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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화 (1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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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대침공 (4)

키가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괴인이 평야에 서있었다.

치렁치렁 길게 늘어진 머리칼과 수염, 금방이라도 핏줄이 터질 듯 붉게 충혈된 눈.

괴인의 시선은 평야를 뒤덮은 오크들에게로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오크 군단이 돌진하고 있는 높고 거대한 바드의 성벽으로.

"크, 흐흐!"

괴인의 입에서 쉰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랜 숙원.

가증스런 제국에 의해 멸망한 부족. 한때 그들의 대족장이었던 자로서 다해야만 하는 책임, 복수의 의무.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언제나 죽은 듯 느리게만 뛰던 심장이 지금 순간만큼은 폭발할 듯 격동하고 있었다.

크어어어...!!

그에 동조한 오크 군단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다시 한 번 치솟았다.

긴 시간 광림에서 참고 인내하며 견고히 쌓아온 주술의 힘이었다.

* * *

호크 라이더들에 이어 오크들의 본진이 치고 나온 건 순식간이었다.

"막아라! 한 놈도 올라오게 두지 마!"

"방어 결계가 약해졌다! 이쪽의 성문부터 보강을...!!"

"끄아아아악...!!"

어디로 시선을 옮기든 전부 긴박하고 처절한 풍경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용병으로 귀족들의 영지전에 몇 번 참가한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전쟁은 칼에게도 처음이었다.

콰앙!

"...흐억!"

바로 앞에 날아오던 창을 실드로 막아주자 기겁하며 자리에 주저앉는 병사.

"가, 감사합니다."

칼에게 감사 인사를 건낸 그는 다시 활시위를 메기고 성벽을 오르는 오크들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칼은 힐끔 창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징글징글 성벽에 달라붙는 오크들보다 조금 떨어진 뒤에서 창만 던지고 있는, 일련의 거대한 오크들.

'오크 워리어.'

놈들은 수많은 투쟁을 거치며 본능적으로 오러의 힘을 깨달은 괴물들이었다.

인간만큼 연공법을 통해 정교하게 다루진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우월한 육체 능력에 오러의 힘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괴물 같은 근력을 뽐낸다.

오크 워리어들이 멀리서 날리는 창은 선두에 있는 병사들의 몸을 연신 폭죽처럼 터뜨리고 있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오크들을 활과 마법으로 쏴죽이고 있었지만, 머릿수의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었다.

성벽을 경계로 두고 쏟아지는 화살과 창의 비. 그리고 마법 폭격.

쿠웅!!

와중에 끝없이 달려들어 도시의 성문을 들이박고 있는 호크 라이더들.

몇몇 마법사들이 각 방향의 성문에 모여 땀을 뻘뻘 흘리며 방어 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장은 그럭저럭 잘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칼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전장을 훑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그는 이 전쟁의 결과 역시 알고 있었다.

완벽한 대패.

오크들에 의해 완전히 침략당한 이 도시는 단 한 명의 인간도 살아남지 못한 채 폐허가 된다.

물론 미래를 안다는 건, 그런 참혹한 결과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 역시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대규모 연합이 불가능한 오크들이 이렇게나 몰린 원인과 관련이 있었다.

[Lv.50]

[레벨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5서클 각성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5서클 각성 퀘스트: 전장의 주역>

해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바드 시를 지키십시오.

퀘스트 완료 보상: 5서클, 5서클 랜덤 마법 3개

10레벨 단위로 주어지는 서클 각성의 퀘스트.

마침 아까 호크 라이더들을 대거로 죽이며 한 레벨업 탓에 레벨도 50에 도달한 상태였다.

하필이면 상황이 이따위라 그런지 퀘스트 내용이 더럽게 어려운 걸로 주어졌다.

'이런 대전을 승리로 이끌라니, 씨발 양심이 있는 건가?'

자신은 4서클 나부랭이지, 홀로 대군단도 상대할 수 있다는 7서클의 대마법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욱이 짜증나는 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는 것.

퀘스트는 결코 역량 밖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칼은 혀를 차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총지휘를 하고 있는 다르칸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도 시선을 옮겨 칼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칼 공?"

변경백씩이나 되는 자가 새파란 젊은이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건 놀라운 일이었지만, 곁에 있던 이들 중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칼은 그런 존칭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일을 해냈으니까.

거기다 마력을 회복한 칼이 정체를 밝힌 만큼 알티우스 소속의 마법사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고.

물론 그런 호감과 별개로, 지금부터 할 말을 그가 믿고 따라주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칼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상황이 긴박하니만큼 서론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백작 각하, 제가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이 상황에 갑자기 무슨 개소리지?

다르칸을 포함해서 주변에 있던 호위기사와 마법사들도 모두 그런 표정이 됐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칼은 다급히 뒷말을 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협동이 안 되는 오크 놈들이 이렇게나 대규모로 연합해서 도시를 침략한 게?"

"...물론 이상한 일이지. 그게 전쟁을 끝낼 방법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다르칸은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이야기의 맥락은 바로 파악했다.

칼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끼며 곁에 있던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 한번 시야 확장 마법을 써서 평야를 둘러보십시오."

"그거야 지금도 살펴보고 있었..."

"아니, 성벽 가까이 있는 오크들 말고 그보다 멀리 떨어진 곳 말입니다. 어딘가에 분명 사람이 있을 겁니다."

