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244화 (245/251)

< 52. 위대한 별(1) >

우리엘 디아블로의 몸으로 나는 두 명의 오룡을 각성시킨 바가 있었다.

화룡 구화린과 암룡 유설.

하지만 나머지 셋은 끝내 각성하지 못했다.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끈기, 집념.’

특히 집념의 차이라고 보았다.

구화린과 유설은 서로 알게 모르게 경쟁관계였다. 오룡 중 단 두 명의 여인이라서그런 건지는 몰라도, 때문에 우리엘 디아블로의 신체로 시련을 가하자 둘만이 치고받고 미친 듯이 싸워댔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나머지 셋은 각성하지 못했다.

집념을 불태울 절박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박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지키고자 하는 것.’

구화린은 화천의 자리를 열망했다. 자신의 오빠인 구화랑을 지키길 원했다. 유설도 그런 구화린에게 지고 싶지 않아하였다. 하여 둘은 동시에 각성했고 강력한 무공을 얻었다.

그 무공으로 말미암아 둘은 야차의 수준을 뛰어넘어 나찰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쟁은 가장 좋은 촉매가 된다.’

어차피 로드들과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야차와 나찰들이 합류한 이상, 이 전쟁은 승리하여야만 했다.

‘천마신공······.’

그리도 또 한 가지.

오룡이 모두 각성하면 ‘천마신공’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천마. 지금 ‘위대한 별’의 모체가 된 그의 무공. 어쩌면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천이 완성되면 ‘루의 창’의 모체로 삼고, 나의 ‘희망’을 되찾는단 이야기도 빼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확신이 아닌 가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확인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가정이 현실이 되기를 바랐다.

“지금부터 모든 야차의 선두지휘는 오룡이 맡는다.”

나는 대라선으로서 말했다.

야차와 나찰들에게 있어서 대라선의 지위는 절대적인 것.

“······ 나찰이 아닌 오룡에게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저 아이들은 전쟁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찰들은 반발했다.

전쟁에 참여한 이상, 승리가 아니면 전멸뿐이라는 걸 그들도 안다.

하물며 나찰도 아닌 오룡이 전투를 지휘하는 걸 가만히 보기엔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룡을 몰아넣고자 했다.

각성한 구화린이나 유설도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니까.

“저,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 저희가 지휘를 할 수 있을 리가.”

구화린을 비롯한 오룡들 모두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평화에 찌든 나찰들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격한 전쟁을 경험한 오룡, 너희가 더 전쟁을 잘 알 것이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은 아니었다.

나찰산에 있을 때부터, 그들은 외부의 침략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대아귀가 몰려오고, ‘둠’이 쳐들어왔을 때 허둥대며 대처하지 못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오랜시간 평화에 찌들어있었던 탓이다.

하물며 라이라를 따라 지구로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룡은 지난 3년간 전쟁을 경험했다.

평이한 나찰들보다 경험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너희들이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지식들은 실제의 전쟁에서 크게 쓸모가 없다. 전쟁이란 피부로 겪고 부딪히는 것. 지난 3년 동안 던전에만 처박혀있던 너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지?”

“······.”

십이나찰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저들이 전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해도, 나는 이 임무를 오룡에게 맡겼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오룡은 적에 대해서 보다 잘 알게 되었다. 아군의 운용, 역량 등도 확실하게 체크했을 터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반면에 나찰들은? 다른 야차들은?

던전에 숨어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겠지.

던전에 있었던 괴물이라 해봤자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나 하나에도 허둥지둥 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너희들은 오룡의 지휘에 따라 조를 짜고 전투를 연습하며 전쟁에 임해야 한다.”

근거는 또 있었다.

고작 나 하나에 흔들린 것.

물론 나는 강하다. 파벌의 수장 수준으로 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차와 나찰들도 강했다. 비록 나 하나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들 모두의 역량을 쏟아 부었다면 나 역시 피 튀기는 항전을 해야 했을 것이다.

“분하나? 하지만 현실이다. 십이나찰이든 뭐든, 너희는 약해.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지. 반면에 오룡은 그 부분에 있어서 너희보다 훨씬 뛰어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은 실패를 용서하지 않지. 그들이 실패한다면 너희는 모두 죽는다.”

전쟁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게 전쟁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오룡을 돕는 길을.

꿀꺽!

오룡 모두가 침을 삼켰다. 십이나찰을 비롯한 야차들은 가만히 오룡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제부터 저 다섯이 자신들의 생명줄이라는 걸 파악한 거다.

“둠이라는 원수조차 스스로 죽이지 못한 걸 창피한 줄 알아라. 하지만 아직 둠이 뿌린 잔재는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둠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전쟁이 시작됐다.

나는 죽어서도 놈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나머지는 너희가 거두도록.”

나는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 * * * *

데몬로드가 죽었다.

알버츠, 아넬로우, 라우페.

단 시간에 무려 셋이나 죽은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게 누구의 파벌이던 간에.

“고작 인간 따위에게 당했단 말이냐?”

자신의 권좌에 앉아, 아르하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수정들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라우페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로드였다. 나머지 둘은 제로의 파벌에 속해있었지만, 이로써 힘의 추가 안달톤 브뤼시엘에게 기운 것이다.

안달톤을 추종하는 로드는 둘. 총합 셋. 제로는 하나. 총합 둘. 아르하임 역시 하나였다. 3:2:2의 이 애매함 속에서, 인간들이 자신의 목줄을 조여오고 있었다.

