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위대한 별(5) >
까아앙-!
망치를 두드린다.
월천을 모루 위에 올려놓은 채, 하염없이 나는 망치질만 하였다.
‘나의 파동.’
이는 월천과 나의 파동을 맞추는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내 안에 깃든 ‘빛의 창’과 동화시키기 위함이다.
동화. 서로 다른 게 같게 되는 것.
나는 이미 한 차례 겪어봤다.
‘우리엘 디아블로.’
우리는 둘이었으나 동시에 하나였다. 처음에는 완전히 달랐던 두 개가 천천히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나는 직접 겪지 않았던가.
이 역시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천천히 나는 망치와도 하나가 되었다. 내리치는 월천과도, 모루와도, 주변 모든 것과 동화되며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망치를 내리치기만 했다.
나중에는 망치를 치는 건지도 잊어버렸다.
[강렬한 ‘나태’가 생성되었습니다.]
[천지인(天地人)은 모든 것과 통하는 길과 같습니다. 강제적으로 ‘나태상태’에 돌입합니다.]
한없이 느려진다.
느리고, 느려져서, 마치 멈춰보이게끔.
언뜻 보기엔 나태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합일’의 과정이었다.
까아아아아아앙-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리가 느려진다. 세상도 느려지는 것만 같다.
주변이, 시간이, 그 모든 것들이.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망치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게, 월천에게 나의 기억을 때려 박았다.
오한성과 우리엘 디아블로.
그람, 엘리스, 이그닐, 이타콰.
라이라, 요르문간드, 유서희, 시리아, 김민식.
암흑인과 월천, 그 외에 잊지 말아야할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신이 될 것이냐?
그러자 누군가가 묻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인간이고 싶다.’
욕망에 충실하며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이고 싶었다.
더 이상 나는 참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나의 욕망만을 위해 살겠다.
신. 그 완전무결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 오히려 결점 투성이인 나를 나는 좋아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완벽해지려고 항상 노력해왔기에 이 자리에 다다를 수 있었으니까.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리하여 거머쥔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었으므로!
-그렇다면 인간이 되어라. 인간 중의 인간. 그 정점에 올라라.
에인션트 원. 내게 ‘천지인’의 직업을 수여한 그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됐다.
아마도 칠대죄악의 ‘상태’가 사람들에게 전이되는 건 그 영향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말라고 하였다.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할 때가 곧 올 것이다.
* * * * *
위대한 별이 요동치며 폭주하고 있었다. 부서지기 직전의 그릇을 보듯. 균열이 가며 안의 내용물이 넘쳐흐르려는 중이었다.
“아름답지 않나?”
안달톤 브뤼시엘. 그는 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터지기 직전의 그것을 위대한 보물을 보는 것 마냥, 눈을 반짝이며 말이다.
그에게 있어서 위대한 별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 집념에 가까운 열망. 누구보다 강렬한 욕구가 그에겐 있었다.
-멍청한 놈. 흐레스벨그의 뜻대로 놀아나는구나.
뚝! 뚝!
안달톤 브뤼시엘의 검 아래에, 제로가 피를 흘리며 목이 잘린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수천만, 수억 명의 생명이 담긴 탑은 무너지고 그 많던 괴물들도 모두 두 동강이 났다.
믿을 수 없었다. 데몬로드를 웃도는 지저의 용도, 암흑 그 자체인 자신의 힘도, 모두 통하지 않았다.
절대로 패배는 없으리라 자신했건만, 안달톤 브뤼시엘의 강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왜? 안달톤 브뤼시엘에게 질 이유 따위, 단 하나조차 존재하지 않았건만.
“위대한 별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그 독수리는 나의 것을 건드릴 수 없다, 제로.”
하지만 안달톤 브뤼시엘은 자신했다.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패배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 승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그 자신감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제로가 눈을 크게 떴다.
-너는 단순한 ‘왕’이 아니로군.
제로는 상대의 머릿속을 헤집어볼 수 있다. 그가 목소리를 잃은 대신 얻은 권능. 안달톤의 심상을 읽은 제로의 몸이 꿈틀거렸다.
-너는······ 존재해선 안 될 자.
보였다.
안달톤 브뤼시엘이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
끝까지 살아남아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사자왕의 핏줄을 이은 데몬로드라니. 사자왕도, ‘둠’도 살려둘 리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둘은 안달톤 브뤼시엘을 크게 두둔하지 않았다.
별로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그래봤자 한계가 있다는 듯이.
-완전함을 덮어쓴 가짜였구나.
아무도 안달톤 브뤼시엘이 얻은 권능을 알지 못했다.
‘악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권능이라면 참으로 조촐하다.
하지만 진정한 권능은 따로 있었다.
안달톤 브뤼시엘은 본래 죽었던 자. 그러나 현재 그는 존재한다. ‘별’의 영향으로 되살아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안달톤. 그와 계약한 브뤼시엘이라는 악신이 수작을 부렸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우주수의 지배자인 흐레스벨그조차 읽지 못한 한 수가 될 수도 있겠다.
-‘위대한 별’을 복사할 줄이야. 네놈도, 네놈과 계약한 악신도 정상은 아니로군.
이 세상엔 가짜가 판을 친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며 위세를 부렸다.
가짜 신, 가짜 악마, 그 외에 온갖 진짜가 아닌 것들.
그럼에도 그것들은 어느 정도 진짜의 내용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위대한 별’, 저 거신의 내용물을 복사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저것은 ‘위대한 별’로 불리지만, 온갖 추잡한 욕망이 뒤섞인 항아리와 같다. 세계를 집어삼키지 않으면 완성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안달톤 브뤼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별의 힘이 강해질수록, 나의 힘도 강해진다.”