"......사람?"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는 눈빛으로 칼을 바라보는 마법사들.

그때 다르칸이 마법사들에게 명령했다.

"공의 말대로 어서 평야를 살펴봐라."

이미 한 번 딸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긴 하나, 어려운 요구도 아니고 말 한마디 들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칼의 표정이 확고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마법사들이 시야 확장 마법을 통해 평야를 샅샅이 뒤지던 중, 한 마법사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저기 있습니다! 정말로 누군가 평야에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시야 확장 마법을 통해 그 외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머리칼을 치렁치렁 길게 늘어뜨린 정체불명의 괴인.

피와 단말마들이 난무하는 전장과 홀로 동떨어져 물끄러미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확실히 이질적이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대체 어떻게 아신 거요?"

다르칸과 다른 이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칼을 쳐다봤다.

칼이 괴인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크들을 조종하고 있는 주술사입니다."

"주, 주술사?"

"고대의 기록이 남겨진 서적에서 예전에 봤던 적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과 비슷한 사례로, 한 대주술사가 이렇게 대군을 일으켜 인간들의 도시를 공격했던 기록이 있었죠."

물론 개소리고 다른 직업군을 플레이하며 얻은 지식일 뿐이었다.

칼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며 괴인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대주술사 가르두카.'

오래 전 제국에 의해 멸족당한 비숀 부족의 대족장이자 유일한 생존자.

주술사 직업을 플레이하면, 제국을 멸망시키려는 그의 광기를 막아내야 하는 메인 시나리오가 있다.

지금의 변경 침략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는 바드 시로 시작해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끝내 몇 개의 대도시를 더 무너뜨리고야 생을 마감하니까. 그리고 그로 인해 제국은 국력에 아주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물론 그의 복수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지금 상황과 전혀 관련없는 일이었다.

칼은 살아남아야 했고, 또 5서클 각성 퀘스트를 완료해야만 했다.

그를 막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만으로 충분했다.

"저건 광란의 술이라는 고대의 주술 중 하나입니다. 오크처럼 호전적이고, 이지가 떨어지는 생물들을 조종할 수 있는 금단의 주술이죠. 아마 오랫동안 광림에서 지내며 오크들에게 주술을 걸었을 겁니다."

"허! 저렇게나 많은 오크들에게 말인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주술이니 엄청나게 많은 수고가 필요하진 않았겠죠. 주술사의 감정이 원한이나 분노 같은 격정들로 강하게 끓어오를수록 주술에 걸린 이들 역시 그에 동조합니다. 그럴수록 주술사의 지배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끝내 저만한 대군이 탄생하게 된 겁니다."

놀이나 사이클롭스 등, 숲 깊은 곳에서나 살 몬스터들이 평야로 튀어나온 것 역시 그것이 원인이었다.

광란의 술은 그 명칭만큼 주술을 유지하려면 광기를 지속적으로 불태울 요소가 필요하다.

아마 오크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숲에 사는 몬스터들을 잔인하게 사냥하며 씨를 말렸으리라.

칼의 설명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던 다르칸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렇다면 즉,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예. 오크들을 조종하고 있는 주술사를 죽이면 됩니다. 그러면 주술은 풀리고, 정신을 차린 오크들은 우왕좌왕거리다 숲으로 돌아갈 겁니다. 혹시나 계속 도시를 공격한다고 해도 구심점이 없으니 제대로 협동이 될 리가 없죠. 전쟁은 쉽게 승리할 겁니다."

다르칸과 주변에 있던 이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크들이 특히 몰린 쪽은 동쪽과 북쪽 성문이었고, 바로 그렇게 둘러싸인 방향에 주술사가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도시 바깥으로 나가 주술사에게까지 도달하기란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남쪽과 서쪽 성문은 아직 널널하니 어떻게든 열고 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한 기사의 말에 칼이 고개를 저었다.

"주술사가 오크들을 조종하고 있으니 군대를 몰고 나갔다간 당연히 집중 타격을 당할 겁니다."

다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 인원이 몰래 바깥으로 나가 빙 돌아서 주술사를 공격하는 게 좋겠군. 문제는 과연 주술사가 얼마나 강하냐는 건데..."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기에 충분한 시도였다.

그저 주술사를 죽이는 것만으로 이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 주술사를 타격할 인원은 금세 구성되었다.

'고위기사 셋에, 5서클 고위마법사 하나.'

칼도 나서서 말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각성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이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워야만 한다.

괜히 주술사를 죽이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가 퀘스트에 실패하면 큰일이니까.

대주술사이니만큼 어마무시하게 강하겠지만, 수많은 오크들에게 광란의 술까지 유지하고 있는 지금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공이 그런 위험을 감수해줄 필요는 없네. 이미 충분히 많은 신세를..."

"제가 주술에 대해 여러모로 많이 알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술사를 죽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다르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사의 존재를 인지한 것도 그였으니까.

"...부디 조심했으면 좋겠군."

다르칸의 곁에서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테가 칼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칼은 고개를 끄덕여주고, 타격대와 함께 주술사가 있는 반대편인 남쪽 성문으로 이동했다.

<5서클 각성 퀘스트: 전장의 주역>

해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바드 시를 지키십시오.

퀘스트 완료 보상: 5서클, 5서클 랜던 마법 3개

이 전쟁을 끝내버리고 한층 더 강해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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