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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화 (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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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괴물 (1)

"괴물?"

조금 예상치 못한 말에 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소. 한데 보통 몬스터가 아니라,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도마뱀이오. 솔직히 도마뱀인지도 확실하진 않지만."

지프가 그 모습을 떠올리는 듯 눈쌀을 찌푸리고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언제부터였는지 그 괴물이 숲을 차지하고서 자리를 잡았소. 그것 때문에 사냥을 제대로 못 하게 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종종 마을 지척까지 내려와서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간다는 거지."

"음... 심각한 일이군요."

"지금까지 벌써 여섯이 죽어나갔으니 마을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을 거요."

"영주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용병이라도 부르거나."

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청년 하나가 영주성으로 향했으니, 지금쯤이면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왔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솔직히 회의적이오. 고작 병사나 용병들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닌 것 같소."

더 얘기해봤자 뭔 의미가 있겠냐는 듯, 그 말을 끝으로 지프가 입을 다물었다.

칼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혼자서 생각했다.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도마뱀 괴물이라.'

생각나는 게 몇 있기는 했다.

게임 속에 들어오기 전에 마법사를 제외한 다른 직업군들은 전부 엔딩을 본 그였다.

세세한 세상 물정에는 아직 그렇게 밝지 않아도, 이런 쪽으로의 지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뛰어난 편이었다.

다만 하나 문제가 있다면, 게임 설정상의 시대 배경은 직업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는 것.

어쩌면 지프가 말하는 괴물은 지금까지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일 수도 있었다.

'약간 호기심이 생기긴 하는데... 그냥 신경 끄자.'

레벨업도 좋지만, 괜히 정보도 없는 대상과 싸워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

지프에게 여러모로 도움은 받았어도 그게 목숨을 걸어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프가 모닥불을 뒤척이며 말했다.

"다 먹었으면 그만 주무시오. 동이 틀 때 바로 떠나야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할 테니."

* * *

다음날 마을에 도착한 건 지프의 예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때였다.

해질녘 어스름의 빛을 받으며, 두 사람의 시야에 서서히 마을의 전경이 들어왔다.

"오, 지프! 왔는가?"

마을 입로 부근에 앉아있던 중년이 일어나 지프를 반겼다.

"이번엔 조금 늦게 왔네 그려. 상회하고 이야기가 잘 안 풀렸나?"

지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값에 잘 팔았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이번 가죽은 장사꾼 놈들 눈깔이 돌아갈 정도로 품질이 좋지 않았나. 뭐, 자네가 후려침 당할 일은 없으니 걱정이야 쓸데없는 일이었지만... 한데 이 청년은 누군가?"

중년의 시선이 옆쪽으로 향했다.

칼이 지프를 따라 말에서 내리곤 말했다.

"칼이라고 합니다. 그냥 나그네입니다."

지프가 말을 덧붙였다.

"마을에서 하루 머물고 싶다기에 루벤에서부터 동행했습니다."

"그런가? 환영하네. 딱히 외부인을 경계하는 사람은 없으니 하루 편히 머물다 가게나."

그렇게 말하는 중년의 얼굴에도 희미한 그늘이 져있었는데, 지프가 말한 괴물 때문일 것이었다.

"톰은 돌아왔습니까?"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가며 지프가 중년에게 물었다.

중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안 왔네. 자네 말고도 다들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지."

"...영주성까지 거리가 꽤 되긴 하지만 충분히 돌아올 때가 됐는데."

"그러게 말이야. 가는 길에 도적 놈들을 마주친 건 아닐까 걱정이네. 병사들은 못 데리고 오더라도 몸은 성히 돌아와야 할 텐데..."

칼은 어제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둘의 대화를 대충 이해했다.

톰이라는 자가 영주성으로 괴물을 처치해달라고 부탁하러 간 것이리라.

칼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생각했다.

'영주가 병력을 흔쾌히 동원할까?'

이 세계 귀족 놈들의 성격과 사고방식을 생각해보면 그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물론 이 인근을 다스리고 있는 영주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묵묵히 뒤따라 걷고 있는 칼에게 중년이 말했다.

"우선 마구간에 말부터 맡기고 바로 여관으로 가게나."

"아, 예."

"그리고 식사를 할 거면 감자 수프는 절대로 시키지 말게. 맛이 정말로 형편없거든. 밖에서 온 사람한테 주민들 흉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이 말해줄 수밖에 없지, 하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촌장님!"

이쪽을 부르는 소리에 중년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촌장이었어?

칼도 중년을 한 번 바라보고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을 주민 하나가 방금 지나온 길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톰이 왔습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기사님까지 한 분 대동하고 돌아왔다고요!"

중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지프, 이 친구는 자네가 마저 좀 안내해주게나."

그렇게 말하고는 주민과 함께 마을 입구로 뛰어가는 중년.

