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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사냥꾼-175화 (176/251)

< 41. 왕의 자격(1) >

41. 왕의 자격(1)

“지옥왕의 하수인 ‘지옥견 카르닐’을 상대로 우리엘 디아블로의 대리자 라이라 디아블로가 승리했습니다!”

암흑인. 그들은 중개를 맡았다. 중립 성향의 중개자가 없고서야 이 싸움은 성립되지 않았다.

또한 암흑상회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이 싸움이 전개되고 빠르게 결과로 치닫을수록 그들이 바라는 ‘위대한 별’의 탄생이 가까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후욱, 후욱.

그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숱하게 입은 상처 부위는 피 떡이 져서 재생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라이라 디아블로. 그녀의 반대편엔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쓰러진 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이윽고 라이라가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힘에 겨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승리했노라고.

나는 그제야 쥐었던 주먹을 겨우 풀 수 있었다. 손에선 식은땀이 흥건했다. 위험천만한 상황, 간발의 차이로 일궈낸 승리다.

휘이이이이!

곧 맹수는 재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이내 ‘니드호그’의 일부가 되어 아예 모습을 감춰버렸다.

이곳에서의 죽음은 저런 식이다. 죽음, 혹은 여지없는 패배를 맞이한 순간 니드호그가 대상의 모든 것을 강탈해버린다. 저렇게 ‘불멸’조차도 먹어치운다는 거겠지.

만약 맹수가 아닌 라이라가 패배했다면······.

‘이곳은 전장이다.’

고개를 젓는다.

전쟁이라면 무수히 겪어봤다.

소중한 사람, 지켜야 할 친우들 또한 무수하게 잃어보았다.

더는 ‘잃는다.’는 것에 대해 무감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적어도 라이라의 죽음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그녀가 바라는 싸움을 내가 말릴 자격도 없었다.

‘아무 것도 잃고 싶지 않다.’

심연의 괴물들은 싸우고 또 싸웠다. 승리의 조건은 상대의 죽음, 혹은 상대의 절대적인 항복과 그에 따른 복종. 라이라는 내가 항복할 바에는 자기가 죽을 각오로 싸움에 임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잃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과거의 나는 잃기만 했다. 지키려 했지만 결국 모두 잃었다.

그러니 싸울 것이다. 싸워서 쟁취하고 일궈낼 것이었다.

“다음 대결은 태양왕의 하수인 ‘신조 람’과 데몬로드 굴리안 모르테가······.”

“항복하지.”

다만, 모두가 싸우진 않았다.

변화는 있었다. 데몬로드들 중에서 ‘포기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하나.

‘둠의 여유가 사라졌다.’

안달톤 브뤼시엘이 사자왕의 자격으로 전장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힌 순간부터, 그 오만하고 여유롭던 둠에게서 여유가 사라졌다.

몇몇 데몬로드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주류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중립, 혹은 파벌에서 소외된 데몬로드들이었으니.

말 그대로 ‘자기 목숨을 더 소중이 여기는’ 부류들이 항복 선언을 행한 것이겠지.

물론 항복한다고 해도 끝은 아니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대결을 속행해야 했으며······.

‘절대적인 복종.’

항복이란 그런 것이다. 나의 권리를 남에게 모두 넘긴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상대의 패배를 묵인하고 눈감아줄 이유가 없는 탓이다.

파벌의 재편성. 힘이 가진 균형의 추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당장은 사천왕들이 유리하다. 둠과 태양왕의 대결이 뒤로 미뤄진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중립에서 가장 강하다고 정평이 난 안달톤 브뤼시엘이 사천왕 대열에 합류했다.

‘안달톤 브뤼시엘.’

지금 이 전장의 주역은 그다. 내가 그를 끌어내었으나, 단지 그뿐이었음에도 혼자서 척척 진행해버리고 있었다.

그 성과는 이미 내 예상을 넘어, 압도적이기까지 했다.

안달톤의 파급력은 파벌의 수장들에게 결코 꿀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의문이 생긴다. 왜 그는 여태껏 중립을 고수하며 혼자 행동하고 있었던 걸까?

‘견제당한 거로군.’

둠, 제로, 팔콘, 아르하임.

네 명의 수장들이 안달톤을 바라보는 눈빛이나 행동을 보고 깨달았다.

