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239화 (240/251)

< 51. 루의 창(4) >

늦은 저녁.

막사에 홀로 누워 나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모든 정보가 나를 혼란시킨다. 귀로 듣는 것, 냄새로 맡는 것, 심지어 보는 것조차도.

그중 가장 나를 미치게 하는 건 바로 ‘시각’이었다.

눈을 뜨면 ‘녀석들’이 보였다.

-나는 오딘을 먹어 삼킨 이리니라. 너의 몸과 혼을 내놓으면 세상의 모든 보물이 잠들어있는 ‘오딘의 보물창고’를 네게 줄 수 있다.

-저는 지저의 여왕 헬입니다. 그대의 영혼을 나누어주신다면 지저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해드리지요.

마지막 경매. 그곳에서 다른 로드들을 막아서며 죽은 암령의 자리를 다른 놈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들은 스스로를 펜리르, 그리고 헬이라고 소개했다.

요르문간드의 형제라고 봐도 무방할 존재들. 하지만 그들은 형체를 얻지 못하고 대신해서 내 주변을 맴도는 중이었다.

눈을 뜨면 하늘을 덮는 거대한 이리와, 반은 청색이며 반은 사람의 색깔을 하고 있는 여왕 헬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내게 혼란을 주는 주원인들이겠지.’

모든 것들이 헷갈려도 이 둘만은 확실하게 보인다.

이 둘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적어도 내게 걸린 금제가 풀린다는 것만은 분명한 듯싶었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하냐는 것.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으냐? 위대한 별 따윈 필요치 않다. 내 이빨 앞에선 그 콧대 높은 천상의 신들조차 벌벌 떨었으니.

-지저의 제왕이 된다면 모든 게 해결 될 거예요.

이들이 원하는 바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나의 몸과 나의 영혼.

그것들을 바치면 내가 바라마지않는 모든 것들을 이뤄준다는 것이다.

요르문간드와는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는 나와 함께 성장하며 목표를 달성하려 한 반면에, 이 둘은 그저 빼앗으려고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가짜가 아니야.’

모든 ‘진짜 신’들은 ‘공허’로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천마처럼 예외의 경우가 있긴 했으니 모두는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앞에서 꺼질 수 있지?”

그러나 달갑지 않았다.

아마도 이 둘의 영향 때문에 나는 이 모든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일 터였다. 둘이 가져다주는 존재력은 어마어마했지만 정작 내게 혼란만 준다면 전혀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둘은 내 질문과 관계없는 대답만 내놓았다.

-내 힘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선 성향과 악 성향을 50대50의 비율로 맞추어라. 내 힘을 맛보면 너는 내 힘에 매료되어 모든 걸 바칠 수밖에 없을 테니.

-악 성향을 100에 가깝게 맞추면 그대는 저, 헬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나의 성향에 관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성향. 내가 악하거나 선한 행동을 했을 때 올라가는 수치들.

막상 그 수치가 보이긴 해도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 그런데 펜리르와 헬은 나의 성향을 자신의 성향에 맞게 맞추라고 말한다.

웃긴 건 사근사근 존댓말을 사용하는 헬이 악성향 100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반면에 펜리르는 나름 선 성향이 50이나 된다.

‘탑을 오르며 내가 얻은 힘은 이 둘.’

8층까지 탑을 오르며 나는 수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경험과 힘들이 이 둘에게 축적되어 있었다.

나는 둘 중 하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둘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정도.

‘상태창.’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상태창만은 혼란을 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이름: 오한성

직업: 천지인(天地人)

칭호:

● 오한성(無, 순수마력 10당 모든 능력치+1)● 대라선(10Lv, 지능+20)● 탑을 오르는 자(10Lv, 힘+10 체력+10)● 타오르는 샛별(8Lv, 지능+13)능력치:

힘 146(110+36) 민첩 129(110+19) 체력 133(110+23)지능 169(110+59) 마력 146(120+26)잠재력(560+163/560)

잠재능력치: 0

특이사항:

-선성향과 악성향의 비율이 63:37입니다.

-‘혼란’ 상태입니다.

-지능이 ‘초월’ 상태입니다. 9Lv 이하의 마법을 모두 무효화시킵니다.

착용장비:

루의 창(???, 봉인상태, 모든 능력치+7), 폭식(체력+7), 나태(지능+7), 색욕(마력+7), 분노(힘+7)강해졌다. 말도 못하게끔.

탑에서 잠재력을 모두 채우고 나온 것이다.

특히 ‘전장의 싸움꾼(7Lv, 힘+4 체력+7)’의 칭호가 ‘탑을 오르는 자(10Lv, 힘+10 체력+10)’로 변하며 큰 성장을 맛봤다.

하지만 탑에 오르며 내가 챙길 수 있었던 장비는 칠대죄악 뿐이었다. 월천과 망토등은 경매가 끝나고 분실해버렸다.

