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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7화 (1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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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대침공 (2)

유리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마차 앞쪽의 경로를 살폈다.

멀리서부터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 일련의 무리.

칼도 그 광경을 보고는 말했다.

"놀이군요."

개의 머리에 이족보행을 하는 몬스터.

하지만 몬스터이니만큼 그 덩치는 보통 늑대가 두 발로 선 것보다도 크다.

그러나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 중 긴장을 내비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충 서른 정도 되는군요. 저 정도면 혹스와 칸 둘이서 금방 처리할 겁니다."

마부석에 타고 있는 두 기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기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

악명 높은 웨어울프도 아니고, 중급 몬스터로도 분류되지 않는 놀들 따위야 그들에게 있어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아무리 머릿수의 차이가 압도적이라 한들 말이다.

유리의 말대로 놀들을 향해 달려나간 두 기사가 칼날에 검기를 두르고 학살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쪽 가도에서 원래 몬스터들이 출몰했었나?"

레테의 물음에 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광림과도 거리가 꽤 있어서 몬스터가 출몰하는 길은 아닙니다. 보통 숲 깊은 곳에 사는 놀들이 단체로 몰려나온 건 확실히 드문 일입니다만..."

그때였다.

크와악...!!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짐승의 괴성.

순간 마차 안의 세 사람은 몸이 찌릿거리는 걸 느꼈다. 강력한 몬스터 특유의 피어였다.

유리가 황급히 다시 마차 밖을 살폈다.

암석들 사이에서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가 보였다.

보통의 놀들과는 다르게 핏빛 갈기가 솟아있는 거대한 놀.

"...저게 무슨?"

레테와 칼도 놈을 봤다.

당황하는 그녀들과 달리, 칼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만 핏빛 놀을 응시했다.

'변종 놀이네. 핏빛이면 동족 포식을 많이 해서 발생한다는 설정이었나?'

컴퓨터 게임으로 즐길 시절, 이 게임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들 중 하나는 몬스터들의 다양한 변종 설정이었다.

놀의 경우 핏빛은 동족 포식, 잿빛은 부패한 시체 포식, 그리고 자줏빛은 독물 포식...

그렇게 해서 드물게 탄생한 변종 몬스터들은 통상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특별한 고유 능력도 얻는다.

커헝!!

놈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가까이 있는 기사들도 무시하더니, 포지션을 사족보행으로 바꾼 채 마차로 돌진해왔다.

"아가씨, 나오지 마시고 안에 가만히 계십시오!"

밖으로 나선 유리가 검을 뽑아들고 놀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콰앙!!

마차에서 약 서른 걸음 떨어진 거리. 검날과 거대한 발톱의 충돌.

육중한 무게에서 오는 힘 차이는 어쩔 수 없었기에 밀려난 건 유리 쪽이었다.

간신히 앞발을 흘린 그녀가 재차 검을 휘둘러 무릎을 베어버렸으나, 놈은 아랑곳 않고 반대쪽 앞발을 거세게 휘둘렀다.

"큭...!!"

맹렬한 공세에 반격할 기회를 못 잡고 연신 회피만 하는 그녀.

그 광경을 마차 안에서 바라보는 레테의 얼굴에 불안함이 차올랐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유리를 돕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런 실전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어설픈 마법 지원은 오히려 싸우는 이에게 치명적이기만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가까이 붙어서 싸우고 있는 경우에야 더더욱.

한편 칼도 비슷하지만 다른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마력은 제법 회복됐지만... 아직 끌어올리려고 하면 내상을 입을 텐데.'

아무리 변종이라도 해도 놀은 놀.

당장 마법을 써서 전투에 개입하면 저깟 놈이야 금방 처리하겠지만,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다.

오면서 몇 번 시도해봤지만, 잔여 독성 때문에 마력을 끌어올리려고 하면 여전히 내부의 기운이 역류했다.

하지만 굳이 마법이 아니라도 전투를 도울 방법은 있었다.

칼은 유리를 향해 외쳤다.

"놈은 시야가 좁아 방향 전환에 약합니다! 정면으로만 상대해주지 말고 최대한 측면으로 빙글빙글 도십시오!"

놈과 같이 몸 색깔이 핏빛을 띈 변종들은 대부분 '광폭화'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싸우면 싸울수록, 다치면 다칠수록 지치기는 커녕 점점 더 육체 능력이 강해지고 거세게 날뛴다.

