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마지막 경매(3) >
바로 주먹이 날아가지 않은 것만 해도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 김민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한성은 실실 웃기만 했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눈빛.’
그래. 김민식은 그간 오한성의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녀석에 대한 미안함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녀석의 웃는 입과 달리 눈빛은 상당히 정색을 하고 있었다. 미묘하기 그지없는 차이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뱀 여자를 따라왔다. 왜 네가 심연에 있는 거지? 그것도 우리엘 디아블로의······ 성에.”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이 부분이다.
우리엘 디아블로. 과거 한국을 묵사발로 만들었던 희대의 괴물.
그놈이 지배하는 이 성에서 오한성을 찾았다. 그가 아는 오한성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헌데 인간을 벌레 보듯 바라보는 마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있을 수 있단말인가?
“이야기하자면 길어.”
“다 들을 거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드시.”
그제야 오한성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것이다. 목숨 내걸고 찾아왔으니까.
“아르켄을 알아?”
“안다.”
“내가 아르켄이야.”
“······!!”
김민식이 눈을 부릅떴다.
아르켄이라고?
“하지만, 알 아락사르는 아니라고······.”
“알 아락사르?”
“물의 기사라는 녀석이다. 그는 네가 지구의 신이며 아르켄이 아니라고 했다.”
순간 오한성의 눈에서 이채가 발했다.
“아르켄이란 이름은 유서희에게 받은 거니까. 알 아락사르는 모르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래 유서희가 아르켄이지만, 그 이름을 대신 계승했으니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김민식도 약간 눈치를 챘다.
‘원래 유서희가 아르켄이었구나.’
그 천재성. 인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정통의 강자. 검술의 귀재. 아르켄이라면 설명이 된다.
“정말······ 아르켄이 너냐?”
“숨겨서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어. 누구에게도 밝혀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현대의 아르켄 역시 전설이었다. 용을 다루며, 러시아를 깨부수고, 수많은 괴물을 물리쳐 세계의 억제력이 됐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줬다. 알레테이아 교단의 마수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나 다른 용병들을 죽이며 자신을 심연으로 끌고 간 것이다.
심연······ 그래서 이곳에 있는 건가. 우리엘 디아블로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엘 디아블로와는, 대체 무슨 관계인 거지?”
“그는 협력자다. 그는 다른 데몬로드들이 지구로 향하는 걸 탐탁지 않아 해. 내가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지.”
“우리엘 디아블로가······ 협력자라고?”
허.
김민식이 허파에 바람빠진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우리엘 디아블로는 악의 근원이다. 데몬로드이며 지구를 좀먹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과거와 같은 불상사가 벌어질 것일진대.
협력자? 협력자의 뜻이 그 사이에 바뀌기라도 한 걸까.
“그는 다른 데몬로드와 달라. 어느 편이냐고 하면 오히려 인간의 편에 가깝지.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존재인 건 분명해.”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한성은 무덤덤하게 충격적인 진실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머리가 과열돼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놈은 악이다. 지구를 멸망시킬 괴물. 그런 놈이 협력자라니! 그 사이에 혹시 세뇌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의 목적은 인류의 구원이 아닌 다른 데몬로드들의 말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야.”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뭔가를 할 수 있겠지. 하려고 한다면.”
사고관이 다르다. 내가 아는 오한성이 맞는 건지, 김민식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눈앞에 있는 건 오한성이었다.
과거, 최후의 영웅. 그 이력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으니.
그때 오한성이 되물었다.
“그런데 내가 지구의 신이라니, 무슨 말이야?”
“알 아락사르는 그렇게 말했다.”
“영문을 모르겠군.”
“알 아락사르는 네가 지구로 오지 않으면 지구가 더 위험해진다는 말도 했다. 지구의 신이 없으니 균열이 빠르게 커진다는군.”
“으음, 그런 소릴 했단 말이지.”
오한성이 팔짱을 끼곤 골똘히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김민식의 두 눈엔 혼란이 가득했다.
“너는 원래 테이머가 아니었나?”
“그래서 용도 길들였잖아? 너도 둘 다 만나봤으니 알고 있겠지만.”
“그래······ 그렇지.”
테이머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대도 용을 길들였단 말을 들어본 적조차 없다. 도시전설과 비슷한 거였다. 용은 길들이는 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과 재물로 지배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시도조차 말아야 한다.
“네가······ 정말 아르켄이란 말이지.”
“숨겨서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아르켄인 게 알려지면, 세상은 더욱 혼돈의 도가니가 됐을 거야.”
맞는 말이다. 러시아 군부를 무너트리고, 러시아 군부의 인체실험이 백일하에 퍼져나간 계기가 됐다. 대적불가의 괴물을 퇴치하며 그는 명실상부 ‘용의 기사’로 불리며 세계의 억제력이 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김민식조차 그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강했던 것이다.
차원이 다를 정도의 강함. 지금 김민식 역시 비슷한 일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강한 건가?’
오한성에게선 미약한 마력뿐이 감지되지 않았다.
강하다는 인상이 전혀 없었다.
아예 몰랐다면 ‘약하다’며 넘어갈 수 있겠지만, 녀석이 정말 아르켄이라면.
“얼마나 강한 거지?”
“뭐가?”
“너. 얼마나 강해진 거냐.”
“너보단 강하지 않을까?”
즉답.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마력을 자신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갈무리할 능력이라면 마땅히 자신보다 더 강해야 했다.
같은 인간 중에선 대적자가 없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게, 가짜 알레테이아라지만 녀석이 가진 힘은 진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압도적인 힘. 그것을 받아들이며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 언제고 괴물들도 이겨나가리란 희망.
또한 자존감의 문제였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싸워보자. 오늘······ 나는 너를 미치도록 패고 싶으니까.”
