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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화 (2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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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대침공 (6)

"저기 보이는군."

고위기사 폰의 중얼거림이었다.

성벽에서 떨어져 평야를 빙 돌아가니,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히 주술사 괴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죽은 듯 미동도 않은 채 서서 전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안 들킨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이어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데 아무리 봐도 완전히 무방비해 보이는데 말이야. 그냥 원거리에서 마법을 날려 기습해도 되지 않겠나?"

칼이 고개를 저었다.

"주술사도 마법사만큼이나 대비성이 철저한 족속입니다. 또 저 많은 오크들을 제어할 정도의 강자고요. 기습에 대비를 안 해놨을 리가 없죠."

"음, 그런가?"

"예. 괜히 섣불리 공격해서 들키는 것보다는, 최대한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접근한 다음에 전투를 벌이는 게 최선일 겁니다."

그렇다. 중요한 건 거리였다.

이쪽도 마법사가 둘 있긴 하지만, 이제부터 상대할 적은 무려 대주술사.

거리를 최대한 좁혀 고위기사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최상의 전투 환경을 만들어줘야만 했다.

그렇게 본래 계획대로 다섯 사람은 말을 몰아 주술사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보다는 후방에서 접근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이쯤에서 내리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 말에서 내려선 그들은 천천히 주술사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사일런스】

칼이 마법을 캐스팅하여 소리를 차단했다.

마이어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자네 정말 별 마법을 다 아는군. 이런 건 용병 마법사들이나 익힐 마법인데."

어차피 기운까지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큰 효과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다가갈 수 있는 만큼 다가가야 하니 나쁠 것도 없었다.

선두에 서서 조심스레 나아가는 고위기사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칼과 마이어.

거리가 대략 백 걸음 안으로 좁혀졌다.

어느새 다섯 사람은 사일런스 마법도 잊고 숨조차 죽인 채 주술사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

고위기사들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주술사에게서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들켰군.'

이쪽을 향해 천천히,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는 주술사.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칼 사이로 번뜩이는 붉은 안광이 칼과 나머지를 훑는다.

순간 모두가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기이함, 오싹함, 그리고 압도적인 강자 특유의 위압감.

'엿 같네, 진짜.'

칼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요새 들어 자꾸 수준에 맞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일이 많아진 느낌.

이번 역시 목숨을 걸어야 되겠지만, 저번에 정말 죽다 살아난 것 때문인지 이제는 한층 더 초연해진 기분이었다.

뒈지면 그냥 뒈지는 거지, 뭐. 그렇게 해서 지구로 돌아가면 더 좋은 거고.

'그래도 충분히 승산은 있으니까.'

만약 눈앞의 주술사, 가르두카가 검성이나 대마법사였다면 고작 이 전력으로는 아예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승산은 커녕 한순간에 몰살당했을 터.

하지만 그는 주술사다.

주술이라는 건 검술이나 마법 같은, 비교적 단순한 강함과는 거리가 있다.

복잡하고 오묘한, 제대로 알지 못하면 대응하기가 매우 힘든.

즉 반대로 말해서, 파해법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경지의 차이가 심하더라도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가르두카는 수많은 오크들에게 광란의 술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큰 힘을 못 사용한다.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칼은 가라앉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가르두카를 마주 응시했다.

"쥐새끼들이... 용케도 눈치챘구나."

가르두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쇳소리.

화아악!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검은빛의 반투명한 역장이 퍼져나왔다.

칼이 소리쳤다.

"반격하면 안 됩니다!"

이미 사전에 들은 설명이 있었기에 고위기사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역장에 그대로 몸을 노출시켰다.

별 타격 없이 몸을 통과하고 지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소멸해버리는 역장.

가르두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주술, 배척자의 망종.

역장에 공격을 가한 대상에게 그 충격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공격 반사의 주술.

만약 검기를 빚어내 반격하기라도 했으면 기사들은 큰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화아아악!!

뒤에서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던 마이어가 거대한 청염을 뿜어냈다.

지면을 모조리 불태우며 나아간 불꽃은 가르두카를 둘러싼 은빛 장막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 틈을 타서 곧바로 고위기사들이 돌진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가르두카가 다시 한 번 손을 휘젓자 지면이 검게 변하더니, 거기서 거대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괴물들은 그림자처럼 새카맣고 흐물거리는 형체에, 몸체 중심에는 적색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술, 심연 아귀.

