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화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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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우스 (1)

본원의 마탑들은 높았다.

많기도 한데, 정말 더럽게도 높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를 중심으로 굉장한 인파가 몰려있었기에, 칼은 우뚝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무리 알티우스 본원이라 해도 그렇지,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거기다 전부 마법사들이다.

의문은 더욱 커졌지만, 칼이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바로 오늘이 일년에 한 번 돌아오는 알티우스 학파의 공식 가입 시험 첫날임을.

온 대륙의 마법사들이 그 명성 높은 알티우스의 소속이 되기 위해 이곳 루벤으로 몰려든다.

지구식으로 현재 상황을 표현하자면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것이다.

"저기요, 마법사들이 왜 이렇게 많이 몰려있는 겁니까?"

"응?"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자 그가 친절히 답해주었다.

"좀 먼 곳에서 오셨나? 오늘부터 알티우스 학파의 가입 시험이 시작되서 그렇다네."

그러고 보니 오면서 상인들이 그런 얘기를 떠드는 걸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칼은 진땀을 빼며 사람들을 뚫고 관문까지 도달했다.

"거기! 아직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번엔 웬 마법사가 지팡이을 내밀며 저지하고 나섰다.

로브에 새겨진 문양을 보니 알티우스의 마법사들이 직접 인파를 관리하고 있는 모양.

하기야, 이렇게 마법사들이 많이 모였으니 만약을 위해서 귀한 분들이 직접 움직이기도 해야겠지.

칼은 애써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기, 전 시험을 보려고 온 게 아닌데요. 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웃기는 소리 말고 물러나세요. 손님이면 연락 넣고 다른 관문으로 오면 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거야 만나야 되는 사람이 완전히 초면이니까 그렇지, 씨발.

칼은 인내심을 발휘해서 다시 말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오늘 처음 뵙는 분이라 그렇습니다. 말이라도 좀 전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느 분인데요?"

"세인달 님이라고, 저희 스승님께서 그분의 친우 되시는..."

칼은 흠칫 놀라며 말을 멈췄다.

이름을 들은 마법사가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세인달 님이요? 원로회의 세인달 님을 말씀하시는 게 맞습니까?"

"어... 그건 잘 모르겠고, 아무튼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서 찾아온 겁니다만."

마법사가 곧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스승 분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바로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제온 님의 제자가 찾아왔다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허겁지겁 안으로 달려가는 마법사.

칼은 멀뚱히 서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깐 동안 그러고 있자니, 누군가 옆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정말 징글거리게 많지? 그런데 내일이면 이중에 절반도 남아있지 않을걸. 형편없는 어중이떠중이가 대부분이거든."

칼은 옆을 돌아봤다.

금발의 사내가 히죽히죽 웃으며 이쪽을 위아래로 쳐다보고 있었다.

"꽤 어려보이는데, 복장도 그렇고 혼자 있는 걸 보면 귀족 도련님은 아닌 것 같고. 흠, 로브에 학파 문양도 없군. 설마 어디서 잡다한 마법이나 몇 개 주워 익혀서 시험을 치르러 온 건가? 하핫."

"......"

"아, 우선 내 소개부터 하자면 아스터 학파의 로랑이라 한다. 설마 아스터의 이름을 모르지는 않겠지? 알티우스의 산하 학파 중 하나인 아스터 말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2서클의 마법사지."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로브의 문양을 보여주는데, 칼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뭐지, 이 병신은?'

지금 설마 시비를 걸고 있는 건가?

칼의 반응이 어떻든 로랑은 계속해서 입을 나불거렸다.

"내가 너 같은 애들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말해주는 거야. 그런 어설픈 실력으로는 오늘 있을 기초 시험도 통과 못 한다고. 꿈이 큰 건 좋지만, 그래도 알티우스는 너무 현실성이 없잖아?"

"......"

"그러니까 내 말은 시험에서 바로 떨어지더라도 너무 낙심하지는 말라는 소리지. 자기 위치가 어디쯤인지 일찍 깨닫는 것도 앞으로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거니까."

칼은 이 머저리를 상대해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 태도에 신나게 지껄이던 로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껏 조언해줬더니 뭐야, 그 반응은? 하여튼 실력 없는 것들이 자존심만 높아서..."

"아, 저기에 계십니다!"

그때 관문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련의 무리.

로랑이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 모두가 웅성거리며 시선을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게, 상상치도 못한 거물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유려한 금테가 둘린 순백색의 로브.

알티우스의 최고 권력 중 한 축, 원로회의 상징이었다.

"저 아이인가?"

주변에 마법사들을 대동하고 인파를 향해 다가오는 노인.

알티우스의 원로 세인달.

그가 걸음을 옮길수록 마법사들 사이의 소란이 사그라들었다.

종래에는 완전한 고요가 내려앉고, 세인달은 인파 앞쪽에 있던 한 청년의 앞에 섰다.

바로 칼이었다.

"......"

세인달은 잠시 칼을 바라보더니, 이채를 띈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자네가... 제론 그 친구의 제자가 맞는가?"

집중된 시선 속에서, 칼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설정상 이 캐릭터의 스승은 엄청난 거물을 친구로 뒀던 모양이다.

칼에게 있어서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바로 지금 상황이.

'젠장, 이거 너무 주목을 받았는데.'

이 험한 세계에서 쏠리는 관심이 많아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괜히 여기까지 등장한 세인달을 속으로 욕하며, 칼은 그에게 반지 하나를 건내주었다.

"스승님께서 이걸 보여드리면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

이게 뭔 물건인지는 칼도 몰랐다.

