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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신사냥꾼-148화 (149/251)

< 36. 둠(4) >

그는 강렬함 그 자체였다. 십이나찰보다도 더욱 위의 존재가 되었다. 지금 내 수준은 십이니찰보다도 떨어지는 레벨이었고, 이만한 ‘격’의 차이를 그 역시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그저, 조금 놀라했다.

흥미와 감탄을 담은 채로, 나를 바라봤다.

“과연 ‘자격자’란 말인가? 1년 사이에 이만한 성장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하지만······.”

쿵!

지면을 찍었다.

바닥이 패이며, 그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

숨을 가다듬을 시간조차 없었다. 급히 흑풍검을 겨드랑이 아래로 급히 넣으며 화천의 손길을 쳐냈다.

쉬리릭!

그대로 땅을 굴렀다. 왼쪽 어깨에 격통이 찾아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깨가 통째로 뽑혀나갔을 것이다.

“육감(六感)을 개통했구나. 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야 발달하는 감각이지. 고작 1년으로는 결코 개통할 수 없는 감각을 깨우쳤다라······ 역시 네놈은 위험해.”

제기랄!

한 번의 격돌이지만, 능력의 차이는 확연했다.

나로선 이길 수 없다.

‘작은 샛별로 변형한다면?’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판단했다.

우선 심안을 열었다.

이름: 화천(value-지배불가)

직업: 십이나찰

칭호:

● 화천(9Lv, 힘마력+9)

● 파멸의 힘(7Lv, 모든 능력치+4)● 어둠의 사도(7Lv, 모든 능력치+4)

능력치

힘 114(97+17)s 민첩 104(96+8)s 체력 98(90+8)a 지능 101(93+8)s 마력 129(102+27)s 잠재력 (478+68/490)특이사항:

- 데몬로드 ‘둠’이 가진 권능의 힘을 나눠받았습니다(파멸의 힘).

- 알 수 없는 신의 사도가 됨으로서 그 힘을 나눠받았습니다(어둠의 사도).

- 균열석으로 인해 폭주하는 상태입니다(마력+10).

- 나찰계의 12계층을 다스리는 나찰입니다. 십이천(十二天) 중 화천(火天) 이름을 이었습니다.

스킬: ???

역시나 지배불가의 표식이 떠 있었다. 지배가 가능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러려고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균열과 관계 된 것들 중 지배가 가능한것이 없었으니 능력치총합 546!

11레벨, 대앙급의 괴물이었다. 그것도 거의 백앙(百殃)에 다다른 괴물이다. 범접불가의 영역에 있는 재앙!

초창기 우리엘 디아블로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였다.

1:1은 절대로 안 된다.

일천과 힘을 합쳐도 9:1.

‘미친 마력이로군.’

특히 가장 까다로운 건 마력이었다.

129의 마력이라니? 몇 퍼센트의 증가치를 가졌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단일능력치 90부터 1의 증가치가 10을 기준으로 500%의 효율을 보인다. 100부턴 통계도 없다. 하지만 100에서 다시 110, 120은 말도 안 되는 격차로 벌어질 것이었다.

물론 대략적인 감은 있다.

나는 또한 우리엘 디아블로이기도 했으므로.

‘120부턴 적어도 50배다.’

5,000%.

10을 기준으로 성인남성 50명분의 힘이 올라간다. 이것도 대략적인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지금 화천이 발휘하는 마법은 아무리 그것이 싸구려라도 명품이 된다. 우리엘 디아블로가 가진 스킬의 위력을 나는 알고 있었다. 대략 그 정도거나, 스킬의 격을 생각해서 그보다 한 단계 낮추면 지금의 화천이 되겠다.

“······ 이 자리에서 필히 죽여야겠구나.”

화천의 표정은 비장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은 제거하겠다는 의지.

다른 건 몰라도 마법에 의한 직격타만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의 불꽃이 완전히 닿지도 않았을진대 어깨가 통째로 타버렸다. 내가 가진 항마력으로는 그의 불을 막을 수 없다.