칼은 지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행히 영주가 병력을 내준 모양이네요. 기사까지 왔다고 하니 괴물을 처치할 수 있겠습니다."

기사.

육체의 능력이 인간을 넘어선 초인들.

검 한 자루로 온갖 신위를 보이는 그들이라면 웬만해서야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여전히 지프는 미적지근한 표정이었다.

"부디 그럴 수 있길 바라야겠지."

둘은 마구간에 말을 맡기고 마을 여관으로 이동했다.

지프도 여관에서 식사를 해결할 거였는지 함께 들어갔다.

"어, 지프 아저씨!"

구석의 탁자에 앉고 있자니, 주방 안쪽에서 뛰어와 반기는 한 소녀.

"방금 돌아오신 거예요? 가죽은 제값에 잘 파셨어요?"

"그래."

"어휴, 재미없게. 단답만 하지 말고 길게 얘기를 해달라고요. 음, 근데 이 사람은...?"

칼이 대답했다.

"그냥 하루 머물고 떠날 사람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하루 동안 최대한 털어먹어야겠네요. 술은 좋아하세요? 저희 여관 산딸기주가 정말 어디 가서도 맛 볼 수 없는 건데..."

정신없이 이어지는 말을 간신히 끊고서 대답했다.

"감자 수프만 빼고 푸짐하게 차려주세요. 지프 씨,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까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으, 수프 얘기는 대체 또 누가 한 건지. 술은요?"

"그것도 한 잔씩 주시고."

주문을 받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는 그녀.

지프가 말했다.

"여관 주인 딸인 카밀라요. 원래 저런 애니까 털어먹겠다는 말은 신경 쓸 것 없소."

"그래 보이네요. 마을 분위기가 안 좋다더니, 촌장님도 그렇고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요."

"다들 애써 쾌활한 척 하는 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탁자에 하나둘씩 음식이 차려졌다.

술과 빵, 빈약하게나마 고기 종류들이 한가득 차려진 만찬.

"근데 밖이 좀 소란스러운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

카밀라의 물음에 지프가 답했다.

"톰이 방금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저, 정말이요?! 그거 정말이에요?"

"나가서 직접 보면 될 것 아니냐."

지금껏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힘이 빠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카밀라.

"다행이다... 이제 드디어 그 빌어먹을 도마뱀이 나타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그녀가 순간 멈칫했다.

"잠깐, 그럼 그 병사들 오늘은 다 여기 여관에서 머물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아, 이런. 엄청나게 바빠지겠네. 아버지는 어디 가신 거야? 빨리 말씀드려야..."

벌컥!

그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여관 문이 열리며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기를 든 수십의 병사들.

그 앞에는 카밀라의 아버지인 채드가 서있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편히 쉬시면 됩니다, 병사님들."

"오, 좋아. 생각보다 훨씬 좋아보이는데?"

그 말에 왁자지껄 웃으며 마구잡이로 자리를 잡고 앉는 병사들.

카밀라가 채드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버지, 이분들..."

"그래, 괴물을 처치하러 와주신 병사님들이다. 오늘은 어두워졌으니 여기서 머물고, 내일 낮에 괴물을 잡아주신다고 하니까 음식 값은 받지 말거라. 촌장님께서 나중에 따로 돈을 모아서 주신다고 했으니."

그렇게 병사들이 술판을 벌이며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여관.

"크하핫! 그래서 내가 말이야...!!"

"뭐?! 흐하핫!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훑었다.

지프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물론 괴물을 처리하러 와준 이들에게 뭐라 항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데 기사도 왔다더니 안 보이는데요."

"들릴 수 있으니 조심해서 말하게. 높으신 나으리는 촌장님이 자기 집으로 모셨겠지."

칼은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남은 식사를 했다.

병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지프와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뒤, 칼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지프 씨는?"

"나는 좀 더 앉아서 혼자 마시겠네."

그렇게 말하며 힐끗 병사들과 카밀라를 번갈아보는 지프였다.

칼은 그 심정을 눈치챘다.

혼자 마시려는 게 아니라, 아마 취한 병사들이 뭔 행패를 부리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리라.

"아, 젠장. 여기서도 다 들리네."

2층 여관방으로 들어간 칼은 투덜거렸다.

하긴, 고작 마을 여관에서 뭘 기대할까.

걸을 때마다 바닥이 삐걱대는 게 방음이 되면 오히려 신기한 일이긴 했다.

침대에 로브를 벗어두고 그만 휴식을 취하려던 때였다.

"놔, 놔요! 이거 놓으라고요...!!"

밑에서 들려오는 카밀라의 목소리.

칼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씨발, 그럼 그렇지."

용병 놈들이든 병사 놈들이든.

