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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사냥꾼-220화 (221/251)

< 48. 대립자(2) >

당연히, 둠의 입가에 새겨졌던 미소는 어느덧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아무도 입찰하지 않을 줄 알았겠지.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입찰했다.

왜?

절대로 놈이 원하는 바를 모두 가지게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모두 사릴 테지.’

그리고 둠은 아주 값싼 가격에 우월한 물건들을 손에 넣을 것이다.

포인트가 절약되고, 반비례로 놈은 강해진다.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세 개의 달’은 좋았다. 내가 본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라 몇 번이나 ‘심안’을 사용해 확인한 줄 모른다.

<세 개의 달(value-800,000)>

● 모든 능력치+3

● 모든 저항력+3%

● 모든 잠재력+3%

<전설적인 대장장이 오스웬. 그는 죽은 뒤 대장장이의 신이 되어 신들조차 놀랄 문건들을 만들게 되었는데, 세 개의 달은 그가 신이 된 이후 가장 처음 조각한 것이다.>

붙은 옵션이라곤 단 세 가지.

하지만 그 세 가지가 모두 범상치 않다.

모든 능력치+3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5레벨 이상 칭호와 버금가는 효과다. 하물며 모든 저항력이라 함은, 그야말로 모든 ‘공격속성’에 대하여 그만큼의 방어력을 가진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데몬로드처럼 극강의 괴물들의 싸움에선 종이 한 장 차이가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3%라면 종이 한 장 보다 분명히 많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마지막 옵션이다.

‘잠재력······.’

‘모든 잠재력’이라 표기되어 있는 것.

단순한 잠재력 최대치를 포함하여, 내가 갖고 있는 가능성의 모든 것들을 3% 향상시켜준다는 뜻이었다.

이런 능력은 처음 봤다. 잠재력이라는 건 내가 가진 기본적인 한계와 같으니까. 그것을 상향시켜주는 물건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대단하군.’

그리고 이만한 값어치의 물건이라는 건, 둠 역시 파악했을 터였다.

“30만 포인트가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35만 포인트.”

둠이 질렀다. 그의 분노로 가득한 눈이 내게로 향했다.

‘나를 적대하느냐?’는 눈빛.

하지만, 아서라.

적대를 먼저 한 건 놈이다.

‘세작을 심어두고 몇 번이나 나를 뒤엎으려고 했지.’

이제는 반격의 때였다.

둠. 그는 어느 정도의 포인트를 모았을까?

솔직히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세 개의 달’ 역시 그중 하나에 포함됐으리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니라면 굳이 내 뒤를 쫓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 반대로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오히려 내 포인트를 소진시키려고 ‘연기’를 하는 건 아닐까?

1만 단위의 경매에서 한 번에 5만 포인트를 올렸다. 따라오지 못하게끔 선을 그은 거다.

“36만.”

“우리엘 디아블로님!”

하지만 따라 붙는다.

물론 아슬아슬하게 따라 붙을 셈이다.

녀석이 나를 파악하지 못하게끔.

“40만.”

“로드 둠께서······.”

“41만.”

“우리엘 디아블로님!”

빠득!

이를 갈았다. 놈을 비롯한, 놈의 파벌에 속한 모든 데몬로드가 나를 노려봤다. 이전이었다면 식은땀이 줄줄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했다.

실제로 그들이 무섭지도 않았다.

입매를 올리고, 느긋하게 둠의 눈을 직시했다.

‘나는 너를 소모시킬 것이다.’

라는 눈빛.

쉽게 물건을 갖지 못하게 하겠다. 갖더라도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할 거다.

물론 갖고 싶다. 가질 수 있다면 가질 셈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둠의소모’였다. 포인트든, 정신력이든, 뭐든 간에.

‘더 달릴 거냐?’

“45만.”

“가파릅니다. 황홀할 정도의 속도! 로드 둠께서 입찰하셨습니다!”

질렀다.

5만 단위는 무슨 법칙이라도 되는 듯했다.

“46만.”

“50만.”