녀석을 때려야겠다.
* * * * *
맞아줘야 하나?
맞아줘야겠지?
‘세 대만 맞아주자.’
많은 걸 밝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녀석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타협을 해야 했다. 내가 아르켄이라는 것, 내가 우리엘 디아블로와 관계가 있다는것.
밝히지 않으면 녀석은 납득하지 못할 거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심연의 끝자락에 있는 나를 찾아온 녀석이었으니.
여태껏 숨겼던 비밀을 알았으니, 어지간히 화가 났으리라.
“제대로 해라. 봐주지 말고.”
적당히 상대한다는 걸 눈치 챈 녀석이 쏜살같이 화를 냈다.
확실히 민식이의 주먹은 매서웠다. 어지간한 노력으론 얻을 수 없는 신체능력과 기술. 단순히 가짜 알레테이아가 도와줬다 하여 얻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피가 나는 노력을 했겠지.
나는 여태껏, 회귀한 이후 민식이 녀석이 좌절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나 자신을 숨기고 녀석이 겉으로 떠올라 영웅이 되도록 나름 열심히 도왔다.
아르켄이란 가면을 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헌데······ 녀석이 어느 정도 사실을알았으니, 더는 ‘약자 오한성’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적어도 이 녀석 앞에선.’
약해보이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녀석도 나름대로 정도를 걷고자 입에 단내가 나도록 달려왔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진심을 부딪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후회할 텐데?”
“해도 내가 한다. 일방적으로 때려봤자 재미없어.”
원래 이런 녀석이었던가?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 매치가 안 될 정도다.
많이 바뀌었다. 무엇이 녀석을 이토록 바뀌게 한 걸까.
영웅. 내가 진절머리 나도록 버리고 싶어 했던 그 두 글자가 녀석을 이렇게 바꿔놓은 건가?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적당히 몸을 풀기로 했다.
그래도 ‘선’은 지켰다. 내 힘과는 동떨어진 것은 사용을 자제하기로 말이다. 예를 들어 암력이나 멸제의 카르페디엠이 지녔던 마력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폭식으로 얻은 이점 역시 버렸다.
오로지 순수한 육체적 능력으로만 맞붙기로 했다.
오히려 그편이 더 제대로 붙어볼 수 있기도 하고.
꽈득!
옆구리로 파고드는 녀석의 주먹을 왼손으로 가드 했다.
꽈득, 소리와 함께 뼈가 나갔다.
‘인정사정없다 이거지.’
여태까진 준비운동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훅 들어와서 억지로 막느라 뼈가 나갔으니.
하지만 뼈 하나 나간 정도로 내가 멈출 리 없다. 이 정도 상처는 상처 축에도 끼지못한다.
오른손으로 녀석의 어깨를 잡고 녀석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무릎을 올려 복부를 강타하려 했지만, 민식이가 손바닥을 들어 내 무릎을 방어했다.
꽝!
그러자 녀석이 그대로 머리로 내 머리를 들이받았다.
잠시 하늘에 별이 떴다. 그리고 그것은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이마를 부여잡곤, 녀석이 급히 물러났다.
“나보다 더한 돌머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반칙 아니냐?”
“이기기만 하면 돼.”
그래도 역시나 깨끗함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듯싶었다.
작게 미소 지으며,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개싸움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신체능력도 내가 더 높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리는 내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
후욱! 후욱!
미친 듯이 숨을 고르며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 졌다.”
“그만 일어나라. 그러다 다시 죽는 수가 있다.”
“하, 진심으로 싸우면······ 난 상대도 안 되겠군.”
민식이가 회의감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녀석에게 맞춰주며 어느 정도 진심을 내보이긴 했지만, 내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녀석도 그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 힘들을 조절하는 법을 모른다. 게다가 진심이 아니었던 건 녀석도마찬가지였다.
“너도 마법을 안 썼잖아.”
“써봤자 결과는 안 달라졌겠지. 그 정도는 알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대(大)자로 뻗은 녀석이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거냐? 이건 과거의 너보다······ 더 강한데.”
“과거의 나라니?”
“아니야. 하여간······ 우리엘 디아블로의 영향이겠지. 대체 놈은 어떻게 만난 거지?”
“그냥 문을 넘어갔는데 거기에 우리엘 디아블로가 있었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진짜다.”
사실은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을 넘어가니 우리엘 디아블로가 된 거지만.
그런 세세한 것까지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믿을 리도 없었다.
김민식은 이젠 될 대로 되라는 표정을 지었다.
“망할 놈······ 나한테만은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엘 디아블로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어. 문제가 생긴다면 차라리 나 혼자 죽는 게 나으니까.”
“그런 게 섭섭하단 거다. 네가 죽으면 누가 좋아할 줄 알고?”
“슬퍼해주는 거냐?”
“일단은. 친구니까.”
민식이가 고개를 돌렸다.
창피해하는 걸까?
작게 웃으며 나도 바닥에 드러누웠다.
심연의 하늘은 여전히 까맣다. 세 개의 달은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친구······ 그래, 친구지. 고맙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지구의 신이라는 건 무슨 소리야?”
“알 아락사르가 말했다. 네가 지구의 신이기 때문에, 네가 없으면 균열이 더 빨리번진다고.”
“균열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심연을 봤다. 데몬로드들의 전쟁을 봤지. 압도적인 광경.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 이 역시 균열이 커져서 보인 거였다는군.”
데몬로드들의 전쟁.
맙소사. 그걸 모두가 봤단 말인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나는 계속해서 심연에 있었기 때문이다.
“심연과 지구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알 아락사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반쯤 상체를 들어 올린 민식이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무언가를 직감했다는 듯.
“내가 아는 오한성이 맞는 거냐?”
< 47. 마지막 경매(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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