그들 역시 안달톤을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힘을 알기에, 그가 파벌을 이루기 시작하면 자신들의 대적자, 혹은 그 이상으로 클 수 있음을 은연중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견제가 전혀 먹히지 않는 사천왕의 대열에 합류해버렸다.

더불어······ 순식간에 나 역시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사자왕 안달톤 브뤼시엘이 데몬로드 도태의 살라만자르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승리. 상대에겐 죽음과 같은 의미의 말이 암흑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안달톤브뤼시엘은 상대를 압살했고, 그것은 확실히 내 이해의 범주를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일이었다.

‘능력치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내 심안은 데몬로드의 상태창마저도 이제 꿰뚫는 게 가능해졌다. 능력치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을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안달톤은 달랐다. 그는 기준을 벗어난 자다.

이름: 안달톤 브뤼시엘(value-지배불가)

직업: 데몬로드

칭호:

● 절대악신의 힘(10Lv, 모든 능력치+8)● 별의 주인(9Lv, 모든 능력치+6)능력치:

힘 125(101+14) 민첩 128(104+14) 체력 117(103+14)지능 114(100+14) 마력139(125+14)잠재력(533+70/550)스킬: 심연(11Lv), 휘몰아치는 악(10Lv), 군림자(10Lv)단 두 개의 칭호. 그리고 사천왕의 인정을 받자 생겨난 스킬, 심연.

반대로 둠에게 있었던 ‘심연(11Lv)’스킬은 삭제된 상태였다. 이 현상에 나는 주목했고, 결국 이 스킬이 일종의 ‘가호’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여튼, 안달톤 브뤼시엘의 능력치는 분명히 나보다도 높지만 그렇다고 상대, 도태의 살라만자르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스킬의 영향인가?’

심연이란 스킬이 그들이 말하는 불멸과 관계가 있다면, 나머지 두 개의 스킬의 영향일 가능성이 컸다. 이름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물씬 풍기지 않은가.

특히 군림자(10Lv)의 경우 내 ‘지배자’의 스킬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나는 오로지 ‘지배’를 중점에 두는 반면 군림은 ‘상대의 위에 서는 것’을 뜻했다.

비슷하긴 해도 미묘하게 다르다는 말이다.

혹여나 싸우게 된다면 조심할 필요는 있을 듯싶었다.

그리고······.

“태양왕의 하수인, ‘신조 람’과 데몬로드 우리엘 디아블로의 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내 차례가 왔다.

* * * * *

신조 람.

‘신조’라 이름 붙은 이 신명스러운 새는 심연에 존재하는 모든 새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특별했다.

용을 잡아먹는 새.

검은 불로 타오르는, 태양에서 태어난 유일종이었다.

심연의 수많은 괴물이 이 신조에게 잡아먹혔으며 오로지 초대의 태양왕만이 신조를 길들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신조는 오로지 태양왕만을 따르며, 수 대에 걸쳐 그 역할을 이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데몬로드들에게도 이 신조를 아주 무시할 순 없었다.

아니라면 데몬로드 굴리안 모르테가 신조 람의 상대가 되자마자 백기를 흔들 리 만무했으므로.

“우리엘 디아블로와 신조의 대결이라······.”

“놈이 멸제의 카르페디엠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힘들겠지.”

“멸제 따위와 신조를 비교할 순 없으니.”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최약체의 데몬로드가 멸제의 카르페디엠을 죽였다는 건 인정해줄만 한 성과지만 그래봤자 상대가 멸제의 카르페디엠이어서 이겼을 따름이다.

신조는 심연의 괴물 중에서도 최상급을 달리는 존재. 비교할 대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 만년을 살아온 ‘지혜의 새’였다.

아무리 우리엘 디아블로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한들 신조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어지간한 용은 간식처럼 먹고 다니는 게 신조인 탓이다.

“상대가 너무 나빴군.”

“신조 람은 태양왕의 측근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강자. 흠, 항복하겠지.”

대전 상대를 정하는 방법은 ‘별의 의지’에 따라 결정됐다. 암흑인들이 신봉하는 신물 중 하나이며 모든 것을 ‘균형에 맞게 선택’해준다고 하는 구슬이었다.