“51만.”

“55만!”

둠이 짜증을 못 참고 소리를 질렀다. 55만이라니. 물건의 가치에 비해 싸긴 하나,애당초에 물건 값 그대로를 주고 경매에서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모두가 참여할 정도의 ‘헉!’하는 물건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세 개의 달은 그 정도는 아니다. 좋지만, 아주 좋지만, 둠을 적으로 돌려가면서까지 참여할 수준의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와 둠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특히 둠.

미래를 보지 않겠다는 듯. 아니면 그만큼의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일까?

‘적어도 300만 이상.’

대충 견적을 내봤다.

놈이 사야할 물건이 몇 가지가 있을 테니, 그에 따라 포인트를 준비해왔을 것이다.

허나 넉넉하진 않다. 넉넉했다면 처음부터 굳이 자존심을 버려가며 ‘사지마라’라는 공언을 할 리가 없으므로.

300만 안팎. 큰 차이는 안날 거다.

그리고 이 ‘세 개의 달’에 대한 마지노선이 55만 근처일 것이었다. 둠은 분명히 흔들렸다. 저게 연기라면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여해도 납득할 수 있다.

“둠께서 55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손에 땀을 쥐는 경쟁!”

“56만.”

“60만.”

한 번 더 질렀다?

‘대단하군.’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깨달은 듯 음성이 고저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아예 안으로 감췄다. 더 이상 눈빛에서도, 목소리에서도 놈의 흔들림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놈은 흔들리지 않을 거다.

그러나······ 내겐 큰 수확이 있었다.

‘처음부터 끼어들지 않았다면 놈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힘들었겠지.’

허를 찔러, 달리도록 유도했다. 놈이 전전긍긍하며 포인트를 올렸다. 그러다 보니 감정이 새어나와버렸다.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만이 아니라 모든 파벌과 파벌의 수장들, 그들도 어느 정도는 읽었을 것이다

‘여유가 없다.’

둠에게 여유가 없음을!

단순한 무력으로 밀어붙인다고 전부가 아니다. 싸움이란 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유’다.

둠은 방금 전 여유를 잃었다. 원래부터 없었기에 자제심을 한순간 놔버린 것이다.말하자면, 그의 정신상태가 어느 정도 몰려있음을 의미했다.

둠. 그만한 존재가.

“더 없으십니까? 없다면 60만 포인트에 로드 둠에게 ‘세 개의 달’이 낙찰됩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아쉽다. 갖고 싶다. 하지만 미련하게 내 밑바닥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방금 전 둠의 반응, 그게 저 ‘세 개의 달’보다 더 중요한 값어치를 한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로드 둠이 ‘세 개의 달’을 낙찰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두 배.

30만을 생각했으나, 60만의 지출이 생겼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과연 이대로 놈은 완주할 수 있을까?

“바로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는 물건입니다. 참여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자신합니다. 자, 소개하겠습니다. 발보르그의 어금니.”

암흑인들이 끙끙대며 가져온 것은 거대한 용의 어금니였다.

일반적인 용의 것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어금니. 그 크기만 5m에 이르렀다.

“저게 용의 어금니라고?”

“발보르그······ 발보르그······ 서, 설마 마왕을 잡아먹은 용 발보르그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 이름을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발보르그. 이곳 심연에 사천왕이 생겨나기 전에, 초대 사천왕들을 부리며 심연에 군림했던 마왕이 있었다.

그 마왕을 잡아먹은 용이 발보르그였다.

일전, 사자왕의 진영에서 세티어 군단장에게 그 피가 주입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어금니라니.

‘어쩐지 친숙한 기분이로군.’

데몬로드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초월적인 용의 어금니. 장비로 만든다면 감히 넘을 수 없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심안.’

<발보르그의 어금니(value-1,000,000)>

● 재련불가

● 파괴불가

● 접근불가(1m 이내의 모든 마력이 증발합니다.)● 마왕의 저주(어금니 주변으로 광기에 찬 괴물들이 몰려듭니다.)●● 저주를 해제하면 ‘지혜와 현안의 길’이 비춰집니다.

