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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우스 (3)
도서관에서 나온 뒤, 칼이 세인달에게 다시 부름을 받은 건 늦은 밤이었다.
"대결... 이요?"
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분명 간단한 심사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생각해보니 이러는 편이 훨씬 자네에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세인달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승패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가입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그럼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자네를 정식 학파원으로 들이기 위한 절차지. 이왕이면 견습을 바로 건너뛰는 게 좋을 테니까."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칼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견습이고 정식이고 뭐든 상관없는데.'
그저 알티우스라는 편리한 겉치레 하나만 얻으면 족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 설명을 들으니 일은 이미 전부 진행된 모양이고,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인달이 나름대로 신경 써서 차려준 무대인데 거절하는 건 그의 체면을 무시하는 일이었으니.
무엇보다 칼은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좀 귀찮아지긴 했지만, 대결 그까짓 거야 뭐 하면 되는 거고.
이왕이면 높은 직위여서 나쁠 것도 없고.
좋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결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겁니까?"
"일단은 대인 마법전의 형태인데... 자세한 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네. 내일 대결을 진행하기 몇 시간 전에 원로들끼리 회의를 통해 그 자리에서 정할 예정이네."
세인달이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아, 그리고 상대는 허스 원로의 손녀이자 제자인 샤론 레이첼이네. 이곳 본원에서도 천재로 유명한 아이지. 말해도 자네야 모르긴 하겠지만."
그 말에 칼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샤론 레이첼? 어디서 들어본 것 같...'
그리고 곧바로 떠올렸다.
아까 전 도서관에서 만났던 그 이상한 여자의 이름이었다.
이것 참 별 우연이 다 있네.
* * *
다음날 정오.
예정대로 칼은 세인달을 따라 한 마탑의 지하층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원로 몇몇이 한쪽에 모여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아이로군."
"흐음, 과연..."
칼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감탄사를 터뜨리는 원로들.
또 다른 한쪽에는 허스 원로와 샤론이 서있었다.
칼은 슬쩍 그쪽을 쳐다봤다.
허스가 대놓고 못마땅한 눈빛을 띄고 있었기에 곧바로 시선을 돌렸지만.
'엄청 째려보네.'
하기야, 손녀 자리를 다짜고짜 나타난 놈이 뺏겠다고 나섰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모두 모였으니 슬슬 시작하도록 하지. 두 사람은 지정된 위치에 서게."
원로회장의 말에 칼과 샤론은 앞으로 나섰다.
우우웅.
곧 바닥에서 빛나는 마법진과 함께, 공간을 넓게 둘러싸고 생성되는 반구 형태의 배리어.
원로회장이 이어서 대결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실전처럼 아무런 제한도 없이 마법전을 펼치는 건 아니었다.
고작 직위 하나 정하는 일로 서로 살상 마법을 뿌리며 싸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이건 결투가 아니라, 그저 마법적 능력의 우위를 확인하는 위한 시험에 가까웠다.
"사용 가능한 마법은 매직 미사일과 포스, 그리고 실드 마법까지 3가지로 제한한다."
매직 미사일, 포스, 실드.
셋 모두 마법사라면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기본 중의 기본 마법이었다.
"그리고 승리 조건은..."
원로회장이 두 사람에게 팔찌를 건내주었다.
마력이 느껴지는 물건, 마도구였다.
이걸 왜 주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설명이 이어졌다.
"1회용 방어 마법이 걸려있는 마도구네. 신체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지면 효과가 발동되지."
상대편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해, 먼저 마도구의 효과를 소모시키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다.
칼과 샤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방식이군. 누구 다칠 위험도 없고.'
그때였다.
[돌발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돌발 퀘스트: 실력 증명>
샤론 레이첼, 해당 결투에서 그녀를 완패시켜 원로들에게 실력을 증명하십시오.
퀘스트 보상: 10000SP
'음.'
이게 또 퀘스트가 뜨네?
10000SP라, 보상도 상당하다.
칼은 조금 더 솟아오르는 의욕을 느끼며 반대편의 샤론을 바라봤다.
그때 뜬금없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넌 나 못 이겨."
"......"
뭐지? 도발인가?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도발 같은 걸로 보이진 않았다.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표정.
