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데몬로드(3) >
나는 언제나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영역에 도전했다. 포기하지 않았고, 아둥대고 발악하며 결국 최후까지 남았다.
비록 그 끝엔 죽음만이 남았으나 그래도 포기한 적은 없다.
심지어 그 죽음에서조차 나는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보자면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데몬로드가 되고, 대라선이 되고······ 오로지 나만이 이러한 가능성들을 알고 있었다.
불멸자들만이 오랜 세월 갈고 닦아야만 생기는 의지?
‘같잖군.’
의지는 절박함에 비례하는 법. 오랜 시간 내 의지는 단 한 번도 무뎌진 적이 없다.
놈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일망무제의 끝없는 사막조차도 나를 막진 못하였다.
망망대해와 같은 사막에 스스로를 던지고 수없이 잊고, 깨달으며 각성하라는 현장(玄奬)의 가르침.
그 목소리가 다시금 내 머릿속을 울렸다.
결국엔 모든 깨달음이 처음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현장이자 천마인 그가 내게 전하는 진정한 신성이었던 셈이다.
‘아무도 나를 막진 못하였다.’
여태껏 수많은 각성을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순간 모든 번뇌와 의혹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 스스로에 대한 무한한 믿음만이 자리 잡았다.
현장은 나의 길을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그 길만을 걸으라며.
[영혼의 격이 격상합니다.]
[‘이데아(idea)’ 시스템의 상위레벨이 개방됩니다.]
[신성, ‘멈출 수 없는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의지에 따라 ‘거신(巨神)’이라 칭해지는 모든 신성에 관하여 50%의 모든 능력치 상승이 주어집니다.]
이데아 시스템!
그 상위레벨이 개방되고 편입됨에 따라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모든 근본을 이루는 시스템.’
위대한 별에서 파생된 시스템과 세계의 ‘눈’들이 하위레벨이라면, 이데아라 이름 붙은 그것은 오로지 신들에 근거한 또 다른 버전과도 같았다.
진즉에 내가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위대한 별’이 모든 각성자에게 주었던 그 시스템의 진정한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신성을 막고 있었구나.’
인간이 신이 될 가능성. 그것을 막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천마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도 그 가능성을 영원히 닫은 채 살아갔으리라. 지금처럼 신성을 개방하는 일은 없었을 터.
단순히 인간을 포식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위대한 별’의 시스템이 가동하는 건 지구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차원에 ‘눈’이 있었고,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차원에서 새로운 신들이 탄생하고 있지 않은 건가?’
신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특히 관리자라 칭해지는 그들은 정체모를 신 살해자에 의해 하나, 둘 살해당하는 와중이었다.
세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균열은 미친 듯이 요동친다. 신이 죽은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니 모든 게 붕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예 새로운 신성이 만들어졌다.
‘나의 신성은 오로지 거신을 사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신성에 관한 능력도 거신에 몰려있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필멸자가 어찌하여 새로운 신위를 얻을 수 있단 말이냐!”
놈도 새로운 신의 탄생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싶었다.
버려진 신. 어쩌면 아득히 오래 전, 그는 정말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떨어진 이후 신의 흉내를 내며 가짜 행세만을 이어갔다.
흉하다. 추했다.
[신성의 크기에 따라 작은 신성을 포식할 수 있게 됩니다.]
[보다 큰 신성의 포식을 위해선 추가조건이 필요합니다.]
신성은 영혼의 격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격은 눈앞의 가짜를 넘어섰다.
가짜 역시도 그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변이다. 기존의 것이 아닌 아예 새로운 신성······ 넌, 너는 누구란 말이냐?”
“다시 물으마. 알레테이아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는 입을 벌렸다.
가짜는 과거 진짜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영혼의 격이 격상한 지금, 놈 역시 포식의 대상이었다.
가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발자국 물러서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놈은 겁에 질렸다.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으로 바꾼 내게, 또 다른 포식자의 탄생에.
“그녀는······ 위그드라실에 잠들어 있다. 나는 그녀가 꾸는 꿈을 보았을 뿐.”
위그드라실!
모든 우주에 뿌리를 내린 우주수(宇宙樹)다.
이 모든 원인이 그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잠든 직후 모든 게 변했다. 그가 뿌리를 씹어 먹고, 또 다른 자는 날갯짓을 하며 균열을 일으켰다. 아아······!”
“그녀는 누구지? 그들은 누구고?”
“마, 말할 수 없다. 그 이름을 내 입에 담을 순 없어!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나는 표적이 되고 잡아먹힐 것이다. 다른 자들처럼! 으으으······.”
가짜가 몸을 웅크렸다.
진정으로 겁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이번엔 내가 아닌 ‘그들’이었다.
“하, 하지만, ‘위대한 별’의 신성을 그녀에게 인도하면 모든 것들이 정화될 것이다. 그들도 안정하리라. 나는 그녀의 꿈을 보고 그녀의 능력을 얻었지만, 그들의 힘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름을 말할 수 없다. 나보다 더욱 상위의 신성을 가진 존재가 분명했다.
