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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화 (1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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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괴물 (5)

어둡고 긴 통로.

숲 속에 이런 동굴 같은 장소가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대체 이곳에서 뭔 지랄을 한 건지 정체 모를 썩은내가 가득했다.

쿵쿵쿵!

암시 마법을 활성화하고, 한층 경계를 끌어올리며 안쪽으로 이동하기를 잠시.

이윽고 칼은 몹시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찾았다, 쥐새끼."

"......"

루토도 칼을 바라봤다.

'...마법사?'

베하스의 그 광년도 아니고, 하다못해 다른 사제도 아니고, 자신과 같은 마법사다.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키메라는 또 어떻게 빼앗은 거지? 정신 지배를 해제하는 건 웬만해서 불가능... 아!'

루토의 시선이 검게 물든 키메라의 안구로 향했다.

그가 환희를 띄며 입을 열었다.

"당신, 그람 학파의 계승자로군?"

그람 학파.

죽음과 영혼을 다루는, 지금은 척살되고 사라진 흑마법 학파 중 하나.

언데드로 되살린 망자의 눈이 흑색으로 물드는 건 그들 마법의 고유한 특색이다.

루토는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호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카디악 학파의 계승자요! 생물을 융합하고 지배하는 그 카디악 말이요!"

"......"

"그나저나 이곳까지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거요? 내 키메라를 발견해서 찾아온 건가? 아아, 아무튼 반갑소이다. 설마 이런 곳에서 동포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칼은 대답하지 않고 빤히 루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태도에서 일종의 적대감을 느꼈는지, 루토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째려볼 필요 없소. 난 당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으니."

"......"

"비록 탐구하는 학문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마왕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 같은 관계나 마찬가지잖소. 이 세상에 부당한 박해를 받으며 공적으로 몰린 처지도 그렇고."

그람, 카디악, 그리고 그 밖에 등등.

금단의 마법을 다루는 이 흑마법 학파들은 모두 마왕에서부터 비롯된 해충들이다.

그러한 사실은 칼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안다고 해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 키메라도 그냥 당신에게 주겠소. 간만의 대성공작이라 안타깝긴 하지만 뭐, 이미 죽었으니 어쩔 수 없..."

"마을 주민들은 왜 죽였지?"

칼이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그 물음에, 루토는 이상한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죽였냐니? 그야 당연히 실험에 필요한 재료니까 사용한 거지.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소?"

사용.

이들에게 생명이란 일회용처럼 쓰고 버리는 재료에 불과한 것이다.

"저번에는 조금 큰 실험을 하느라 몇백 명을 납치했다가 큰일날 뻔했었지. 베하스, 그 빌어먹을 교단의 심판자도 따라붙고 말이요. 이번에도 걸린 줄 알고 심장 졸이며 막 튀려던 참이었소. 당신인 줄 알았다면 차라도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하하!"

칼은 역겨움이 치솟는 걸 느끼며, 루토를 따라서 웃었다.

【라이트닝 볼트】

빠지지직!!

기습적으로 날린 마법은 루토의 앞에 나타난 배리어에 의해 막혔다.

굴에 경계를 두고 미리 설치된 방어 마법이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오?!"

화들짝 놀란 루토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칼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그냥 죽어, 버러지야."

콰과과광!!

방어막을 사정없이 강타하는 거대한 화염구들.

루토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다들 튀어나와! 빨리!"

루토의 외침에 반응하듯 기괴한 울음소리가 굴 안쪽에서부터 어지럽게 울려퍼진다.

키메라들이었다.

콰앙!!

곧 산산히 박살난 방어막.

끼예에엑...!!

동시에 루토가 도망친 안쪽 굴에서 온갖 키메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두 개 달린 뱀, 찢어진 날개를 펄럭이는 사자, 데굴데굴 굴러오는 고기 덩어리.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었다.

"뚫고 오는 놈이 있으면 네가 막아라."

칼은 유유히 크루크에서 내려선 뒤, 마법을 캐스팅했다.

【블레이즈】

화아아악!!

비좁은 굴 통로를 가득 채워 휩쓰는 불꽃의 파도.

레벨업으로 높아진 서클의 격에 마법의 파괴력은 아까보다도 강해진 상태였다.

불꽃이 가시고, 다시 드러난 통로에 키메라들은 모조리 재가 되어있었다.

크루크 키메라만큼 강한 놈은 또 없었던 것이다.

캬악!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 놈이 칼을 향해 돌진했지만, 번개처럼 목덜미를 물어채는 크루크에게 막혔다.

"잘했어."

칼은 감지 마법을 활성화한 채 거침없이 안을 향해 나아갔다.

중간 쯤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이쪽을 향해 쇄도했다.

실드를 둘러 막아낸 뒤, 똑같이 전격 마법을 퍼붓는 걸 몇 번 반복하길.

콰과광!!

"이 젠장... 적당히 좀 하시오!"

이윽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루토가 칼에게 성을 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요?! 난 당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니까! 얼마 남지도 않은 계승자들끼리 서로 죽여서 득을 볼 게 뭐가 있단 말이요!"

칼이 무시하고서 물었다.

"나 말고도 다른 흑마법 계승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나?"

"물론 있지! 그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금도 간간이 서로 돕고 있소이다! 한데 당신은 왜...!!"

말을 하다 말고 루토가 기습적으로 마법을 날렸다.

칼은 실드를 둘러 가볍게 막았다.

'이런 씨발, 뭔 놈의 캐스팅 속도가...'

루토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다음 마법의 캐스팅을 준비했다.

'그래도 방금 내 키메라들을 상대하면서 마력이 많이 소모됐겠지. 크루크 언데드도 시전자만 죽으면 따라서 쓰러질 테니, 최대한 빠르게 소모전으로 밀어붙인다!'