그저 자신이 이기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칼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아주 자신감이 넘치네?"
"너에 대한 건 할아버지한테 들었어. 난 경험 많은데, 넌 없어."
"......?"
"스승님을 도와 연구만 했다며. 제대로 된 대인 마법전을 겪어본 적도 없겠지. 서클이 똑같다고 다가 아니야."
칼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나도 하나만 묻자."
"?"
"너 본원 바깥으로 나가서 실제 전투는 겪어본 적 있냐? 여기 마법사들하고 그 대인 마법전 연습하면서 쎄쎄쎄 논 거 말고."
그 말에 샤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 건방져."
"그거야 보면 알겠지."
칼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저 녀석이 뭘 알기나 할까.
0서클부터 시작해서,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그동안 어떤 악전고투를 거쳐왔는지.
그는 가짜 마법사지만, 적어도 전투에서만큼에서는 그 반대였다.
"각자 준비하게. 허공에 마력구가 터지면 시작이네."
원로회장이 손을 뻗자 둘 사이의 허공에 자그마한 마력구가 나타났다.
잠깐의 대기 시간.
한편으로는 원로들 사이에서도 둘 사이의 승패를 예측해보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 샤론의 승리지. 뻔한 결과가 아닌가."
허스의 단언에 대부분 원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겠지. 스승과 둘이서만 지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 칼이란 아이가 제대로 된 마법전을 겪어봤을 것 같진 않군."
"둘의 마력은 엇비슷하다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차이가 클 거야. 아무래도 제론의 제자가 이기긴 어려울 것 같네."
그 반응들에 허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약간의 비웃음을 담고 세인달을 돌아봤다.
"세인달,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부 자네가 만든 무대가 아닌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인달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군."
"...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분명 자네의 손녀가 이기겠지."
"허,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체 왜 번거롭게 이런 상황을 만든 건가?"
세인달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저 감이지."
"......?"
"칼, 저 아이에게서 묘한 뭔가를 느꼈거든. 다른 이유는 없어. 그게 전부라네."
"원 별, 마법사가 되서 감은 무슨..."
허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에 눈엣가시 같은 칼의 모습이 들어왔다.
'혹여나 비겁한 수라도 쓴다면 가만 안 둘 테다.'
그렇게 모두가, 특히나 허스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가운데.
퍼엉!
허공에 있던 마력구가 터졌다.
시작 신호.
그와 함께 곧바로 샤론은 마력을 끌어올려 응집하였다.
슈슈슉!
10개도 넘는 매직 미사일이 칼을 노리고 일제히 쇄도한다.
칼은 재빨리 실드를 둘렀다.
콰아앙!!
매직 미사일은 실드를 뚫지 못하고 소멸해버렸다.
시작과 동시에 가볍게 주고받은 공방.
'캐스팅 속도가 상당한데.'
칼이 살짝 놀란 한편, 샤론도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캐스팅 속도가 나랑 비슷해?'
길게 끌 것 없이 바로 끝내버려서 격의 차이를 알려주려 했는데.
샤론은 칼에 대한 평가를 살짝 수정했다.
캐스팅 능력은 이쪽과 맞먹을 정도로 상당한 편이다.
'그래봤자 그거 하나뿐.'
마력 제어와 경험은 자신이 훨씬 우월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샤론은 실드를 둘렀다.
칼 쪽에서도 곧바로 매직 미사일로 반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콰과광!!
공격을 막아낸 뒤.
'이번엔 더 많이.'
그녀는 방금 전보다 더 많은 매직 미사일들을 응집해 반격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빠직!
"......?!"
난데없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실드.
밑쪽에 느껴지는 감각에 그녀는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느새 실드를 박살내고 들어온 포스 마법이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콰당!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는 샤론.
"......!!"
원로들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칼이 행한 일은 간단했다.
매직 미사일을 쏟아붓고, 실드가 약해진 틈을 타서 바로 뾰족하게 다듬은 포스 마법을 날린 것.
수법 자체는 평범하다.
원로들이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술식 전개와, 그에 맞는 마력 운용을 통해 발현된다.