‘선 성향이 더 높군.’

아마도 탑에서 내가 행한 선택들로 인해 높아진 것이리라.

암흑인들의 처우,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내 욕망 등이 반영된 거겠지.

총합 720에 다다르는 능력치총합은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수치였다. 웬만한 데몬로드조차도 이만한 ‘격’을 얻진 못했으리라.

제로, 아르하임, 안달톤 브뤼시엘. 이 셋이라면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부족하다. 셋을 압도하고 위그드라실에 군림하는 흐레스벨그를 죽여야 했다.

‘펜리르와 헬, 둘 중 하나의 힘을 빌린다면······.’

나는 이 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른다. 왜 갑자기 내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요르문간드’와 계약했기 때문에 이 둘이 내게 왔다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다만, 저 둘의 말이 사실이라면 힘을 빌리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더불어 지금 느끼는 ‘혼란’도 사라지겠지.

물론 모두 믿지는 않는다.

또한 둘은 뻔뻔하게도 암령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루의 창.’

그리고 하나 더.

라이라가 나를 깨울 때 사용한 루의 창을, 내게 지니고 있었다. 정확한 사용방법은 모르지만 위대한 별의 보호막을 뚫고 내게 닿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 창이다.

라이라. 그녀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더 쉽게 알아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는 없지.’

-나의 이빨을 얻고 싶지 않느냐?

-지저는 무궁무진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녀석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거짓말처럼 둘의 목소리가 사라지니까.

“거인들이 쳐들어왔다!”

“으아아악!”

“대열! 대열을 유지해! 당황해하지 마라!”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습격에 인간 군영은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습격을 해온 적은 진격의 라우페가 이끄는 거인군단이었다. 거인이라고 해봤자 신화 속 거인은 아니고 대부분 괴물들을 합성해 만든 초거대 괴물이지만.

못해도 20m 이상의 거구들은 그저 뛰어오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법이었다. 아파트나 빌딩이 뛰어다니는 셈이니.

‘라우페. 놈은 어디 있지?’

나는 주변의 소리들을 들었다. 촉각으로 느끼고, 후각으로 맡았다.

내게 입력되는 정보들은 나에게 혼란을 주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100% 거짓이라면 차라리 혼란할 일도 없다. 진실이 섞여있기에 혼란이 오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놈들!”

나는 최대한 거르고 걸러 확신할 수 있는 것만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정보만을 말이다.

바닥을 딛고 뛰어올라 거인의 목덜미까지 안착한 이후, 구닥다리 검으로 거인의 목줄을 잘랐다.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오고 전신에 묻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찾는 건 이런 말단의 거인 하나가 아니다.

진격의 라우페. 데몬 로드. 놈을 특정하려면 주변의 ‘정보’들이 필요하다.

‘나는 모두에게 잊혀졌다. 그 말인 즉, 적에게도 나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소리.’

그래서 더욱 조심하여 행동하는 중이었다.

가장 큰 적. 데몬로드들이 나를 알아차리면 방비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힘을 숨기고 있다가 놈들의 목을 칠 때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 전에 알려지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망각의 저주는 저주이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축복이기도 했다.

‘아직 안 나타난 건가? 습격 치곤 규모가 광범위하다. 분명히 놈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아니면 이미 어디선가 공격중인 걸까?’

빌어먹을. 차라리 주변 모두가 적이라서 힘을 마음껏 발산해도 되는 상황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리하면 정작 죽여야 할 놈은 도망치고 규모를 늘려서 공격해올 게 분명했다.

인식에 대한 혼란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력의 흐름’을 잃는 게 치명타였다.

‘힘 조절이 안 돼.’

“자, 잠깐! 너 왜 마법을 우리한테 사용하는 거야?”

“저 미친놈!”

“피해! 아아악!”

쾅!

“내, 내 다리! 치, 치료사! 내 다리 좀 붙여줘!”

“저거 완전 돌아이 아니야!”

[악성향이 1 증가합니다.]

[선성향과 악성향의 비율이 62:38로 조정되었습니다.]

순간 펜리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최대한 힘을 억눌러도 ‘불의 힘’이 터질 때가 있다. 탑에서 얻은 힘 모두를 개방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몇 번이고 큰 사고를 낼 뻔했다.

‘힘 조절, 힘 조절, 힘 조절······.’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힘 조절도 마찬가지다. 의식하면 폭주는 안 한다.

이 힘을 사용해야 할 대상은 온전히 데몬로드여야만 하였다. 적어도 진격의 라우페 정도는 되어야 내 힘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놈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아직 데몬로드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른다.

그러니 적어도 라우페를 상대하며 적들을 가늠하고 싶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으므로.