하지만 사실 광폭화는 변종들 중 가장 상대하기 쉬운 능력이었다.

너무나 분명한 약점이 있었으니까.

강해지는 육체 능력과 반비례로 시야는 좁아진다는 것. 그래서 적의 방향 전환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게 된다.

실력만 받쳐준다면 광폭화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굉장히 간단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유리는 노련한 전사였다.

그녀는 칼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금방 따라붙어 공격하던 놀도 멈추지 않고 계속 돌자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촤아악!

그 틈을 노려 검격을 퍼붓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하는 놈.

아무리 죽을 때까지 날뛰는 광폭화 능력이라도 생물적인 한계를 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어억...

곧 놀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어느새 남은 놀들을 모두 처리하고 온 기사들이 그녀를 보며 감탄했다.

"허, 유리. 이런 놈을 혼자서 쓰러뜨린 거야? 대단한데."

"그나저나 이 놈은 뭐지? 말로만 듣던 변종 몬스터 같은 건가."

대충 정리를 마친 뒤, 다시 마차로 돌아온 유리에게 레테가 말을 건냈다.

"수고했어, 유리."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애매한 표정으로 칼을 바라봤다.

"놈의 약점은 어떻게 안 거지?"

칼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얻은 잡다한 지식입니다. 별 대단한 건 아닙니다."

"...어쨌든 고맙군.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칼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경계심이 조금이나마 걷힌 것을 느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별 문제 없기도 했고, 방금 전투에 도움도 줬으니 약간의 신뢰가 쌓인 것이었다.

레테가 옆에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레인저들이나 저런 변종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던데, 너는 그보다도 훨씬 잘 알고 있는 것 같구나.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었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하하..."

마차는 곧 다시 출발했다.

* * *

거대한 다리. 그 아래로 흐르는 강물.

이제 이곳만 지나면 목적지인 바드 시까지는 금방이다.

하지만 마차는 다리 앞에서 다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몬스터 때문이었다.

놀처럼 우르르 몰려온 놈들에게 습격을 당한 게 아니라, 조금 황당한 이유로.

"...미치겠군."

마차에서 내려선 유리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앞쪽을 바라봤다.

거대한 인간형 괴물이 다리 앞을 막고 드러누운 채 하나 달린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바로 사이클롭스였다.

'별 구경을 다 하네. 변종 놀에 이어서 이번엔 사이클롭스인가.'

칼도 마차에서 내려 놈을 바라봤다.

사이클롭스는 웬만큼 거대한 숲의 최중심부가 아니고서야 구경도 하기 힘든 희귀 몬스터다.

'놀도 그렇고, 숲에나 있어야 할 놈들이 평원으로 나온 건 역시...'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칼은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이것은 하나의 징조였다.

이곳 변경에 대참사가 일어나기까지 얼마 멀지 않았다는 징조.

"어쩌지, 유리? 일어나서 비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레테의 물음.

유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그렇고, 두 기사들 역시 이 거인을 상대해본 경험은 없었으니까. 실제로 마주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고 있으니 기습하면 죽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저렇게나 덩치가 큰데 목에 칼을 박으면 죽는 게 맞긴 한가?

섣불리 공격했다가 어떤 역풍이 불지 모르기에 그녀는 판단을 망설였다.

그때 칼이 말했다.

"한 번 숙면에 빠지면 누가 안 건드리는 이상 길게는 사흘도 꼬박 자는 놈입니다. 그냥 기다리는 건 썩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레테와 유리의 시선이 모였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나?"

변종 놀 때처럼 무언가 알고 있는 게 있나 기대하는 눈빛.

"저놈이 왜 숲 가장 깊은 곳에서만 서식하는지 아십니까?"

칼이 사이클롭스를 보며 말했다.

"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겁? 저 덩치에?"

"예. 그래서 거주지도 항상 깊은 굴로 정해두고, 다른 생물한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꺼리죠. 사실 사냥도 웬만큼 굶주린 게 아니고서야 안 합니다."

레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겁쟁이 녀석이 왜 이런 곳까지 나와서 자고 있는 거지?"

"그건... 일단 그것보다는 당장 저놈을 다리에서 치우는 게 문제겠죠."

칼이 사이클롭스를 가리켰다.