또한 나는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관리자를 사냥한 자. 그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며, 경합의 장에서 보았던 고블린의 신도 똑같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은 자다.’
적어도 가짜가 말한 셋 중 하나는 관리자들을 살해한 자와 같은 자임이 분명했다.그녀와 그들.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자들.
“너는 누구지?”
“나는······.”
가짜는 돌연 입을 꾹 닫았다.
그러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누구지?”
자기 자신을 모른다. 그렇기에 다른 존재에게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 특성 탓에 민식이의 안에 갇혔고, 지금은 민식이와 거의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제압은 할 수 있지만 포식할 순 없다.’
확신할 수 있었다.
가짜를 포식하면 민식이도 죽는다.
나와 우리엘 디아블로의 관계처럼,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너는 나를 아나?”
놈은 혼란해하고 있었다. 가짜의 말로.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뻗었다.
이어 놈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들어라. 민식이 녀석에게 조그마한 악영향이라도 끼친다면 그 즉시 나는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혹시 가짜는, ‘위대한 별’을 자신이 갖게 되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러다가 내심 혀를 찼다.
내 알 바 아니었다.
대신 가짜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녀석은 잔뜩 겁이 먹은 채 혼란해하고 있었다.
“또한 나에 대해 너는 침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나는 가짜보다 더욱 상위의 격을 갖게 되었다. 녀석을 포식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대신 나의 말들을 확실하게 새겨 넣었다.
민식이가 나와 같은 신성을 얻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모든 사실을 쉽게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와 그들이라······.’
그래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위그드라실에 있는 존재들. 그들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라는 건 알게 됐다.
더불어, 나는 대오각성하며 신성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진정한 세계에 한 발자국을 내딛은 셈이다.
‘더 자세하게 알아봐야겠군.’
나는 이 어두운 세계를 비집고 나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났을까.
민식이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짜의 영향도 있겠지만, 내가 녀석의 심층 안에서 각성한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인간에게 굉장히 지극정성이시군요.”
보다 못한 라이라가 끼어들었다.
라이라 디아블로. 그녀는 뭔가 언짢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는 매우 특별한 인간이다.”
“제 눈엔 다른 인간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여요.”
“그렇다면 ‘또 다른 나’도 마찬가지겠군.”
“그, 그건······ 경우가 달라요. 아직 적응은 안 됐지만, 이해도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또 다른 나는 오한성을 뜻한다. 아직 라이라는 오한성일 때의 나를 완전하게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예외를 두려 한다는 거는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로드시여. 그가 왜 특별한 인간이죠?”
라이라가 주제를 돌렸다. 이 주제에 관해선 서로가 민감하다는 걸 아는 거다. 그녀치곤 굉장히 배려심 넘치는 발언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라이라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그는 ‘또 다른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분명히 큰 힘이 될 것이다.”
민식이는 가짜를 이겨냈다. 불가능하다 여겼던 관문을 넘어서고 그 힘을 도리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놀랐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과거의 녀석과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그만큼 절실한 의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지를 가진 자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뿐만인가. 언제고 큰 힘을 얻게 되어 있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오히려 갈등하는 건 내 쪽이다.
내가 직접 녀석을 도울 순 없고, 우리엘 디아블로의 신체로 돕는 건 가능하다. 지금처럼 녀석의 몸에 손을 대고 마력을 안정화 시키는 작업 같이 미세한 조정은 우리엘 디아블로가 훨씬 섬세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주면 녀석은 강해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로드께서 말씀하신다면 분명히 그러하겠지요. 제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시는 분이니까요.”
“질투라도 나는 건가?”
“아닙니다. 고작 인간 하나에게 질투라니요?”
라이라가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요 며칠간 나는 민식이의 신체를 돌보고 있었다. 마력의 안정과 혹여나 모를 ‘놈’의 준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온전히 민식이에게 신경을 쓰자, 며칠간 시시때때로 나타나서 이쪽을 바라보곤 했다. 물론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민식이에게 질투심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이 퍽이나 귀여워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라이라가 표정을 굳혔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딱히 아무런 말도 안했다.”
“얼굴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로드의 관심을 독차지한 저 인간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
“······ 아주 약간, 인정하겠습니다.”
라이라가 백기를 들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겠지.
한 마디로 자폭이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매우 보기 힘들다. 카메라가 있다면 남겨두고 싶을 정도였다.
한 차례 눈을 감은 그녀가, 이어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아, 그리고. 전서가 날아왔어요. 데몬로드가 모이는 회의가 열릴 거라고 하더군요.”
“······ 뭐라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 저도 장난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가 ‘둠’인 걸 보면······ 장난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급히 편지를 뜯었다.
‘둠!!’
심연에서 편지라니. 그런데 그것을 둠이 보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찰각에서의 타격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태껏 아무런 행보도 하지 않으며 숨어있었던 자가 갑자기 편지를 보냈다?
분명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편지의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