작은 샛별이 되거든 불에 대한 면역 또한 증가할 것이나, 더욱 많은 ‘수’가 필요한건 확실했다.

스으윽.

움직임이 바람보다도 빨랐다. 적어도 내 눈은 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오로지 감각만으로 그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할 수밖에 없었다.

채에엥!

흑풍검의 날이 나가기 시작했다. 부딪힐 때마다 상처가 늘었다. 욕이 절로 나오는상황이었다. 현철로도 견딜 수 없는 힘이라니. 일천이 화천의 움직임을 잡아두고자 했지만, 일천은 집요하게 나만을 노렸다.

‘오래 견딜 수 없다.’

검이 부서지면 끝이다. 순식간에 흑풍검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나마 암령의 기운으로 부서지는 것만큼은 막고 있을 따름이었다.

“허억! 허억!”

심력과 근력, 마력 모두가 단번에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기회는 한 번.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확실한 순간을.’

그러나 기다린다.

내가 가진 정화의 거울은 발각되면 그다지 효력이 없다. 거울에 담고, 상대방도 거울을 바라보는 상태가 적어도 3초는 유지되어야 했다.

단번에 거울 안에 화천의 모습을 담아야 한다.

그러니 계속해서 기다린다. 기회는 많아야 한 번.

그때였다.

크롸아아아앙!

하늘에서 지켜보던 이타콰가 떨어졌다.

그 크기만 거의 20m에 이르는 압도적인 크기를 보였으나, 화천은 이 역시 비웃었다.

“비만뱀이로군. 용치곤 마력이 너무 형편없는데?”

크르르르릉!

콰아아아앙!

이타콰의 날개가 사방을 휩쓸었다. 이타콰는 날개를 손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내가 사용하는 기술 역시 체득한 상태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들이 화천을 때렸다. 화천의 검은 불길이 흔들렸으나 제대로 된 타격은 주지 못했다.

“허! 용이 백보신권의 묘리를 펼쳐낸단 말이냐? 이건 또 의외로구나.”

허나 화천은 바람의 칼날 속에 담긴 묘리를 단번에 읽어냈다.

흐으읍!

파아아앙!

이타콰가 대지의 바람을 빨아들였다. 몸이 커짐에 따라 다른 용들과 마찬가지로 ‘숨결’을 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쾅!

이타콰는 바람을 다룰 줄 알았고 거대한 공기의 파동이 순식간에 대지를 휩쓸었다.

그러나 화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아아, 크기로는 성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몇 살 먹지 않은 모양이군. 숨결을 다루는 게 어색해. 그러나······ 성체가 된다면 ‘용군주’가 될 수도 있겠어.”

묘한 말을 남기고 입을 크게 벌렸다.

“받았으면 돌려줘야겠지? 어디 내 ‘숨결’도 막아보거라.”

검은 불이 무더기로 그의 입가에 모였다.

이윽고 화천이 숨을 크게 뱉으며, 검은 불 역시 토해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광선포가 튀어나가듯, 대지와 허공이 진동하며 그대로 이타콰를 향해 뻗어나갔다.

“이타콰, 피해라!!”

나는 외쳤다. 외치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막지 못한다. 막아서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닿았다간 즉사다. 아무리 육체파인 이타콰라 하더라도 버틸 수 없다.

애당초 이타콰가 나타나선 안 됐다.

이타콰와 나는 정신적인 부분이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텔레파시와도 비슷했다. 나는 분명히 이타콰에게 개입하지 말 것을 알렸다.

그러나 내가 밀리자, 이타콰가 개입했다. 이대로 있으면 내가 죽으리란 것을 녀석역시 깨달은 것이다.

‘안 돼!’

절박해졌다. 이보다 더 절박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라이라를 치료할 때? 그나마 비교하자면 그때 그 순간뿐이었다.

하지만 늦는다. 내가 달리는 속도보다 화천의 공격이 이타콰에게 닿는 게 더 빠를것 같았다.