균열을 다루는 암흑인의 입장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저 구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일 것이나, 사안이 사안이기에 가져온 것일 테다.

그리고 신조 람과 우리엘 디아블로의 대전이 결정됐다······.

당연히 모두가 우리엘이 항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끄룩?

그런데, 이상하다.

신조 람. 용을 잡아먹는 새이니 그 크기는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다. 우리엘의 덩치가 크다고 해도 벼룩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신조 람은 우리엘을 공격하지 않았다.

도리어 우리엘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근처를 돌며 냄새를 맡는 행위를 보였다.

그 모습에, 태양왕의 미간마저 꿈틀거릴 정도였다.

“뭐지?”

“왜 신조가 공격하지 않는 거냐?”

“신조는 오로지 태양왕의 명령만을 수행할 텐데?”

더욱 놀라운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조가 날개를 접었다. 다리를 꿇고, 우리엘의 얼굴에 거대한 뺨을 비비기 시작했다.

친애의 의미다. 신조가 태양왕의 명령을 어겼다.

“······ 설마 우리엘이 태양왕의 피를 이었기 때문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신조는 ‘현재’의 태양왕만을 따르니까.”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복종의 자세와 비슷한데.”

모두가 경악했다. 데몬로드도, 지켜보던 태양왕조차도 그 무표정한 얼굴에 변화가 생겼을 수준이니 말은 다했다.

신조 람!

거물 중의 거물, 심연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살아온 새가, 태도를 바꿔 우리엘 디아블로에게 친애의 표시를 내비췄다.

그리고 우리엘 디아블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며 신조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신조가 주인을 바꿨다?”

“그럼 지금의 태양왕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사사하는 건 한 가지가 아니다.

신조는 오로지 태양왕만을 따른다. 수만 년, 어쩌면 그 이상 이어져왔을지 모르는절대적인 규칙.

그래서 신조는 태양왕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주는 괴물이었다.

지금 그 규칙이 깨졌다.

아니면······ 왕이 바뀌었거나.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엘 디아블로.’

그가 무언가를 했다는 거다.

* * * * *

신조를 마주하고 녀석의 눈을 바라본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모든 피가 역류하는 느낌.

[신조 람이 신성을 꿰뚫어봅니다.]

[‘태양왕의 자격’을 만족했습니다.]

[‘지배불가’에서 ‘지배가능’상태로 변환되었습니다.]

[지배자의 권능으로 신조를 사육한다면, 권능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꿀꺽!

침을 삼켰다.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지배자의 권능을 사용할 생각이 있긴 했지만.’

지배자의 권능은 만능이 아니다. 한계가 있으며 특정 이상의 격을 가진 존재 역시지배할 수 없었다.

신조 람이 그랬다. 신조라 불리는 이 괴물의 격은 어지간한 데몬로드보다 한 단계더 높았다. 오로지 태양왕만을 따르기에 지배 역시 불가능했다.

그런데, 마주한 순간 변했다.

‘태양왕의 자격?’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조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한 것만은 확실했다. 신조의 불꽃이 내게 닿았으나 전혀 뜨겁지 않았던 것이다.

심안을 열어, 신조를 바라보았다.

이름: 신조 람(value-1,470,700(긍적적인 효과로 인해 70% 격감한 상태))능력치:

힘 125 민첩 115 체력 120

지능 130 마력 130

잠재력(620/620)

엄청난 능력치였다. 우리엘 디아블로의 능력치 총합이 고작 600인 걸 감안하면, 나조차도 뛰어넘는 강자. 왜 신조라 불리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70% 격감한 상태라니?

‘자격을 획득해서인가?’

태양왕의 자격.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지금의 태양왕보다도 나를 인정하게 된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70%의 효과뿐이었다.

그래서 147만 포인트.

내가 가진 모든 걸 털어넣으면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음의 경매를 위해 계속해서 쌓아온 포인트가 140만 가량이었고, 이번 둠의 초청에 응해 10만 포인트를 벌어 150만 정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배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하겠다.’

지배자의 권능이 발현됐다.

그 순간, 신조가 날개를 접고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내가 신조의 뺨을 손으로 훑자,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엘······ 디아블로.”

태양왕.

그가 매우 심기 불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41. 왕의 자격(1) > 끝

ⓒ 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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