단지 퀘스트를 받으며 신분을 증명할 수단으로 함께 받았을 뿐.

"...맞군. 분명 그 친구의 물건이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 세인달.

그가 칼에게 반지를 돌려주며 말했다.

"알티우스의 본원에 온 걸 환영하네. 여기 계속 서있지 말고 우선 안으로 들어가지."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칼은 잠시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넋을 놓고 이쪽을 바라보는 로랑의 얼빠진 얼굴이 보였다.

"친구, 조언은 고마웠어. 근데 스스로에게도 한번 적용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자기 위치를 깨달으라는 그거 말이야."

"......"

시뻘개진 얼굴로 침묵하는 로랑.

칼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 * *

세인달을 따라서 들어간 마탑은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뭔가 좀 어둡고 칙칙한 걸 상상했었는데, 내부 공간은 햇볕이 비치는 바깥과 다름없이 밝았다.

입구 쪽에는 뭔가 카운터에 안내원 같은 사람도 있고.

"자, 편히 앉게나."

세인달의 따라서 도착한 상층의 넓은 방.

칼은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차는 뭘로 마시겠나?"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하하, 제론 그 친구도 뭘 대접하려고 하면 항상 자네처럼 대답했었지. 아무거나 괜찮다고."

세인달은 잠시 추억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근데 이건 그냥 처음 온 장소면 으레 하는 대답 아닌가.

차를 내려놓으며 앞자리에 앉은 그가 문득 칼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참 여러모로 경악스럽군. 그 친구 성격에 제자를 들인 것도, 그리고 자네의 수준도 말이야. 4서클이라, 이제 겨우 스물이나 되어 보이는데 정말로 대단해. 허허..."

"......"

전부 간파당했나?

하기야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도 무려 알티우스의 원로가 되시는 양반이다.

대략 6서클 정도의 괴물일 테니 이쪽의 수준쯤이야 한눈에 알아봤을 터였다.

"제론은 잘 지내고 있는가? 이렇게나 훌륭한 제자를 키워냈으면 함께 와서 자랑이나 하지, 왜 자네만 달랑 보낸 건가?"

칼은 침음을 흘렸다.

지금부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정리가 필요했기에.

우선 이 캐릭터의 스승인 제론은 죽었다.

이 게임에 처음 삼켜졌을 때부터 그렇게 설정된 배경이었다.

그래서 칼은 제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다만, 퀘스트의 안내에 따라 대륙 이곳저곳에 있는 스승의 연구 자료들을 열심히 모은 것이 지금까지의 일이었다.

<메인 퀘스트: 연구 자료 전달>

제론의 연구 자료들을 그의 유일한 친우인 '세인달'에게 전달하십시오.

세인달은 알티우스 학파의 본원을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 50000SP

그리고 이어진 새 메인 퀘스트.

이 빌어먹을 퀘스트는 그저 세인달에게 전달하라고만 할 뿐, 그가 스승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제부터 중요한 건 임기응변이었다.

칼은 약간 침울한 표정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

충격받은 세인달의 얼굴.

칼은 말을 잇지 않고 기다렸다.

꽤 오랫동안 침묵한 채로 있던 세인달이, 한층 더 늙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된 건가."

"......"

"그 고집에 몸을 혹사시키며 계속 연구를 진행했을 테니, 크게 놀랍지도 않은 일이군."

미간을 꾹꾹 누르던 그가 칼에게 물었다.

"제론의 시신은 어떻게 했는가?"

"...양지 바른 곳에 지팡이와 함께 묻어드렸습니다."

물론 그런 적은 없으며, 제론의 지팡이는 현재 칼의 인벤토리 안에 있다.

약간 양심이 찔리는 걸 느끼는 중 세인달이 다시 물어왔다.

"제론, 그 친구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있는가?"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친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여기에 찾아온 것도 그것과 관련해서입니다."

세인달의 얼굴에 의문이 여렸다.

칼은 품에서 수첩과 종이 두루마리 몇 장을 꺼내들었다.

그것이 뭔지 예상했는지 세인달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건 설마..."

"예. 스승님께서 지금까지 대륙 각지를 떠돌며 연구하신 자료들입니다. 세인달 님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

칼이 보기에는 뜻 모를 글귀들에, 괴상한 도형들이 난잡하게 그려진 메모였다.

세인달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그것을 읽어내려갔다.

"...이건 정말 놀랍군."

그가 감탄의 말을 내뱉은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와 동시에 칼의 머릿속에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연구 자료 전달'을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000SP를 획득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완료하였습니다.]

'예쓰!'

칼은 속으로 환호했다.

50000SP면 일반 퀘스트를 몇십 개 해결해야나 얻을 수 있는 양이다.

시나리오 하나를 끝내서 그런 건지 보상의 규격 자체가 달랐다.

세인달이 더욱 호감이 더해진 목소리로 칼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군. 이런 중요한 자료를 내게 가져다줘서."

"아닙니다. 스승님의 마지막 유언이셨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죠."

세인달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며 수많은 이들을 봐왔지. 마법사로서 품을 수밖에 없는 욕망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네."

"......"

"자네도 이게 무엇에 관한 연구인지, 또 얼마나 대단한 연구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럼에도 자네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이 자료를 가져다줘서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했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는 잘 알아. 자네는 충분한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네."

그 말에 칼은 그저 싱긋 웃었다.

'뭔 소리야. 어차피 하나도 못 알아먹는 내용인데.'

가짜 마법사인 그에겐 그깟 낙서보다 스킬 레벨을 올릴 50000SP가 훨씬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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