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5화 (2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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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너무 강함 (3)

몇 시간 전 협곡.

달빛 아래 은발의 여인이 선두에 걷고 있고, 그 뒤를 복면의 괴한들이 따르고 있다.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들의 맨 앞에 붉은 쥐 한 마리가 발발대며 기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찌직!

바닥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거리던 쥐가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여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레? 이것 봐라."

길에 남겨진 흔적과 보석에 뿌려둔 추적향의 방향이 맞지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중얼거렸다.

"저쪽이면 케리 자유시인데... 여기서 방향이 꺾였다고? 이 머저리 새끼들이 설마 따돌림 당한 건가?"

병신들이 고작 한 놈을 제대로 못 쫓나.

인상을 팍 찌푸린 여인이 이내 명령했다.

"다섯 놈만 마저 흔적을 따라서 가봐. 나머지는 계속 보석을 쫓는다."

수십의 괴한들이 여인을 따라서 자유도시 케리로 걸음을 돌렸다.

* * *

터더덩!

실드에 막혀 맥없이 튕겨나가는 화살들.

이어 인형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어젯밤에 협곡에서 습격당했던 바로 그 괴한들이었다.

"쯧."

콰앙!!

칼은 충격파를 날려 놈들을 통째로 벽에 처박아버렸다.

그리고 즉시 감지 마법을 활성화했다.

밑층에 느껴지는 여러 인기척들.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이것들은."

칼은 침대에서 일어나 밑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여관 창문이 열리며 또다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쇠사슬을 비롯한 각종 단검들.

물론 화살과 마찬가지로 실드에 막혀 맥없이 튕겨나가고 만다.

칼은 손을 휘저어 창문에 걸터앉은 놈들을 모조리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풀썩!

바닥에 내팽개쳐진 복면의 괴한 셋.

놈들이 꿈틀거리며 이쪽을 올려다본다.

칼도 인상을 찌푸린 채 마주 내려다보며 물었다.

"니들 대체 뭐냐? 보석 노리고 온 놈들 맞지? 협곡에서부터 하루 사이에 뭘 어떻게 알고 쫓아온 거..."

...쩌어엉!!

뭘 묻기도 전에 가운데 있던 괴한의 상반신이 터져나갔다.

밑층에서부터 바닥을 뚫고 가공할 힘으로 날아든 창은 실드에 막혀 허공에서 떨리다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웃기지도 않는 방식의 기습에 칼은 황당하게 죽은 괴한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가지가지하네, 진짜."

서걱!

칼은 포스 마법으로 나머지 두 괴한의 목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바로 밑층으로 내려섰다.

"허, 그걸 막았네?"

바로 앞에 여인이 서있었다.

어깨 위에 붉은 쥐를 올려두고, 허리춤 양쪽으로 멘 숏소드 두 자루가 인상적인 여인.

"근데 그 호위기사 새끼는 어디로 가고 웬 마법쟁이가 튀어나온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를 칼은 마주 바라보다가, 슥 주변을 둘러봤다.

비릿하게 확 풍겨오는 혈향.

어느새 여관을 가득 채운 괴한들이 보였고, 이곳저곳에 널부러진 시체들이 보였다. 식사를 하던 손님들, 숙박객들, 그리고 칼을 친절히 응대해주었던 종업원까지.

"......"

칼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여인이 혀를 낼름거리며 칼을 훑어봤다.

"아가야, 넌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놈인데 보석을 훔쳐간 거니? 응? 바울 가문에서 지원을 왔다기엔 너무 애송이인데?"

칼은 질문에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응?"

"보석이 나한테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정확히 쫓아왔냐고."

이상한 일이었다.

협곡에서부터 도시로 이어지는 흔적은 어떻게든 쫓을 수 있다고 치지만, 어느 여관의 어느 방에 묵고 있는지까지 알아낸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케리가 작은 도시도 아니고.

"아, 그거? 알려주기 싫은데?"

"......"

