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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6화 (1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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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대침공 (1)

욱씬거리는 온몸.

'...뭐야.'

아직 살아있나?

의식이 돌아온 칼이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리고 연신 덜컹거리는 느낌에, 자신이 무언가 달리는 것에 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두 눈을 뜨자 보인 건 예상대로 마차의 나무 천장.

"아가씨, 깨어났습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칼은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에 앉아있는 두 여인.

기사로 보이는 이는 검자루에 손을 가져다 댄 채 경계하는 태도였고, 반대로 귀족으로 보이는 이는 무표정한 얼굴 속에 호기심이 담긴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뭔 상황이야, 이거...'

칼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멀뚱히 두 사람을 마주 바라봤다.

유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시는 아가씨께서 널 구해주셨다. 막 깨어나서 경황이 없겠지만, 우선 네 정체부터 밝히도록 해라. 왜 이런 평야 한가운데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는지도."

"......"

말없이 눈만 깜박거리던 칼은, 상처 부위에 덕지덕지 발라진 풀들을 보고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이 사람들이 치료해준 건가?'

보이는 걸로 봐선 귀족가의 마차.

아마 주변을 지나치다 쓰러진 자신을 발견하고 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어서 대답해라."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 같은 기세.

그러나 신분을 확실히 증명할 수단이야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알티우스의 신분증을 꺼내려던 칼은 멈칫했다.

'몸에 마력이...'

아직도 전혀 모이지가 않는다.

노인에게 당한 산마독의 독성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학파 신분증은 신분 증명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마력이 있어야 신분증에 걸린 마법과 반응하여 주인임을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알티우스의 마법사라는 자가 마력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괜히 훔친 거로 의심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일.

'곤란한데.'

물론 마력을 못 쓰는 현재 처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산마독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어쩌다 그런 독에 당했는지도 설명해야 하고, 애초에 이들이 그 말을 믿을지도 모르겠고, 여러모로 몹시 귀찮아질 게 뻔했다.

'관두자.'

칼은 더 무난한 대답을 골라서 말하기로 했다.

"그냥 나그네입니다. 쓰러져 있던 건 도적들한테 당해서..."

촤앙!

목 앞에서 우뚝 멈춘 검날.

유리가 험악한 눈빛을 띄고서 칼을 노려봤다.

"거짓을 말하고 있군."

"......"

"장담하건데, 그건 절대 도적 놈 따위한테 당해서 입은 검상이 아니다. 이대로 목을 베어버리기 전에 어서 사실을 말해라. 네 정체가 뭐고, 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대충 넘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서늘에게 날이 선 칼날을 내려다보며 대답을 궁리하고 있는데, 레테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유리, 다친 사람한테 너무 심해."

"아가씨, 이건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알겠으니까 검 내려. 몸만 겨우 움직이는 것 같은데 무슨 위험이 된다고."

그 말에 유리는 어쩔 수 없이 검을 거두었다.

레테가 칼을 보며 말했다.

"나는 레테 루브덤이다. 이곳 제국 남서쪽의 변경을 지키는 루브덤 가문의 일원이지."

"......"

"네 이름은 무엇이냐?"

"칼이라고 합니다."

루브덤 가문?

어딘가 익숙한 이름에 칼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칼. 지금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너를 치료했다. 바드로 복귀하던 길에 쓰러져 있던 걸 발견한 것이지."

"아, 예. 정말 감사합니다."

칼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며 생각했다.

'바드? 그러면 지금 여긴 가스터와 바드 시 사이에 있는 가도라는 거군.'

바드는 본래 칼이 향하던 자롭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대도시였다.

텔레포트를 하며 아무래도 방향이 그쪽으로 꺾인 모양이었다.

레테가 말을 이었다.

"감사 인사는 됐으니 숨기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말해다오. 생명의 은인으로서 그 정도는 들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

칼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전부 사실대로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자롭으로 향하던 길에 노예상 행렬을 만났고, 엘프들의 습격을 받았고, 정리하고 다시 갈 길 가려는데 아란헬의 간부한테 이어서 습격당했고, 거기서 노예로 잡혀있던 아란헬의 후계라는 놈을 인질로 잡고 실랑이하다가 텔레포트로 겨우 탈출했다는 사정을 대체 어떻게 말하겠나?

같잖은 세 치 혀로 감히 귀족을 놀리는 거냐고 저 기사가 검이나 다시 안 뽑아들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괜히 아란헬의 이름을 꺼내기도 싫고.'

칼은 놈들이 얼마나 위험한 집단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 멀리, 동쪽 델킨 왕국의 왕궁을 테러해서 왕자까지 살해한 전적이 있는 미친놈들 아니던가.

목숨을 구해준 고마운 이들이 괜히 이쪽 일에 엮이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하나 다행인 건, 이 귀족가의 영애는 보통 귀족답지 않게 자비와 배려심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칼은 그냥 뻔뻔해지기로 했다.