어디를 가든 이 두 부류의 인간들이 여럿이 뭉치면 얌전한 꼴을 못 봤다. 술이 들어가면 더더욱.

칼은 로브를 벗으려던 걸 멈추고 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렸던 광경과 한 치도 다름없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거 씨발, 진짜 너무하네!"

카밀라의 손목을 붙잡은 채 놓지 않고 있는 병사 하나.

주변에서 낄낄대는 다른 병사들.

"우리가 말이야! 기껏 그 무시무시한 괴물까지 잡아주러 왔는데, 응? 고작 술 하나를 못 따라줘?!"

"그래, 맞아! 자꾸 튕기지 말고 앉아서 같이 마시자고! 푸하핫!"

점점 소리가 커지는 병사들에 카밀라가 겁을 먹은 듯 움츠렸다.

그때였다.

"그만하시오."

손목을 붙잡힌 병사가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 새끼는?"

그가 어느새 옆에 선 지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사내 새끼더러 술 따라달래? 방해하지 말고 저리 꺼져."

"그만하라고 했소."

"뭐? 이 씨발 새끼가 건방지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퍼억!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지프.

주먹을 날린 병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어쭈? 안 쓰러지네? 그럼 어디 계속 처맞아봐라, 이 색... 끼야아아악!!"

콰앙!

순간 비명과 함께 날아가며 여관 벽에 처박히는 병사.

다른 병사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나야, 이 새끼들아."

병사들의 시선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칼에게로 몰렸다.

카밀라와 지프도 멍한 얼굴이었다.

칼이 잠시 두 사람을 보다가, 한심하다는 듯 병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괴물 잡으러 온 게 벼슬이냐?"

"......"

"그거 그냥 니들 일이야, 머저리 새끼들아. 여태껏 영지민들 세금 꼬박꼬박 월봉으로 처먹었으면 응당 해야 되는 일이라고."

멍하니 듣던 병사 하나가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어올렸다.

콰앙!

물론 칼의 손길 한 번에 방금 전 병사처럼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지만.

"그, 그만! 그만하시오!"

병사들 중 하나가 나서서 소리쳤다.

칼은 콧방귀를 꼈다.

"싫은데? 계속할 건데?"

"우, 우리는 위대하신 게로드 백작님의 병사들...!!"

"어쩌라고. 너도 벽에 처박히기 싫으면 그냥 닥치고 있어라. 아니, 계속 한 방법이면 심심하니까 팔다리를 비틀어주랴?"

칼의 살벌한 말에 병사들이 움츠러들었다.

아까부터 시끄러워서 짜증났던 참인데, 이렇게 걸린 참에 제대로 갈굴 생각이었다.

그때 다시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

"마법사 양반, 우리가 잘못했으니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칼은 병사를 바라봤다.

병사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일을 더 키웠다간 당신만 곤란해질 거요."

"글쎄, 그럴까?"

"그럴 거요. 지금 마을에 우리뿐만 아니라 기사님도 한 분 와계시지.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소?"

칼이 아무 말도 없자, 병사는 자신감을 얻은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팔톤 학파의 분인 것 같은데... 이 일이 괜히 백작님 귀에 들어가면 당신이 어떻게 될 것 같소? 장담하건데, 우리보다는 당신이 훨씬 곤란해지겠지. 여러모로 당신한테만 불리한 상황이요. 서로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팔톤 학파라.

아무래도 이 백작령 내에 위치한 마법 학파인 모양인데, 잘은 몰라도 썩 이름 높은 학파는 아닐 것이었다.

얼마나 만만하면 감히 병사 나부랭이 따위가 이런 병신 같은 협박을 하며 주둥이를 털어댈까.

칼은 인벤토리에서 신분증을 꺼내 병사에게 던졌다.

이럴 때 쓰라고 받은 물건이었다.

"이게 뭐..."

허공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물건에 흠칫하던 병사가, 신분증을 받아들고는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떴다.

이어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알티우스... 흐억!"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마는 병사.

칼이 이가 드러나도록 씩 웃었다.

"방금 말한 거, 그대로 다시 지껄여봐."

"죄, 죄송...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아까는 마법사 양반이라며? 왜 갑자기 님이 됐나.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상황을 깨달은 다른 병사들도 푸르죽죽하게 죽은 얼굴이 되었다.

칼은 옆에 있던 병사에게 말했다.

"야."

"예, 예? 예!"

"가서 얼른 니네 기사님 불러와라. 누가 불리해질지 직접 확인해봐야지. 안 그래?"

"아, 아니... 그게..."

"안 불러와? 한 명씩 벽에 처박히다 보면 그때 누가 불러오려나? 응?"

칼이 본격적으로 병사들을 갈구기 시작하려던 때였다.

벌컥!

갑작스레 여관 문이 열고 들어온 주민.

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괴, 괴물!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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