인정하는 꼴이었다.
이미 아무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채.
지금, 위대한 별은 폭주하고 있었다. 내용물이 흘러넘칠 정도로 강대한 힘을 모든곳에 흩뿌리는 중이었다.
비록 위대한 별만큼은 아니지만, 위대한 별의 영향력이 강대해질수록 안달톤 브뤼시엘의 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퍼석!
안달톤 브뤼시엘이 제로의 머리를 짓밟았다.
제로의 생명이 다하자 그의 영혼이 동시에 위대한 별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하나.’
휘이이이이이이이익!
그 순간.
거센 돌풍과 함께 한 여인이 검을 놀렸다.
푸욱!
검이 안달톤의 어깻죽지를 베었다. 안달톤이 찰나와 같은 시간, 초월적인 움직임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승리의 순간을 노리다니, 너무 치사한 것 아닌가? 라이라 디아블로여.”
안달톤 브뤼시엘이 입을 열었다.
라이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숨고 또 숨으며 이 기회만을 노렸다. 둘 중 하나가 죽었을 때, 승리를 만끽하며 방심할 그 순간만을.
하지만 실패했다. 처음 일격이 실패한 순간 라이라의 승산은 없다.
다만, 안달톤도 마냥 무사한 건 아니었다.
라이라가 휘두른 왼쪽 가슴에 박힌 가시가 빠지지 않았다.
“빠지지 않는다? 특이한 가시로군. 상처가 회복되질 않아. 그러나 그뿐이다. 내게 그 이상의 영향을 줄 수는 없지.”
제로를 죽인 직후 그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안달톤 브뤼시엘. 가장 강대한 괴물이라면, 그였다.
최후까지 살아남는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괴물!
아무도 그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했다. 파악할 수 없도록 했다.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것이다.
‘피해야 돼.’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줄 알았다.
그래도 상처를 줬다면 다행이다. 자신의 정혈을 모아 만든 여왕의 가시. 결코 쉽게 빼낼 순 없으리라.
남은 건 도망.
지금은 발을 뺄 때였다.
“놔주지 않겠다. 너는 아주 특별한 ‘상품’이 될 테니.”
“······!”
허나 순식간에 안달톤이 라이라의 뒤를 잡았다. 보이지도 않았다. 가속을 사용하여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라이라조차도.
“네가 죽으면 우리엘 디아블로······ 오한성의 분노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겠지. 모든 힘을 다하여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게 무슨······?”
“아아, 너희는 잊었던가? 우리엘 디아블로와 오한성은 같은 존재라는 걸.”
라이라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어렴풋이 섞여 들어온 기억. 설마 그 기억이 진짜라고?
“스스로 망각의 샘물에 몸을 들이다니. 참으로 미련한 놈이다. 악마도, 인간도 되지 못한 어중간이. 그게 놈의 약점이지. 하지만······.”
안달톤이 웃었다.
“그래서 더욱 값지다. 나와 녀석은 닮았어. 진짜도, 가짜도 아니지. 나는 녀석이 스스로를 불태우며 나와 대적하길 바란다.”
안달톤이 얼음처럼 차가운 순백의 검을 휘둘렀다.
푸욱!
* * * * *
뚝-
세계가 조용해졌다.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고 나는 바깥을 바라봤다.
고요한 세상 속에, 오로지 위대한 별만이 울고 있었다.
결판이 난 것이다.
안달톤 브뤼시엘과 제로.
둘 중 승자가 나왔다.
‘이제 내 차례.’
완성된 검을 들어보았다.
월천. 스스로 찬란한 빛을 내뿜는 검.
루의 창에 입혀진 새로운 형태였다. 신의 전사, 그 중에서도 최강의 존재에게만 수여되던 그 창과 모든 용의 힘을 담은 검의 힘이 합쳐지며 세계에 울림을 퍼트리는‘격’을 갖추게 되었다.
[‘아카식레코드’에 등재되지 않은 무기입니다.]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모든 차원의 정보가 모인 것이 ‘아카식레코드’다. 각성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이 ‘정보’는 모두 그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든 이 검은 그곳에도 등재되지 않은 최초의 무구다. 어느 것 하나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물건.
물론 검의 주인인 나는 이 검이 뿜어내는 현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을 베고 꿰뚫는 무기.’
‘루의 창’은 믿음의 창이었다. 라이라의 어머니인 엘레나. 그녀는 ‘믿음’을 담당하는 발키리였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이 월천에 부여되었다.
‘내가 믿는다면 그대로 실현될지니.’
하지만 무한하지 않다.
한 번. 이 힘이 적용되는 건 단 한 번뿐.
그 뒤에 무기는 힘을 소진하고 평범한 월천으로 돌아간다.
다시 ‘소원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선 루의 창과 동급의 힘이 필요했다.
그렇다.
이것은 말 그대로 ‘소원’을 이뤄주는 힘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무기의 성능 내에서. 나의 믿음의 크기에 비례하여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는 한방은 되리라.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나를 부르고 있구나.’
위대한 별이 부르짖었다.
싸우라고. 결판을 내라고.
나는 떠났다. 마지막 적과의 전투는 극렬할 것이다. 대륙 하나쯤은 가볍게 지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위대한 별의 울음에 따라 움직이며 대륙 하나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그를 볼 수 있었다.
안달톤 브뤼시엘!
“마지막 전투를 시작해보자. 오한성! 나의 유일무이한 대적자여!”
그리고 또한 볼 수 있었다.
그의 검에 찔린 채 새하얗게 질려버린 라이라의 차디찬 신체를.
< 250. 위대한 별(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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