이 역시 칼이 미리 설명했던 주술들 중 하나였다.

기사들은 길쭉한 팔다리를 휘둘러오는 아귀들에게 반격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공격해봤자 타격은 없고 끈적하게 달라붙기만 할 거라는 걸 알았기에.

놈들을 죽이려면 몸체의 중심에 있는 적색 불빛을 정확히 타격해야만 했다.

콰과과광!

그렇게 고위기사들이 아귀들을 상대하는 동안, 칼과 마이어는 가르두카에게 공격 마법을 난사했다.

전부 방어막에 막히고 있긴 했지만 견제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이거... 주술사 놈이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 같은데?"

물론 상대가 이렇게나 강한 줄 몰랐던 마이어는 자신의 마법이 모두 막히나 꽤나 당황한 기색이었다.

"경들이 아귀들을 모두 처리하면 반격의 기회가 올 겁니다. 계속 밀어붙이죠."

칼은 그렇게 말하며 가르두카에게 온 정신을 집중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주술이 튀어나올지 몰랐으니까.

서걱!

이내 고위기사들이 심연 아귀들을 모두 소멸시켰다.

그들은 지체할 것 없이 곧바로 가르두카를 향해 재차 돌진했다.

마이어가 반색하며 지원 마법을 펼치려던 바로 그때였다.

...퍼엉!!

난데없이 흐릿해지는 시야.

그와 동시에 치솟는 격통.

칼은 간신히 비명을 참아내고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오른쪽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서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나오고 있었다.

'끄으윽...!!'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칼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괜찮다.

이건 진짜가 아니니까.

현실을 구분 못하고 환각에 갇히면 그대로 죽게 될 거다.

칼은 입 안쪽을 온 힘을 다해서 어금니로 깨물었다.

가짜가 아닌 진짜 고통, 생생한 피맛이 느껴지며 흐릿해진 시야가 되돌아왔다.

"흐, 흐어어..."

신음을 흘리며 멍하니 서있는 마이어와 다른 기사들이 보였다.

전부 마찬가지로 환술에 갇힌 것이었다.

환각을 일으키는 주술이 있다고 사전에 분명히 경고했었지만, 실제로 당하면 칼처럼 웬만큼 강한 확신이 없고서야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힘들었다.

칼은 위력을 낮혀서 전격 마법을 캐스팅했다.

파지직!

"...헙!"

전기에 맞은 기사들이 기겁하며 정신을 차렸다.

환술은 한 번 깊이 빠지면 당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주술이지만, 외부의 충격에 약하다는 게 약점이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환각입니다. 빨리 정신 차리고 놈을 공격하세요."

칼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마이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몸이 튼튼한 기사들과 달리 마법사인 그에겐 전기 충격을 가했다가 큰일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위력을 낮혔다고 해도.

퍼억!

주먹으로 안면을 후려치자 바닥에 풀썩 쓰러지는 마이어.

그가 곧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칼을 올려다봤다.

"환각에 걸려서 제가 풀어드렸습니다."

"...참 고맙네. 덕분에 이도 좀 흔들리는 것 같지만."

낑낑 몸을 일으킨 마이어가 다시 서둘러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후 가르두카는 여러 주술들을 더 펼쳤지만 칼의 지휘에 모두 막혔다.

고위기사들은 가까이 접근해서 가르두카의 방어막을 내리쳤고, 마이어와 칼은 계속해서 마법으로 전투를 지원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애를 먹을 줄은 몰랐는지 가르두카의 표정이 더욱 험악하게 변했다.

"이... 벌레 같은 놈들이..."

퍼엉!

갑작스레 퍼진 충격파에 전부 튕겨나가는 기사들.

"한 놈도 이 자리에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예상했던 최악의 수순이 찾아왔다.

크아아아아...!!

가르두카의 성난 포효에, 저편의 성벽에 붙어있던 오크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이쪽을 향해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녹색 물결이 멀리서부터 몰아닥치는 광경에 마이어가 침음성을 흘렸다.

"결국 이렇게 됐구만..."