하!

“어이가 없군.”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

“라우페를 죽인 건 새로 나타난 인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면서 동시에 ‘대라선’이라고 하더군요.”

아르하임의 하나 남은 수족, 발칸이 말했다.

아르하임은 권좌에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

“대라선?”

“야차라 불리는 종족의 수장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그들 모두가 이번에 인간진영에 합류했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제로는, 제로는 뭘 한 거지? 자신의 수족이 둘이나 잘려나갔는데 가만히 있는단말이냐?”

“샤라카와 ‘폭룡의 바하무트’가 움직이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 무언가 수작을 부린 건가? 설마 인간들과 손을 잡은 건 아니겠지?”

이제는 모든 변수를 염두에 둬야한다.

설마 인간 따위와 제로가 손을 잡는 모습은 백 번, 천 번, 만 번을 양보해도 상상이 안 가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면 재고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로가 인간과 손을 잡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묘해. 어떻게 인간들 따위가 그러면 로드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그건······.”

지이이잉!

순간. 주변을 둘러싼 구슬 중 하나가 흔들리며 빛을 다했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이이잉!

수정구 하나의 불이 꺼지자 연쇄적으로 다른 것들의 불도 꺼지기 시작했다.

“······ 누군가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군.”

그 불은, 자신의 대지로 ‘선포’한 땅을 지키던 수하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불이 꺼졌다는 건 그 수하들이 죽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자신이 ‘선포’한 대지에서 수하들은 훨씬 강해진다. 그런 수하들이 쉴 새 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인간들입니다.”

“멸망하고 싶어서 환장을 한 모양이군.”

불빛이 꺼지면, 수하가 죽기 직전 기억을 홀로그램처럼 수정구 위에 수놓는다. 인간들이 자신의 수하들을 아낌없이 죽이는 장면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아르하임이 이를 갈았다.

인간들의 전력은 이미 측정이 끝났다.

그들은 결코 자신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도 밀어붙인다는 건, 야차와 나찰이란 종족에게 뭔가가 있거나······.

‘대라선.’

놈에게 뭔가가 더 있다는 말이다.

라우페를 죽인 놈. 어떤 꼼수를 부렸지만 결코 얕봐선 안 된다.

‘그러나 내가 선포한 구역에 들어온 이상,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아르하임은 천생이 군주였다. 그는 땅을 자신의 것으로 ‘선포’할 권능을 갖고 있었고, 그렇게 ‘선포’된 땅은 자신이 선정한 부하들에게 무한한 힘을 가져다줬다.

여태껏 아르하임이 열세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다른 로드들도 공략하지 못한 절대적인 성을, 고작 인간들이 공략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닿기 전에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이곳 권좌까지 오는 길에 놓인 자신의 수하는 500을 헤아린다. 그 500의 수하들은 모두 각자의 땅에서 수호자가 되어 강력해진 상태였다.

그 하나하나가 용조차 가볍게 씹어 먹을 강자다. 고작 인간들 따위는 아무리 많아도 그들을 이기지 못한다.

하물며 수하만이 아닌, 수하가 다스리는 병력도 어느 정도 강화가 됐다.

철벽. 절대로 뚫지 못하리라.

적대적인 모든 로드들조차 포기한 이 성역을, 어찌 저들이 넘겠는가.

지이잉!

지이잉!

지이이이잉-!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수정구들이 빛을 잃어갔다.

500의 수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이게 대체······.’

아르하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 * * *

가장 쉬운 공략상대는 아르하임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변 모든 땅을 자신의 성역으로 ‘선포’하고 부하들을 나누어놓았다.

때문에 모든 인간들이 절대로 닿지 못하는 영역, 데몬로드들조차 포기한 철벽지대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약점은 바로 ‘자신의 영역’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각개전투를 펼칠 수밖에 없지. 땅을 맡은 수하를 하나하나 공략하면 되는 일이다.’

아르하임의 권능은 매우 뛰어나다. 자신의 성역에 있는 괴물들, 특히 그중 하나를아주 강력하게 만들어주니까.

하지만 그 강력해진 괴물은 지정된 성역을 떠날 수 없다.

성역마다 정해진 규칙도 달라서 그들은 결코 한데 뭉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그 수백의 수하들이 가진 특성 등을 연구해 ‘공략’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답을 알고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문제는 그 답을 풀 시험지와 필기도구가 있느냐는 것.

‘전력은 충분해.’

충분다고 판단했다.

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오룡들을 바라봤다.

그중 각성하지 못한 셋을.

‘힘에 겨워 보이는군.’

각성한 화룡 구화린이나 암룡 유설은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반면 각성하지 못한 잠룡, 무룡, 검룡은 힘에 부쳐 끌려 다니는 형국이었다.

선두지휘자가 적에게 끌려 다니니 당연히 그 부대는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보여 다오. 너희의 끝을.’

나는 그들을 돕지 않았다.

그 누구도 돕지 않았다.

내가 해야할 일은 오로지 하나.

‘아르하임.’

세 파벌의 수장 중 하나.

비록 그들 중 가장 약세였다고는 하나 결코 무시하지 못할 존재.

저 멀리에, 그의 권좌가 있다.

나는 오로지 그를 죽이고자 칼을 갈고 있었다.

< 52. 위대한 별(1) > 끝

ⓒ 온후

작가의 말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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