안 된다.

이타콰가 죽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다.

지난 시간동안 우리는 함께했고, 누구보다 강한 유대를 가졌다.

그래······ 그것은 가족과 비견됐고,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가족조차 능가하는 유대였다. 영혼의 결속.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함을 나는 이타콰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더 빨리. 두 다리가 한계를 넘어 달려간다.

하지만 멀다. 멀었다. 닿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있기를 원했다. 제발 이 차이를 줄여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지이잉!

그 순간, 문이 나타났다.

나는 무작정 달렸다. 본능적으로 문에 들어가야 함을 알았다.

문으로 들어간 순간, 주변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이건 내 능력이 아니다.

‘이그닐.’

이그닐의 권능이었다. 모든 문을 여는 열쇠.

이그닐이 마치 나를 잡아 이끄는 것만 같았다.

여기라고. 여기로 가면 된다고.

나는 즉시 반대편 너머로 발을 옮겼다.

그러자.

콰르르르르르릉!

순간이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간을 접어 달리는 축지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예 공간 자체를 뛰어넘어버렸다.

눈앞으로 검은 불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즉시 거울을 꺼냈다.

정화의 거울. 이 거울은 균열을 담고 균열을 정화한다.

화천의 불은 균열의 온상이었다.

스아아아아아아아악!

이윽고 모든 검은 불이 거울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거울은······!”

화천의 눈이 커졌다.

“천마의 보패로구나! 하지만 안 보면 그만······!”

거울의 존재가 발각되었다.

화천은 거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싶었다.

천마의 보패. 거울이 보패라는 사실이 놀랍긴 했으나 문제가 있었다.

거울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눈치 챘다면, 더는 거울의 힘을 빌리기 어렵다.

그저 피해버리면 그만이었으니!

“이 샹놈의 새끼, 드디어 잡았다! 크하하!”

하지만 이 전장엔 일천도 함께하고 있었다.

태양의 거력을 지닌 존재가 자신의 몸이 타오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뒤에서 화천을 붙잡은 것이다.

“놔라!”

“똑바로 봐라, 이놈아. 보패가 너의 죄를 씻겨 줄 테니!”

화르르르륵!

일천의 전신이 불탄다. 아무리 십이나찰이라 하더라도 강화된 화천의 마력이 담긴 불길을 그대로 받아낼 순 없다.

화천은 고개를 돌렸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마저 일천이 어찌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일천의 몸이 전부 타버리면, 모든 게 원점이 된다. 대적불가의 적이 다시 미쳐 날뛸 것이다.

구우우우우웅.

그 찰나.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이내 태양이 가라앉고, 달이 떴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달의 빛이 정화의 거울에 닿았다.

그 순간 연동이 되듯, 달은 정화의 거울 그 자체가 되어 주변의 모든 균열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워, 월천······ 네 이노오옴!”

달빛을 받은 화천의 전신이 어그러졌다. 아무리 그라도 달 자체를 피할 순 없다. 눈을 감아도 파고드는 게 달빛이었므로!

“쿨럭! 넌······ 내 제자를······ 운명을, 너무 얕보았다.”

월천이 쓰러진 상태 그대로 피를 토했다.

진즉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한 것이다.

마지막까지 모아둔 한 방을 터트렸고, 그 결과 화천의 몸에서 모든 ‘어둠’과 ‘균열’이 씻겨나갔다.

“아, 안 돼!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대로 끝낼 순 없어! 부디, 둠이시여! 알레······ 알레테이아시여!!”

거울이 내뱉는 환상과 싸우지도 못한 채, 그대로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환상이 내뱉은 불꽃에 화천의 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전 일천은 그 환상을 이겨내고 ‘사슬’로부터 자유가 되었으나, 그것은 균열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균열의 힘을 더할 나위 없이 가득 품은 화천은 거울이 내뱉은 환상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내 화천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균열 자체였던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데구르르르!

주먹만 한 검은 돌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 36. 둠(4) > 끝

ⓒ 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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