"킥! 농담이니까 표정 풀어. 어차피 죽을 놈한테 뭔들 못 알려주겠어."

여인이 어깨에 있는 붉은 쥐를 쓰다듬으며 히죽 웃었다.

"그 보석에 추적향을 아주 찐~ 하게 묻혀놨었거든. 혹시 크람델 시궁쥐라고 들어본 적 있나 몰라? 이 쥐새끼가 다른 건 몰라도 라스피 풀잎 향에는 엄청나게 민감하단 말이지. 몇십 킬로미터까지 떨어진 곳이라도 다 찾아갈 수 있다 이 말이야."

그런 거였나.

칼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 세계에서의 삶이 결코 험하다 못할 건 아니었지만, 이런 부류의 놈들과 엮인 경험은 거의 없었다.

설마 추적향을 뿌려 추적해올지까지는 미처 예상 범위에 두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칼은 중얼거리며 다시금 죽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선고하듯 주변에 말했다.

"기회를 한 번 주지."

"...엉?"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놈들은 당장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아라. 그리고 니들 정체하고 이 보석이 무슨 물건인지 설명해. 그러면 최소한 편하게는 죽여줄게."

그 말에 순간 벙찐 표정이 된 여인이, 곧 빵 터져서 폭소했다.

"푸흐핫! 아, 씨발... 야! 너 사람 웃기는 재주가 제법 있구나!"

"......"

"어디 학파에만 처박혀 있다가 이제 막 나온 샌님인가? 마법도 꽤 하니까 세상 무서울 게 없지?"

여인이 웃음을 뚝 멈추고 눈에서 살기를 쏘아냈다.

"이 애송이 새끼야, 그래도 상대는 봐가면서 개겨야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냐?"

촤앙!

그녀가 양쪽 허리춤에서 숏소드를 뽑아들었다.

숏소드의 칼날에는 제법 선명한 핏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고위기사는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수준.

"기대해, 금방 내 발밑에서 눈물 콧물 질질 짜며 기게 해줄 테니까. 일단 가볍게 팔 한 짝부터 자르고 시작할까?"

슈왁!

가공할 속도로 검을 치켜들고 쇄도하는 여인.

그녀는 칼을 둘러싼 실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병신, 그깟 걸로 내 검기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그녀가 익힌 오러 연공은 통상보다도 훨씬 파괴적인 성질을 띄고 있는 것이었다.

저 젊은 애송이 마법사의 실드 따위는 가볍게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적어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뤄진 계산 하에는 그랬단 이야기였다.

콰앙!!

거세게 울려퍼지는 굉음.

자신만만했던 여인의 표정에서 서서히 웃음이 사라졌다.

"...어?"

너무나 간단히 막혀버렸던 것이다.

적당히 한 것도 아니고, 제법 전력을 다한 공격이.

두 자루 숏소드에 빚어진 검기는 실드에 자그마한 균열조차 내지 못했다.

"병신."

바로 앞쪽에 있는 칼에게서 흘러나온 조소가 귀에 박혔다.

"말마따나 상대를 보고 개겨야지."

【체인 라이트닝】

빠지지직!!

여관을 뒤덮은 푸른 섬광.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전기 줄기가 주변의 괴한들을 모조리 꿰어버렸다. 수십이 넘는 인간이, 순식간에 잿덩이와 한 줌의 핏물들로 변했다.

멀쩡히 서있던 건 칼의 바로 앞에 서있던 여인뿐이었다.

파악!

상대를 잘못 고른 것만 빼고, 확실히 그녀는 판단이 빠르고 정확했다.

멍하니 서있지도 않고 즉시 뒤로 몸을 빼며 무언가를 던졌으니까.

콰아앙!!

응축된 마력이 느껴지는 구슬들이 실드에 부딪혀 폭발했다.

물론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여관이 뒤집어지며 사방에 연기가 피어오르긴 했지만.

바람으로 연기를 걷어내고 시야를 다시 확보했다.

