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마지막 경매(5) >
구르망디. 괴짜 과학자이자, 리치이며, 절대지배 상회를 이끄는 총수.
본래라면 골방에 틀어박혀 주구장창 발명에 빠져있어야 하지만, 상회를 떠맡긴 이후로 그는 쉴 틈 없이 발을 놀리는 중이었다.
심연 곳곳으로 상행을 가며 발명다운 발명도 못한 게 어언 몇 년.
이제는 다 때려치우고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우리엘 디아블로가 그를 호출했다.
“······ 이게 뭡니까?”
“뭘 거 같나?”
“처음 보는 물건들입니다만.”
창고에 가득 채워진, 쇠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각종 물건들을 보며 구르망디가 대답을 아꼈다. 대신 그것들을 손으로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굉장히 정교하군.’
쇠를 굽고 접어서 만든 건가?
어지간한 드워프들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진 못할 것이다.
네모난 것, 커다란 것, 얇고 굵게 생긴 것······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들어간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시범을 보여주마.”
커다란 쇳덩어리를 우리엘 디아블로가 어깨 위에 둘러멨다. 그러곤 몇 개의 버튼을 누르자,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분출되더니, 콰아앙!
벽과 충돌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과연. 이 쇳덩이들이 ‘무기’라는 건 이해했다.
“생소한 공격용 무기로군요. 어린 마족들이 사용하기엔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뿐이다.
공격력이 형편없었다.
폭발이 일어나며 벽에 균열이 생기긴 했으나 어지간한 마법 한 번이면 그보다 더한 파괴력을 선사할 수 있었다.
마법을 거의 배우지 않은 어린 마족들, 혹은 약한 종족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무기였던 것이다.
이후 몇 개의 물건을 더 시연한 우리엘 디아블로가 말했다.
“바주카포와 총이라 불리는 무기들이다.”
“인상적이긴 합니다만, 강한 괴물의 살을 뚫진 못할 것 같습니다.”
“맞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지구에 있는 인간들의 물건이지.”
“호오. 이것들을 인간이 만들었단 말입니까?”
그 부분에 있어선 상당히 흥미가 동했다. 지구의 인간은 심연에선 굉장히 생소한 존재였다. 애당초 ‘지구’라는 장소가 부각된 것도 데몬로드들의 전쟁이 시발점이었으니.
최후의 전쟁터가 ‘지구’라는 곳에서 열릴 거라는 건, 데몬로드들의 전쟁에 관심이있는 자들은 모두가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대한 자세한 사항까진 아는 자가 드물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인간들이 만든 무기라니······.
“네게 이 무기들의 개량을 맞길까 한다.”
“······ 개량을, 말입니까?”
“강한 괴물의 살도 단번에 뚫어버릴 수 있도록, 마력과 연계하여 더 강한 힘을 낼수 있도록 말이다.”
“흥미는 동합니다만······ 이 무기들을 해부하고 개량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너 혼자 하라는 말이 아니다.”
“아아, 기술이 좋은 리치들을 몇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면 그들도 흥미를 가질 겁니다.”
“아니, 우리가 하는 연구와 개발은 절대 외부로 흘러가선 안 된다.”
“그럼 누구와 작업을 진행하라는 겁니까?”
구르망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혼자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 외부에서 끌어들이면 안 된단다.
하지만 구르망디가 알기로 우리엘 디아블로와 그의 진영에 있는 기술자는 자신 외엔 없었다.
“인간.”
“······ 인간이요?”
“그렇다. 인간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해라.”
구르망디가 잠시 멈칫했다.
인간. 인간이라니!
심연은 결코 허약한 인간 따위가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모든 마족과 괴물들은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으며, 벌레와 같이 여기는 부류도 많았다.
그들의 기술력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길 자들이 많은데, 더 나아가 우리엘 디아블로는 인간의 기술과 심연의 기술을 합쳐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을 직접 들여가면서까지.
‘미쳤군.’
알려지는 순간 우리엘 디아블로의 평판은 나락까지 추락한다.
그의 추락은 구르망디의 추락과도 같았다. 구르망디는 이미 우리엘 디아블로라는배에 탑승한 것과 같았다.
“이 사실들이 발설되는 순간 왕의 지위조차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걱정마라.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너조차도 이것들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곤 생각 못하지 않았느냐?”
맞다.
구르망디조차 이 물건들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발설하지 않는 이상 걸릴 위험은 거의 없다는 뜻.
또한 개량을 하면서 외형이야 조금 고치면 그만이다.
구르망디가 다시금 인간이 만들었다는 무기들을 쳐다봤다.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
“저건 뭡니까?”
구석에 천으로 덮힌 채 가려져 있는 거대한 물건이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묻자, 우리엘 디아블로가 답했다.
“전차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우리의 주력상품이 될 것이지.”
“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르망디가 쏜살같이 달려가 천을 벗겨냈다.
그러자 육중한 무게의 초록빛 쇳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을 살피고 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살피던 구르망디가 턱을 쓸었다.
‘정교하고 아름답군. 굉장히 세밀한 공정이 들어갔어. 드워프도, 엘프도 따라하지 못할 지식의 총아······ 인간이 만든 거라곤 믿기지 않는구나.’
“할 수 있겠나?”
구르망디는 잠시 망설였다.