술식 전개는 정신력이 소모되고, 마력 운용은 한 번 방향을 정하면 다른 형태를 바꾸기까지 간극이 있다.
때문에 마법과 다른 마법의 시전 사이에는 누구나 당연히 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수준에 안 맞게 무리해서 바로 다음 마법을 펼쳤다가는 정신적으로나 내부의 마력 흐름으로나 반동이 오니까.
하지만 방금 그건...
"...매직 미사일과 포스 마법 사이에 텀이 전혀 없었다!"
"저 정도의 신속한 마법 연계라니, 4서클에 저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매직 미사일과 포스가 하급 마법에 불과하더라도, 방금의 연계는 4서클 수준을 넘어선 신위였다.
원로들은 크게 놀랐지만, 사실 칼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술식 전개나 마력 운용의 과정 따위가 껴있지 않으니까.
시스템이 전부 알아서 해주는 거니까.
당연히 그에 따른 반동도 없으니, 마력만 된다면야 얼마든지 쉬지 않고 마법의 연계가 가능했다.
아무튼 남들이 보기엔 경악스러운 능력을 보여준 칼은, 태연히 서서 넘어진 샤론을 바라봤다.
다음 공격은 날리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난 샤론이 죽일 듯 칼을 노려봤다.
"...너, 장난해?"
칼이 능청스레 대답했다.
"뭐가?"
"그 포스 마법! 넘어뜨릴 게 아니라 공격했으면 네가 이기는 거였잖아! 방금 넘어졌을 때도!"
"아, 그런가? 근데 그런 식으로 끝내버리면 네가 납득하지 못할 것 같아서."
<돌발 퀘스트: 실력 증명>
샤론 레이첼, 해당 결투에서 그녀를 완패시켜 원로들에게 실력을 증명하십시오.
퀘스트 완료 보상: 10000SP
퀘스트 완료 조건은 '완패'.
칼은 전에도 비슷한 말장난을 당해본 적이 있다.
때문에 단순히 결투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완패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이 실력 차이를 인정하도록 납득시켜야지.'
슈와악!!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직선 형태의 포스 마법을 날려오는 샤론.
칼도 마찬가지로 대응했다.
중간에서 충돌한 두 포스 마법이 굉음과 함께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꾸구국...
칼은 건너편의 샤론을 힐끗 바라봤다.
이쪽의 포스를 밀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
"어쩌자고 그렇게 있는 힘껏 미냐?"
칼이 포스의 형태를 순간 오목하게 바꿔 뒤로 기울였다.
"마력의 중심은 항상 유지해야지."
그대로 방향을 비틀자 샤론의 포스는 관성에 의해 속절없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그 절묘한 마력 제어에 원로들이 다시 한 번 탄성을 터뜨렸다.
콰당!
곧바로 이어진 포스 채찍에 또다시 넘어지는 샤론.
두 번째다.
칼은 여전히 쓰러진 샤론을 공격하지 않았고, 그녀는 참담한 심정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마력 제어는 자신이 뛰어날 거란 것도 착각에 불과했었다.
"...이익!!"
산발처럼 쏟아지는 매직 미사일.
이번에도 칼은 똑같이 대응했다.
콰과과과광!
어지럽게 허공에서 충돌하는 매직 미사일들에 의해 연쇄 폭발.
아무리 매직 미사일이 1서클 마법에 불과해도, 지금 그걸 펼치는 건 4서클의 마법사들이다.
상당한 위력의 충격파가 이곳저곳 울리며 공기가 진동했다.
꽤 한참 동안 이어지는 난전.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며 샤론의 캐스팅 속도가 점점 떨어졌다.
물론 그때까지도 칼은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대충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칼은 이만 대결을 끝내기로 했다.
퍼엉!
틈을 노려 샤론의 몸을 타격하는 매직 미사일.
팔목에 차인 마도구가 발동되며 그녀를 보호했다.
그녀는 허망한 얼굴로 멍하니 마도구를 바라봤다.
무엇 하나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처참한 패배였다.
"대결을 종료한다. 승자는..."
원로회장이 나서서 승패를 가렸다.
물론 완벽한 칼의 승리였다.
['돌발 퀘스트: 실력 증명'을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10000SP를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