상대는 대충 이쪽과 같은 4서클.

루토는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가 칼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적어도 비슷한 수준이라면, 마법전에서 칼을 이길 수 있는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의 다양성에서든, 연계 속도의 압도적인 차이에서든.

푸욱!

"......?!"

치미는 격통.

루토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아직 캐스팅을 절반도 마치지 못했는데, 어느새 날아든 빛의 가시들이 사지를 꿰뚫고 있었다.

"끼아아악...!!"

칼은 서늘한 눈빛으로 바닥을 구르는 루토를 바라보다가 뒤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크루크가 기다렸다는 듯 혀를 낼름거리며 루토를 향해 다가갔다.

"사, 살려줘!"

처절하게 소리치는 루토.

칼은 잠깐 크루크를 멈춰세운 뒤 물었다.

"다른 흑마법 계승자들을 안다고 했었지."

"아, 알고 있소! 정말로 알고 있소!"

"그놈들이 각자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알고 있나? 위치를 말하면 살려주지."

퀘스트에 없는 내용이지만, 결국 흑마법과 다시 한 번 큰 전쟁을 벌여야 할 때가 대륙에 찾아온다.

그러니 조금씩이라도 파악해둬 나쁠 건 없는 정보였다.

루토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횡설수설 대답했다.

"그, 그것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는 모르는데... 하, 하지만 따로 만나는 방식이 있소이다! 복잡해서 당신은 알아도 소용없고, 원한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소! 살려만 준다면 내가 있는 힘껏 도울... 자, 잠깐만! 흐억!"

피라미였군.

건질 게 없다고 판단한 칼은 다시 크루크를 움직였다.

우드드득!!

허공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핏물.

크루크는 놈을 삼키지 않고 다시 바닥에 뱉어냈다.

['돌발 퀘스트: 흑마법사 사냥'을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20000SP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업은 안 됐네."

칼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긴, 크루크 키메라를 죽이며 많이 오르기도 했고, 썩 강한 놈도 아니었으니.

너덜너덜한 루토의 시체를 완전히 태워서 없애버린 뒤, 칼은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왼쪽과 오른쪽 갈림길.

오른쪽 갈림길로 먼저 들어가자 굴에 은은히 진동하던 썩은내가 더욱 심해졌다.

곧 드러난 참상에 칼은 욕을 내뱉었다.

"하여튼 미친 새끼..."

정체 모를 핏덩어리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사람의 팔다리.

여기는 아무래도 실험을 행하는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전부 태워버린 뒤, 밖으로 나와 다시 왼쪽 갈림길로 들어갔다.

"이쪽은 생활 공간이겠군."

예상대로 잘 정돈된 공간과 함께 바닥 한쪽에 쌓인 서적들이 보인다.

칼은 책들을 살펴보았다.

[컨버젼(15000SP)]

[마인드 컨트롤(11000SP)]

.

.

.

키메라를 만드는 융합의 흑마법과, 그것과 관련된 마법서들.

칼은 그것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챙겼다.

이런 역겨운 마법들을 익힐 순간이 찾아올 것 같지는 않지만, 앞일이야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대충 챙길 것들을 챙기고 다시 바깥 통로로 나선 후.

"너도 이만 쉬어라."

칼은 크루크 언데드에게서 마법을 해제했다.

전력으로서는 아깝지만, 이걸 계속 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쿠웅.

도로 시체로 되돌아간 크루크가 거체를 바닥에 뉘였다.

칼은 굴 밖으로 나섰다.

* * *

숲에서 나와 다시 마을로 돌아갔을 때, 마을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먼저 돌아갔던 울턴과 지프가 괴물이 죽은 사실을 이미 알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큰 공은 칼에게 있다는 사실도.

덕분에 귀찮게도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칼은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며칠만 더 머물다 가면 좋을 텐데..."

"괜찮습니다."

애초에 챙겨온 것도 없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건 없었다.

칼은 말을 이끌고서 마을 입로를 따라 걸었다.

지프와 촌장을 포함해서 길을 따라 나란히 선 주민들이 그를 배웅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마법사님!"

"언제든 다시 찾아오시면 꼭 맛있는 수프를 대접하겠습니다! 카밀라 여관의 감자 수프 말고요!"

그중에는 울턴도 있었다.

그는 부상 때문에 며칠 더 마을에서 머물러갈 모양이었다.

"함께해서 정말 영광이었소, 칼 공."

"나도 그렇습니다."

"성으로 돌아가면 백작님께 반드시 공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것이오. 아, 물론 번개 얘기는 비밀로 하고. 또 그리고 언제든 성으로 찾아와서 나를 불러주기만 하시오. 바로 맨발로 뛰쳐나가 공을 맞이하겠소이다!"

"...예, 그것 참 고맙군요."

칼은 여전히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말에 올라탔다.

이제 마저 다시 갈 길을 갈 시간이었다.

가스터 시를 향해서.

* * *

칼이 떠나고 난 어두운 굴.

그곳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로브, 그리고 얼굴의 반쪽을 가면으로 가린 여인.

여인은 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까맣게 탄 루토의 시체 앞에서 멈춰섰다.

"......"

잠시 시체를 노려보다가 성호를 그은 여인은, 이내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어 크루크 키메라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것을 살펴보는 여인의 표정이 순간 싸늘하게 굳었다.

"...언데드, 그람 학파?"

또 다른 흑마법사의 흔적.

지금까지 쫓던 놈은 이미 죽어버렸지만, 새로운 하나가 나타났다.

대륙의 해충들.

결코 이 세상에 살아 숨 쉬어선 안 되는 악의 싹들.

새 목표를 찾은 여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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