어느새 여관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칼은 여유롭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츄와악!!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빛의 줄기가 여관 바깥으로 쇄도한다.

여인을 얼마 못 가서 줄기에 온몸을 묶여 저지당했다.

칼은 그녀를 도로 앞까지 끌어와서 내팽개쳤다.

"...큭!!"

여인이 눈을 치뜨고 칼을 노려봤다.

칼이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이것들은 잡히면 왜 하나같이 야리는 건지 모르겠네. 눈 뽑아버리기 전에 깔지 그래."

"좆까, 이 씨발... 끼야아악!"

칼은 화염 마법을 캐스팅해서 여인의 양팔을 지져버렸다.

전기와는 또 미묘하게 다른 매캐한 냄새가 주변에 퍼졌다.

"그래, 묻는 말에 잘 대답이나 해라. 니들 정체가 뭐냐?"

그 말에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여인이 실성한 듯 웃음을 흘렸다.

"크흐흣... 니가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해?"

"정체를 말하라고 했다. 다음에는 팔이 아니라 얼굴이야."

"씨발, 어디 지져보시든가. 니가 뭔 짓을 하든 내 입이 열릴 일은 없어."

여인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연신 킥킥거렸다.

"너,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팽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대해. 이제 조직에서 본격적으로 널 쫓을 테니까. 이 도시에만 우리 조직의 지부들이 얼마나 깔려있는지 아냐? 네 그 얄량한 명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아?"

칼도 마주 비웃어주었다.

"혹시 너희 아란헬이냐?"

"...뭐?"

"아니면 뭐, 블러드 스컬이나 둠 슬레이어라도 돼?"

아란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둘 모두 전 대륙적으로 유명한 범죄 조직과 암살 길드였다.

"그런 것도 아니면서 뭔 같잖은 협박질이야. 니깟 것들이 떼로 몰려와봐야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냐? 너희 조직에 뭐 고위기사급 전력들이 수십이나 되고 그래?"

"......"

"이런 피라미들이나 부하로 부리는 것들이 그럴 리가 없지."

여인은 대답하지 못하고 죽어라 칼을 노려볼 뿐이었다.

"아무튼 대답을 못 들을 것 같긴 하네. 그만 부하들 따라서 가라, 너도."

푸욱!

심장을 꿰뚫린 여인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곧 숨을 거두었다.

칼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여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탁자에 엎어진 종업원의 시체.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그대로 살해당한 건지 손에는 국자가 쥐여있었다. 앞쪽에 수프가 가득 들어있는 냄비도 보였다.

홀의 탁자들에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시체들이 보였다. 여관을 방문한 손님들의 시체였다.

전부 칼이 여관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이들이었다.

"...미안합니다."

이런 일은 익숙했다.

익숙하지만 꽤 오랜만이기도 했다.

게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약하고 어설펐던 자신 때문에 몬스터들에게, 혹은 함정에 빠져 몰살당했던 동료들.

칼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일 하나하나에 감정을 쏟아내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내 잘못이 아니다.'

나쁜 건 이들을 죽인 괴한들이다.

죄책감은 곧 분노로 뒤바꼈다.

"그래..."

살의가 넘실거리는 눈으로, 칼은 주변에 널부러진 괴한들의 시체를 응시했다.

"어디 해보자 이거지."

칼은 도로 걸음을 옮겨 여인의 시체 앞에 섰다.

인벤토리에서 로브 하나를 꺼내 대충 뒤집어씌운 뒤, 마법을 캐스팅했다.

【터닝 투 언데드】

화아악!

검은 기운이 흡수되며, 곧 흑색으로 물든 눈을 뜨는 그녀.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칼의 앞에 섰다.

칼은 곧장 명령했다.

"네 조직의 지부들이 있다는 곳으로 찾아가라.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이제 곧 소란에 병사들이 몰려들 것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여관에서 빠져나온 칼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이 밝기까지 긴 밤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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