그는 과학자다. 또한 리치이기도 했다. 인간의 기술을 엿보고 탐낸다는 것에서부터 벌써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아무도 접하지 못했을 문물. 우리엘 디아블로가 자신의 위험을 무릅써가며 도박을 걸었다. 자신을 믿는다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해부해보고 싶군.’
여태껏 없었던 문물. 신지식의 탐구는 진리의 탐구로도 이어진다.
게다가 인간 과학자들의 기술까지 흡수할 수 있다면, 심연 최고의 탐구자로 거듭날 것이었다.
손이 근질근질거렸다.
당장 저 무기들을 해부해보고 그 기술을 탐하고 싶었다.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겠습니다. 부디 제게 시켜주십시오.”
* * * * *
내심 미소를 지었다.
구르망디가 괴짜라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그는 편견이 얕았다. 다른 리치라면 힘들겠지만 구르망디라면 충분히 성과를 낼 것이다.
‘설마 진짜 전차를 보내줄 줄이야.’
하지만 더욱 놀란 건 민식이의 노력이었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몰래 전차 한 대를빼돌리는 건 엄청나게 힘에 겨웠을 것이다.
지구에서 올 과학자들도 민식이의 입김이 닿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지배’했다. 민식이는 믿지만 그들의 눈과 입 모두를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지구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몇 번이나 있었다는 것이다.
심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 각성자의 힘과 어우러져 더 강한 힘을 내는 것들을 개발하고자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고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간을 대폭 줄인다.
문제는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올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래도 과거엔 시도조차 못해봤던 일이다.’
과거 심연은 절대로 발을 들이면 안 되는 장소였다. 그 누구도, 어느 국가도 심연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심연의 기술과 지구의 기술을 동시에 활용한다?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심연엔 내가 있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 심연의 더욱 많은 것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인가. 민식이와 연계한다면 지구의 재원도 나름대로 활용할 수 있을 터였다.
‘해볼 만한 도전이야.’
심연은 무언가를 연구하고 개발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다. 실험을 할 장소도 많고, 대상도 많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많으니까.
물론 이 실험으로 혁명적인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다. 기술들을 결합한다 해도 초월적인 존재들 앞에선 무용지물인 탓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혁명적인 일’로 보이게끔 포장하여, 그것을 내다파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포장지가 좋을수록 좋은 물건이라고 착각하게 되지.’
그 심리를 건드린다.
마침 그러기 위한 장소도 준비가 되어있다.
“로드시여. 출정준비가 끝났습니다.”
라이라. 그녀가 언제나처럼 내 옆에 섰다.
하지만 그녀는 은빛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팔락이는 망토를 두르고, 전두에서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다.
탑의 바깥으로 나오자 무수히 많은 마족들이 견갑과 무기를 착용하곤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전쟁.’
사자왕 안달톤 브뤼시엘과 내가 벌인 합작, 그 전쟁이 곧 시작된다.
하지만 일단 시작되면 둘 다 쉽게 물러서진 못할 것이다. 아무리 사전에 이야기를진행했다 하더라도 진짜 전쟁인 이상 승패는 나뉘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승리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쟁에서 이긴다면 그는 진정한 사자왕으로 인정을 받겠지.’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겨도 마찬가지다.
사천왕이 전쟁을 벌이는 건 사상초유의 일이었고, 때문에 심연의 모든 괴물들이 지켜보는 와중인 탓이다.
서로의 내부에 있는 적폐를 제거하고, 그 선에서 결과에 따라 승패를 나누며 끝내자고 합의를 했지만 과연 그 약속이 지켜질 지는 미지수였다.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출정하라.”
부우우우우우웅-!
나팔이 울렸다.
전쟁의 서막이었다.
* * * * *
전쟁은 치열했다.
생각 이상으로 양 진영은 서로 밀리고, 밀고를 반복했다.
끊임없는 소모전이 이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매일 만 단위의 마족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이후 우위를 점한 건 사자왕의 진영이었다.
“태양왕도 별거 아니로군.”
“먼저 공격을 해오기에 뭐가 있는 줄 알았더니!”
처음이 어렵지 한 번 뚫리자 성까지 단숨에 진격해 들어올 기세였다.
그나마 마지막 저지선을 사수하며 버텨 30일 가량을 끌었지만, 우후죽순 밀고 들어오는 적들을 막기엔 모든 게 최악이었다.
병력도 적었고, 사기도 안 좋았다.
“태양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구나!”
“겁 먹고 도망친 거 아니야?”
가장 큰 문제는 태양왕의 부재였다. 첫날을 제외하면 태양왕이 전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자왕은 간혹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며 전율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모든 적군이 도륙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사기는 극과 극을 달렸다. 최고와 최저. 굳이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니.
하지만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했느냐고 하면, 그것 역시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곳에서 소규모 접전이 벌어졌고, 그 대부분은 분명히 사자왕의 진영이 승리했지만 유독 한쪽씩 밀리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녹색의 말을 조심해라.
동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녹색의 말을 조심하라는 소문.
그것을 본 자는 무조건 죽게 된다는 이야기!
대부분은 뜬소문으로 여겼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지만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를 한다고 치부했다.
어쨌든 전쟁은 거의 승리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문이 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자왕의 진영에서 가장 노쇄하고 노련하다는 파루아 군단장이 죽었다.
-녹색의 말이 파루아 군단장을 짓밟아 죽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녹색의 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뜬소문인지, 사실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으니 사자왕의 진영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