 마약.

하지만 몇 분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지난 뒤였다.

그리고 마법사는 아직 멀쩡하다.

이런 게 현실일 수는 없었다.

잠깐 흔들린 정신을 퍼뜩 차리고 보니, 에페는 이쪽을 견제하는 마법이 미묘하게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다급히 갈리온에게로 고개를 틀었다.

"경, 조심!"

푸슉!

하지만 늦었다.

돌연 땅에서 솟아오른 가시를 갈리온은 피하지 못하고 왼쪽 다리를 관통당했다.

"...끅!"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보다, 정면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의 유동에 갈리온은 오싹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이쪽을 향해 손을 뻗은 마법사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피해야...'

그게 갈리온 생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레이 버스터】

번쩍!!

갈리온의 전신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눈부신 백색 광선.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그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대로 소멸해버린 것이었다.

"......"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의 위력에 에페는 그대로 굳었다.

고개를 끼기긱 돌려 여전히 여유로운 듯한 칼을 바라봤다.

'뭐냐, 저 괴물은...'

에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법사야 질리도록 상대해본 그에게 있어서도 칼의 존재는 비상식이었다.

걸으면 느리게 지치고 뛰면 빠르게 지치는 것과 같이, 마법도 마찬가지다.

저 말도 안 되는 공격 속도는 타고난 천재성 덕이라 어떻게 납득해도, 그것을 수십 번도 넘게 동일한 속도로 유지하며 지친 기색도 없는 건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둘이 상대할 때도 공격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육체에 피로도 슬슬 쌓이기 시작했다.

갈리온이 죽은 지금 더 이상의 승산은 없었다.

에페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차라리 갈리온이 죽는 순간에 곧장 도주를 시도했으면 성공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푸욱!!

잠깐의 머뭇거림은 치명적인 빈틈.

에페의 옆구리를 사각에서 날아든 빛의 가시가 꿰뚫었다.

치솟는 고통을 견뎌내고 몸을 날리려 했지만, 곧바로 날아든 충격파에 꼴사납게 바닥에 처박힐 뿐이었다.

"쿨럭...!!"

마지막으로 그를 향해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졌다.

그걸 올려다보며 에페는 허망히 중얼거렸다.

"씨발, 괴물 같은 새끼..."

콰아앙!!

['돌발 퀘스트: 매듭 짓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70000SP를 획득하였습니다.]

가르두카를 죽이며 바로 53레벨로 훌쩍 건너뛴 탓인가?

아쉽게도 레벨업 알림은 없었다.

칼은 입맛을 다시다가, 황폐해진 주변을 훑어보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후, 힘들다..."

일부러 여유로운 척은 했지만, 사실 칼도 마력이 제법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마법을 그렇게나 쉬지 않고 연사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전부 다 끝났다.

퀘스트도 완료했고, 몬툴도 수장이 죽었으니 이제 사실상 괴멸.

루디 드웨인을 탈출시키고 고위기사 전력도 둘이나 죽였다.

그 크리스라는 차남 놈에게도 어마무시한 빅엿을 먹여준 셈이었다.

"조질 놈들은 다 조졌네."

어쩌다 보니 참 많이도 돌아왔다.

이제 다시 갈 길을 가야지.

칼은 킥 웃으며 흐물흐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말을 세워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

멀리서부터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며 점점 가까워졌다.

칼은 고개를 돌렸다.

백작성에서 추적조를 더 보낸 건가?

그러나 곧 모습을 드러낸 건 기사도, 복면을 쓴 몬툴의 조직원도 아니었다.

"...뭐야?"

말을 타고 이쪽으로 질주해오고 있는, 백색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칼은 그녀가 여인이라는 걸 깨달았고, 행색도 꽤나 독특하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 가면을, 그것도 얼굴의 반쪽만 가면으로 가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

칼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더걱, 더걱...

곧 거리를 두고 말을 멈춰세운 그녀도 물끄러미 칼을 바라봤다.

묘한 정적 속에, 둘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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