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구화랑, 구화린(1) >
심장 절반이 터졌다. 내 심장도 함께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월천의 의지는 견고했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만 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월천의 몸이 식어감과 동시에 둠은 처음으로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인상을 찌푸린 채, 하지만 마냥 절망은 하지 않았다는 듯.
“어리석은 녀석이로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수’는 이미 내게 반응했으니!”
우주가 굉장한 속도로 둠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균열석으로 시간을 늦추고, 시간을 돌리려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였다.
나는 튕겨져 나갔다. 심장을 쥔 그대로.
정화 된 균열석은 힘을 다한 채 빛이 바랬다. 끝없이 시간을 돌렸으나 내가 깨달은 것은 그저 나는 나의 과거를, 과거의 나를 싫어한다는 결론뿐이었다.
“과연, 이 힘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겠군. 그리하여 나는 ‘위대한 별’을 얻고 모든 세계의 신이 된다. 버림받은 신이여, 오늘만큼은 축배를 들어도 좋노라.”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지만 나는 그의 내면에 깃든 환희를 보았다.
‘스스로를 아껴라. 스스로를 사랑해라. 실수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월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더 이상 그가 나타날 일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월천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까.
나는 내 손에 들린 심장을 바라봤다. 그가 죽어서까지 내게 알게 하려던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한 마디다.
세상에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둠은 ‘인간의 한계’라고 칭했던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나 자신은 과거의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은 했으나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못하겠다.’
고개를 저었다. 수많은 절망을 보며 혐오의 골이 더욱 깊게 파였다. 그것을 잊고 그저 사랑하라니. 내 실수를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닌가.
용서를 하는 순간 지금의 나는 부정된다. 그저 앞만 바라보며 미친 듯이 달려왔던현재의 나 말이다.
힘을 추구했다. 오로지 그것만을 원했다.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었다면 월천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지 않아도 됐을 것일진대.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부처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인간.
‘그러니······ 대신 해주십시오.’
심장이 멈추기 직전이었다.
내 손에 들린 심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본래 심장이 있었어야할, 월천의 가슴부근에 또 다른 심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게 둠이 말하는 ‘정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콰득!
심장을 베어 물었다.
[새로운 인자를 포식하였습니다.]
[이미 세 가지 인자가 충족된 상태입니다.]
[삭제할 인자를 선택······.]
[사용자와 매우 일치율이 높은 인자입니다.]
[재해석이 시작됩니다.]
[인자가 뿌리를 내려 사용자의 몸에 융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태을무극심법이 4->5성에 도달했습니다.]
[태을무극심법이 5->6성에 도달했습니다.]
[태을무극심법이 6->7성에 도달했습니다!]
부르르르!
몸이 떨렸다. 신체가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월천의 심장엔 나와 비슷한 종류의 마력이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내공이라 해야 할 것이다. 태을무극심법의 주를 이뤘던 그 기운이 몸 안에 뿌리를 박고 융화되기 시작했다.
7성!
여태껏 가장 올리기가 난해했던 태을무극심법이, 단번에 세 단계나 상승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바로 눈앞의 광경이다.
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심장으로 향하던 힘들이, 나를 향해 나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새로운 ‘적격자’가 되었음이 인정된 것이리라.
혼자서 안 된다면, 둘이서 한다. 적어도 월천은 나를 진심으로 제자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나 역시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길지 않은 인연이지만 이 이름이 가져다주는 힘은 상상이상으로 크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완성자’의 자격을 가졌단 말이냐?”
“나는 완성되지 않았다. 세상에 완성된 것은 없어.”
그렇다. 나는 아직도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적격자’가 된 것은.
“이 시련 자체는 완성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완성자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진 시련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스스로를 완성자라고 여긴 둠은 해당사항이 없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둠은 영원히 이 시련의 온전한 보상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나를 상호보완해줄 힘을 얻었다. 월천. 그의 의지가 나와 함께한다. 나를 이해하고 가르침을 내렸던 그가 말이다.
이어 둠의 심장을 새로이 구성했던 힘조차도 내게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며, 지그시 나를 노려보았다.
“······ 이름이 무엇이냐.”
화를 내는 대신 이름을 묻는다.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름이끼쳤다. 다른 어지간한 데몬로드였다면, 자신의 목표가 좌절됨에 따라 역성을 부렸을 텐데.
둠은 달랐다. 실수를 인정하고 나를 다시 해석하려 들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완성자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오한성.”
“오한성. 너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네가 ‘정수’를 지킬 수 있다면 언제고, 그때엔 결코 실수하지 않으리라.”
나는 정수를 지킬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다시 나에게서 정수를 빼앗겠다는 뜻일는지.
이윽고 모든 힘이 내게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월천의 신체도 조금씩 무너지며 먼지처럼 흩날려갔다.