"가죽이 굉장히 질기고 근육은 돌덩이처럼 단단한 놈입니다. 칼로 찌르면 날이 잘 들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

"그러니 레테 아가씨께서 화염 마법을 캐스팅해서 불덩이를 날려주십시오."

"......?"

이해할 수 없는 논리 도약에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칼이 덧붙여 말했다.

"이것저것 별 걸 다 무서워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불인 놈입니다. 가볍게 불로 지져주면 이쪽을 공격하기는 커녕 허둥대다가 다리 밑 강물로 뛰어들 겁니다."

유리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불덩이 하나 날린다고 저 거인이 그런 호들갑을 떤다고?

"먼저 기습한 다음에 죽지 않으면 해보는 게 낫지 않겠나?"

"놈도 몬스터라 일단 피를 보면 흥분합니다. 또 겁이 많은 만큼 생존 본능도 어마무시하죠. 한 번에 못 죽이고 치명상만 입히면 오히려 날뛸 수 있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레테가 물었다.

"말한 대로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예, 확신합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법을 캐스팅하여 손 위에 화염구를 피워냈다.

"아가씨, 날리신 다음에 바로 뒤로 물러서십시오."

걱정스레 쳐다보는 유리.

화륵!

직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염구가 사이클롭스의 몸통을 타격한다.

...구워억!!

괴성을 내지르며 깨어난 사이클롭스.

놈이 배에 붙은 불꽃을 내려다보고는 기겁하며 일어났다.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리 밑 강물을 발견한 놈이 허겁지겁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퍼엉...!!

폭음과 함께 솟아나는 물보라.

유리와 두 기사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레테도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정말 덩치가 아까운 놈이구나."

* * *

다리를 건넌 마차는 사흘을 꼬박 더 달려 목적지에 도달했다.

"다 왔군."

저멀리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바드 시.

사실은 도시보다도 요새에 가까웠다.

때때로 광림에서부터 몰려오는 침략자들을 방어해야 하는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도시의 높고 거대한 성벽에선 어떠한 침입자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위용이 느껴졌다.

칼은 그 강철의 요새를 바라보며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이곳까지 함께 마차를 타고 동행한, 지금 바로 앞에 앉아있는 자가 바로 저 성의 지배자의 딸이었으니까.

"칼."

"...예?"

"도시에 도착한 다음은 어쩔 것이냐?"

칼은 고개를 돌려 레테를 바라봤다.

'원래라면 바로 예정대로 국경을 넘어 이동했겠지만...'

외상도 얼추 다 회복됐고, 산마독의 독성도 다 가셨는지 이젠 마력을 끌어올려도 기운이 역류하지 않았다.

몸이 거의 다 회복됐으니 원래라면 마저 갈 길을 갔겠으나, 변경의 대참사가 마음에 걸렸다.

"아직은 계획이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그녀가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말했다.

"당분간 내 가문의 저택에서 머무는 건 어떻겠느냐?"

"......?"

"위험한 자들에게 쫓긴다고 했었지. 루브덤이 너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다."

칼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아가씨께는 넘치도록 호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실 필요는..."

"음, 이건 호의가 아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레테가 이내 결심했는지 말했다.

"네 능력이, 그 풍부한 지식이 탐이 나기에 하는 제안이다."

"......"

"확실하게 말해야겠군. 루브덤에 완전히 몸을 의탁할 마음이 있느냐? 숨기고 있는 사정을 모두 밝한다면 내 너를 아버지께 말씀드려..."

그때였다.

"...돌리시오오오!!"

마차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처절한 음성에 세 사람 모두 창밖을 내다봤다.

누군가 마차를 향해 정면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며 죽어라 외치고 있었다.

루브덤 가문의 기사였다.

"마차를 돌리시오!! 성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오!!"

그 뜻 모를 말에 유리가 표정을 굳혔다.

"대체 무슨 소리를..."

쿠웅.

거대한 진동.

갑자기 멀리서부터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 그 진동에,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바드 시의 반대편. 광림이 있는 방향.

그곳의 지평선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거대한 녹색 물결을.

"......아."

대체 어느새에?

유리에 이어 레테도, 칼도 넋을 놓고 그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봤다.

달려오던 기사가 다시금 처절히 외쳤다.

"오크 대군단이 지척까지 왔소! 성문을 열 수 없으니 마차를 돌려 도망치시오!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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