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신사냥꾼-154화 (155/251)

< 37. 구화랑, 구화린(3) >

김민식.

그는 ‘그날’ 이후 변했다.

변하고 있었다. 그것을 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어둠의 힘, 9레벨의 칭호······.’

그는 모든 외부의 접근을 막은 채 좁고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골몰히 생각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자신에게 말을 건넨 존재, 그가 자신을 ‘가장 강한 사도’라 칭하며대뜸 이만한 힘을 건넨 것엔 무언가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가장 확실한 건.

‘알레테이아.’

진리교의 이름이다. 과거의 김민식은 알레테이아의 밑바닥부터 중간간부까지 올라갔다. 온갖 더러운 짓을 마다하지 않았고 양심을 팔며 도달한 자리.

교리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알레테이아의 교단이 모시는 신, ‘크로노스’에 대한 신앙은 누구보다 깊었다.

김민식은 고개를 숙여 왼손을 바라봤다.

검지에 착용 된 육망성의 반지.

‘이 반지는 크로노스의 증표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이 확인할 수 있는 증표였다. 이 반지의힘으로 말미암아 돌아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이 반지는 ‘성물’이니까.

교단의 교주조차 얻지 못한 진짜배기 성물!

하지만 돌아온 이후 힘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빛이 돈다.’

반지의 힘이 채워지고 있었다. 왜?

어느 날 그는 ‘크로노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날부터 진짜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히 ‘크로노스’의 것이었다.

‘저보고 세상을 불태우라는 겁니까?’

충동. 검은 불에 휩싸인 뒤로 김민식은 강렬한 충동을 이겨내는 중이었다.

사람과의 접촉을 모두 막아버린 것도 그 이유다. 누군가를 보면 자신이 어찌 할지몰라서.

‘저를 돌려보내신 이유가······ 그런 겁니까?’

신은 희망만을 주지 않는다. 오한성. 녀석이 매일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하기야 신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내주진 않았을 터였다. 김민식은 ‘크로노스’로 추정되는 존재가 보낸 이미지를 읽었고, 그 결과 절망하고 있었다.

세상을 태우는 불!

그 중심에 김민식. 그가 있었다.

놀랍게도 자신을 막아선 건 오한성이다. 유일무이한 친구. ······ 라고 생각하는 사람. 오한성은 별과 함께 내려왔다. 하지만 김민식은 오한성을 찢어발겼다. 그 심장을 끄집어내고, 섭취함으로써 무한한 힘을 얻었다.

‘친구를 죽이고, 세상을 멸망시키고, 그렇게 살라고?’

왜 오한성이 그 꿈에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서라.

자신이 꿈꾸는 영웅과는 너무 먼 길이다.

하지만.

“끄으으으······! 끄아아아아!”

이 ‘충동’은 도무지 어찌 할 겨를이 없다.

아프다. 너무 아파서, 남에게 이 고통을 전달해야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김민식의 머리를 파먹었다.

똑똑!

그때였다. 누가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계시죠? 없어도 들어갈 거지만요! 헤헷.”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며, 빛이 방 안을 휘저었다.

그 순간 나타난 소녀는 코를 부여잡았다.

“아오~ 홀애비 냄새. 이봐요, 김민식씨. 이런 곳에서 뭐하세요?”

유서희.

현재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바람의 노래 길드의 길드마스터였다.

아포칼립스 길드를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며, 이 성장세라면 앞으로 3년 내에 추월이 가능하다고 전해지는 그곳의 길드마스터가, 김민식을 찾아온 것이다.

“저한테 다 맡겨놓고 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헤헹, 안타깝네요! 제가 이렇게 찾았으니까! 자, 내일 러시아 정부랑 아주 긴밀한 협의가 있는 거 아시죠? 저랑 같이······ 응?”

소녀는 천재다. 천재라는 말은 이 소녀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녀는 매일 강해졌다. 어쩌면 벌써 김민식, 그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유서희의 검은 자유롭고 활기찼다. 변화무쌍. 이런 천재를 김민식은 과거에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살심(殺心)이 일었다.

“꺼······ 져라.”

“몰골이 왜 그래요? 누구한테 맞았나?”

“크아아아아!”

쾅! 쾅! 콰르륵!

검은 불이 방 전체를 화마로 물들였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그’를 죽여라!

-‘그’를 죽이고 ‘정수’를 빼앗아라!

-그리하여 세상을! 부숴라!

김민식의 눈이 붉어졌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유서희를 덮쳤다.

“자, 잠깐······!”

공격당할 거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던지라, 유서희가 검을 꺼내기도 전에 김민식의 불이 닿을 게 확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 공격이 도달하기 직전, 그가 멈췄다.

그러자 유서희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저기요, 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런 건 좀 그렇거든요? 그리고 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나를······ 나를 가만히 놔둬!”

크롸아아앙!