그럼에도 둠의 눈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놀랍군. 그의 혼은 영원히 탈락하여 고통 받아야 정상일진대. 비록 반쪽에 불과하지만 ‘허무’에서 그를 받아주었다. 너는 인간이라곤 할 수 없는 권한을 갖고 있군.”
월천의 영혼은 허무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 같았다.
허무.
‘위대한 별’이 완성되면 그곳을 다룰 권한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 힘은 감히 천계조차 뒤집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저력이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대관절 어떠한 장소이기에 둠조차도 놀라는 것일까?
“알레테이아를 알고 있나?”
하지만 그가 사라지기 전에, 묻는다. 물어야 했다.
화천은 죽기 직전 알레테이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만약에 내 생각이 맞는다면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다. 분명히 둠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입만 남은 둠이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그는 버림받은 신이다. 그래, 마치 인간과도 같은 녀석이지. 그는 네가 가진 ‘정수’를 빼앗고자 온갖 방법을 모두 사용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무슨 뜻이지?”
“······.”
사아아아!
사라졌다. 월천의 몸이 재가 되어 모두 흩날려버렸다.
둠의 의식이 사라졌다는 건 나찰산에 있는 둠의 신체 역시 역소환당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가만히 나의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미칠 듯이 뛴다. 둠이 말한 정수가, 내 심장으로 대신 옮겨졌다.
둠은 이 힘을 얻어 심연을 정복하려고 했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창’은 하나도 뜨지 않았다.
마치 내가 ‘현계’에 갔을 때와 같이······.
말하자면, 세계의 정보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정보를 추가할 경우 포인트를 준다는 대목이 없다는 정도.
스아아아아!
그때였다.
흩날렸던 재가 다시 모여 구성되기 시작한 건.
이윽고 본래 월천의 신체였던 재는 또 다른 형상을 만들었다.
‘검.’
그것은, 검이었다.
둠이 말했던 ‘반쪽’이란 게 이런 뜻이었던가.
월천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검은 일견 평범했으나 결코 범상치 않았다. 무척이나 친숙한 느낌마저 드는 게, 정말로 월천이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릉!
그 순간 정수의 힘이 다한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검을 쥐고, 빠르게 이 장소를 빠져나갔다.
* * * * *
쓰러진 나찰과 야차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거대한 균열.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그 균열 속으로 둠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긴 건가?”
“월천은? 오한성은?”
둠은 죽지 않았다. 단지 어딘가로 사라졌을 뿐.
그래서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선화의 동굴에서 ‘그’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뚜벅!
동굴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동굴의 입구를 주시했다.
그리고.
“······ 오한성!”
적룡 구화린. 그녀가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높게 뛰어올라, 그의 전신을 껴안았다.
자존심 강한 구화린이라곤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하나, 둘, 야차와 나찰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곤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대라선을 뵙습니다.”
“새로운 대라선을 뵙습니다!”
나찰산에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인도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 * * * *
아귀들을 비롯한 괴물들이 ‘문’을 향해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남은 것은 온갖 시체들뿐이었다.
서쪽을 개방하여 그 길가에 있던 모든 건물은 폐허가 됐다.
아마도 내일이면 신문 일면에 이와 관련 된 기사가 나갈 것이었다.
“아포칼립스 길드, 미숙한 대처로 조 단위의 피해를 내다. 어떻습니까?”
“닥쳐라.”
김민식은 인상을 구겼다. 어떻게든 시민을 보호할 순 있었지만 재산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걸 그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게 무엇을 뜻하겠나.
내일부터 아포칼립스 길드를 향한 비난이 쇄도할 것이다. 길드마스터인 김민식이주도하여 일을 벌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구했지만 욕은 저희가 먹겠네요.”
“그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허나 김민식은 초연했다. 길드원들은 허허 웃으며 정말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도시를 바라봤다. 재건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아포칼립스 길드가 아니었다면, 김민식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것은 자명했다.
과거 그도 그랬다. 최후의 영웅. 그 이름에 걸린 과부하. 무엇을 해도 한쪽에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던 그 모습을 김민식도 안다.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제는 그 당사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게 영웅의 길이라면······ 감수할 것이다.
‘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다시금 되새긴다. 그. 오한성보다 뛰어난 영웅이 되고 싶었다. 더욱 밝게 빛나며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 영웅이.
그러려면 더욱 강해져야 한다. 정작 저 ‘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도 못하지 않았나. 크게 비대해지며 흔들리던 ‘문’은 이제 안정기를 되찾았다. 그래도 주변을 감싼 채 만약을 대비해 한 명도 들이지 않고 있었다.
-나의 가장 강한 신도여.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따라 나를 재건하라. 그를 죽이고 ‘정수’를 빼앗아라.
눈앞으로 알 수 없는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동시에.
화아아아악!
검은 불길이 김민식의 몸에서 솟아올랐다.
[‘그레이트 올드 원’의 힘을 부여받았습니다.]
[‘어둠의 인도(9Lv)’칭호가 생성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