<마왕을 잡아먹은 발보르그의 어금니. 어금니엔 마왕의 저주가 새겨져 있다.>

최악이다. 이런 걸 포인트를 주고 산다고?

탐색계열 스킬을 지닌 데몬로드는 분명히 늘어났다. 그들의 스킬은 더욱 고도화 되고, 당연히 동그라미 하나(●)로 밝혀진 옵션을 비슷하게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재련불가, 파괴불가, 접근불가.

뭐 하나 쓸만한 게 없다.

마왕의 저주까지 걸려있어 아무리 봐도 사는 게 손해다.

‘너무 대놓고 불길하군.’

이래서야 탐색스킬이 없어도 알겠다.

어쨌건 ‘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짐승의 최정점인 데몬로드다. 그 감 역시 정점에 올라 있으니.

‘숨겨진 옵션.’

하지만 나만이 볼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마왕의 저주를 해제하면 ‘지혜와 현안의 길’이 비춰진다는 말.

문제는 어떻게 마왕의 저주를 해제하고, 저 지혜와 현안의 길이라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왠지 익숙한 이름이군.’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비슷한 이름을 가진 것은 세고 셌으므로.

“무려 발보르그의 어금니입니다!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품격이 올라가는 물건이죠. 자, 20만 포인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20만.”

“이번에도 로드 둠께서 시작을 끊으셨습니다!”

별로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둠.’

놈이 또 다시 참여했다.

왜?

“21만.”

“우리엘 디아블로님!”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둠의 눈은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무저갱과 같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다시 손을 들어 올릴 뿐.

“25만.”

“26만.”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알 수 없다. 이전 경매와 달라진 게 없었다.

“30만.”

“오오, 로드 둠께서 거침없이 달리십니다!”

“31만.”

“그 뒤를 바짝 붙는 우리엘 디아블로님!”

뭐지?

이 이빨 역시 필요한 건가?

‘알아내려고 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지.’

암연의 가팔로로 인해 둠이 뭔가를 찾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나름 세작도 들여 보고 시간과 포인트도 사용해 탐색했지만 알아낸 건 없었다.

“35만.”

“36만.”

“40만.”

“41만.”

이번에도 두 배까지 뛰었다.

정말로 필요한 걸까. 놈이 바라는 건 ‘위대한 별’을 가두고 있는 봉인을 해제하고 그것을 탈취하는 거다.

말하자면 봉인과 관련 된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

발보르그의 이빨. 혹시 ‘접근불가’옵션이 필요한 건 아닐는지.

“더 없으십니까? 41만에서 끝인지요?”

기다려봤지만, 없었다.

순간, 이맛살을 구겼다.

‘아니었군.’

잘못 짚은 것이다. 둠 역시 내가 그를 얼마나 집요하게 노릴지 ‘간’을 본 것이었다.

그리고 놈의 속셈은 성공했다.

“41만 포인트에 ‘발보르그의 이빨’이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둠의 입매가 살짝, 나만 보일 정도로 아주 살짝 올라갔다.

하.

‘하지만 어느 정도의 파악에는 도움이 됐다.’

세 개의 달은 필요했으면서, 발보르그의 이빨은 필요 없다니.

두 물건의 차이점을 고민하면 뭔가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둠. 놈이 노리는 물건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말이다.

이 정도를 파악하는데 41만 포인트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정말로 내가 ‘마왕의 저주’를 해제하면, 어쩌면 이득이었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총알은 많다.’

나도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41만 정도는 탐색전을 벌이는데 써도 될 정도로 나는 많은 포인트를 준비해왔다.

이곳, 43명의 데몬로드가 총 6,400만 정도의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던가?

그래서 평균 150만이라 했지만, 이게 평균의 오류다.

나는 가만히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포인트 란을 확인했다.

[남은 포인트]

-10,714,495pt.

< 48. 대립자(2) > 끝

ⓒ 온후

작가의 말

넘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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