"사실은 좀 위험한 자들한테 쫓기고 있었습니다만..."

"위험한 자들이라, 그게 누구냐?"

"...한데 그들이 누구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그걸 말하면 다시 제 목숨이 위험해질 겁니다."

그 대답에 유리의 표정이 다시 험악하게 변했다.

반대로 레테의 태도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렇군. 그럼 말하지 않아도 좋다."

"......"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넘어간다고?

칼은 조금 황당해져서 물었다.

"지금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넘어가시는 것 아닙니까?"

레테가 미소를 지었다.

"네가 진정 뭔가를 감추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겠지. 이리 대놓고 말할 수 없다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해서 그냥 믿으려는 것이다."

말을 마친 그녀가 무릎을 두드렸다.

"슬슬 마력도 다 회복됐으니 치료를 계속해주마. 이리로 와서 눕거라."

"......??"

그 제스처를 이해할 수 없었던 칼은 유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가씨, 이제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 자도 정신을 차렸으니..."

"눕혀야 출혈이 덜 하다며?"

"피는 이제 다 멎었지 않습니까. 부상이 아직 심각하긴 하지만 앉아서 치료를 받아도 충분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리가 칼에게 턱짓을 했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라는 뜻.

칼은 어영부영 쑤시는 몸을 일으켜서 레테의 옆에 앉았다.

그녀가 상처 부위에 손을 얹고 치유 마법을 캐스팅했다.

"한데 참 이상하구나. 아무리 상처가 깊다고 해도 아무는 속도가 너무 느린데..."

물론 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산마독에 아직 중독된 상태기 때문에 마력이 흩어져서 치유 마법이 별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회복 포션도 그랬었으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퍼붓다 보면 조금씩 효과가 있기는 했다.

'귀족 중에도 이런 자가 다 있구나.'

칼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법을 유지하는 그녀를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아마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도 계속 이런 식으로 마력을 쏟아부었으리라. 덕분에 목숨이 끊기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거고.

인벤토리에 있는 마력 포션이라도 꺼내서 주고 싶었지만, 그런 물건을 남한테 보일 순 없었기에 아쉬울 뿐이었다.

'그나저나... 그 괴물 노인네가 날 추적해오는 건 아니겠지?'

순간 걱정이 들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해당 장소에서 100KM나 떨어진 거리를 대체 무슨 수로 추적해오겠나.

더군다나 텔레포트를 사용했으니 어떻게 흔적을 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아주 높은 수준의 마법사가 있으면 좌표를 추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노인이 검사지 마법사는 아니었으니까.

설령 그게 가능한 동료를 불러온다고 해도 그때쯤이면 마력의 흔적이 다 지워져 있을 것이었다.

방금 막 깼지만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기에 금방 정신이 피곤해졌다.

칼은 걱정을 거두고 그만 아무 생각 없이 쉬기로 했다.

'위험한 자들이라...'

한편 유리도 그런 칼을 보며 상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치료하며 몸 내부의 기운을 살폈지만 마력이나 오러를 연마한 자는 아니었다.

정체를 밝히기 꺼려하는 것도 그렇고 음지 쪽에 숨어사는 잡배 놈인 것 같은데, 검상을 남긴 이는 아무리 봐도 굉장한 실력자였기에 그녀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괜한 일에 엮인 건 아닌가 모르겠군.'

뭐가 됐든, 가문의 성까지 되돌아가는 동안 별 일만 없기를 바라는 그녀였다.

* * *

마차를 타고 달리길 며칠이 흘렀다.

몸 상태는 처음 죽어가던 때에 비하면 많이 회복되었고, 산마독도 조금씩 자연 해독되며 마력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다음에는 마부석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레테가 괜찮다고 말려 결국 지금까지도 칼은 편하게 마차 안에 타서 창밖 풍경이나 구경하고 있었다.

'살지 않고 그냥 죽었으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평야는 초원 지대를 지나 어느새 매마른 땅으로 변해있었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며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본래 자롭 시로 가는 길이라 했었지?"

반대편에 앉아서 똑같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레테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광림의 오크들 때문에 요새 남서쪽 변경이 많이 위태롭다는 걸 알고 있느냐?"

얼핏 들은 소문이었기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이긴 하지. 본래 오크라면 타고난 흉포함 때문에 협동이란 게 거의 불가능한 놈들이니.'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쳤다.

'...잠깐만, 루브덤? 그리오 오크?'

루브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 했더니, 설마 그거였나?

떠오른 건 주술사 직업을 플레이하며 겪었던 미래의 지식이었다.

'제국 변경의 대참사...'

칼의 표정이 어둡게 변할 때였다.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인데, 국경을 넘을 생각이었다면 광림을 관통해서 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덜컹!

갑작스레 멈춰선 마차.

마부석의 기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습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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