"생각보다도 늦은 겁니다. 해야 할 일에 달라진 건 없어요."

이젠 단지 시간 제한이 붙었을 뿐.

저 오크 군단이 여기 도달하기 전까지 서둘러 가르두카를 죽여야만 했다.

"놈도 방어에 한계가 와서 오크들을 부른 겁니다! 계속 밀어붙이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기사들이 다시금 가르두카를 향해 돌진하려던 때였다.

"흐, 어디 계속 날뛰어봐라!"

가르두카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두 손을 뻗었다.

스르륵.

동시에 공간이 왜곡되며 일대가 검게 물들더니, 칼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암흑주박진'에 갇혔습니다.]

[마나와 오러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

뭐야 이거, 씨발.

칼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암흑주박진이라고? 이거 가르두카 공격 패턴이 아닌데?'

이 주술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주술사 직업을 플레이할 때 가장 애용했던 광역기였는데 모를 리가 있겠나.

단지, 이건 플레이어의 스킬이었지 가르두카가 사용하는 주술이 아니었다.

우려했던 게임과 현실 사이의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주술이지만, 계속 이렇게 묶여만 있으면 오크들이 도달한다...'

주변은 완벽한 어둠.

더군다나 마력과 오러까지 사용할 수 없는 마당에, 다른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놈도 똑같지.'

암흑주박진을 펼치고 있는 동안, 놈도 다른 주술을 사용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도 똑같고.

칼은 머릿속 깊숙이 있는 기억을 더듬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게임에서 PVP 모드를 할 때마다 칼은 주술사 플레이어를 상대로 항상 80% 이상의 승률을 달성했었다.

그 이유는, 멍청한 주술사 놈들이 암흑주박진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대부분 방심을 했었기에.

'앞으로 서른 걸음, 왼쪽 열 걸음, 그리고 다시 앞으로 스무 걸음.'

주박진을 펼친 주술사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디디면 주박진의 속박에 더욱 깊게 걸려들지만, 칼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윽고 이동을 마친 칼이 멈춰섰다.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바로 앞쪽을 향해서 있는 힘껏 내질렀다.

푸욱!

동시에 주변의 어둠이 걷혔다.

눈을 찢어져라 크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는 가르두카의 모습도 나타났다.

단검이 박힌 그의 가슴팍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네놈... 대체 어떻게...?"

"칼 공!"

어리둥절하게 서있던 기사들이 둘을 발견하고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푸부북!

목과 머리, 그리고 심장에 꽂히는 검날들.

가르두카의 눈에서 서서히 생기가 빠져나갔다.

"후우..."

겨우 죽인 건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며 물러서려는데, 돌연 그가 안광을 이글이글 불태우더니 칼을 노려봤다.

「이 찢어죽일 애송이 놈! 감히 네까짓 게 내 오랜 숙원을 허사로 만들어?!」

화아악!

다시금 주변에 어둠이 차올랐다.

반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주박진과 마찬가지로 마력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

칼은 온몸을 꼼짝 못한 채, 눈앞에서 광망을 불태우는 가르두카의 영혼을 바라봤다.

「네놈도 나와 함께 가는 거다! 평범한 죽음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네 육신과 영혼의 인과를 비틀어버려, 안식도 취하지 못한 채 갈 곳 없이 떠도는 망자로 만들어버릴 것이니! 내 영혼을 통째로 바쳐 네놈을 영원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만들 것이다!」

가르두카가 킬킬 웃었다.

「저승에도 이승에도, 네놈은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때서야 지금의 일을 영겁의 세월 동안 후회... 응?」

즐겁다는 듯 말을 잇던 그가 갑자기 당황성을 내뱉었다.

「네놈... 뭐냐? 왜 이미 육신과 영혼의 인과가 뒤틀려있는 것이냐?」

믿을 수 없다는 듯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런 상태로 살아 움직이는 게 가능할 수 있는 거냐? 네놈은 대체 뭐... 아, 안돼! 취소! 나 혼자만 갈 수는 없다! 내 영혼을 돌려줘! 흐아악...!!」

곧 가르두카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어디론가 빨려들어갔고.

스르륵.

주변의 어둠이 걷히며 다시금 현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뭐야, 씨발."

이 새낀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칼은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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