김민식의 검지, 성물의 반지를 착용한 그곳에서 검은 용의 형상이 두드러졌다. 검은 용의 얼굴이 김민식의 등 뒤로 나타났다가 없어지길 반복하고 있었는데, 흡사 강력한 저주라도 걸린 듯이 보였다.

-신도들이 모일 것이다.

-그들을 이끌고, 나를 재건하라.

-알레테이아. 그 진리의 이름을 떠받들라.

“닥쳐! 닥쳐! 닥치란 말이다!”

허무로 떨어지지 않고, 이곳 현계에.

‘천마는 야차와 나찰을 만들었다. 남은 신체는 대라선에게 힘을 계승하는 용도로 남겨두었지. 암령은 그의 정신이 아니야. 허무로 떨어지지도 않았다면······ 그의 혼은 어디 있는 걸까.’

월천이 내게 건네준 건 현장의 가르침과 암령뿐이었다. 이 역시 천마의 혼은 아니다. 그 초월적인 격을 가진 천마의 혼이 모든 차원 어딘가에 있는 건 분명한 듯싶었다.

스아! 스아아!

전신에서 빛이 솟구치는 정도가 강렬해지고 있었다.

영혼을 태울 듯 고통스러웠지만,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광활한 힘은 끝이 없었다. 역대의 대라선들이 이 과정을 거쳤고, 모두가 다른 그릇으로 다른 힘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가장 많은 천마의 힘을 받아들인 게 10%가 채 되지 않는다.

‘나 홀로 이 힘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나는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다.’

허나 나의 정신은, 혼의 그릇은 많은 경우를 경험하며 비대해졌다. 과거에서 돌아오고 우리엘 디아블로와 동화되며, 수십, 수백 배 이상으로 팽창했다.

[‘대라선(10Lv)’의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의 힘을 계승중입니다.]

[위험.]

[더 이상 진행하면 혼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자.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어디가 나의 한계일까.

나는 계속해서 투쟁했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리고서.

* * * * *

나찰산과 던전이 연결됐다. 일전 한 차례 심연에서 연결해본 적이 있기에, 좌표를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쌍방에서 통행은 불가능해야 정상이지만, 균열석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가능해졌다.

“여기가 우리가 시작할 장소······?”

“숲이잖아. 집도 많아.”

“허어!”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작은 오두막들이 길게 늘어져있는 커다란 마을.

가운데 있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도 유독 눈길을 끌었다.

“저 작은 난쟁이들은 또 뭐야?”

“집 짓고 있는데?”

하지만 가장 신기한 건 난쟁이들이다.

야차들은 드워프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아직 작업이 한창이었다. 드워프들은 집을 지었고, 야차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아름다워.”

오룡 중 일인, 적룡 구화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오룡들도 고개를 주억였다.

아름다운 장소였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나무 한 그루와, 그 주변에 수놓인 오두막들.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나찰산보다 더욱 기운이 넘치는 곳이었다.

“화-린-아! 구-화-린!”

그 찰나, 멀리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매우 익숙한 목소리와 이름이었다.

구화린이 고개를 돌리자, 하늘에서 누군가가 쿵! 하고 떨어지며 즉시 구화린을 껴안았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흐허허헝!”

“오, 오빠?”

“보고싶었다!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

“잠깐! 숨 막혀!”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걱정마라. 이 오래비가 다 해결해주마!”

“숨······ 막힌다고!”

퍼억!

구화린이 대차게 주먹을 날리자, 구화랑이 얼굴을 얻어맞곤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주먹을 날린 구화린의 눈가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다. 이미 제사까지 치렀다. 다시는 못 보게 될 얼굴이라고 생각했건만.

거짓말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의문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오빠가······.”

“나만이 아니야. 함께 끌려갔던 야차들도 살아있어.”

피식 웃으며, 구화랑이 야차들을 바라봤다.

많다. 족히 3만은 넘어보인다. 전체 숫자에 비하면 적지만 이만한 숫자가 이주해오다니, 우리엘 디아블로의 말이 사실이었다.

열심히 집을 지어놓은 보람이 있다.

구화랑을 아는 모든 야차들은 번개라도 맞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구화랑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할 이야기가 많지만, 구화린이 반갑긴 하지만, 구화랑으로썬 먼저 처리해야할 일이 있었다.

“너희들이 명심해야할 것은 단 하나다. 우리의 주인 우리엘 디아블로님을 모시는것!”

주인? 우리엘 디아블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대라선을 따른다.”

“오한성님이 새로운 대라선으로 등극하셨지.”

“그분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우리엘 어쩌고는 우리가 상관할 게 아니야.”

그러자 반대로 구화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오한성이 대라선이라고?

대라선이 오한성이라고?

그날. 오한성이 우리엘 디아블로임을 알았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생각도, 상상도 하지 못한 현실에 구화랑이 넋나간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건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 37. 구화랑, 구화린(3) > 끝

ⓒ 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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