가장 큰 적들이 나를 모를 때, 기습적으로 노려 단번에 목을 치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라, 라우페다! 진격의 라우페가 나타났다!”

“마법병단! 모든 마법을 쏟아 부어라!”

“방패전사는 앞으로!”

“앞으로!”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곳 어딘가에 내가 찾던 님이 있다는 것 같았다.

* * * * *

유서희는 가만히 전장을 주시했다.

웬 미친놈 하나가 불의 마법을 마구 터트리며 적아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중이었다.

“뭐야, 저 또라이는?”

유서희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예전이었다면 그래도 필터링은 거쳤을 단어가 이제는 그냥 마구 튀어나왔다.

“강하네.”

맹인일까?

눈을 감고 거구의 괴물들을 마구 죽이고 있었다.

어지간한 정예보다 강하다. 유서희와 김민식이 이끄는 진짜 ‘정예’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다.

‘저런 인간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지?’

왜 마법을 저따구로 쓰는 건지는 몰라도 흥미가 갔다.

유서희는 ‘인류 최강의 검희’라 불리는 몸이다.

헌데 저 눈을 감은 남자가 사용하는 검술이 묘하게 눈에 익었다.

‘내가 사용하는 검술이랑 같은 거 같은데?’

유서희는 자신의 검술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지 못한다. 누가 가르쳤고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강제로 지워진 느낌이었다.

여태껏 자신과 같은 극단적인 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엄청나게 비슷한,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검술을 저 남자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쿠아아아앙!

그때, 핵이 터진 것 마냥 거대한 버섯 모양의 폭발이 일어나며 전장을 휩쓸었다.

“라, 라우페다! 진격의 라우페가 나타났다!”

“마법병단! 모든 마법을 쏟아 부어라!”

“방패전사는 앞으로!”

“앞으로!”

진격의 라우페!

그 가공할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서희도 고개를 돌렸다.

폭발이 일어나고 버섯구름이 일자, 그 위로 거대한 뿔을 가진 데몬로드, 라우페가 하늘에 떠 있는 채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꿀꺽!

유서희는 긴장했다. 라우페는 러시아를 몰아붙인 괴물 중의 괴물이다. 인간군영이 완전히 합류하기 전에 쓸어버릴 작정으로 직접 나타난 듯싶었다.

데몬로드쯤 되면, 자잘한 군단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오로지 정예. 정예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엔 유서희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라우페에게 달려가려 할 때였다.

‘쟤는 왜 저기로 달려가는 거지?’

맹인 남자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유서희의 눈에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라우페가 맹인 남자를 쳐다봤다.

그 순간.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남자의 전신이 작열하며 타 틀어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어 남자가 자폭이라도 한 것 마냥 라우페의 앞에서 터졌다.

그 폭발은 라우페가 일으킨 폭발보다 더욱 커다랬고, 범위에 있는 괴물이란 괴물들은 모조리 녹여버릴 정도로 강렬한 불의 마법이었다.

저런 마법은 유서희도 처음 봤다.

보는 순간 전율이 일 정도의 마력이라니.

그 천하의 라우페조차 움찔한 것 같지 않은가.

“······.”

“······.”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유서희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흐하하! 멍청한 놈! 범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폭했구나! 내게 닿지 조차 못하다니 말이다!”

그렇다. 정작 괴물들은 죽였지만 라우페에게 닿진 않았다.

라우페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맹인남자가 죽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한 모습으로 라우페의 앞에 다시 나타나더니, 고개를 저었다.

순간 라우페가 전투태세를 취했다. 방금 전 마력, 스스로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발현한 마법이 아니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사라는 거다.

“거기 있었군.”

다시금 남자의 몸이 작열하기 시작했다.

이어 가슴팍에 손을 뻗더니, 기다란 빛의 창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이번엔 정확하게, 라우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창을 냅다 던졌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을 내며 달려 나간 창이 라우페의 반신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반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어, 하는 순간에 라우페는 반신을 잃었다.

라우페조차 어이가 없는지 반신을 잃고도 가만히 맹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네놈, 뭐하는 놈이냐?”

“아직 살아있나?”

“나를 놀리려는 것이냐!”

라우페의 반신이 마력으로 가득 찼다. 신체가 재생된 것은 아니지만 없어진 신체를 마력이 대신하여 지탱해주는 것이다.

이윽고 라우페가 허공을 박차 뿔로 남자를 들이박았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

닿으면 무엇이든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충격!

“······.”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남자는 별 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롭게 말했다.

“이 정도인 모양이군.”

“너, 너는 뭐냐! 정말 인간이 맞는 거냐?”

라우페가 당황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는 듯.

“······ 뭐야 저건?”

놀라긴 유서희도, 지켜보는 모든 이들도 똑같았다.

유서희는 입을 헤 벌리고 넋을 놓은 채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 괴물은 대관절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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